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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8

    <658 – 무책임한 쾌락(6)>

     

    여장은 처음에는 불편하기만 한 행위였다.

    여성복은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고 검을 휘두르기도 불편했다.

    허리는 왜 이리 조이고 가슴은 왜 이리 답답한지.

    단련된 신체는 어설픈 옷 따윈 가볍게 찢고 남성의 체형을 과시하자니, 핑크베리 교수가 들이미는 옷의 내구도와 구속력은 하나같이 장난이 아니었다.

     

    ‘숨을 쉬기도 힘들군.’

     

    처음에는 낯선 감각에 검을 다루기도 버거웠다.

    알고 있는 것을 온전히 100% 펼치기도 어렵다.

    그런데 여장을 하고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핑크베리 교수의 다양한 변장술 기능 상승조건에 도전할수록 변화가 찾아왔다.

     

    ‘적응이 되었어.’

     

    다리 끝까지 조이는 긴 치마는 작은 보폭으로 빠르게 발을 내디딜 수 있게 되었다.

    옆이 트인 차이나드레스는 남성의 중심부가 노출되는 불상사를 모면하고자 다리의 각도, 보폭을 절제하고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다리 하나로 시야의 사각을 만드는 방법을 깨우쳤다.

    복부와 가슴이 압박을 받으면서도 호흡하는 방법을, 얕은 호흡으로 검을 다루는 방법을, 무호흡으로 더 길게 부담 없이 검을 쓰는 방법을.

    온갖 상황에서 검을 다루고 몸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니, 남성이기만 해서는 알 수 없었던 여성의 검술, 여성의 시각, 전혀 다른 새로운 접근법의 수련이 가능해졌다.

     

    [검술 경험치+30]

    [보법 경험치+30]

    [호흡 경험치+30]

     

    ‘여장은… 검술의 경지상승에 도움이 된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발견한 뜻밖의 효능!

    반대로 여성이나 할법한 과감한 노출은 피부로 바람을 느끼고, 마나를 보다 민감하게 받아들이며 인지감각과 영역범위를 확장하는 새로운 감각을 선사했다.

     

    [영역범위가 20% 확장됩니다.]

    [영역의 감지력이 200% 상승합니다.]

    [영역 4단계의 실마리를 감지했습니다.]

    [현재 영역 4단계 깨달음 진행도 – 2/10]

     

    관심은 더 이상 경계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오크노디와 같은 자유로운 거리감의 관계가 보다 폭 넓게, 자유롭게 이루어졌다.

    자신을 대하는 타인의 태도변화가 타인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도 변화를 불렀다.

    인간 대 인간.

    사람으로서의 대인관계능력과 사회지능에도 변화가 생겼다.

     

    “선배님, 절 부디 제자로 받아주세요!”

    “선배님에게 접근한 사람들이 실종되었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분명 비밀조직에서 일하고 있는 거겠죠? 저희도 그 조직에 들어가게 해주세요!”

    “가문과 나라에서 원하는 인재가 되는 것만 생각했던 제게 다른 길이 있음을 선배를 통해서 알았습니다. 부디 저희에게도 의인의 길을 지도해 주시길!”

     

    …헛소리를 하는 신입생들을 베지 않고 침착하게 무언으로 한 바퀴 둘러보는 마음의 여유가 생길 정도로 말이다.

    이것은 그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인간유형이었고, 새로운 경험은 곧 새로운 대응의 필요성을 불렀다.

     

    ‘…말을 하면 남자목소리가 나오잖아!’

     

    변장은 해도 목소리 변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주의함!

    실전을 겪어보길 다행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간부회의장에 갔다가 부득이하게 소리를 내야 하는 상황이 닥쳐오면 여장을 해놓고 남자 목소리를 냈을 것이 아닌가?

     

    -과연 파시블 예프의 호위답군. 암컷의 몸에 수컷의 목소리를 지닌 변태를 데리고 다니다니. 실로 극한의 가능충다워.

    -아무리 그래도 남자가 되어서 저런 꼬라지를 하고 싶나? 사내자식 체면은 전부 망가뜨리는 정말 천박한 놈이군.

     

    쏟아지는 매도와 경멸의 시선, 이를 일언반구도 못하고 묵묵히 받아들여야만 하는 수치심.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시련의 순간들에 지금 실전연습을 하는 모든 순간이 얼마나 귀중하고 값진 경험인지 깨달았다.

     

    ‘핑크베리 교수는 괜히 오크노디가 강의교수로 고른 인물이 아니었어. 디테일이 엄청나다!’

     

    학생이 부족함을 스스로 깨우치도록 만드는 참교육.

    결점을 보완하며 완성된 형태의 성취를 이루도록 유도하는 스승이야말로 최고의 스승이 아닌가.

    감히 평가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에게 핑크베리 교수는 지금껏 거쳐온 아카데미 교수 중에서 최고라고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었다.

     

    허나 깨달음이 깊어도 실전연습에서 참사를 겪으면 쓰라린 패배와 흑역사가 될뿐이다.

    우선은 이 순간을 넘어서야 한다.

    싱은 고심 끝에 검을 한 차례 허공에 휘두르고 검집에 넣은 뒤, 천천히 자리를 벗어났다.

     

    ‘내 할 일은 끝났다. 질문도 선망도 받지 않겠다. 너희는 내가 남긴 검식만을 고민해라.’

     

    상상하는 것은 제 할 일이 끝나면 언제나 훌쩍 사라지는 오크노디의 뒷모습.

    작지만 뒤를 잡기도 벅찬 아이를 투영하듯 모방하며 멀어지니, 열정적으로 따라붙은 학생들이 탄성을 흘리며 우두커니 뒤에 남았다.

    오크노디는 자신을 따르려는 이들에게 언제나 과제 하나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 자리에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마치 너의 수준을 다 알고 있으며 네가 나아갈 길이 어디인지도 나는 보여줄 수 있다고 외치는 것처럼.

     

    ‘역시 아무도 따라오지 못했군. 1학년 수준에서는 조금 어려운 검이었지.’

     

    핑크베리 교수의 과제뿐만 아니라 오크노디의 사람을 대하는 용인술까지 모방한 결과, 싱은 오늘도 시련 하나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핑크베리 교수가 기다리는 장소로 향하면서도 싱은 강한 성취감을 느꼈다.

     

     

    * * *

     

     

    “존나 카리스마 있어…”

     

    후배들의 눈에 싱은 일언반구도 없이 돌아서며 멋지게 납검하고 사라지는 의협 그 자체였다.

     

    “저 선배… 우리를 걱정해서 달려오는 그 잠깐 사이에 혼자서 불을 모두 끄고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며 홀로 떠났어.”

    “1학년은 순순히 강의나 들으면서 수련에 매진하고 보호나 받으라는 건가… 대체 얼마나 탐욕적인 의협심이냐고!!”

    “방화복을 입고도 치마와 하이힐이 어색한 사람처럼 뒤태를 의식하는 걸음걸이에도 분명 고수만의 숨은 뜻이 담긴 거겠지? 크으윽, 경지 차이가 너무 나니까 도저히 그 뜻이 무엇일지 가늠도 되질 않아!”

     

    감히 자신들이 따라잡기도 힘든 실력에 저학년을 철저하게 배려하는 의협심을 겸비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주는 선배의 참된 모습!

    가뜩이나 수수께끼의 여류검객을 흠모하며 모여든 학생들에게 이런 광경이 나타나니, 이들의 선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자쿠 선배는 여류검객 선배를 위험하다고 평가했지만 사실은 달랐어. 저분은 좋은 분인데 모두가 오해를 하고 있는 거야. 우리가 적극적으로 저분의 선량함을 알려드려야 해!”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하고 교내의 평가도 바닥을 기지만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서 선행을 무릅쓰는 여검객선배를 어떻게 믿고 따르지 않을 수 있냐고!”

    “저 선배가 교내 이곳저곳에 나타나던 이유는 우리가 모르는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려는 자원봉사의 일환이었던 거야. 그게 틀림없어!!”

     

    광신도에 준하는 감격에 벅찬 학생들 사이에서 여학생 한 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의상은 왜 매번 바뀌는데?”

    “선배에게도 남모를 취미 하나쯤은 있어도 되잖아! 누구의 인정도 받지 않는 사람이 평소 자랑하지 못하는 옷을 남들에게 보여주며 평범함을 추구하는 외로운 마음을 네가 뭘 알아!”

    “아니, 선배가 직접 말한 것도 아닌데 그런 걸 어떻게 알아…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닥쳐! 너가 선배의 고충을 뭘 안다고 난리야! 선배는 외로운 의협이야. 우리가 지켜줘야 해!”

     

    사실 검을 다루는 후배들이 이리 열광하는 이유가 있었다.

    검객들은 기타리스트와 비슷하다.

    강해지고 하는 기타리스트는 기타 외의 것에 관심을 지녀서는 안 된다.

    실력 좀 있다고 인기에 취하는 순간, 그의 강함은 정체되기 시작한다.

    술, 담배, 이성을 가까이 하는 자.

    더 이상의 성장은 없으니.

    이성과의 관계 자체를 멀리하는 검객들, 남성 비율이 95%인 남초학과의 남자검객들에게 자신들보다 강한, 심지어 멋있기까지 한 여류검객은 유니콘보다 귀한 존재였다.

    여류검객들 입장에서도 이런 간지폭풍 선배가 나타나니 존경을 안할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남녀대통합의 인기인이 된 싱은 신입생들 사이에서 반쯤 아이돌, 우상처럼 여겨지게 되었으니 <소방활동으로 존경을 얻는다>라는 히든조건을 충족하며 변장술 경험치가 쑥쑥 자랐다.

     

    “헉! 싱군, 상의는 왜 벗고 온 거야?”

    “…그래야 여장변신술에도 도움이 되니까 그런 겁니다.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그래그래. 난 다 이해해! 가끔 온몸을 보라색으로 칠하고 눈이랑 입 크기를 최대로 늘리고 팬티 차림으로 괴인플레이를 하고 싶어질 때도 있는걸!”

    “…그런 영문 모를 감성은 잘 모르겠습니다.”

     

    변장술의 깊은 심연 앞에서는 그런 싱조차도 두려움을 느꼈지만 말이다.

     

    ‘이 교수님, 너무 많이 친해졌다간 위험하겠군.’

     

    어떤 깨달음은 너무 늦게 찾아오기도 한다.

    싱이 지금 얻은 깨달음이 그랬다.

     

    “엥? 몰라도 상관없어. 싱도 해야 하는걸!”

    “…제가 말입니까?”

    “응!”

    “보라색 알몸팬티괴인을?”

    “응응!”

     

    여장변신술을 위해 많은 걸 타협했던 싱이 처음으로 생각했다.

     

    “변장술 경험쌓기는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그간 많은 가르침에 감사했습니다.”

     

    이거, 지금 도망치지 못하면 남성의 존엄성이 위협받는 수준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받을 지경에 다다를지도 모르겠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공포의 고인물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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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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