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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

       시원한 물이 온 몸을 두들기듯 쏟아져 내렸다.

        

       알코올과 게임으로 찌뿌드드해진 몸을 찬 물로 개운하게 씻어내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이걸 위해 술을 마신다……고는 차마 못하겠지만.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노폐물도 함께 씻겨 나가는 기분이, 참 좋아.

        

       점수를 올리겠다는 생각만으로 랭크게임에 이토록 몰두한 건 정말 오랜만이다.

        

       옛날에……챌린저까지 찍고 프로팀 트라이아웃에 도전하겠다고, 하루에 15시간씩 랭크만 돌려 댔던 게 마지막인 것 같은데.

        

       좋은 기억은 아니다.

        

       어쩌면 그 때의 기억 때문에, 랭크 점수에 대한 집착이 많이 옅어졌을지도 모를 정도로.

        

       두 눈을 감고, 세찬 물줄기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긴 머리카락을 타고 흐르는 물의 느낌이 이제는 제법 익숙하다.

        

       머리가 조금씩 맑아지는 기분이다.

        

       약간은 충동적으로. 그리고 술김에, 선언한 챌린저 등반이었는데.

        

       나름, 재밌었다.

        

       부수입……도 괜찮았고.

        

       생각의 흐름이, 조금 전 대화를 나누었던 레반으로 이어졌다.

        

       부캐를 했다-라는 사실 자체를 약점처럼 휘두를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그게 약점이나 되는지도 모르겠고.

        

       사실 부캐를 하는 것 자체가 무슨 죄가 되겠는가. 그걸로 뉴비인 척하며 소중한 유입들을 농락해서 내쫓는 게 문제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보면- 딱히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다가, 어차피 걸릴 거면서 왜 부정을 하고 그랬는지가 더욱 의문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더 수사하고 싶어질 뿐이잖아. 나오나 고인물이라면 누구라도 그랬을 거다. 아마도.

        

       시즌1 유저들은 예전 세상에서도 이렇게 순수했었던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나오나가 시즌 1부터 이미 한국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것도 그렇고, 뜬금없이 VR게임이 되어버린 것도 그렇고……다른 게 한 두개가 아니니, 굳이 전생의 기억을 헤집어가며 비교할 필요는 없겠지.

        

       샤워기를 끄고, 머리에서 물기를 적당히 짜낸 후 수건을 둘둘 감았다.

        

       몸을 말리고 맥주 한 캔과 함께 다시 책상에 착석하자, 모니터에서는 마침 레반과 우연히 붙었던 첫 결전이 재생되고 있었다.

        

       ‘챌린저? 다음.’이라니. 채널 주인장, 영상 제목 취향이 조금……낯뜨겁네.  바꿔달라고 하면 바꿔주려나…….

        

       영상 속에서 ‘레바노프스키’라는 아이디를 단 광전사가 단말마를 남기며 스러져갔다.

        

       생각해보니, 도댓을 노리다가 만났던 것까지 포함하면 4번이나 만났다. 아크를 제외하면 스트리머 중에선 제일 자주 붙은 사람일지도.

        

       광전사 유저와 이렇게나 얽히게 될 줄은 몰랐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재밌는 사람 같았다. 반응도 맛있었고.

        

       그때……상자 앞에서 왔다 갔다 했을 때, 인게임에서 아무 말도 안 하길래 조금 실망스러웠는데.

        

       오늘 다시 겪어보니, 그때는 정체를 숨기는데 집중해서 그랬나보다 싶다. 실력도……평소만 못했던 것 같은데. 과도하게 흥분하기나 하고.

        

       그것도 정체를 숨기느라 일부러 그랬으려나.

        

       왜 그렇게까지 정체를 숨기려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물어볼까?

        

       아직 초록색 동그라미가 빛나고 있는 레반의 디스코스 아이디를 클릭했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안녕하세요 빌드깎는레반님]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저 한 가지만 여쭈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괜찮을까요]

        

       1분여가 흐를 때까지,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레반 님이 메시지를 작성 중입니다……)라는 문구만 여러 차례에 걸쳐 떠올랐다가, 없어질 뿐.

        

       [레반: 네]

        

       아. 왔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저번에 국선변호 해주셨을 때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정체를 숨기셨던 건 혹시]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마지막에 가면을 휙 벗어 던지며 사실 난 챌린저라고 포효하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그런 연출을 위한 거였나요?]

        

       * * * *

        

       (레반 님이 메시지를 작성 중입니다……)라는 문구가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몇 차례.

        

       [레반: ……방송 중이 아니시네요.]

        

       혹시나 협의되지 않은 컨텐츠로 하는 질문이라면, 화는 나더라도 이해는 되리라는 심정으로 방송에 접속하여 확인하였으나-

        

       당연하게도, 이예나의 방송은 여전히 지튜브 영상을 재생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당연한 게 맞나. 방송에 본인 지튜브도 아니고, 팬튜브를 그냥 틀어놓고 있는 게-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네 조금만 더 쉬려고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시청자들도 지금 복습하면서 행복해보이고…]

        

       자연스럽게, 옆에 떠오른 채팅창으로 시선이 옮겨갔다.

        

       불 모양 이모티콘을 도배하는 부류, 어디서 구해왔는지 도적 얼굴 모양 아스키 아트와, 도적 단검 모양 아스키 아트를 도배하는 부류, 누나 언제 와 따위의 채팅이나, 눈살이 찌푸려지는 성희롱성 채팅을 도배하는 부류…….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1분에 한 번씩 ‘60분 중 o분 지났다. 아직은 참는다.’라는 짧은 채팅을 남기는 사람이었다.

        

       60분이 다 차면 뭔 짓을 하겠다는 건지, 레반은 정말이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야말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냄비가 연상되는 채팅창.

       

       조속히 스트리머가 돌아와서 불을 줄이지 않으면, 분명 온 부엌이 난장판이 되리라. 

        

       [레반: 아따먹님 방송 시청자들 말씀 맞으시죠? 지금 불 이모티콘 도배하고 있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문화예요.]

        

       즉답이었다.

        

       과연 그녀의 시청자들도 이걸 문화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그로서는 정말로 의문이었으나-

       

       난리법석을 치고 있는 채팅창을 계속 보고 있다 보면 정말로 스트리머의 부재를 즐기는 하나의 문화인 듯도 싶어지는 탓에, 막상 할 말은 없어지는 것이었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그래서……저 혹시 맞췄나요?]

        

       잠시 채팅창을 보느라 침묵을 지키고 있노라면, 금새 답변을 채근해 온다. 레반의 머릿속에서 문득 순수한 호기심에 가득한 고양이가 떠올랐다.

        

       호기심에 집안 집기를 죄다 엎어 놓고, 호기심에 그릇을 바닥으로 떨어트려보는- 그런 좆냥……아니, 고양이.

        

       레반은 이예나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조금은 이해하게 된 듯한 기분이었다.

        

       타고난 악질이었다. 그것도, 고의가 섞인 악질 짓을 할 때보다, 고의가 없이 순수하게 행동할 때 하는 짓이 더 심한 부류의.

        

       노력으로는 천재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을, 스스로가 스스로에 대해서 실천하는 인간을 목도한 소감은 단순했다.

        

       이런 거, 알고 싶지 않았는데.

        

       [레반: ……아닙니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아쉽네요]

        

       뭐가 아쉽다는 건지 이제는 알 것 같으면서도, 알고 싶지 않았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다음에 다시 맞춰볼게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저 이제 방송하러 가야해서요]

       [레반: 아니 맞출 뭐가 있는 게 아니에요 진짜로]

        

       돌아올 영역을 선포하는 이예나를 다급하게 만류하였으나- 그녀의 디스코스 아이디는 이미 자리비움을 뜻하는 노란색으로 변한 상태였다.

        

       답장은 없었다.

        

       * * * *

        

       만족스럽고, 상쾌한 휴식이었다.

        

       “아. 아. 여러분 복습 잘 하고 있었어요?”

        

       마이크를 키고 인사를 하니, 채팅창의 작은 점들이 움직이는 속도가 서너배는 빨라졌다.

        

       이것도 숙달된 걸까. 자그마하게 축소된 상태에서도 흐름을 대강은 알 것만 같은 기분이었지만-

        

       채팅창을 확대하고 싶은 욕구가 살짝 올라왔다.

        

       지난 번 복습 시간에, 단합해서 잘 어울리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던 탓에, 이번에도 그렇게 놀고 있는 모습을 잠시라도 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참아야지. 이번엔, 도적으로 챌린저로 달성한 다음에 채팅창을 열어보기로 결심했으니까.

        

       오븐에 넣어 둔 음식의 향이 궁금하다고, 다 익기도 전에 꺼낼 수는 없는 법이다.

        

       복습 잘 하고 있었다고 대답하고 있겠지. 응.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지 지튜브는 안 만들고 팬튜브를 방송에서 1시간동안 틀어놓는 미친년이 어딨어 이 텐련아】

        

       ……맥락이 조금 이상한 도네이션이네.

        

       하지만 그 도네이션이 물꼬를 튼 건지, 지튜브에 관한 도네이션이 몇 차례 이어졌다.

        

       “지튜브……다음에 생각해볼게요. 영상 편집 경험은 없어서.”

        

       지튜브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 없었다.

        

       다음에……다음에, 해도 되겠지.

        

       지금은, 등반을 할 생각뿐이다.

        

       과거, 내 두 눈으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던 경치까지 올라갈 생각을 하노라면, 조금 설레기까지 하는 것이다.

        

       “다시 가볼까요.”

        

       .

       .

       .

        

       등반을 재개한지, 1시간.

        

       무난하게 2연승을 추가하고, 마스터 상위권에 발을 걸치게 되었으나- 갈수록, 스트리머의 숙명과도 같은 존재들과 자주 마주하고 있었다.

        

       [(전체)아크따먹아따먹(광전사): 팬이에오]

       [(전체)아따먹방송좀켜(성기사): 누구 방송함?]

       [(전체)아크으읏죽여라(성기사): 그러게요 누가 방송하나봄]

        

       예상은 하고 있었던 일이다. 티어가 올라갈수록 인원수는 급격히 적어지고- 같은 큐에 잡힐 확률은, 당연히 올라가니까.

        

       다만……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많기는 하네.

        

       음-

        

       “시청자 참여가 많네요. 올바른 시청자 참여를 위해 방송은 종료해주세요.”

        

       [(전체)아크따먹아따먹(광전사): 그치만…그러면 눈나 목소리가 안 들리는걸…]

       [(전체)아따먹방송좀켜(성기사): 네, 꺼드렸습니다~]

       

       [(전체)아크으읏죽여라(성기사): 여러분 저격은 나쁜 거에요]

       [(전체)대한의자랑스나이퍼킴(마법사): 흠……그 정돈가?]

        

       보이스는 안 켰는데도, 기다렸다는 듯이 답변이 채팅으로 올라왔다.

        

       숨길 생각도 없구나.

        

       재밌네.

        

       어깨를 한 바퀴 돌리고, 목을 스트레칭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게임도 좋다.

        

       

       인게임 플레이에 대한 면죄부가 주어진, 그런 느낌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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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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