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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

        

         – 미스터 드레이퓨스, 내부 네트워크 방화벽 총점검 및 모든 엔지니어들의 방호 근무 체재 돌입 완료되었습니다만. 오늘 본사에 대대적인 사이버 테러가 자행될지도 모른다는 말씀… 진심이십니까…? –

         

         “만일의 사태를 대비할 뿐입니다. 그리고… 전 우리 보안팀 여러분들을 믿습니다? 아무렴 배정된 예산과 갖춘 설비가 있는데 반쯤 예고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겠습니까?”

         

         경직된 기색과 마른 침을 삼키는 미세한 소음이 사이버웨어 너머로도 전해져 왔지만, 아론은 구태여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알아서 해이해진 기강을 다잡는 직원을 더 자극할 필요도 없었을뿐더러. 전략기획실 소속 부하를 괴롭힌다고 일선 엔지니어들의 업무 효율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또한… 무엇보다도, 그는 방금 막 타워 로비로 들어온 한 소녀의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를 관찰하느라 바빴다.

         

         오색찬란한 메트로폴리스에 떨어진 한 방울 잉크 같은 흑진주.

         각종 원색을 선호하는 유행과 자신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그림자에 녹아 들려는 그 모습은 반대로 흥미를 불러일으켰으니.

         

         최초로 조우하게 된 EMP 테러 사태에 대한 기억이 아론의 무의식 중에 되살아났다.

         

         나타난 병력을 보고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입꼬리를 굳히고 자신은 그저 고용된 메인 해커라며 한껏 비굴한 태도를 유지하던 주제에.

         부상당한 용병들에게 사정청취를 좀 받겠다 하자마자 차분함 속에 숨기고 있던 격정을 터트렸던 작은 맹수.

         

         약물 데이터와 테러 배후에 대한 녹취록을 담보로, 귀여운 수준의 처우 개선을 요구해온 당돌한 태도에서 한 번.

         

         본사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항상 최신정보를 업데이트했음에도, 호위 안드로이드조차 그 원리를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주변 전파를 일그러뜨리고 정리된 자료를 구현해낸 이질성에 두 번.

         

         마지막으로 아직 파라다이스에서도 입수하지 못한 헤이롱 제로 추측되는 첨단장비를 두른 단아한 자태까지 세 번.

         

         단순한 신예 해커라 하기엔 의심할 점이 지나치게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흔적을 더듬어봐도.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지하에서 솟아나온 것처럼 시민권 등록 이전의 기록이 전무했다.

         

         모든 각도에서, 갖가지 브랜드의 장비를 사용해 스캔해봐도 별다른 수술자국이나 변장은 발견되지 않았으니 동일한 외형으로 살아온 건 분명한데. 흔한 목격담이나 기초적인 인간관계조차도 발견되지 않았으니….

         

         오죽하면 입국 당시 검문을 같이 받은 동행인인 맥퀸 가족까지 조사망에 들어갔었다.

         

         하지만 결국 나온 결론은, 그 외양과는 정반대되는 순백.

         

         흡사, 간혹 나타난다는 구시대의 냉동 인간처럼. 파라다이스에서 어떻게 먹어버려도 간섭 받을 염려도 없는 자원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셈.

         

         – 그… 시설관리부와 보안부의 간부분들이 명확한 위협이 있다면 출처라도 좀 먼저 밝혀 달라고 사내 안건을 올리셨습니다. –

         

         “곧 그들도 기뻐할 소식이 있을지 모르니 무시하셔도 됩니다.”

         

         카메라를 통해, 안내원과 함께 차근차근 건물을 올라오기 시작한 손님을 확인한 아론이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렸다.

         

         날름 집어삼키려던 인재는 저항이 강했고, 상상이상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내보일 줄 알았다.

         

         구조적으로 고층에 몰려 있던 주요부서가 일순간에 모조리 마비되었던 대형 사고.

         더군다나 로그 부검 결과, 어찌된 영문인지 그걸 일으킨 주체가 자신의 대외활동용 안드로이드처럼 보이게 꾸며 놓기까지 했으니 정말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소집된 긴급 회의에서 회장님이 되려 잘했다고 박수치지 않으셨더라면 상당히… 지저분한 광경이 벌어질 뻔했다.

         

         “자, 그럼 어디… 저희 부서에 한정시키기엔 아까운 인재인 만큼, 유동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직책을…….”

         

         그렇지만 그것도 다 옛말. 설령 마지못해 찾아온 거라 해도 그녀도 사람이니, 품은 욕망과 꿈을 집요하게 자극하다 보면 뭐가 맞는 선택인지 깨달으리라.

         

         미리 내밀 계약서와 관련서류라도 정리하고 있으면 금방 찾아오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아론은 문서작업에 전념했고.

         

         10분, …그럴 수 있다.

         20분, 도중에 휴게실이나 화장실이라도 들렸나?  

         30분… 배배 꼬인 건물구조를 고려해도 과할 정도로 오래 걸린다.

         

         설마, 잠깐 감시의 눈을 뗀 사이에 도망이라도 친 걸까.

         아니면 고객 서비스 부서의 직원이 주의사항을 잊고 정말 민원 접수처로 안내한 걸까.

       

       

        최종 결정권자답게 망설임은 짧고 행동은 신속했으니.

       

         그는 곧바로 사원명부를 열어, 틀림없이 아나스타샤를 인도했던 안내원의 등록번호를 긁어냈다.

         

         – 흡!! 미… 미스터 드레이퓨스! 제가 뭔가 실수라도…?! –

         

         “…제 손님이 오신 걸 확인한 지 꽤 지난 것 같습니다만?”

         

         적당한 상급자도 아니고, 위로부터 세더라도 한 손에 꼽히는 임원의 직통전화에 그녀의 목소리가 지진 난 듯 떨렸다.

         

         원래라면 그도 타 부서 아랫사람을 괴롭히는 흉내 따위는 내지 않았을 것이다.

         메가 코프 임원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재난, 공포, 억제력이 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인물이었으니까 당연하다.

         

         하지만 포획을 위해 일부러 본사 안에 들인 최정상급 해커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건 맨정신으로 방치하기 어려운 문제였으니.

         

         – 아! 아나스타샤 발렌타인님이라면 명령받은 대로 총무부에 모셔다 드렸습니다! –

         

         “지금…… ’명령받은 대로’라 하셨습니까?”  

         

         …여기저기 참견하기 좋아하는 총무부서실장 와이즈맨을 간과한 게 실수였다.

         

         회사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게 전략기획부라면, 총무부는 그 기준을 정하고 관리하는 곳.

         허나 일견 정당해 보이는 간섭이라도, 손에 쥔 정보가 없는 기회주의자인 그가 벌일 행동이 예정된 교섭에 이롭지 않으리란 건 간단하게 알 수 있었다.

         

         “…좋습니다.”

         

         깊은 한숨과 함께 아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라면 안드로이드를 보냈겠으나… 본사를 활보하던 로봇들은 지금 방문하는 손님을 경계해 남김없이 격납고에 대기중인 상태.

         안타깝게도 직접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 실장님, 분명 곧 미팅이 있으시다고오…?!”

         “좋은… 아니, 좋지 못한 아침입니다. 네… 죄송합니다.”

         “…엄마? 그냥 좀 힘들어서 전화해봤어. …응.”

         

         당사자는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지독하게 노력하고 있음에도.

         전략기획부서의 사람들은 귀신같이 상사의 짜증을 포착하고 알아서 길을 텄다.

         

         선의의 경쟁을 하던 관계라도 지킬 선은 있는 법이라며 이를 간 아론이 한달음에 와이즈맨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안은 굉장히 흥미로운 대화 주제로 바빠 보였다.  

         

        “아론 녀석에게. 한층 위에 있다고 제멋대로 굴면 가지고 노는 안드로이드 컬렉션을 전부 으깨 버리겠다고 전해라. 애당초…!!”

         

         아나스타샤가 꼭 아론의 분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열변을 토하는 와이즈맨.

         

        “그렇게 하실 말씀이 많았다면, 제가 오기 전에 두 분끼리 알아서 해결하셨어도…. 아, 혹시 본인 면전에는 말할 용기가 없으셔서…?”

         

         “…아하핫!”

         

         그리고 시원하다 못해, 겁대가리를 상실한 것 같은 난폭한 발언을 직구로 꽂아버리는 기인畸人.

         

         여러모로 치밀한 면모를 보여줬던 그녀가 무대책으로 맞서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조금 더 방관자 입장에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고.

         

         그러나 그 대책이란 게 대형화재나 더 심한 무언가가 될 수도 있는 인재人材이자 인재人災였으니 이만 말다툼을 끊는 게 맞으리라는 판단이 섰다.

         

         “오호라? 미스터 와이즈맨, 제 손님까지 빼돌리시더니… 이젠 회장님의 부서별 위치선정에 그런 막말을 던지시는 건가요…?”

         

         “왁?!”

         

         무작정 난입한 아론을 본, 진즉에 눈치채고 문가를 직시하던 와이즈맨은 콧방귀를 꼈고. 금방 방을 나가려던 소녀는 귀여운 비명과 동시에 몸을 휘청였다.

         

         그 불안정한 허둥거림을 멈추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단지, 난데없이 이어진 와이즈맨의 말이 더 난해했을 뿐.

         

         “……잘 됐군. 네 애인이나 데리고 꺼져라. 쌍으로 속을 긁어 대는 솜씨마저 아주 천생연분이군.”

         

         “? 애인… 입니까? 그건 또 굉장히….”

         

         의미심장한 눈길이 바쁘게 오고 간다.

         이건 뭔가요.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마냥 본인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습니까?

         

         쿡 찌르면 지체없이 반응이 돌아오고, 이 기묘한 자리가 불편한지 버둥대며 연신 탈출을 감행한다.

         뭐, 장난이 지나쳐 분노한 와이즈맨에 의해 반강제로 쫓겨나게 되었음에도. 한 번 던져진 화두는 머리속에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 애인이라.

         

         상상은커녕 생각이나 고민조차 해본 적 없는 표현에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런 식으로 오해하도록 상대를 착각시켜서 이득을 취한 적은 있다.

         일반적으로 두려워해야 할 메가 코프라는 명패도 야망이 넘치는 누군가에겐 당첨복권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이용하기란 정말 간단했다.

         

         한층 더 나아가면 자연스러운 외모라는 것도 협상에 쓸 만한 수단의 한 축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유효하게 쓰는 게 정석이었다.

         

         “…….”

         

         무슨 앙큼한 작전을 세웠던 건지는 몰라도. 이미 완전히 어긋나는지 상당히 곤란한, 해탈한 표정으로 얌전히 따라오는 아나스타샤를 아론이 어깨너머로 흘끔거렸다.

         

         깨끗한 걸 넘어 투명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피부.

         보석같이 영롱한 두 눈동자와 밤하늘처럼 살랑이는 머릿결.

         

         취향인 인간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고, 설령 스트라이크 존에서 어긋나 있더라도 거절할 사람은 없을 게 명백한 미인.

         

         “…그럴 리가.”

         

         저쪽은 오히려 그런 식으로 여겨진 것에 대해 온몸을 비틀며 거부감을 표했는데, 고식적인 미인계 같은 걸 시도해올 리가 없었다.

         

         어차피 세상은 넓고 미남미녀는 많다. 심지어 없다면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게 요즘 기술력이고.

         문제는… 그 상대가 과연 다른 쪽이 가진 결핍을.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느냐로 귀결되니, 그런 황당한 미래는 현실성이 전무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나름대로 대비하는 남자.

    아! 으! 그… 연참은 못했지만 실질적인 내용 자체가 0.5화 밖에 안되서… 7-1화로 적었습니다.
    …7-2는 내일 올라갑니다.

    항상 재밌게 읽어주시고! 추천 눌러주시고! 댓글까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날 잡아서 대댓글을 전부 달아드리고 싶은데… 휴재해놓고 그러고 있으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 게 분명하겠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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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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