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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9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했느냐?”

   

   

   에르기누스의 물음을 듣고서 옆으로 고갤 돌리면 혼이 나가 있는 네베라, 정확히는 그녀의 몸을 차지한 마법의 신이 보였다.

   

   

   간슈가 내게 제공해준 흑역사 중 절반을 풀었을 뿐인데 저 꼴이라니. 진짜배기들까지 읊어놓았다간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나올 것 같네.

   

   

   한 번 해볼까? 장난기 어린 웃음이 솟아나자마자 간슈가 내 입을 틀어막았다.

   

   

   “적당히 해라. 이 이상 지껄이다가 저 놈이 정신을 놓으면 어떡하려고 그러느냐!”

   “으읍!”

   “애초에 말이다! 난 네 개인적인 욕망을 풀라고 정보를 제공한 것이 아니다! 사명을 짊어졌으면 그게 걸맞은… 끄억!?”

   

   

   간슈의 복부를 후려쳐서 손을 떼어낸 나는 즉시 입가에 정화마법을 사용한 후 천을 꺼내 입을 닦았다.

   

   

   “내 알 바야? 그건 너희들이 알아서 해야지. 이름만 거창하고 실상은 무능한 허접인 너희잖아. 이런 뒤치닦거리라도 해야하지 않겠어?”

   

   

   어차피 저 놈이 날 건드릴 수는 없을테고 화풀이를 한다면 간슈에게로 향할 거 아냐. 그럼 나랑 전혀 상관 없지.

   

   

   이게 바로 책임 없는 쾌락이란건가.

   

   

   후후흫. 이렇게 생각하니까 더 하고 싶어지네.

   

   

   어디보자. 분명 마법의 신이 에르기누스한테 패배하고 나서 저지른 일이.

   

   

   “저 꼰대와 개인적인 원한이라도 있더냐?”

   

   

   수첩을 펼친 채 쿡쿡거리고 있으려니 에르기누스가 질린다는 듯 내게 물었다.

   

   

   “아니? 저 멍청이랑은 처음 보는데?”

   “그럼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더냐.”

   “말이 좀 이상하네?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내가 나쁜년 같잖아.”

   

   

   눈가를 좁히며 따져 물었더니 에르기누스는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내 시선을 피했다.

   

   

   으음. 그렇게 보기가 안 좋았나?

   

   

   확실히 신들 사이에서 인기있어지려고 성형마법을 만들어냈다가 미술 실력이 부족해서 대차게 실패했단 내용은 너무하긴 했지.

   

   

   “이래서 눈앞밖에 못 보는 허접들이 한심한 거야.”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나는 팔짱을 낀 채 당당히 목소리를 높였다.

   

   

   “다 이유가 있다고. 멍청이들아.”

   

   

   대표격에 머무는 신들을 불러내어 하나하나 굴복시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간슈가 건네준 각 신들의 흑역사에 더해 메스가키 스킬을 이용한 속긁기까지 합쳐지면 신이라 한들 별 수가 없거든.

   

   

   그렇다고 신의 권위로 찍어누르기도 어려운 게 나는 주신의 사도잖아.

   

   

   세상을 악신으로부터 구원할 역할을 짊어진 나를 지들이 어쩌겠어.

   

   

   꼬우면 나한테 이런 권한을 내어준 허접주신한테 따져야지.

   

   

   근데 그놈들의 콧대를 눌러줄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하나하나 면담을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단 말야.

   

   

   단적으로 말해서 귀찮아.

   

   

   그래서 내가 고민 끝에 떠올린 개쩌는 생각이 무엇이냐!

   

   

   지들이 알아서 기도록 만드는 거지!

   

   

   대표격을 맡은 신들중에서도 나름대로 권위를 지닌 놈들을 잔뜩 괴롭히면서 놀다… 크흠! 설득하다 보면 그 광경을 보고 감화된 이들이 자연스레 고개 숙이러 오지 않겠어?

   

   

   자기들보다 대단한 신들도 온갖 굴욕을 당하는데 지들이 뭐라고 자존심을 세우겠냐.

   

   

   비슷한 꼴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얌전히 기어야지.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내가 방금 전 변태까마귀를 괴롭히고 지금 마법의 신을 괴롭히고 있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내 전략 때문이란 거다!

   

   

   결코 사적인 감정이 담겨있는 게 아냐!

   

   

   <그런 말을 할 거라면 히죽거리는 입가부터 어떻게 하거라.>

   ‘제 의지가 아니에요! 저주 때문이라고요!’

   <얼굴 표정에 제약이 풀린지가 언젠데.>

   

   

   칫! 이래서 눈치 빠른 할배는!

   

   

   하여튼 내게는 명분이 있어!

   

   

   그리고 명분대로 행동할 권력도 주어졌지!

   

   

   이제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순 없다!

   

   

   자! 얌전히 내 장난감이 되어라! 허접한 신놈들!

   

   

   일단 마법의 신은 더 건드리면 터져버릴 것 같으니까 여기까지 하자.

   

   

   근처에 있는 제일 가까운 신이.

   

   

   오. 그래. 프레이한테 무예의 신이 접근했었지?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프레이에게 다가가 양볼을 붙잡았더니 퍼뜩 눈을 뜬 그녀가 이마로 내 콧등에 박으려 들었다.

   

   

   갑작스런 기습에 놀라 뒤로 물러섰더니 프레이도 놀라선 눈을 끔뻑이다가 주변을 살폈다.

   

   

   “…어라? 나 방금 전까지 싸우고 있었는데?”

   “꿈이랑 현실도 구분을 못하다니. 정말 지능이 짐승 수준인가보네. 바보 검사.”

   “꿈이었구나. 치이. 아쉽다. 루시랑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는데.”

   

   

   너한테 내가 대체 뭐길래 꿈에서까지 쓰러트리려고 기를 쓰는 거야?

   

   

   그런 눈빛으로 본다고 대련 안 해줘! 너랑 싸우면 진심으로 생명이 위험할 것 같다고!

   

   

   추하고 더러워도 난 끝까지 이긴 병신으로 남을 테다!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프레이에게 무예의 신과 잘 대화를 나누었냐고 물었더니 프레이가 고갤 갸웃했다.

   

   

   “그 이상한 푸른 색 말하는 거지?”

   “그거 말고 다른 게 있겠어?”

   “우움. 계속 이상한 소리만 하길래 그냥 대충 넘겨버렸는데.”

   

   

   뭐 아는 것도 없으면서 검에 대해 나불거리는 게 보기 싫었다는 프레이의 말에 저도 모르게 무예의 신을 동정하게 됐다.

   

   

   무예의 신 정도면 이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숭배받을 신격인데 그런 위대한 신격이 이런 꼬맹이 하나에게 무시를 당하다니, 사실 스스로 선택한 재앙이라 마냥 동정할 것도 아닌가.

   

   

   아무튼 프레이를 기점으로 무예의 신을 불러오는 건 불가능하겠네.

   

   

   그럼 어떡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나는 간슈에게로 다가가선 무예의 신에게 어떤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정말 먹힐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시도해서 나쁠 건 없잖아.

   

   

   “대답이 돌아왔다. 말한 것처럼 해준다면 기꺼이 네 계획에 협력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의 설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군.”

   

   

   진짜? 겨우 이런 걸로 넘어온단 말야?

   

   

   평소에 프레이가 얼마나 무시를 해댔으면.

   

   

   자꾸만 차오르는 짠한 마음을 억누른 난 프레이에게로 다가가 팔짱을 꼈다.

   

   

   “야. 바보 검사. 그냥 네가 멍청해서 이해를 못 한 거 아냐? 내가 들어보니까 그럴 듯 하던데?”

   “…진짜?”

   “왜 자꾸 쓰잘데기 없이 생각을 하려고 그래? 네 돌대가리에서 그럴듯한 게 나올 리 없잖아.”

   

   

   프레이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내 말을 완강히 부정하는 대신 검을 치켜들었다.

   

   

   이게 더 나을 리 없단 말을 자꾸 지껄이는 걸 보면 뭔가가 거슬리긴 하는 모양인데 일단 보면 알겠지.

   

   

   프레이의 자세가 바뀐다.

   

   

   그녀가 평소 사용하던 자세보다 더 낮고 안정적인 자세다.

   

   

   얼핏 프레이와는 어울리지 않는단 생각마저 드는 모습이었지만 그녀가 앞으로 검을 휘두른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검이 휘둘러지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뒤를 따른다.

   

   

   그로 인해 생겨난 충격파에 머리가 휘날린다.

   

   

   “오. 진짜네. 역시 루시. 대단해.”

   

   

   그걸 나보고 대단하다 그러면 무예의 신이 뒷목을 잡고 넘어갈 것 같지 않냐?

   

   

   – 띠링.

   

   

   봐. 바로 반응이 오잖아!

   

   

   [무예의 신이 당신의 행동에 감격합니다.]

   [스킬 [반사신경 강화]가 지급됩니다!]

   [무예의 신이 당신에게 적극적인 협력을 약속합니다!]

   

   

   …어라?

   

   어.

   

   음.

   

   사실 알고 보면 무예의 신 이 녀석 엄청난 호구인 거 아냐?

   

   

   *

   

   

   초토화 되어버린 섬의 파편을 구경하던 교황은 바라던 대로 악신의 조각을 손에 쥐었음에도 밝게 웃지 못했다.

   

   

   먼 과거의 일이지만 저 분들의 저력은 여전히 선명하다.

   

   

   절망으로 가득한 곳에서 희망을 붙잡아내고야 마는 모습은 그야말로 영웅의 것이었지.

   

   

   저 분들이 아니었다면 주신께서 버러지들을 등에 짊어진 채 승리를 거두기도 힘들었을 거다.

   

   

   그 때 보았던 기적을 기억하기에 이번 일에서 기이함을 느꼈다.

   

   

   분명하다. 저 분들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처절함 속에서 피어나던 기적을 오늘은 볼 수 없었어.

   

   

   어째서지? 이 섬이 세상에서 지워질 것을 우려했나? 아니면 긴 세월이 지나 의지가 쇠한 것은.

   

   

   아니. 절대 그럴리는 없다.

   

   

   영웅은 이 세상에서 지워지는 한이 있더라도 꺾이지는 않을 자들이다.

   

   

   반드시 이루어야 할 것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할 이들이란 말이다.

   

   

   그런 영웅이 쉬이 물러난 이유는 오롯이 하나 뿐이겠지.

   

   

   “주신께서 내가 이걸 가져가는 걸 허락하셨군.”

   

   

   그 분께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응원할리는 없으니 이건 위대하신 주신의 자신감이려나.

   

   

   내가 이걸 가져가더라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 계시건, 자신의 사도께서 능히 나를 막을 수 있으리라 여기시건 간에 말이다.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거늘 아직 많이 부족한 모양이야.”

   

   

   먼지를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난 교황은 저택으로 돌아가기 위해 끝의 권능을 사용하려 했다.

   

   

   헌데 그 순간 교황은 위화감을 느꼈다.

   

   

   본래라면 그가 악신의 권능을 남용함에 따라 신들의 힘도 막강해져 점차 권능을 다루는 게 어려워져야 할 터인데 기이하게도 권능을 다루는 데 무리가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미간을 찌푸린 채 아그라의 권능을 품은 교황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선신들이 자신의 권능을 흩뿌리고 있단 걸 깨달았다.

   

   

   신화의 시대가 오는 것을 환영하거나 겁을 먹어 도망칠 것이라 여겼거늘 저들이 어찌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흩뿌리고 다니는 걸까.

   

   

   누가 저들에게 용기를 선사한 것일까.

   

   

   아. 참으로 멍청한 고민이었군.

   

   

   이 대지에 주신과 같은 고결함을 지닌 존재는 하나 뿐이거늘.

   

   

   가벼운 웃음과 함께 두 손을 끌어모은 교황은 위대한 주신과 그 뜻을 따르는 주신의 사도를 향해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재차 결심했다.

   

   

   자신이 쌓아 온 모든 걸 내걸어서라도 최고이며 최악의 시련이 되겠노라고.

   

   

   *

   

   

   방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난 식은땀을 흘렸다.

   

   

   신들을 굴복시켜서 반 강제로 내 의견을 따르게 만든 것까지는 좋았다고 생각해.

   

   

   근데 그 뒤에는 너네들이 알아서 해야지!

   

   

   왜 내가 너희들의 대표가 되어야 하는 건데!

   

   

   메스가키가 얼굴인 집단이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잖아!

   

   

   지금이라도 튈까? 페이비한테 대충 다 떠넘기고 난 내 할 일을.

   

   

   “자. 영애님. 가시죠.”

   

   

   페이비의 환한 웃음을 본 나는 어색한 웃음을 돌려줬다.

   

   

   최소한 내 번역기!

   

   

   아니. 그. 뭐냐. 성격 더러운 노처녀 아줌마라도 옆에 붙여줘! 제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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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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