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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9

    <659 – 무책임한 쾌락(7)>

     

    싱이 변장술 강의 손절각을 재고 슬슬 간부회의장소로 향하려고 하자 핑크노디가 토라졌다.

     

    “수련코스에 변장복, 장소까지 세심하게 선정해서 골라줬더니 도중에 멋대로 내팽개치는 법이 어딨어! 이거 안 하면 변장술 경험치 충분히 안 오른다고!”

    “아무리 그래도 보라색 알몸팬티괴인은 조금… 여장과도 관계 없지 않습니까.”

    “왜 없어? 여캐도 그렇게 하는 사람 많아!”

    “…그, 직접 해보셨습니까?”

    “아니?”

    “……”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잔인한 수련법인 것을 다행이라고 여길 수도 없었다.

    이런 나쁜 년.

    자기가 해보지도 않은 수련법을 강요하다니, 결국 너도 조교들을 실험체로 써먹는 수많은 교수와 다를 바 없는 사악한 존재에 불과했단 말이냐?

    싱은 핑크베리 교수를 향한 존경심을 잃었다.

    이제 그가 존경했던 참스승은 여기에 없었다.

     

    “여캐로는 해본 적 없지.”

    “………그러니까, 남자의 몸으로는 해보셨다?”

    “재밌었지? 이게 정말 생물학적으로 사람이 맞는지, 마인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심문받고 C그룹 특수전형학생으로 들어가서 호감도 올리기 힘든 애들이랑도 친해지고!”

    “심지어 학생 코스프레를 하셨다!?”

    “아무래도 그렇지? 1학년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괴인의 흉내를 내며 아카데미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시간을 보내는 무시무시한 교수님.

    동급생인 줄로만 알았던 존재가 다른 교수들의 눈조차 속인 진정으로 사악하고 무시무시한 교수임을 깨닫는 순간, 동급생들의 충격은 얼마나 클까.

    가히 세상이 무너지고 모든 상식과 이치가 붕괴하는 우주적 공포에 비견할 상황이다.

     

    ‘핑크베리 교수가 참스승의 모습을 보였던 이유는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 현상과 같은 이유였어. 저 교수는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는 괴물. 나를 자신과 같은 괴물로 만들고 싶어했던, 어떤 의미로는 마인보다 위험한 존재다!’

     

    마인조차도 변하는 신체반응을 억제하고 사람으로 머무르고 싶어하거늘, 역으로 사람의 몸을 괴물처럼 바꾸며 탈인간을 추구하는 존재의 마음이 어찌 인간의 마음이라 할 수 있을까.

    싱은 오크노디가 떠오르는 이 작은 키의 교수가 점점 무섭게 느껴졌다.

    곱게 보내달라고 보내줄 것 같지도 않자, 싱은 그답지 않게 유창한 달변으로 위기를 모면하고자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이 제자는 외출하여 그간의 성취를 시험하겠습니다. 만일 부족함을 실감하거든 다시 돌아와 배움을 청하겠사오니, 습득한 지식을 복습하고 실험할 기회를 부디 허락하여 주십시오.”

     

    복습.

    교수들이라면 따르는 학생의 학습 욕구를 위해서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마법 같은 말이었다.

     

    “치. 그럼 어쩔 수 없지. 대신에 부족함을 느끼면 꼭 돌아와야 한다?”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럼 이거 받아.”

     

    핑크베리 교수가 옷장에서 꺼낸 의상은 한눈에 보기에도 화려한 복장이었다.

     

    “이것은…?”

    “아이돌 복장이야.”

    “…아이돌!!”

     

    음유시인계 최상위 클래스.

    대륙의 성녀에 비견되는 인기를 끄는 여성들의 동경과도 같은 클래스의 전용의상이었다.

    대륙에 남성 아이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미풍양속을 저하하는 존재는 각 영지의 영주들이, 각 나라의 국왕들이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오해의 여지도 없는 확실한 여장복장의 등장에 싱의 눈이 거칠게 떨렸다.

     

    “어째서 이런 귀한 옷을 제게… 저는 이번 실전 이후로 배움의 길을 떠날 수도 있는데…”

    “복습하겠다며? 시키지도 않았는데 배운 지식을 소중히 여기는 싱에게 주는 포상이야! 변장술은 거쳐가는 기술이라고 능력치만 올리고 런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기껏 가르쳤더니 인증도 허접하게 하는 꼬라지 보고 얼마나 서운했는지 알아?”

     

    마냥 핑크베리 교수를 두려워하던 싱도 어딘지 모르게 슬픔과 외로움이 깃든 얼굴을 보고는 그녀의 마음이 어쩐지 이해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과 다르지 않았다.

    남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홀로 자신만의 길을 고독하게 걸어 나가고, 자신의 뜻에 함께 하거나 도움을 줄 이를 내심 갈망하고 있었다.

     

    ‘그런가. 나는 핑크베리 교수에게 아이돌 의상을 받을 정도로 이미 소중한 제자였던 건가…’

     

    단순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제자라는 호칭을 입에 담았던 사실이 후회되었다.

    그래, 방법이 괴팍한 까닭도 오랜 시간 홀로 변장술을 연구하며 인간성을 잠시 상실했던 탓이겠지.

    이런 가르침에 인색하지 않고 제자의 발전만을 궁리하는 참된 스승을 두려워하고 멀리하려 했던 자신은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싱은 고개 숙여 인사하며 속으로 다짐했다.

    기필코 재단의 간부회의에서 모두가 감쪽같이 속을 여장을 선보인 뒤에 위풍당당하게 돌아오겠다고.

    이 어깨에 짊어진 아이돌 의상에게 부끄럽지 않을 옷걸이가 되어 당당하게 악수회를 열겠다고!

     

     

    * * *

     

     

    “그런 일이 있었는데, 간부회의가 마침 저희 테마파크 근처에서 열린다고 하더라고요! 혹여나 싱을 보더라도 교수님이 먼저 아는 체는 하지 말아주세요. 제가 먼저 아는 척을 해야 하거든요!”

     

    디스트로이어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악마도 너만큼 잔인하지는 않겠다.”

    “힝. 제가 머요? 기껏 소중한 지식을 베풀어줬는데 런하려고 한 싱이 나빴죠! 싱은 한 번 혼쭐이 나도 싸요. 고작 그 정도로 변장술을 마스터했다고 우쭐해서 달아나려고 하다니, 회의장에서 큰 소리로 모두에게 주목받도록 여장했다고 폭로해도 싸다고요.”

    “네 목적이 싱을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게 만드는 것이라면야 말리지 않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조금은 자중해라.”

    “싱이 얼마나 잘 여장했나 하는 꼴 봐서요!”

     

    불쌍한 싱 2년생을 위해서라도 오크노디의 관심사를 돌려줘야겠군.

    디스트로이어는 평소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하찮은 것들의 근황을 입에 담았다.

     

    “얼마 전, 테마파크를 침략한 소국의 침략군들이 있었다.”

    “우왕.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반절은 내 손으로 피떡을 만들었고, 나머지 반절을 쓸어버리기 전에 키메라 군단이 올라오더군. 제국의 매스각키 여제가 신경을 써준 모양이다.”

    “막 나라의 결전병기를 일으키거나 고대의 리치나 영웅을 소환하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마왕군의 침략이라도 당한 줄 아냐? 그런 거창한 일은 없었다.”

    “치. 시시해라.”

    “음. 잔챙이만 있던 건 아니다. 골렘이 있긴 했지.”

     

    디스트로이어는 문득 궁금해졌다.

    오크노디가 호위골렘이랍시고 굉장히 강한 골렘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소문이 테마파크에도 전해졌다.

    테마파크의 직원들 사이에서는 암흑상회의 지젤과 인맥을 지닌 인사가 다수 있기에, 이런 정보를 습득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몇 급인데요?”

    “나이트급 골렘 열.”

    “우와. 전재산 털었나보다!”

    “소국 수준이 그렇지.”

    “지금은 어떻게 됐어요?”

    “부서진 골렘은 테마파크에서 재가공하도록 재료를 챙겨두었다. 세계에서 기술자가 가장 많은 곳이니 내달 중으로 개조가 끝날 거다.”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이 한때 최강도적이라고 불리긴 했지만, 사실 그 뒤에는 다른 칭호도 있었다.

    만능도적.

    도적이 행하는 어떤 일도 전부 다 잘한다고.

    도적의 세부클래스에는 룬도적도 있다.

    마법문자를 해독해서 유물의 가치를 평가하고, 고대술식을 역산해서 마법함정을 간파하고, 술식을 고쳐서 던전의 자율방어소환수를 아군으로 쓰기도 한다.

    포섭한 골렘은 마나를 공급하는 던전 밖으로 나가면 애물단지가 되고, 던전핵 수준의 강력한 공급원은 특정지형의 특정위치가 아니면 따라하기도 버겁지만 도시단위의 방어시설에서는 경우가 다르다.

     

    ‘일정반경 내부를 지키기만 하면 되는 골렘의 성질과 소유권 탈취의 이점이 서로 일치하는걸!’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이 테마파크에 머무르는 한, 침략군이 늘어날수록 테마파크의 방위력도 점점 그에 비례해서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다만 문제가 있다.”

    “헉. 교수님 수준에도 문제가 생겨요?”

    “내가 아니다. 정확히는 침략군이 쓸려나간 나라에 생긴 문제이지.”

     

    교수님이 펼친 마나보드 위로 테마파크가 위치한 트로이 왕국 인근의 약소국들의 영토를 담아낸 지도가 펼쳐졌다.

     

    “<환락의 도시>라 불리는 신을 믿지 않는 도시국가가 본진이 빈 도시국가들을 침공하며 단숨에 국토를 세 배로 늘렸다.”

    “아닛, 일은 교수님이 다 했는데 돈은 쟤들이 다 버네! 교수님 호구예요?”

    “아니지. 그래서 문제라는 거다. 곱게 말할 때 트로이 왕국에 점령지를 분할하고 망국의 보물창고에서 털어간 재화를 돌려놓으라고 외교 서신을 급파했지. 그리고 답신이 돌아왔다.”

    “뭐라고요?”

    “꺼지라는군.”

     

    배짱이 정말 대단했다.

    간부회의를 앞두고도 다른 일정을 억지로라도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혼쭐을 내줘야겠네요!”

    “방위 임무를 맡아서 움직이지 못했지만 마침 키메라 군단이 도착하지 않았나. 그래서 말인데 군단을 보낼 거냐, 나를 보낼 거냐.”

     

    우리 팀 전력을 쓰는 것도 좋지만 모처럼 재단 간부들이 간부회의 때문에 모이고 있다.

    굳이 우리 전력을 노출하고 소모해 가면서 정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싸움을 붙이죠? 툭 까놓고 말해서 저 재단파파의 딸, 재단의 후계자잖아요!”

    “호오. 그래서?”

    “한 번은 환락의 도시 군대로 변장해서 회의장 가는 간부 하나 조지고, 한 번은 간부로 변장해서 진군하는 군단 하나 뭉개면 알아서 잘 싸우지 않을까요?”

     

    디스트로이어는 통신마도구를 들고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교수님? 어라? 왜 갑자기 조용하지. 통신이 불안정해졌나?”

    “…내가 대륙에 새로운 삼대거악을 탄생시킨 건 아닌지 잠깐 후회를 하고 있었다.”

    “에이, 제가 그 정도 급은 아니죠. 재단파파도 멀쩡히 살아계시는걸요?”

     

    급 낮은 놈들의 이름을 물려받는 대신, 재단의 이름과 세력을 모두 집어삼켜야만 만족하겠다는 건가?

    오크노디의 끝을 모르는 탐욕에 디스트로이어는 진심으로 이 아이의 미래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이 불안을 참고 억누르며 올바른 길로 아이를 인도하는 것이 스승의 역할이겠지.

     

    “인재 욕심이 탐난다고 재단 간부를 살려두지는 마라. 또 식품도감을 채워주겠다는 감언이설에 넘어가서 유니크 요리나 접대받고 있다간 시간이 훌쩍 지나서 네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재단에 발이 붙들려 있을 거다.”

    “당연하죠! 테마파크에서 전세계 모든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음식거리도 신설해서 유니크요리 제작자들도 알아서 모이고 있는데 굳이 다른 사람 손을 빌릴 필요도 없는걸요? 앞으로는 내키는 족족 꼬박꼬박 죽이려구요!”

     

    …이게 교육을 잘한 걸까, 못한 걸까.

    역사에 남겨질 후대의 냉정한 평가가 두려워지기 시작한 디스트로이어 교수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이를 살인병기로 육성한 전대용사파티의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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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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