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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8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신의 사회도 인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나쁜 놈과 착한놈이 있고, 이상한 놈과 고지식한 놈이 있으며, 약한 놈과 강한 놈이 있다. 단순히 개인의 성향에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저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신격 간에는 분명한 상하관계가 존재하며 수많은 신들을 포괄하는 대표격의 존재도 있기 마련이지.

   

   

   쉽게 말해서 회사라고 생각하면 돼.

   

   

   검술이니 창술이니 뭐니 하는 무술을 담당하는 신격들이 있고 그 대표로 무술의 신이 있는 거야.

   

   

   자연의 신 아래에도 수많은 분류들이 존재하고 마법의 신 아래에도 그러하며 내가 변태까마귀라 부르는 노답여신의 아래에도 많고 많은 이들이 존재해.

   

   

   기업으로 따지자면 변태까마귀 정도면 계열사 사장님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모든 신을 설득할 필요는 없어.

   

   

   이 대표격에 머무는 신만 납득시키면 그 아래에 있는 자들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돼있으니까.

   

   

   어쩌면 인간보다도 더 순종적일지도 몰라.

   

   

   신은 개념적인 존재잖아. 자기보다 상위의 존재가 무어라 그러는데 엿이나 먹으라고 할 순 없겠지.

   

   

   퇴사가 곧 죽음인 세계라니 끔찍하네. 신이란 지위도 마냥 좋은 건 아닌 것 같아.

   

   

   “루시다아아아아!”

   

   

   내게 달려드는 변태사도의 얼굴을 후려쳤더니 그가 허공을 몇 바퀴 돌고서는 깔끔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화끈해! 아파! 그래서 너무 좋아! 실물이란 실감이 나!”

   

   

   최소한의 품위조차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지금 변태사도는 까마귀에게 인격을 넘겨 준 상태다.

   

   

   아직은 신격이 머무는 장소에 갈 준비가 안 되어 있으니까.

   

   

   임시방편으로 이렇게 설득을 할 생각이거든.

   

   

   그리고 지금은 이러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중이야.

   

   

   변태사도가 상대라면 마음 놓고 폭력을 행사할 수 있잖아.

   

   

   “좀 진정해라. 치녀. 네 놈의 사도가 무어라 생각하겠는가.”

   “잘한다고 말하겠죠? 우리 사도도 루시랑 닿는 걸 좋아하니까요!”

   “…참 답이 없군.”

   

   

   간슈마저 고개를 저으며 설득을 포기하기에 난 최후의 수단을 불러냈다. 파파! 저 놈 붙잡아!

   

   

   “우선 이야기부터 나누시지요.”

   

   

   베네딕에 의해 제압된 까마귀였지만 여전히 그녀의 입가에는 웃음이 묻어나왔다.

   

   

   “베네딕 알른! 당신도 내가 참 좋아해! 전선에 서던 당신의 모습은 참 멋졌거든!”

   “좋게 봐주셨다니 기쁩니다만. 본론으로 들어갔으면 좋겠군요.”

   “알겠어. 알겠어. 대신 프레테한테는 좀 꾸며서 말해줘. 사도한테는 멋진 신이 되고 싶단 말야.”

   

   

   그럴거면 끝까지 가면을 쓰고 다니란 말이 절로 떠올랐지만 입씨름을 해봐야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갔다.

   

   

   “그래서 주신의 사도시여. 당신께서는 어찌 약소한 신들마저 포용할 생각이신지요? 당신의 부탁이라면 어지간하면 들어줄 생각입니다만 그래도 내용을 듣고 싶군요.”

   

   

   게임 속에서 일어났던 일을 내가 생각했던 것마냥 읊어주었더니 까마귀의 표정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재밌는 발상이긴 합니다만, 설득이 가능하겠습니까? 주신 교회에 원한을 지닌 종교가 여럿일 터인데.”

   “너희 병신들이 최선을 다해야지. 사라지고 싶지 않다고 흐느끼면서 매달린 건 너희잖아? 걷어차이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야지.”

   

   

   비아냥대는 어투에 열이 오를 법도 했거늘 까마귀는 쉬이 고갤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군요. 사도님과 성녀님께서 머리로 계시는 주신 교회라면 기꺼이 관용을 베풀테니 그 이상은 저희가 노력할 일이죠.”

   “…너 왜 정상인 척 해?”

   “무슨 말씀이신가요? 전 언제나 위엄이 넘친답니다?”

   

   

   변태사도에게 다시 설명해달라 부탁하며 까마귀 여신은 자리를 떴다.

   

   

   <뭐지?>

   ‘저만 불안한 거 아니죠? 할아버지도 뭔가 이상한 걸 느끼고 계시죠!?’

   <저 분이 저리 쉽게 물러날 리 없다. 무언가 계책이 있을 것이야.>

   

   

   새대가리 중에서는 똑똑한 편이라 그거야!?

   

   

   무슨 수작질을 부리려는 거지?

   

   

   어떤 식으로 변태짓을 하려고.

   

   

   “아가씨.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에린의 공손한 인사를 보고 알겠다 답하려던 나는 눈매가 살짝 휘는 것을 보고 메이스를 꺼냈다.

   

   

   “변태까마귀년아. 넌 자존심이란 게 없냐?”

   “벌써 들켰어? 눈치도 빠르네. 그래도 상관은 없지만!”

   

   

   에린의 몸을 한 까마귀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뒤로 주춤하던 나는 다급히 베네딕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물렀거라! 이 사악한 것아! 에린의 몸을 돌려내!

   

   

   “베네딕. 물러서 주면 고마울 것 같은데.”

   “절 쓰러트리시면 됩니다. 여신이시여.”

   “루시가 파파라고 부르면서 환히 웃는 그림을 다섯가지 버전으로 그려줄게.”

   

   

   순간 베네딕의 어깨가 움찔했지만 그는 내 따가운 시선에 고갤 저었다.

   

   

   “제가 그런 걸로 설득될 것처럼 보이십니까?”“파파 파이팅! 이란 대사가 담긴 루시 인형도 가능해.”

   “…그. 그 정도로는.”

   “후. 알았어. 나중에 루시가 성인식을 할 때 입을 의상까지 내가 손수 만들어줄게. 신의 이름에 맹세컨대 아주 환상적인 옷이 나올 거야.”

   

   

   베네딕이 솔깃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그의 귓불을 잡아당겼다. 그제서야 베네딕은 아무리 유혹해도 의미 없을 것이라고 소리를 쳤다.

   

   

   “단호히 거절하니 참 아쉽지만 어쩔 수 없네. 알겠어. 네 의사를 존중하도록 할게.”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가 제안했던 것들은 이미 에린하고 합의가 끝난 내용이야. 순순히 넘어와주길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부성애가 더 컸나 보네.”

   

   

   장난스레 웃던 까마귀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 순간 에린의 눈매가 본래대로 돌아왔다.

   

   

   변태 까마귀가 또 장난을 치는 게 아닐까 싶어 긴장했지만 변태성은커녕 공손함만을 드러내는 에린의 모습에 안도했다.

   

   

   “야. 허접에린. 넌 어쩌자고 까마귀년한테 몸을 넘긴 거야?”

   “신께 빚을 지우고자 하는 의도였습니다만 여신께서 아쉬워하시는 걸로 보아 잘 된 모양이군요.”

   “너 바보야? 네가 멍청한 짓 안 해도 까마귀년은 나한테 빌빌 기거든?”

   “저는 무력하니까요. 이런 식으로라도 당신께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주제가 넘었던 모양입니다.”

   

   

   죄송하다면서 에린이 고개숙이는 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했다.

   

   

   결국 난 한숨을 내쉬면서 다음부턴 이런 멍청한 짓을 할 땐 미리 말을 하라 이야기한 후 그녀의 머리를 토닥여줬다.

   

   

   “정말 바보 같네. 네가 머리를 안 꾸며주겠다고만 해도 발광할텐데 왜 고개를 숙여?”

   “그런 무기는 좀 더 중요한 순간에 사용해야죠.”

   

   

   존경심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에린의 어투에 난 그녀가 괜히 저택을 장악한 게 아님을 깨달았다.

   

   

   “푸핳. 태도가 마음에 드네. 좋아. 허접에린. 내가 특별히 재밌는 걸 알려줄게. 까마귀의 흑역사에 대해서 말야.”

   “흥미롭군요. 경청하겠습니다. 아가씨.”

   

   

   내가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자꾸만 푸른 창이 떠오르기에 난 그 모든 항의를 한 쪽 구석으로 밀어넣으며 말을 더했다.

   

   

   저항하지 못한 상대를 일방적으로 패는 거 너~무 재밌어!

   

   

   *

   

   

   싸움이 끝난 후 조이와 네베라는 손쉽게 화해를 했다.

   

   

   결국 서로의 스승이 더 뛰어남을 주장하며 싸웠을 뿐인 두 사람이다. 장본인인 두 사람이 말다툼을 하러 떠나간 이상 두 사람이 싸울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에르기누스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마법에 관한 진지한 논의를 나눴다.

   

   

   조이는 잘 이해가 되질 않았던 여러 마법 이론들을 물었고, 네베라는 신의 권능을 다루는 이론에 대해 질문했다.

   

   

   어느 쪽이건 마법의 극한에 가까운 내용들이었기에 주변 사람들이 하나도 이해하질 못한 것은 덤이었다.

   

   

   “에르기누스님다운 폭력적인 이론이군요. 권능도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니.”

   “마법의 신께서 수정하신 이론엔 흠잡을 곳이 없네요. 역시 마법 그 자체이세요.”

   

   

   그에 따라 반목하던 두 사람이 자연스레 존중하게 될 무렵 에르기누스가 다시금 돌아왔다.

   

   

   무슨 이야기를 나눈 것인지는 몰라도 잔뜩 성이 나서 씩씩거리던 에르기누스는 조이와 네베라의 시선을 보고 나서야 헛기침을 했다.

   

   

   “후일 모든 일이 끝나면 온 힘을 다해 겨루기로 했다. 그전까진 어떤 결론이 나왔다 말하기 어려울 성 싶어.”

   “…에르기누스님. 설마 패하신 건가요?”

   “제자야! 네 스승이 그리 믿음직스럽지 못하더냐!? 그저 머리가 굳을 대로 굳은 작자가 열받을 뿐이다!”

   

   

   어떤 치열한 토론이 오고 간 것일까 조이가 궁금해했지만 에르기누스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보다 알른 영애는 어디에 있느냐. 그녀에게 꼰대 놈의 생각을 알려줘야한다만.”“오자마자 절 찾다니 제가 그렇게 그리웠어요?”

   “신이란 직함의 꼰대에 비하면 네가 낫긴 하더구나.”

   “헤에. 닭장여왕한테 말해줘야겠네요. 찐따님이 벌써 너한테 질렸다고.”

   “그런 음해는 곤란하다.”

   

   

   루시의 장난스런 웃음에 헛웃음을 흘린 에르기누스는 마법의 신과 다투기 전 나눈 대화에 관해 말했다.

   

   

   *

   

   

   “마법의 신은 그대의 계획에 동조할 생각이다.”

   “왜요? 설마 그 자식도 페도새끼인 건 아니죠?”

   “확언은 못하겠다만 아마 아닐거다. 그 자가 네게 협조하겠노라 선언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네가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머리가 굳은 꼰대놈은 모든 걸 가능성으로만 평가하거든.”

   

   

   그러니까 내가 가장 이길 가능성이 높아 보이니 내게 투자를 하겠단거구나. 합리적이네.

   

   

   어설프게 반기를 들었으면 온갖 흑역사를 들먹일 생각이었는데 말야.

   

   

   에르기누스한테 패배했을 때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삽질했던 순간까지도 모두 다.

   

   

   치이. 아쉽지만 넘기는 수밖에. 협력하겠단 상대한테 협박을 할 필요는 없.

   

   

   아니지.

   

   

   “저기. 저기. 찐따님. 제가 재밌는 것들을 많이 알고 있는데요.”

   “…설마 꼰대놈에 대한 것이냐?”

   “네에. 동료애라고는 조금도 없는 꼬맹이가 저한테 재미난 걸 알려줬거든요. 왜 북해에 있는 섬 중에서…”

   “그마아아안!”

   

   

   네베라가 갑자기 소리를 내지르기에 놀라서 고갤 돌렸더니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내게 소리를 질렀다.

   

   

   “협력한다고 했잖나! 그대의 뜻에 따르겠다고 말했거늘 뭐가 문제인가!”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핏대를 세우는 모습에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흐흥. 흐흐흥.

   

   

   괴롭히는 맛이 있을 것 같네.

   

   

   조금만 가지고 놀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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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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