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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6

   다시금 섬을 찾은 교황은 느긋하게 던전을 거닐었다.

   

   

   이전에는 라샤와 함께 방문했다가 한계를 느끼고서 돌아갔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 때와는 달리 교황은 끝의 권능을 다룰 수 있었으니까.

   

   

   그가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던전 내부에 끝이 다가온다.

   

   

   수백년을 버텨 온 철들이 녹슬어 부서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동하던 함정들이 고장이 나서 멈춘다.

   

   

   라샤의 주먹조차 견디던 벽이 무너져내리고 안에 도사리던 여러 인공 생명체들도 가루가 되어 흩어져간다.

   

   

   한 때 세상을 멸망으로 이끌뻔 했던 악신의 힘은 낡디 낡은 던전이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던전의 마지막에 도달한 교황은 문을 열고서 그 안에 자리한 남자의 얼굴을 마주했다.

   

   

   용사.

   

   

   희망의 상징이며 구원 그 자체라 불러 마땅한 존재.

   

   

   그 어떤 재앙 앞에서도 굴하지 않으며 절망 끝에 승리를 거두어낸 영웅.

   

   

   그와 수도 없이 맞붙어 보았던 교황은 용사를 존경했다.

   

   

   그야말로 인간이 위대하단 증명이며 주신이 옳다는 증거였으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용사님.”

   “너무 공손해진 것 아닌가? 과거의 자네는 좀 더 포악한 성미였는데 말이야.”

   

   

   느릿하게 몸을 일으킨 용사는 자신의 검을 치켜들었다.

   

   

   “혈기가 넘치던 시절이었죠. 허나 그 때로부터 수백 년이 지났습니다.”

   “허나 그대는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악신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지.”

   “위대하신 주신을 위해서요.”

   “그대가 제멋대로 주신을 위한다 믿는 거지만.”

   

   

   피식 웃음을 흘린 용사가 자신의 기운을 끌어올린다.

   

   

   이전에 주신의 사도를 상대할 때와는 달리 진심으로 상대를 죽이기 위해.

   

   

   대지가 뒤흔들린다. 천장에서 돌조각들이 떨어진다. 공기가 멈추고 용사가 선 공간 자체가 그의 것으로 변한다.

   

   

   “정말 예나 지금이나 두려우신 분이군요.”

   “도망치겠나?”

   “아뇨. 그럴 필요가 없죠. 당신께선 절 죽이지 못하니까요.”

   

   

   교황의 말이 끝나자마자 휘둘러진 검이 그의 머리를 지워버렸지만 교황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과거 당신께선 절 몇 번이나 죽이려 하셨습니다. 아그라의 사도인 제가 저지르는 죄를 아시기에 그를 막으려 하셨죠. 허나 결과가 어땠지요? 당신은 실패했고 전 여기에 서 있습니다.”

   “그래. 그러니 이제 바로 잡으면 된다.”

   “아뇨. 아뇨. 그런 게 될 리가요. 이전의 당신이라면 모를까. 수백년에 걸쳐 쇠락한 당신은 절 죽일 수 없습니다. 절대로.”

   

   

   과거의 용사를 존경하는 교황이기에 지금의 용사가 얼마나 나약해졌는지 느낄 수 있었다.

   

   

   눈은 총명을 잃었고 굳건했던 마음에는 금이 갔으며 오랜 과거에 머문 검은 낡디 낡았다.

   

   

   나를 죽여 줄 주신의 사도와는 다르다.

   

   

   “용사여. 부디 물러서 주시겠습니까? 전 아그라를 부활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그라를 죽이려는 것이죠.”

   “하하하! 그거 참 웃기는 말이군! 아그라의 사도인 그대가 아그라를 죽이겠다고!?”

   “예. 시작도 끝도 오롯이 주신의 것이여야 하니까요.”

   

   

   아그라 따위에겐 이 세상에 있을 가치가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을 제물이다.

   

   

   위대한 주신께서 다시금 이 세상에 강림하기 위해 바쳐지는 것이야말로 아그라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 될 터.

   

   

   “이건 반역이 아니다! 죄 많은 악신을 위함이다! 악신의 사도로서 속죄의 기회를 선물하는 것이야!”

   

   

   광증에 휩싸인 교황이 소리를 내지르는 순간 뒤 편에서 기척을 감추고 있던 가라드가 튀어나와 교황의 심장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찔렀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즉사해야 할 피해였지만 교황은 느긋이 자신의 몸을 관통한 검을 구경했다.

   

   

   “또 다른 영웅께서 이 곳에 계실 줄은 몰랐는데요.”

   “그래? 나도 벌레처럼 질린 너새끼가 살아있을 줄은 몰랐는데.”

   “주신의 사도께서 이 곳에 들렸다 가셨군요. 용사의 역할이 그 분께로 이어진 겁니까.”

   

   

   교황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 사이에 서서 두 손을 끌어모아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위대하신 주신이시여. 당신의 사도에게 기적을 선사하소서.

   

   

   그 어떤 시련에도 물러서지 않게 해주소서.

   

   

   사도께서 저의 시련이 되어 저를 증명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진실로 당신께 영광이 깃듬을 믿습니다.”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기도를 끝마친 교황은 활짝 웃으며 두 영웅을 바라봤다.

   

   

   “지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봐.”

    “전력을 다해 막도록 하지.”

   

   

   그 날. 섬의 일부분이 지상에서 사라졌다.

   

   

   *

   

   

   조이와 네베라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구경하는 이들의 눈치를 살폈다.

   

   

   순간 열이 올라서 싸움을 시작하긴 했는데 이걸 끝낼 방법이 마땅찮았다.

   

   

   차라리 둘 중 하나의 실력이 압도적이었다면 한 사람의 승리로 끝났겠지만 불운하게도 둘은 비등했다.

   

   

   마법의 실력 자체는 네베라 쪽이 더 좋았다.

   

   

   마법을 연구한 세월만 하더라도 10년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다 마법의 사도로서 온갖 지원을 받아 온 네베라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헌데 이러한 격차에서 승부를 내지 못하는 까닭은 조이가 지닌 여러 특이성 때문이었다.

   

   

   루시와 함께 수많은 전장을 돌아다니며 얻은 실전 경험.

   

   

   에르기누스로부터 배운 어둠의 권능.

   

   

   여기에 더해 요정여왕이 선사한 축복까지.

   

   

   이러한 수단들로 부족한 마법 실력을 보충한 조이는 어렵잖게 네베라와 대치한 건 물론이고 때때로 네베라를 밀어붙이기까지 했다.

   

   

   물론 네베라도 나름의 노련함을 지니고 있었기에 약간의 우위로는 승부를 낼 수 없었지만.

   

   

   ‘이 정도 했으면 충분하잖아! 꼬맹아! 사도의 권위를 위해 쓰러져!’

   ‘이쯤 했으면 할만큼 하셨잖아요! 관용을 베푸는 모양새로 물러나주시죠! 어른이시잖아요!’

   

   

   서로가 서로에게 포기하라며 속으로 소리치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쟤네는 자기들 친구가 걱정되지도 않나!?’

   ‘마법의 신을 모시는 신도들께선 사도께서 어찌 되든 좋다 여기시는 건가요!?’

   

   

   양측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채 치열하게 다투었기에 누구도 끼어들지 않은 것이지만 그걸 모르는 두 사람은 결국 둘 중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싸우는 수밖에 없단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필살의 일격을 날리려 했으나.

   

   

   “실례를 좀 하겠습니다.”

   

   

   중간에 끼어든 에르기누스가 마력을 휘저은 순간 둘 모두 중심을 잃고 하늘에서 낙하하기 시작했다.

   

   

   “꺄아아아!?”

   “꺄아아악!”

   

   

   마법을 사용하고 싶어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놀란 두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 동안 루시가 조이를 받아냈고 베네딕이 마법의 사도를 잡아챘다.

   

   

   그제서야 살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둘은 퍼뜩 땅 위에 서서는 에르기누스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갑자기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에르기누스님! 최소한 경고라도 해주셨어야죠!”

   “대처까지 다 정해두고서 움직인 겁니다. 이러지 않으면 두 분께서 멈추지 않으실 듯 해서요.”

   

   

   에르기누스가 고갤 숙이자 씩씩거리던 두 사람도 고갤 주억였다.

   

   

   어쨌건 에르기누스 덕분에 멈출 수 있었던 건 사실이니 말이다.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만 일단 마법의 사도께 전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지요?”

   “전 결코 제가 마법의 신보다 더 대단한 존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라는 마법사는 어디까지나 마법의 길을 연구하는 존재일 뿐 마법 그 자체에 비견될 순 없죠.”

   

   

   결국 자신이 마법을 연구할 수 있었던 것도 마법의 신께서 베푼 자비 덕분이라며 에르기누스가 겸손을 표하자 네베라의 입꼬리가 살짝 풀렸다.

   

   

   자신이 찾아간 것도 아니고 에르기누스 측에서 먼저 찾아와 한 수 아래라는 걸 인정하다니! 마법의 신께서도 필시 기뻐하실 거야!

   

   

   “다만 마법의 신께서 좀 게으르시긴 하시죠. 신위에 오르고서 이리저리 돌아다녀봤습니다만 마법이 이토록 발전하지 않았을 줄이야. 솔직히 말해 실망스러웠습니다.”

   “…그게 마법의 신께서 방치했기 때문이라 생각하십니까?”

   “예. 신위에 오른 분이라면 응당 모든 이들을 더 나은 길로 이끌어야 하지 않습니까. 최소한 저는 그러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만, 마법의 신께서는 아닌가 보군요.”

   

   

   본래부터 강대한 힘을 타고난 자들이 부지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며 에르기누스가 고갤 주억이던 중 갑자기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보통이라면 커다란 소란이 일어야 할 일이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상할 정도로 태연했다.

   

   

   “…마법의 신께서 데려가신 거겠죠?”

   “그…렇겠죠.”

   

   

   이 상황에 에르기누스를 납치할 사람은 하나 뿐이었으니까.

   

   

   “따까리. 저 찐따 언제쯤 돌아올 것 같아?”

   “어. 죄송합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신께서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지라.”

   “신이란 녀석들이 왜 꼬맹이들보다 유치한 거야? 진짜 신은 하나같이 병신들뿐이야?”

   

   

   루시가 대놓고 신성모독을 저질렀지만 누구도 그녀를 무어라하지 못했다.

   

   

   당장 그녀부터가 주신의 사도이기도 하고, 다들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기도 했으니까.

   

   

   “저 둘의 악연이 가볍지 않아서 그렇다.”

   

   

   뒤 편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갤 돌린 루시는 허리를 구부정하게 만든 채 기분나쁜 웃음을 짓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신화의 시대 당시 논쟁이 내전으로 번질뻔한 적도 여러번이거든.”

   “이 음침한 약골은 뭐야?”

   “네 손에 문장을 남긴 당사자다만.”

   “…방구석 변태 꼬맹이?”

   “내가 왜 변태란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군.”

   

   

   간슈가 미간을 찌푸리자 루시가 웃음을 터트렸다.

   

   

   “흐응. 쉰내나는 꼬맹이가 어른이 되면 이 꼴이구나. 평생 꼬맹이로 사는 편이 낫겠네.”

   “미안하지만 이건 내 몸이 아니라 내 사도의 육신을 잠시 빌린 것 뿐이다.”

   “이런 남자가 취향이야? 찐따라 찐따를 고른 건가?”

   “하. 역시 그대는 멀리서 보는 쪽이 유쾌하군.”

   

   

   헛웃음과 함께 어깨를 으쓱인 간슈는 따라오란 말과 함께 등을 돌렸다.

   

   

   “뭐 하려고?”

   “에르기누스가 설명하려 했던 것에 대해 대신 말해주마.”

   “굳이 다른 데 가야 해? 이상한 냄새나서 같이 있기 싫은데.”

   “모든 사람들이 들을 법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는 신들의 의향에 대한 내용이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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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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