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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

       아니, 신기라는 게 이렇게 쉽게 깨져도 되는 거야?

         

        “…믿을 수가 없다.”

         

        나도 믿을 수 없어요.

         

        내 의도가 아니었어.

         

        조각상이 되기 싫어요.

         

        최대한 불쌍한 도마뱀의 얼굴을 했다.

         

        뱀 여왕의 세로 동공이 날 가만히 바라봤다.

         

        백연영과 유사한 무미건조한 표정.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꿀꺽.

         

        침을 삼켰다.

         

        화를 내려나.

         

        화를 내겠지?

         

        내가 신기를 부쉈으니까.

         

        “가까이 오거라.”

         

        그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비록 신기를 부쉈다지만 날 조각상으로 만들진 않을 거다.

         

        이미 부서진 거, 어떻게든 갚으라고 하겠지.

         

        그 몸으로 갚아라! 같은 대사를 할 수도 있을 거다.

         

        물론 내 비늘 하나하나 다 벗기겠다는 의미겠지만.

         

        “게겍….”

         

        눈치 보는 게겍소리를 내며 슬금슬금 기어갔다.

         

        아직도 자고 있는 쉭쉭이가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뱀 여왕은 내 주둥이를 살짝 잡고 벌렸다.

         

        “게에에에엑?”

         

        아니, 이런 건 백연영이나 하는 짓인데?

         

        얼굴이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하는 짓도 비슷하네.

         

        뱀 여왕은 내 입속을 천천히 살펴봤다.

         

        목젖이라던가, 침샘 같은 구조를 파악하는 거 같았다.

         

        “참 귀한 걸 물어왔구나.”

         

        텁.

         

        주둥이를 잡은 손이 풀렸다.

         

        “다리 달린 뱀아, 혹시 배가 고프진 않으냐?”

         

        저 뜬금없는 질문은 뭘까.

         

        분위기만 보면 내 주둥이를 쭉 찢을 거 같았는데.

         

        …고기를 먹긴 했지만 조금 출출하긴 하지.

         

        “게에겍.”

         

        약한 긍정의 게겍소리를 냈다.

         

        “그럴 줄 알았다. 금방 돌아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거라.”

         

        그 말을 남기며 뱀 여왕이 입구 쪽 통로를 향해 미끄러지듯 기어갔다.

         

        어째서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를까.

         

        죽기 전에 원하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여준다는 일종의 관습.

         

        고기로 배를 채우는 순간, 나도 혹시?

         

        지금이 기회다.

         

        뱀 여왕이 자리를 비울 때 몰래 도망가자.

         

        “도망가지 말고 여기 있거라.”

        “겍.”

         

        넵.

         

        …도망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도망간다고 해도 밀림에서 탈출하지 못한다면 바로 잡히고 말 테고.

         

        그렇게 발톱을 깨물며 조금 기다리니, 밖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쿠콰아아아앙!

         

        음, 저게 무슨 소리일까.

         

        뭔가 천지가 개벽하는 소리 같은데.

         

        뱀 여왕이 바깥에 나간 것과 관련이 많아 보이는 소리에 오들오들 떨었다.

         

        화가 많이 나셨나.

         

        그래. 거울이라도 붙여보자.

         

        깨진 거울을 붙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던 중, 뱀 여왕이 사원 안으로 들어왔다.

         

        정체불명의 커다란 고깃덩이를 질질 끈 채로 말이다.

         

        “주린 배를 채우는 게 우선이겠지.”

         

        딱 봐도 맛있어 보이는 고기에 침이 질질 흘렀다.

         

        “게겍….”

         

        저거 나 주는 거야?

         

        내 손에 들린 유리 조각을 보면서 눈치를 봤다.

         

        “어차피 낡은 고물이었도다. 딸아이의 모습을 확인했으면 그걸로 된 거지. 걱정하지 말거라.”

        “게게겍!”

         

        뱀 여왕님 최고다.

         

        뭐라고 해야 할까, 따뜻한 정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분명히 파충류일 텐데, 포유류의 따스함이 느껴졌다.

         

        적당히 익은 고기에도 따스함이 느껴졌고.

         

        “그래. 얼른 먹거라.”

         

        와앙.

         

        텁.

         

        내가 먹어본 그 어떤 고기보다 더 맛있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맛이 별로 안 느껴질 줄 알았지만, 그런 걸 무시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맛있는 고기였다.

         

        여왕님의 파괴광선으로 구운 듯한 이 절묘한 고기의 식감이 내 취향이었다.

         

        “그래, 맛있더냐.”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이 정도 맛과 양이라면 다 먹으면 레벨 업을 노려볼 수도 있을 거다.

         

        씁, 혼자 먹기엔 아까운데.

         

        쉭쉭이랑 같이 먹기 위해 깨우려던 참이었다.

         

        “깨우지 말거라.”

        “겍.”

         

        어머님 말씀 들어야지.

         

        “갑자기 힘이 생겼으니, 잠이 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일종의 영약을 먹은 셈이지.”

         

        그런가?

         

        하긴, 고모도 꼬리곰탕 정도 먹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배도 부를 테니 계속 자게 내버려두는 게 나을 거다.

         

        굉음에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잠이 많이 필요했던 게 분명하다.

         

        그렇게 내 앞에 놓인 고기를 다시 삼켰다.

         

        뱀 여왕은 그런 나의 모습을 빤히 쳐다봤다.

         

        “내 딸이긴 하지만, 모난 부분 없는 아이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쉭쉭이의 칭찬.

         

        “저 자는 모습을 보아라. 참으로 귀엽지 않나.”

         

        동의한다.

         

        뱀 주제에 강아지처럼 생긴 얼굴에, 몸도 오동통하다.

         

        절대 가능성의 거울로 본 모습 때문에 칭찬을 하는 건 아니다.

         

        “아직 이르긴 하지만, 장성한다면 좋은 배필이 될 수 있을 거다.”

         

        그래. 좋은 배필.

         

        …어머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그 표정은 대체 무엇인가. 내 딸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겐가?”

         

        뱀 여왕의 눈이 가늘어졌다.

         

        “게게겍!”

         

        극구 부인의 게겍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이 아니라요.

         

        뱀 여왕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설마 내 딸이 첫 여인이 아니었다던가?”

         

        아뇨.

         

        제가 다른 여자가 있는 건 아닌데.

         

        “다른 여자를 생각하고 있다거나?”

         

        [첫 번째 신도, 【아터코푸스 lv9】가 귀를 기울입니다.]

         

        [두 번째 신도, 【안트라코마르투스 lv8】가 기대합니다.]

         

        [??, 【네필라 쥐라시카 lv30】가 코웃음을 칩니다.]

         

        너흰 뭐야.

         

        들어가, 훠이.

         

        “게게게겍!”

         

        그래. 차라리 다른 여자를 생각하고 있다는 게 나을 거 같다.

         

        누굴 좋아한다는 것도 아니고 생각하는 정도니까.

         

        뭐, 스승인 백연영이 알려준 구음백골조를 고찰하는 것도 다른 여자를 생각하는 거니까.

         

        이 정도면 좋은 사이로 남지 않을까?

         

        나름 꼬리도 주고, 뱀 여왕의 부탁도 들어줄 건데.

         

        우호적인 관계로 남을 거다.

         

        “…감히, 내 딸을 가지고 놀아?”

         

        네?

         

        아니, 어떻게 결론이 이렇게 돼요.

         

        나름 동침을 하고 꼬리까지 준 사이긴 해도, 아직 아무런 사이가 아니란 말이에요.

         

        “내 딸을 가져갔으면서, 마음속에는 다른 여자를 품어?”

        “게게게게게겍겍!”

         

        적극 부정의 게겍소리를 내었다.

         

        “대체, 대체 어떤 여인을….”

         

        뱀 여왕이 말끝을 흐렸다.

         

        혹시 파괴광선이 날아올까 싶어 고개를 살짝 들어 그녀의 얼굴을 살펴봤다.

         

        이게 무슨 일일까.

         

        뱀 여왕의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설마….”

       

       꼬리를 살짝 말며, 부끄럽다는 듯이 내 시선을 피했다.

         

        [뱀 여왕이 매우 큰 고민에 빠집니다.]

         

        “그게 나란 말이더냐….”

         

        환장하겠네.

         

         

        *

         

       

        밀림에는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

         

        십만대산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공룡부터 시작해서 크기에서부터 압도되는 거대한 용각류까지.

         

        몇몇 영물도 밀림 안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었다. 바실리스크나 인면조 같은 영물이 돌아다녀도 티가 안 나는 곳이니, 불청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들도 밀림에 숨어 있었다.

         

        “그러니까, 정말로 영물이 존재했소!”

         

        장봉은 열변을 토하는 중이었다.

         

        그는 딜로포사우루스의 습격에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

         

        혈사자에게 소리를 지른 후 그 누구보다 빠르게 도망쳤기에 살아남은 것이다.

         

        하지만 살아남았다고 해도 그의 능력이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마는 게 정상이었을 거다. 게다가 늪지대보다 강한 생물들이 득실거리는 이 밀림에서는 더욱더.

         

        그럼에도 그가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건, 우연히 다른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종남의 유망주였던 검사, 백운이었다.

         

        “만년화리에, 금와, 그리고 금구라니. 사실이라면 구미가 당기긴 하는데…. 그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정말이오! 내가 이 눈으로 똑똑히 봤소.”

        “닮은 짐승이겠지. 하지만 이 십만대산에 영물이 존재한다는 건 분명한 사실. 시간이 나면 늪지대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정말로 만년화리였다니까. …아, 그리고 아까도 말했다시피 그곳엔 용도 있으니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오.”

         

        용이라.

         

        백운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용이라 해봤자, 이 새들보다 작은 녀석이라 하지 않았나.”

        “무, 물론 그러하오. 이리 정도 되는 녀석이긴 한데….”

         

        백운의 밑에는 목이 잘린 공포새의 사체가 있었다.

         

        일류를 넘어서고 절정을 바라보고 있는 백운에게 있어, 공포새는 그리 강한 상대가 아니었다.

         

        공포새뿐만 아니었다.

         

        데이노니쿠스 같은, 처음에는 용이라고 착각한 짐승들도 백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생전 처음 보는 짐승의 출몰에 당황했지만, 내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기대한 백운이었다. 하지만 공포새와 데이노니쿠스를 아무리 죽여도 내단이 나오진 않았다.

         

        그에게 가장 시급한 건 영물의 내단이었다.

         

        장봉의 말 대로 늪지대라는 곳에 영물이 모여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의 말은 백운의 마음을 동하게 했으나, 그뿐이었다.

         

        너무나 허구같은 이야기였으니까.

         

        그런 영물이 한곳에 모여 있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용이라는 존재가 있으면 더욱 더.

         

        “이곳에 와서 용과 비슷하게 생긴 존재를 몇 번이고 베었지. 그들은 용이 아니네. 그저 거대한 석청일 뿐. 다른 녀석은 몰라도 그 녀석이 용일 가능성은 없네.”

        “아니오. 분명 심상치 않은 내공이 느껴졌소.”

        “내공은 무슨.”

         

        백운은 피식하고 웃었다.

         

        겨우 삼류에 불과한 장봉이 어떻게 영물의 내공을 감지한단 말인가.

         

        무릇 영물은 내공을 숨기고 다니는 법. 삼류에 불과한 범인이 그들의 내공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숨겨도 새어 나올 만큼 엄청난 내공을 가진 경우.

         

        그러나 그럴 리는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장봉이 어떻게 살아 남았겠는가.

         

        “뭐, 이곳에서 탈출한 다음에 생각해봐야지.”

        “그게 문제긴 하겠구려. 주변에 독충은 많지, 식물의 키가 커 앞은 잘 안보이지….”

         

        밀림에 갇힌 게 문제였지만, 장봉은 안심했다.

         

        종남의 가르침을 받은 백운이 자신을 버릴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력도 자신과 달리 일류라고 칭할 수 있는 수준이니 그의 옆에 착 달라붙는 다면 거대한 도마뱀들에게 죽을 리도 없을 거다.

         

        장봉은 백운이 쓰러트린 공포새의 사체를 갈무리했다.

         

        서로 합의한 건 없지만, 적을 쓰러트린 게 백운이니 최소한의 음식을 마련하는 건 자신이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공포새의 고기를 자르고 모닥불을 피우려고 할 때였다.

         

        “꼬끼오오오오!”

         

        갑작스럽게 들리는 괴성.

         

        “…이건, 새의 울음소리 아니오?”

        “정확히 말하자면 닭에 가깝겠지.”

         

        자신이 자르고 있는 괴조의 동료라도 되는 걸까.

         

        장봉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란 걸 알았다.

         

        어차피 백운이 있는 이상 괴조들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되니까.

         

        “장봉. 기척을 죽이고 따라와라.”

         

        느닷없는 반말이었지만, 장봉은 그것에 딴지를 걸지 않았다.

         

        그런 것보단 그의 요구가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 아니. 갑자기 왜 그러시오. 이제 준비가 거의 다 됐는데.”

        “저 울음소리. 분명 영물에 가까운 생물일 거다.”

        “물론 이 괴조들과는 다른 울음소리긴 한데….”

        “싫으면 여기 있어라. 난 먼저 갈 테니.”

         

        백운은 빠른 발걸음으로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나아갔다.

         

        “이… 이익….”

         

        장봉은 내키지 않았지만, 그를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 밀림에서 혼자 남겨진다는 건 죽음을 의미했으니까.

         

        “배, 백운 공! 같이 가오!”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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