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6

        검은 숲은 이 세상의 인간들이 손댈 수 없는 금지(禁地)다.

        물론 미래에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렇다는 소리다.

       

        그러므로 검은 숲 근처에 존재하는 마을은 사실 말만 마을이라고 할 뿐이지, 사실상 요새에 가깝다.

        단단한 목책으로 둘러져 있고, 목책의 앞에는 작은 해자까지 파여 있는 그런 마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 명의 인간들이 지낼 수 있을 정도로 큰 마을도 아니다.

        일단 마을에 사는 인간들의 숫자가 50이 채 되지 않는다.

        50명이라고 하면 누군가는 많은 숫자라고 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적은 숫자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이 세계에서는 많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바깥의 정보를 조사해 온 수하의 보고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인간들의 마을은 대략 20 ~ 30명 정도의 인간들이 모여 있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좀 전에도 말했듯, 이곳의 마을은 ‘검은 숲’이라는 정글과 맞닿아 있는 마을이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 자리 잡기 전에는 때때로 검은 숲에서 빠져나온 짐승들이 마을을 습격하고는 했다는 모양이다.

       

        그것을 생각해 보면 50명의 숫자는 조금 모호하다.

        검은 숲의 짐승들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에도 애매한 숫자고, 원래 숫자에서 살길을 찾아 도망친 이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애매한 숫자라고 할까?

        뭐, 사실 저것도 내가 이곳에 자리 잡고서 몬스터들의 습격을 막아준 덕분에 늘어난 숫자지만 말이다.

        본래는 대략 30명 정도에, 검은 숲의 몬스터들을 사냥하거나 약초를 채취하려 온 용병들만 존재하는 마을이었다.

       

        아무튼, 그렇다 보니 내가 인간들과 대충 얼굴을 맞대고 지내며 아랫마을이 다른 인간들로 북적거리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축젯날이라고 하는 날에만 좀 시끌시끌한 정도였는데…….

       

        “인간의 군대가 찾아왔다고?”

       

        백 명가량의 인간들로 이루어진 군대가 검은 숲 근처의 마을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언제나처럼 숲을 순찰하던 부하의 보고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이 이곳에 왜 온 것이지?”

       

        검은 숲을 정벌하려고?

        그렇다면 적어도 삼천 명은 데려와야 할 텐데?

       

        심지어 이 삼천 명도 내가 생각한 최소한의 숫자다. 그것도 일이 아주 잘 풀렸을 때의 상황.

        일이 잘 안 풀렸을 때의 상황도 가정해 보면…… 최소 팔천 명은 데려와야 한다.

       

        참고로 이 숫자는 어디까지나 ‘전투 요원’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검은 숲의 나무를 베고, 풀을 정리하고, 길을 까는 이들은 따로 세야 한다.

       

        어쨌든 저 숫자를 보면 검은 숲을 정벌하려는 어리석은 이들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저 숫자로 검은 숲에 진입하겠다는 어리석은 생각할 리도 없을 테고…….

       

        = 처리. 실행?

       

        황금색의 갑주를 입은, 인간과 곤충의 형태가 반반 섞인 나의 수하가 물었다.

        집게가 달린 입을 오물거리며 고개를 숙이는 수하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되었다. 어차피 이곳으로 들어오지도 못할 터이니.”

       

        이 근처는 전부 나의 영역이 되었다.

        그리고 아바타가 지내는 이 ‘마녀의 집’은 단 한 곳을 제외하면 진입이 허가되지 않는다.

        만약 무단 진입하면? 그때는 내 수하들과 검은 숲의 짐승들이 친절하게 환대를 해 줄 것이다.

       

        내가 인간들을 위해 유일하게 뚫어놓은 길을 통해 온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 길은 ‘증표’를 가진 이들만 출입할 수 있는데, 내가 마을에 준 증표는 잘해 봐야 10개가 끝이다.

        만약 그 증표 없이 길을 들어선다면, 길이 아닌 곳으로 무단 진입을 한 이들과 같은 결말만이 기다릴 뿐이다.

       

        “어찌 될지 구경이나 해 봐야겠구나.”

       

        내 결정에 수하는 아무 말 없이 뒤로 물러선다.

       

        이 세계의 일에 어지간하면 참견하려 하지 않는 내가 괜히 이곳에 자리를 잡았겠는가?

        그동안 여러 세계를 돌아다니며, 나에게도 ‘경험’이라는 것이 쌓였다.

        이 세계의 지적 생명체들이 어디를 기피하고, 어디쯤에 내가 지내기 좋은 장소가 있을지, 뜨끈한 마그마가 흐르는 곳은 어디에 있을지.

        오랜 세월 차원을 돌아다니다 보면 싫어도 쌓이게 되는 경험이다.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은 많아 봤자 10명이 끝이다.

        그리고 마음만 먹는다면, 아바타인 지금의 몸으로도 저 백 명을 혼자 끝장낼 수 있다.

        그렇기에 인간들을 바라보는 내 심정은, 개미들이 무슨 일들 할 것인지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심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드론을 통해 인간들의 무리를 관찰하고 있을 때였다.

       

        “음?”

       

        백 명의 군대 사이에서 인간 한 명이 검은 숲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다른 인간들보다도 한층 더 화려한…… 아니, ‘화려하다’보다는 ‘부귀스럽다’에 더 가까운 옷차림.

        이 세상의 문화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내 눈으로 보아도 ‘귀한 신분’이 입는 옷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외형이었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 혼자서 검은 숲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흠…… 에코.”

       

        [네. 마스터 라그나.]

       

        “저 인간, 증표는 가지고 있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실력을 과신한 멍청이는 아니라는 소리군.

        드론을 좀 더 가까이 움직인다. 거리 때문에 카메라에 인간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으음?!”

       

        무려 6년 만에 보는 얼굴에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치료를 원하고, 도움을 원하는 인간들을 위해 닦아 놓은 길을 천천히 걸어 다가오는 인간 청년.

        길게 기른 금발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은 채, 어쩐지 조금 머뭇거리는 걸음걸이로 오던 남자가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

       

        6년 만이던가?

        드래곤이며, 이미 수명의 한계를 초월해 버린 나에겐 겨우 6년의 시간.

        하지만 평균 수명이 40밖에 되지 않는 이 세계의 인간들에겐 짧지 않은 시간.

        훌쩍 커버린 나의 양아들을 바라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리온이구나.”

       

        “……다녀왔습니다 마녀님.”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리는 리온.

        어쩐지 조금 낯설어하는 느낌이었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6년을 ‘겨우’라고 인식하는 나조차도 조금 낯설 정도인데, 인간인 리온은 아니 그럴까?

       

        쭈뼛쭈뼛 다가온 리온이 나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는다.

        그의 청색 제복이 흙먼지에 더럽혀졌으나, 그는 그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나의 얼굴만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마녀님.”

       

        “??”

       

        말없이 나의 얼굴만을 빤히 바라보던 리온이 돌연 입을 열었다.

       

        “6년 전의 약속…… 아직 유효합니까?”

       

        “약속? 아아…….”

       

        그러고 보니 그런 것이 있었지.

        리온이 다시 돌아왔을 때, 그에게 아바타인 내가 들어 줄 수 있는 소원 하나를 들어 주겠다는 약속.

        잊지 않았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리온은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다시 얼굴을 굳혔다.

       

        “그 약속…… 지금, 이루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 말이냐?”

       

        뭐지?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나?

        리온이 나를 떠난 것은, 아마도 올데온 왕국에서 자기 신분과 권리를 되찾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런 리온이 이렇게 갑자기 찾아와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마녀라고 불리는 나의 힘이 필요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이 아닐까?

       

        “너무 성급하지 않느냐?”

       

        하지만 무려 6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대뜸 소원부터 말하기에는 너무 성급하지 않나?

        그런 생각으로 리온을 말려보려 했으나…….

       

        “지금이 아니라면,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덜덜 떨리는 손을 감추며 말하는 리온.

        슬쩍 확인해 보니, 리온의 혈압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렇게 심장이 빨리 뛸 정도로 긴장했다니? 그렇게 말하기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그래. 말해 보거라.”

       

        “정말로. 정말로 그 어떤 소원도 들어주시는 거지요?”

       

        “그래.”

       

        초월자의 약속은 무거운 법.

       

        “지금의 내가 들어 줄 수 있는 소원이라면, 무엇이든 하나를 들어 주마.”

       

        나의 선언에 리온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 다가 닫고, 다시 열었다가 닫았다.

        차마 말하지 못하는 듯 머뭇거렸으나…… 이내 결심을 굳힌 듯 리온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마녀님. 아니, 라나.”

       

        이곳에서 사용 중인 인간으로서의 가명인 ‘라나’를 언급하며, 리온은 손에 들고 있던 ‘반지’를 나에게 내밀었다.

        ……반지?

       

        “저와…… 결혼해 주세요.”

       

        “……응?”

       

        뭐?

       

       

        *            *            *

       

       

        – 엌ㅋㅋㅋㅋㅋㅋㅋ

        – 앜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 어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상남자였넼ㅋㅋㅋㅋㅋㅋㅋㅋ

        – 아앀ㅋㅋㅋㅋㅋㅋㅋ

        – 물 뿜었넼ㅋㅋㅋㅋㅋㅋㅋㅋ

       

        채팅창이 ‘ㅋㅋㅋ’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웃기느냐?”

       

        – 네

        – ㅔ

        – ㅔㅔㅔ

        – 넹

       

        “그래. 많이 웃거라.”

       

        너희들이 즐겁다면 그걸로 되었다.

        다시 ‘ㅋㅋㅋ’로 채워지는 채팅창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어지간한 일들은 다 겪어 봤지만, 그때는 정말로 흔치 않게 굉장히 당황했다.

        대략 천 년 만에 ‘뇌정지’라는 현상을 겪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 아닠ㅋㅋㅋ 그럼 그 군대는 뭐였던 거예요?

        – ㅇㅇ

        – 군대는 뭐였나요?

        – ㅋㅋㅋㅋ

        – ㄹㅇㅋㅋ

       

        “나도 나중에 알았지만, 전부 ‘군악대’였더구나.”

       

        인간들의 풍습 중에 그런 것이 있지 않던가?

        그…… 뭐였지? ‘금의환향’이었던가?

        자식이 크게 성공한 다음, 화려하게 치장해서 부모님을 만나서 가는 것 말이다.

       

        “나를 맞이하기 위해서 준비했다고 하더구나.”

       

        얼이 빠져 버린 나를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린 리온이 숲을 벗어나고.

        숲의 입구로 나오자마자 쭉 늘어선 백 명의 군악대가 일제히 악기를 연주하며 축하를 하는 광경은 정말이지…….

       

        “뭐, 지금이야 재미있었던 추억 중 하나지만 말이지.”

       

        어쨌든, 그 당시의 나는 그렇게 리온에게 붙들려(?) 올데온 왕국의 수도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여러 일들을 겪게 되었지만…….

       

        “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

       

        일단은 방종 시간이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 안 돼에에에에에!!!

        – 여기서 끊는다고?!

        – 감다죽! 감다죽!

        – 우우우우우!!

        – 방장은 뒷이야기를 더 해라!

        – 락

        – 사람을 빡치게 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지. 하나는 말을 하다 마는 거고…….

        – 락!

        – 나!

        – 락

        – 락

        – 나

        – 나

        – 나!!!

        – 락!

       

        시청자들이 강하게 항의를 하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이미 내 방송은 인터넷 방송계의 블랙홀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내가 방송을 켜는 시간 동안에는 다른 방송인들도 방송하기를 꺼리고, 내가 방송을 꺼야만 다른 방송인들이 방송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래 오전 11시에서 오후 8시까지 생각하던 내 방송 시간도, 사람들이 가장 방송을 보지 않는 시간대인 오후 1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4시간 방송으로 바꾼 지 오래다.

       

        “이 이상 내가 방송해서 너희를 잡아두면, 다른 방송인들은 어떻게 하라는 소리냐?”

       

        – 그건 그런데…….

        – 그래도 이건 좀…….

        – ㅠㅠ

        – 가지 마아아아!!!

       

        “휴~! 내일 이어서 해 줄 터이니, 오늘은 그만 들어가 보거라.”

       

        하여간 참을성이 부족한 아이들이란 말이지.

        울먹거리는 시청자들을 잘 달래주며 나는 방송을 종료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피자를 흡입하는 슈르네를 안아 들며 물었다.

       

        “슈르네. 엄마와 같이 놀까?”

       

        “넹!”

       

        드래곤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슈르네가 포르르 날아올랐다.

        아직 애보기는 끝나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슈르네의 억제기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다음화 보기


           


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