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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5

   루시가 방을 빠져나간 후 남아 있던 인원 전부를 무릎 꿇힌 페이비는 설교를 시작했다.

   

   

   보통 이런 종류의 잔소리를 유쾌하게 여기는 사람은 존재치 않는다.

   

   

   일정 이상의 지위를 지닌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지만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페이비에게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성녀라는 지위에 어긋나는 행동 하나 한 적이 없는 그녀이기에 다른 이들도 차마 무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난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나도 그래. 왕자님.”

   “한 분은 싸움을 부추기셨고 다른 한 분은 방관하지 않으셨습니까.”

   

   

   정론이었기에 아서가 입을 다물었지만 프레이는 아니었다.

   

   

   한시 빨리 루시에게 달려가고 싶은 생각밖에 없는 그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럼 루시는? 루시도 가만 있었어.”

   “영애님께선 못 하신 겁니다. 그 분께선 저주를 품고 계시니까요. 대신 제게 도움을 청하셨으니 웃으며 구경하시던 3왕자님과는 결이 다릅니다.”

   “그치만.”

   “켄트 영애?”

   “치이.”

   

   

   프레이가 투덜거리면서 물러난 후 페이비는 다시금 조이와 네베라쪽으로 고갤 돌렸다.

   

   

   “두 분. 반성하셨습니까?”

   “네에.”

   “네.”

   “부디 오늘의 일이 여러분께 교훈이 되었길 바랍니다. 다툼은 아무것도 낳지 못합니다. 서로 협력할 때야 말로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죠.”

   

   

   조이와 네베라가 고갤 주억거리자 페이비가 웃으며 두 사람에게 서로의 손을 붙잡으라고 말했다.

   

   

   둘은 떨떠름한 기색이었지만 성녀의 웃음이 주는 압박감이 너무도 강해 일단 서로의 손을 잡았다.

   

   

   “자 이제 서로 칭찬합시다.”

   “…네?”

   “칭찬하라고요? 오늘 처음 보는 분을?”

   “서로의 스승님에게 칭찬의 말을 전하라는 겁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페이비의 말에 네베라의 입술이 떨린다.

   

   

   에르기누스를 칭찬하라고? 우리의 위대한 신께 긴 세월 고통을 안겨주었던 그 작자를?

   

   

   조이 쪽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자신이 루시와 함께 세상을 구하기 위한 전투를 벌이는 동안 흔적도 남기지 않은 무책임한 작자다.

   

   

   자신이 지닌 지위에 비해 하는 일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마법의 신을 왜 칭찬해야 한단 말인가.

   

   

   “하기 싫으시다면 반나절 정도 설교를 더 진행하도록.”

   “할게요!”

   “하겠습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잔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페이비란 걸 아는 두 사람은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허나 두 사람 중 어느 쪽도 쉬이 입술을 열지 못했다. 도저히 상대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 모습에 뺨을 매만지며 한숨을 내쉰 페이비는 네베라를 가만 바라봤다.

   

   

   “우선은 네베라님부터 시작할게요.”

   “네? 왜 저부터.”

   “연장자이시니까요.”

   “그건… 예. 맞죠.”

   

   

   둘 중에서 먼저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 사람은 네베라가 맞았다.

   

   

   사회적인 지위도, 마법에 투신한 세월도, 실질적인 나이도 전부 다 그녀가 많았으니까.

   

   

   칭찬하려고 한다면 끝도 없이 나오긴 해.

   

   

   에르기누스라는 대마법사가 역사상 최고라는 건 나도 부정 못 하거든.

   

   

   그저 내 입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 입술을 부들부들 떨다 숨을 내뱉었다.

   

   

   “성녀님. 한 가지만 여쭈어 보겠습니다. 만일 당신께 주신의 사도와 주신 중에서 누가 더 위대하냐 묻는다면 무어라 답하시겠습니까.”

   

   

   네베라는 당연히 페이비가 주신이 위대하다는 답변을 하리라고 여겼다. 그래서 루시를 편들면서 자신의 처지를 몸소 느끼게 한 후 이 상황을 빠져나가려 했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물음이네요.”

   “예. 당연히 주신께서.”

   “주신의 사도께서 더 위대하죠.”

   “예?”

   

   

   허나 페이비는 싱긋 웃으며 네베라가 조금도 예상치 못한 답을 전했다.

   

   

   “저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주신을 신앙합니다. 그 분이 선함을 믿고 선하려 노력함을 믿죠. 헌데 네베라님도 보셔서 아시겠지만 주신의 사도께서도 마찬가지시거든요. 그 분 또한 자신이 모시는 신에 뒤처지지 않을만큼 고귀하고 숭고하시며 존귀하신 다만 절 구원해 주신 분이세요.”

   “어어. 예. 그렇죠?”

   “인간의 몸으로 수많은 시련을 겪었거늘 신에 가까운 올곧음을 지니신 것만해도 충분한 존경의 이유가 됩니다만 제겐 한 가지 더 이유가 있답니다. 사도께서 저를 구원해주셨거든요.”

   

   

   바라신다면 주신의 사도가 얼마나 숭고하신지에 대해 말씀드리겠단 페이비의 눈동자에 압도당한 네베라는 다급히 고갤 내저었다.

   

   

   “이런. 아쉽네요.”

   “아하하. 죄송합니다.”

   “마음이 바뀌시면 언제라도 말씀해주세요.”

   “나. 나중에요! 지금은 할 일이 있으니까요!”

   

   

   네베라는 비웃음이 서린 조이의 눈을 보며 울컥했다가 어떻게든 화를 억눌렀다.

   

   

   “…그. 뭐냐. 에르기누스님께서 창안하신 다중마법진에 관한 이론은 여태까지도 사용될 만큼 위대한 이론입니다. 그 이상 최적화를 할 수 없다는 게 정론으로 여겨질 정도죠. 수백년 전에 그만한 이론을 창시하신 분을 어찌 칭찬하지 않겠습니까.”

   

   

   조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제대로 된 칭찬에 놀랐다.

   

   

   분명 이런저런 방식으로 비꼬려 들 것이라 여겼는데.

   

   

   “조이. 이제 당신 차례에요.”

   “아. 넵.”

   

   

   페이비의 말에 숨을 들이신 조이는 상대를 공격하려던 말을 지우고 마음 깊은 곳에 감추어두었던 말을 꺼냈다.

   

   

   “신화의 시대 당시 마법의 신께서 얼마나 많은 이들을 구원했는지에 대해 말할 필요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분께선 자신의 지식을 독점하지 않고 세상 모두에게 공평히 나누는 것으로 마법의 발전을 이끌어내셨죠. 마법의 신이 존재하기에 에르기누스님께서 존재하시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칭찬에 칭찬으로 화답 받은 네베라는 입꼬리가 부드러워지는 걸 느끼면서 에르기누스에 대한 칭찬을 전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뜯어먹으려던 두 사람의 분위기가 포근하게 바뀐다.

   

   

   서로를 향한 칭찬이 점차 존중이 되어가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되어가는 게 기쁜 듯 페이비가 방긋 웃음을 짓는다.

   

   

   역시 말이 지닌 힘은 대단하네요. 이대로 간다면 두 분께서도 완벽히 화해를.

   

   

   “…어라? 에르기누스님께서 창안하신 차원이론은 그런 게 아닌데요?”

   “저도 압니다. 허나 이 이론에서 에르기누스님이 지닌 의의는 최초의 발상을 떠올렸단 것입니다.”

   “차원이론이 추후에 왜 수정되었는 가에 대한 건 저도 배웠습니다. 허나 제가 에르기누스님께 배운 바에 따르면…”

   

   

   화해를?

   

   

   “머리가 꽃밭이시군요. 그런 엉터리 이론이 먹힐 것 같습니까?”

   “당신께서 이해를 못하고 계신단 생각은 안 하시나요?”

   

   

   …

   

   

   “에르기누스님께서 왜 마법계에 한탄하셨는지 알겠네요. 당신 같은 분이 신의 사도로 간택될 지경인데 어찌 발전을 하겠습니까.”

   “그러는 에르기누스님께선 당신을 과대평가하고 계신 듯 하네요. 이토록 사람 보는 눈이 없으실 줄이야. 실망스럽습니다.”

   

   

   두 사람의 말다툼을 바라보던 페이비는 둘을 중재하려했지만 마법에 대한 논쟁으로 격화된 두 사람에게 페이비의 말은 닿지 않았다.

   

   

   어느 순간 입을 다물어버린 페이비는 방긋 웃음을 지은 채로 물러서더니 신성을 끌어모았다.

   

   

   “서. 성녀님!?”

   “3왕자님. 말리지 말아주세요. 제겐 저 두분을 중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건 중재가 아니라 제압입니다!”

   “서로 비슷한 일이죠.”

   “전혀 비슷하지 않습니다!”

   

   

   아서가 페이비를 말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소리치는 동안 프레이는 눈을 반짝이며 마법사들의 말다툼을 구경했다.

   

   

   조금 있으면 제대로 싸울 것 같은데. 어느 쪽이 이기려나.

   

   

   *

   

   

   하늘을 수놓는 번개를 어둠이 집어삼킨다.

   

   

   저녁을 환하게 만들던 불꽃이 얼어붙더니 폭발하며 날카로운 결정이 되어 적을 공격하지만 고열의 불꽃이 얼음을 증발시켰다.

   

   

   수증기를 타고서 재차 번개가 쏘아지지만 어둠은 제 주인에게 닿으려는 전류를 게걸스레 잡아먹었다.

   

   

   동화 속에서나 볼법한 풍경을 보던 나는 카리아가 내밀어주는 과자에 손을 가져다댔다.

   

   

   팝콘이 없는게 참 아쉽네. 이것도 맛있긴 하지만 구경할 때는 팝콘만한 게 없잖아.

   

   

   – 와아아!

   – 불꽃놀이다!

   – 멋져!

   – 저기 가서 놀지 않을래?

   – 춤출까?! 춤추자!

   “구워지고 싶지 않으면 가만 있어. 벌레들.”

   

   

   잔뜩 들뜬 요정들을 한 마디로 진압한 나는 기지개를 키며 뒤에 기댔다. 새된 소리와 함께 푹신한 쿠션이 느껴졌다.

   

   

   “여. 영애님. 이건.”

   “뭐라도 하겠다며? 설마 거짓말을 했던 거야?”

   “아닙니다! 그럴리가요! 다만.”

   “그럼 가만 있어. 허접성녀. 날 위해서 일하는 게 보람이라며.”

   “예. 예에. 실로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가구노릇 하면서 영광이라. 성녀님. 취향이 독특하네?”

    “녜? 취. 취향이라뇨!?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전.”

   

   

   페이비는 자신이 중재하지 못한 잘못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딱히 그녀의 잘못은 아니었다.

   

   

   마법사란 놈들이 원래부터 저런 족속인 걸 어쩌겠는가.

   

   

   “루시 알른. 주변 시선은 신경 써야 하지 않겠나?”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하세요. 변태왕자님.”

   “내가 언제…!”

   “ 평소부터 소름끼치는 눈으로 허접성녀를 보셨잖아요. 제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세요?”

   “안 했다! 그런 적 없다!”

   “정말로요? 왕자님 고자에요?”

   

   

   대뜸 튀어나온 말에 아서가 멈칫한 순간 프레이가 끼어들었다.

   

   

   “왕자님. 고자야?”

   “그런 것 같아. 바보검사. 안타까운 일이야.”

   “그렇구나. 근데 고자가 뭐야?”

   “고자라는 건…”

   “왕족에 대한 비방을 잘도 늘어놓는구나!”

   “으쯔라구요. 저는 허접주신의 아이돌이거든요? 좆도 아닌 왕국의 개허접한 왕자님 따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랍니다.”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며 무어라 했더니 아서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달려들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 얼굴을 창백히 물들이고는 제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페이비와 베네딕을 번갈아봤지만 둘 다 고갤 갸웃거릴 뿐이었다.

   

   

   “흐응. 절 덮치려다가 발기라도 하셨나요. 변태왕자님? 그런 거라면 당황하지 않으셔도 괜찮을텐데요. 어차피 티도 안 나잖아요.”

   “너 진짜…!”

   

   

   아서의 분노에 코웃음을 쳐 준 나는 다시금 하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네베라가 봐주는 것 같지도 않은데 엄청 팽팽하네.

   

   

   에르기누스가 조이를 대체 얼마나 굴린 거야?

   

   

   우리 귀여운 얼빵이는 나만 굴려야 하는데! 나중에 항의해야겠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오. 생각하자마자 에르기누스가 나타났다.

   

   

   “좆밥싸움이죠. 뭐겠어요.”

   “에르기누스님과 마법의 신 중에서 누가 더 대단한가를 두고 싸우고 있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리아가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에르기누스는 멀뚱히 하늘을 바라보다 헛웃음을 흘렸다.

   

   

   “정말 되도 않은 것으로 싸우는 구나.”

   

   

   그러게나 말입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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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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