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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6

    <656 – 무책임한 쾌락(4)>

     

    고인물은 의상을 고를 때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다.

    하나라도 더 많이 수집하면 수집효과를 얻는 것은 물론이요, 일정시간 이상을 장착해야 수집효과가 활성화되는 옷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은 개인실에서 공부하거나 잠입임무 따위를 수행할 때, 타이머 설정을 맞추고 교복 아래에 반대 성별의 옷을 입고 수집 시간을 달성하고는 한다.

     

    “이 옷은 60분간 입으면 되고 이 옷은 하루동안 입으면 되고 이 옷은 행인 10명에게 착용한 상태로 목격되어야 해!”

    “…저는 정체를 들키지 않을 완벽한 변장을 원하지, 딱히 의상수집을 하러 온 게 아닙니다.”

    “그럼 더 열심히 바꿔가며 입어야지! 변장 기능 숙련경험치가 오르지도 않았는데 처음부터 완벽한 변장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

    “…!”

     

    싱은 깨달음을 얻었다.

    성과를 얻고자 해도 노력이 그에 수반되지 않거든, 어찌 지식으로 알기만 한다고 그 결실도 함께 따를 수 있겠는가.

    몸으로 체화되지 않은 지식이란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공허한 지식이었다.

     

    “그럼 이제 그만 빼고 조건 쉬운 외출복부터 착용 시작해!”

     

    재단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여장을 해야 한다.

    어차피 맞을 매, 미리 맞는다 치고 싱은 과감하게 환복을 실시했다.

    더군다나 그 회의는 재단의 간부회의다.

    어쩌면 오크노디도 참석하겠지.

    아니, 틀림없이 참여할 거다.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

    이 칭호만 해도 제국양녀보다 유명하다.

    그런 그녀가 재단 내의 입지가 일개 간부들만도 못할 리가 없다.

    필시 간부회의에 모습을 드러내겠지.

    만일 간부회의에서 경솔하게 변장했다가 기능경험치가 부족해서 미숙함이 드러난다면 어떻게 될까.

     

    -오잉…? 저 사람, 팔뚝이 왠지 익숙한데……?

    -걸음걸이가 왤케 남자같지?

    -헉, 속옷이 남자 거잖아. 역시 싱이 맞았어! 싱, 간부회의에는 왜 왔어요? 그것도 ‘여장’을 하면서?

     

    동네방네 소문 다 나도록 큰 목소리로 반갑게 인사를 하는 오크노디.

    그 말을 들은 재단간부들의 귓가에 무슨 말이 틀어박힐지는 안 봐도 훤했다.

     

    -저놈이 여장을 했다고?

    -허어. 세상 참 말세로군.

    -쯧. 엄청난 변태가 나타났어.

     

    간부들은 그 정보를 비밀로 하겠는가?

    어림도 없다.

    수많은 이들에게 목줄을 채워가며 재단의 협력자로 전락시키려고 드는 재단의 특징상 당장 이용해 먹으려고 안달이 나겠지.

     

    -싱. 네가 간부회의에서 옆트임 차이나드레스를 입은 사실이 발각되고 싶지 않다면 순순히 재단에 협력해라. 협력을 거부하면 아카데미 대자보에 너의 파렴치한 여장 행각을 낱낱이 공개하겠다.

    -오크노디와의 수련일정? 그딴 게 무슨 상관이냐. 지금 재단의 명령을 받아 원피스를 입고 하늘하늘한 차림새로 대륙십대검객에게 접근해 검술실력으로 남자를 꼬시려던 너의 행적을 담은 영상마도구가 제도 한복판에서 공개되어도 좋단 말이냐?

    -크윽! 이 비열한 녀석, 감히 증거인멸을 노리고 기습을 했겠다? 넌 이제 끝났어. 대륙 각지의 대도시에 퍼진 재단지부에 네 옷장을 가득 채운 여성용 속옷을 공개하겠다. 죽을 때까지 더럽혀진 명성을 후회하며 살아라!

     

    “…”

     

    어떻게 상상해도 좋지 못한 미래만이 가득하다.

    그러니 절대로 여장이 들켜서는 안 된다.

    적어도 오크노디에게만큼은!

     

    “훌륭해! 이제 외출복에서 노출부위를 10%씩 늘린 착용조건이 높은 의상을 입고 1학년들의 기숙사 근처를 돌아다니고 와! 변장은 남을 속여야 기능이 확실하게 올라가니까 실전은 피할 수 없어!”

    “…바라던 바입니다.”

     

    그가 필사적으로 감추고 싶었던 대상인 오크노디가 이미 눈앞에 있다는 사실은, 아마도 싱이 알거든 졸도할 정도로 충격적인 진실이리라.

    핑크노디 또한 싱의 당당한 대답에 랜덤 취미 한번 신기하게 걸렸다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싱의 동료점수를 좀 더 높여도 되겠어!’

     

    이유야 어쨌건 싱의 평가점수는 올라갔다.

    도감수집에 저항이 없는 취미는 해당 캐릭터의 티어를 0.5는 올릴 수 있는 강력한 취미다.

     

    “갔다 오는 동안 다른 옷도 구해올 테니까 다시 여기로 돌아와. 알겠지? 나중엔 <투시방어>나 <동작보정>도 배워야 하니까 빼먹으면 안 돼!”

     

    얼떨결에 호감도가 올라간 핑크노디의 배웅을 받으며 싱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1학년 기숙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배추는 심지 마라. 교내에는 선배들이 기르는 애완동물이나 키우다가 가성비 떨어진다고 유기한 유기동물들이 가득한데, 맛이 무난한 것들은 이놈들이 죄다 갉아먹는다.”

    “오오, 굉장해! 엄청나게 실용적이고 도움이 되는 꿀팁이잖아!”

    “자쿠선배 짱이에요!”

     

    강의가 없는 시간을 맞이하여 자쿠는 1학년들이 모인 신입생기숙사를 찾아갔다.

    작년, 안 그래도 가난한 신입생을 약탈까지 하겠다고 들이닥친 괘씸한 선배들을 떠올리며 난 저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던 마음을 잊지 않은 덕분이었다.

     

    “오크노디와 놀아주는 조직에 들어오거든, 몬스터들도 줘도 안 먹는 고약한 맛의 식물 씨앗과 배양법, 적당한 텃밭을 이용할 수 있다. 동아리 활동이 불만족스럽거든 필히 방문해보도록.”

    “선배… 다 좋은데 몬스터도 못 먹는 야채를 우리가 어떻게 먹어요?”

    “미각을 일시적으로 상실하는 마법을 배우면 된다.”

     

    후배들은 사고가 확장되는 놀라움을 느꼈다.

    상식의 벽이 허물어지며 지금껏 하지 못했던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를 수 있는 기쁨.

    보다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자각.

    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

    심지어 더 나은 내일을 향한 희망까지.

    이것은 마치 말로만 듣던 깨달음의 순간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그런 굉장한 방법이!”

    “그래도 동아리 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공부할 시간이 없지 않나요…?”

    “걱정마라. 우리 조직의 수장 오크노디는 이미 작년부터 그런 불상사에 대비해서 조직혜택을 만끽하는 동안, 지배구역 내 몬스터들의 기습에 대처하는 75종 이상의 기능훈련을 겸하고 있다.”

    “오오오!”

    “무려 75종이나!”

    “꼭 들어가겠습니다. 들어가게 해주세요!”

     

    신규조직원이 없는 조직은 활력을 잃고 고인다.

    모종의 이유로 기존 조직원이 이탈하거든, 조직의 영향력과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축소된다.

    그럴수록 상부의 압력에서는 점점 더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조직 내부의 모든 이들의 안전도 위태로워지기 시작한다.

    임무의 양은 변치 않으나, 개개인이 부담해야 할 역할과 위험은 점점 늘어나니까.

    훈련과 성장도 인력에 여유가 있어야 자유롭다.

     

    ‘이제 잡일 정도는 새로 들어오는 1학년들에게 떠넘겨야 나도 모브도 수련시간이 늘어나지.’

     

    신입생은 한 달 남짓 구르며 고달픈 아카데미 생활을 하던 차에 든든한 오크노디 라인을 타고 아카데미 생활 쉽게 해서 좋고, 자신들은 기초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서 기쁜 마음으로 일하는 법을 전수하고 강해질 수 있어서 이득이다.

    계약서나 빚 변제를 통해 악의를 대물림하는 못돼먹은 980기 선배들과 달리, 서로 협력하여 더 나은 상생을 추구하는 981기의 질서를 자신이 선도한다.

     

    ‘학생회라고 거들먹거리면서 온갖 명목으로 삥이나 뜯고 다니는 놈들보다 내가 훨씬 더 학생회스럽군.’

     

    자아도취에 처하더라도 나 정도면 그럴만한 자격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중증의 나르시즘에 빠져 혼자 웃음을 짓는 자쿠.

    그를 보는 후배들의 시선이 존경스러운 선배에서 뭔가 이상한 선배로 바뀌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던 도중이었다.

     

    “응? 뭐지? 왤케 갑자기 소름이 돋지?”

    “봄바람이 차가워서 그런가?”

     

    감이 예민한 신입생들은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그 이유를 찾지 못해 계절 탓이겠거니 여겼으나, 조직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성장한 자쿠는 원인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영역이다. 영역이 밀려온다…!’

     

    고작해야 신입생들의 활동구역에 영역까지 전개하며 들이닥치다니, 이 무슨 살벌한 선배인가.

    수치도 모르고 살벌하게 돌아다니는 선배의 낯짝이나 보겠다며 기감을 넓게 펼치던 자쿠의 눈에 뜻밖에도 장신의 여학생이 보였다.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인데…’

     

    자쿠의 시선이 빠르게 하단으로 향했다.

    상대가 고수인가 아닌가.

    이를 구분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하체를 살펴보는 것임을 그는 알고 있다.

    단련된 하체는 더 많은 힘을 싣도록 도와주고, 초인적인 움직임과 폭발적인 가속을 가능하게 만든다.

    낯선 여자선배는 긴 다리가 주목받지 않는 롱스커트 아래로 굽이 없는 플랫 슈즈를 신었다.

    여성치고는 크지만 보폭이 일정하고 칼같이 딱딱 떨어지는 걸음걸이는 걸음마다 압박감을 선사했다.

     

    고수다.

    자신보다 명백히 위의.

    몇 단계나 더 우위를 점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수.

     

    “와, 선배님 스타일 엄청 좋으시다!”

    “몇 학년이세요?”

    “선배님도 흑빵 먹어요?”

     

    겁도 없이 우르르 달려가서 인사를 건네는 1학년들을 보며 자쿠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뻔했다.

     

    ‘미친 것들이 목숨 아까운 줄도 모르고!’

     

    당장 불어오는 바람에 주변 나무에서 나뭇잎들이 흔들리는데 여자선배는 긴 머리카락 하나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라.

    탈모 걸린 남자교수가 가발을 쓰고 주변 공간을 완벽하게 장악해서 바람에 가발이 흐트러지는 위험조차 허락하지 않듯이 완벽하게 장악된 공간은 작은 바람 하나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굉장히 자신의 경계에 예민한, 영역 내에 침입하는 사람을 덥썩 물어버리는 동물처럼 날이 선 사람이라는 뜻이다.

     

    서걱

     

    “히에엑!”

    “바, 바닥에 금이 생겼어!”

     

    아니나 다를까, 그 살벌한 성질머리를 참지 못하고 바닥에 선이 그어졌다.

    선배의 검이 자신들의 발목이나 허리, 목을 절단할 수도 있었음을 깨달은 신입생들!

    바짝 얼어서 멈춘 후배들을 무서운 눈으로 응시하던 선배가 자쿠를 발견하고는 세 배는 더 날카로운 눈으로 살기를 뿜었다.

     

    “!!”

     

    선배가 마스크에 손을 올려 고쳐 매고 돌아서는 동안, 자쿠는 산에서 맹수를 만난 사람처럼 식은땀을 줄줄 흘려야만 했다.

    선배가 기숙사를 떠난 뒤에야 자쿠는 간신히 호흡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정말 무섭고도 이상한 선배였군.’

     

    검이 아니라 마스크에 손을 올린 이유는 뭐였을까.

    뭐가 그리도 빡쳐서 저리 살기를 줄줄 뿜어대고 있을까.

    꼭 사람의 접근을 경계하는 야생동물마냥 말이다.

    무엇보다도…

    한 번의 검격임에도 익숙했던 그 검격.

    바로 얼마 전, 단체외출을 나가서 용의 고수 봉우리에서 목도했던 싱의 검술처럼 섬뜩한 구석이 있다.

     

    ‘동방제국 출신의 여류검객인가? 나중에 싱에게 물어봐야겠군.’

     

    저런 무시무시한 여검객은 실수로라도 엮이지 않도록 사전에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당사자에게 묻는 부캐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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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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