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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7

    <657 – 무책임한 쾌락(5)>

     

    982기 신입생들은 최근 들어서 다양한 복장으로 교내를 얼쩡거리는 여류검객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그 선배, 굉장히 예뻤지?”

    “분위기도 남자선배들 못지않게 굉장했지. 진짜 카리스마 넘쳤어.”

    “어느 학부 몇 학년이시래?”

    “몰라. 우리도 암흑상회에 막 의뢰 넣었어. 거기가 교내정보에 그렇게 해박하대.”

     

    행동력 좋은 한 신입생은 사비까지 털어가며 조사의뢰를 맡겼다.

    암흑상회 출신의 지젤이 직접 관리하는 정보망은 도적길드 뺨치는 정보력으로 하루 만에 여류검객에 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

     

    ━━━

    이름 : 불명

    소속학부 : 불명

    출현지역 : 아카데미 내 모든 시설

    조사 결과

    -고학년 출입금지구역도 손쉽게 드나드는 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최소 3학년 이상으로 추정됨.

    -5위계 실력자들의 <영역전개>를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는 검의 고수.

    -상복부터 무희복까지 다양한 여성복을 입으며 밤낮으로 출몰하나, 누군가의 눈에 목격되면 얼마 후 사라지는 의미불명의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하루에도 적게는 여러 차례, 많게는 수십 번씩 옷을 갈아입고 나타나는 점을 미루어 교내에서 오랜 시간 폐관 수련에 몰두하다가 심마에 빠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검객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말을 하지 않는다.

    -이 검객은 어떠한 경우에도 암흑상회의 추적을 허용하지 않는다.

    -체형이 간혹 달라지기에 체형 왜곡의 변장마법, 혹은 축근골을 통한 변장을 펼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

     

    조사 결과는 의뢰를 맡기기 전보다 더 많은 의문만을 불러왔다.

     

    “왜 계속 옷차림이 바뀌는 걸까?”

    “누구 보여주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에이, 노출광도 아니고 설마 그러겠어?”

     

    확실히 이 선배가 내뿜던 기세는 남의 눈에 띄려는 의도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뭔가 불가피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정말로 심마에 빠져서 제멋대로 폭주하는 마나를 가라앉히려면 남들의 시선을 받아야 한다거나.”

    “아니 그런 안타까운 사정이…! 선배 너무 불쌍해. 지켜주고 싶어!”

    “뭔가 멋있지 않아? 불치병에 걸려서 부득이하게 날마다 패션쇼를 하고 돌아다니는 겉으로는 차갑지만 속으로는 우울한 선배님이라거나.”

     

    선배 무서운 줄 모르는 후배들의 철없는 망상이 계속될 수 있는 이유는, 으레 1학년을 괴롭히기 마련인 2학년들의 사정이 다른 기수에 비해 유독 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약자를 돌보지 않는 강자존의 기조 속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1학년을 착취해야 할 약자들이 같은 981기의 조직에서 도움을 받고 있다.

    오크노디가 쏘아올린 거대한 공과 세계를 뒤흔드는 업적들, 거기에 덩달아 하루아침에 제국 여제가 되어버린 매스각키 2황녀까지.

    동기들이 저리 대단한 짓을 하고 있으니 불쌍한 1학년들 붙잡고 괴롭히면서 하찮은 힘과 재료들을 모으느니, 조직에 들어가 지원을 받거나 암흑상회를 이용해 저가에 편리하게 재료를 구비하고 수련에 매진하는 것이 981기의 주 트랜드였다.

     

    ‘왠지 이럴 것 같더라니, 저 철부지들이 의뢰를 넣고도 정신 못 차리고 선배의 뒤를 캐고 있군.’

     

    자쿠는 이런 사정을 전혀 모르는 신입생들이 대단히 위태롭게 보였다.

    막말로 저들이 쫓는 선배는 981기 동기가 아니다.

    980기, 혹은 그보다 전의 인물.

    기존 980기 멤버 사이에서 유명인물은 작년에 이미 2학년 사천왕이니, 상급반이니 하면서 두각을 드러내고 1학년에게도 얼굴을 알렸다.

    거의 확정적으로 979기 이하의 인물이다.

     

    아카데미가 날것 그대로였던 시절.

    야만의 강자존을 겪고 자란 선배.

    그런 선배의 성질머리에 저 1학년들을 언제까지 봐주고 참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신입들. 그 선배에게 이 이상 접근하는 짓은 그만둬라. 너희가 함부로 접근해도 좋을 자가 아니다.”

    “왜요? 저분이 뭐 하셨는데요?”

     

    막상 뭔가를 저지른 적은 없지만, 어차피 언제 저지를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자쿠는 큰맘 먹고 음해를 해서라도 신입생들을 살리겠다고 결정했다.

     

    “저 사람과 단둘이 남게 되면… 포인트를 삥 뜯긴다.”

    “뺏길 포인트가 없어서 괜찮아요!”

    “…교복도 삥 뜯는다.”

    “남자교복을요? 그건 저도 보고 싶은데… 어차피 교복은 재발급 되잖아요!”

    “아카데미에서 영영 실종되는 학생도 있다.”

    “저런 굉장한 선배라면 비밀조직 하나쯤은 가지고 있겠죠? 조직의 숨은 요원이 되어서 선배와 함께 일하다니, 상상만으로도 흥분이 돼요!”

    “……”

     

    이 녀석들, 너무 강해.

    자쿠의 호의는 결과적으로 신입생들의 의욕만 더 샘솟게 만들어 주었다.

     

     

    * * *

     

     

    ‘미치겠군.’

     

    핑크베리 교수가 요구하는 각 복장의 변장술 상승 조건은 자동사냥이나 다름없는 성공률을 보였다.

    입고 걷기만 해도 각기 다른 20인에게 목격되기부터 시작해서 30인에게 선망 어린 시선 받기, 목격자에게 “와” 소리 40번 듣기까지.

    마지막을 달성하려고 잘만 앞으로 걷다가 휙 돌아서며 뒷모습으로 와 소리 듣기는 얼마나 힘들었던지.

     

    ‘오크노디를 속이는 것이 이렇게까지 힘들 줄이야.’

     

    사전작업만으로도 이렇게 개고생을 하고 있거늘, 오크노디의 눈치는 또 얼마나 좋을까.

    솔직히 상상도 가질 않았다.

    황제도 속여먹고 혁명에 성공한 아이의 눈썰미가 보통이 아닐 건 틀림없었다.

     

    “핑크베리 교수님. 변장을 아무리 철저하게 하더라도 피부가 노출되면 제 근육을 알아보고 정체가 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듭니다.”

    “그럼 변장기능을 그만큼 더 올려야겠네! 조건이 더 까다롭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 조건제 개빡센 의상에 도전해야지!”

    “…이번엔 또 뭘 하면 됩니까?”

     

    싱은 두려움과 동시에 묘한 오싹함을 느꼈다.

    평소랑 똑같이 차갑게 주변과 선을 긋고 행동하는데도 좀처럼 떨어지질 않는 호감 어린 시선들.

    어떻게든 자신에게 좋게 보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선후배들.

    자신들은 잘 숨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이미 기감에 걸렸음에도 <의상목격자 인원수>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모르는 척하며 염탐을 허락하는 경험들까지.

    검 하나밖에 모르는 고독한 검객의 인생에 있어서는 감히 상상도 해본 적 없던 자극적인 경험투성이였다.

    지금도 이렇게나 곤란한데 이보다 더한 고난이도 경험을 해야 한다니…

    다음은 아이돌의상을 입고 100인 악수회라도 시킬 작정인가?!

    잔뜩 긴장한 싱에게 핑크베리 교수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소방복 입고 1헥타르 규모의 대지에 붙은 불을 진압하기!”

     

    싱은 노골적으로 실망했다.

    평소의 자신이라면 실망이 아니라 안도했을 거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로.

     

     

    * * *

     

     

    자쿠의 음해공작에 상관없다며 해맑게 대답한 신입생들도 내심 쫄리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저 선배 있잖아, 분명 뒤를 밟아도 갑자기 건물모퉁이나 담벼락 하나만 끼고 시야 밖으로 나가면 그대로 사라지고 전혀 다른 곳에서 나타나지 않아?”

    “맞아맞아. 분명 다음 모퉁이는 100m 너머에 있는데 2초 사이에 사라져있었어.”

    “난 창문 앞에 서 있는 걸 발견했는데 눈 깜빡하는 사이에 눈앞에서 사라졌다니깐? 설마 하고 창밖을 내다봐도 아무도 없었어.”

     

    신출귀몰함이 해도 해도 너무 과하니 슬슬 자신들이 살아있는 사람을 쫓고 있는 것인지 의문마저 들기 시작했다.

     

    “이건 하급반의 친구의 친구가 동아리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기프트 아카데미 고학년들은 순진한 신입생이 쫄래쫄래 뒤쫓을 미남미녀 유령을 만들고 동아리실까지 쫓아오게 만든대.”

    “헉. 왜 그런 짓을 해?”

    “동아리실에 들어오면 문을 닫고 여기에 사인하라며 입부신청서를 내미는 거야.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도망치려고 하면 갑자기 문이 전부 잠기고 미남미녀 유령의 형체가 흘러내리면서 괴물의 실체가 나타나는 거지. 계약하지 않으면… 포인트 습득율이 20% 감소하는 저주를 내리겠다고!”

    “으아악!”

    “어떻게 그런 심한 일이!”

     

    너무 놀라 의자 뒤로 나자빠진 순진무구한 신입생들이 벌벌 떨었다.

     

    “못 믿어. 말로는 무슨 말이든 못해.”

     

    그러나 겁쟁이들 사이에도 용기 있는 사람이 하나쯤은 섞여 있기 마련.

    어떤 학생들은 말없는 여류검객의 뒤를 쫓아 열심히 교내를 헤집었다.

    노력이 언제나 보답받지는 못하지만, 노력하지 않는 자보다 결실을 거둘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으아악! <호밀밭에서 허수아비의 습격을 피하기> 강의장이 활활 타오르고 있어!”

    “중간고사가 되기 전에 다시 호밀을 심고 급속생장 주문을 적당한 속도로 걸어서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게 키우는 작업을 어느 세월에 하라고!”

     

    절망하는 교관들 사이로 한 명의 학생이 검 한 자루를 들고 달려나갔다.

    서걱-.

    불이 붙은 호밀만을 정확하게 베어내며 불이 더 이상 퍼지지 못하도록 저지한다.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은 세차게 칼을 휘둘러 칼바람으로 받아쳤다.

    소방관 복장을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강력한 검술과 용맹한 돌진으로 현장을 진압하는 검객의 등장에 교관들이 감동에 벅차 울부짖으니, 여류검객을 찾아 떠돌던 신입생들도 이를 눈치챘다.

     

    “맙소사, 저 검술은 우리가 찾던 그분이야!”

    “세상에. 화재현장에 뛰어들어 검으로 화재를 진압하는 검객이라니, 너무 대단해!”

    “그런데 왜 상반신 방화복만 탈의하고 브라자 차림으로 계시지? 근육 과시인가?”

    “열기 저항이 높으신가 보지.”

    “그렇구나!”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패션을 포기하지 않을 정도로 단련된 신체스펙과 고도로 단련된 스펙을 선한 일에 사용하는 올바른 마음가짐까지!

     

    “결정했어. 난 저분의 조직에 들어갈 거야!”

    “나도!”

    “선배님, 저희도 돕겠습니다!”

    “여기도 불 꺼주세요. 제 마음에 불붙었어요!!”

     

    1학년들은 신이 나서 싱의 뒤를 따라 불타는 호밀밭으로 뛰어들었다.

    음해 선동을 사용해서라도 신입생들의 안전을 지켜주려던 자쿠의 의도와는 상반된 결과가 일어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년치 관심 몰아서 받고 정신 못 차리는 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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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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