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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

       쿠르릉!

         

       언제 비가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먹구름이 자욱하게 깔린 하늘.

       허나 먹구름이 생기고 비가 쏟아질지언정 콜로세움에 문제는 없다.

         

       “속행하여도 문제는 없겠군요.”

       “들인 돈이 얼마인데, 빗방울 따위론 끄떡도 없습니다.”

         

       성법이 펼쳐져 있는 한, 그 영역 안으로 이물질이 들어올 수는 없으니.

         

       천둥번개가 작정하고 콜로세움을 때린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게 아닌 이상 문제는 없으리라.

         

       그렇게 불온한 날씨 속에서도 바위 트롤과의 전투는 계속됐고, 앞서 북부의 어린 사자가 보인 만큼의 거대한 이적을 보이는 이들은 없었으나, 군중은 감탄했다.

         

       “다들 제법이야.”

       “이번 해는 인재들이 많군.”

         

       관중 중엔 은퇴한 노기사도 제법 많았는데, 1학년의 분전을 확인하며 만족한 기색이 역력했다.

       비록 역량은 아직 부족할지언정, 그 가능성만큼은 틀림없이 우수한 황금의 알과 같았기에.

         

       “호오, 저게 그 소문의 투기법과 다른 특이한 기법인가?”

       “단발적인 수법이군, 그래도 확실히 위력은 좋아.”

         

       곰돌이들은 대체로 모두 신선하단 평가가 주를 이뤘다.

       워 게임에서 마법사를 이긴 게 요행이 아니었다는 것처럼 괜찮은 역량을 보인 셈.

       어떤 이는 배리 콥스보다 잘 싸우거나 못 싸우는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래도 분전은 분전.

         

       꺾이지 않는 자세가 훌륭했음이다.

         

       그리고 곰돌이들 다음 나온 이들.

       이한에게 도련님 조란 이름을 하사받은 생도들이었고, 그들에 대한 평가는.

         

       콰아아!

         

       -오오오!

         

       감탄 섞인 호응이 절로 나온다.

       상위 투기법을 익힌 이들이니 당연히 강할 테지만, 저 나이대치고 상당히 훌륭한 수준이다.

       아니, 상당한 걸 넘어 우수하다.

         

       당장 중소 규모 영지 기사단은 들어갈 정도고, 단번에 중상급 기사로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은 실력.

         

       “대단하군, 요즘 녀석들치고 기본을 제대로 배웠어.”

       “그래, 그렇게 하는 거다. 투기법만 단련하는 게 지름길이 아니지. 성실하게, 하나하나 모든 걸 최선을 다해 익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18곰돌이는 아직 여러모로 부족하고, 아직 배울 게 많은 괜찮은 중상급 용병 수준이라면, 저들은 요즘 귀족 영식답지 않은 순수함이 있는 기사 수련생 정도는 되리라.

       편법에 의지하지 않고, 올곧이 노력할 줄 아는 순수함.

         

       “좋구나!”

         

       선왕의 시대를 살았던 노기사들은 흐뭇함을 드러냈다.

       저 아이들은 얼마 가지 않아 이름을 떨치리라 확신하며.

       저토록 올곧게 노력하다 보면 본인이 싫더라도 이름을 알리게 될 테니까.

         

       간만에 올곧은 기량을 선보이는 기사 수련생을 보며 흐뭇함을 느끼던 노기사들은 이제 놀라울 일은 끝났다 여겼지만, 이후 모습을 드러낸 이들에 의해 노기사들은 경악을 머금어야만 했다.

         

       콰지직!

       쿠우우웅!

         

       “…뭐냐, 저놈들은?”

       “1학년 수준이 아니군, 아니 이미 저들은 당장 아무 기사단이나 선택하여 입단도 가능하겠어.”

       “라이오넬 공자만이 돌연변이가 아니었음인가? 허허….”

         

       바위 트롤을 압도하는….

       아니 정확히는 가지고 노는 3인을 확인한 노기사들은 자신들이 전성기였어도 승부를 장담하기 힘들었을 3인방에게 감탄과 침음을 동시에 내었다.

         

       “쿤타라 하였나? 야만 전사들의 강함이 한때 대륙을 질타했다더니, 왜 그런 줄 알겠어.”

       “오펜 공의 손주이신가? 허허, 역시 검공가야. 그 핏줄이 어디 가질 않는군.”

       “용병왕, 그 괴물이 기어이 자기 젊을 적과 똑 닮은 것을 키워냈구나.”

         

       생도 수준을 아득히 벗어난.

       이미 가르침을 받을 수준이 아니라, 당장 기사가 돼야 할 인재들.

         

       젊은이들이 저들의 원석과 같은 번쩍임을 질시하고 우울해 한다면, 노인들은 젊음의 생기를 목도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법.

       그동안 왕도의 젊은 기사들의 수준이 한없이 추락하고 있음을 알고 있던 노기사들이었지만, 다음 세대를 책임질 이들 중 이토록 훌륭한 씨앗이 많은 걸 확인하니 흐뭇함이 다 들 지경이다.

         

       “어느 아해가 가르친 것이지?”

         

       하면서도 그들은 현실을 직시할 줄 알았다.

       최근 젊은 놈들 중 저토록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귀족답지 않은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가 있었나 싶어서.

         

       차마 검술학부 교관이 저리 만들었다는 생각은 미처 못 하는 건 그들이 편협하기 때문이 아니라, 전임 교관들이 모인 태만함 때문에 생긴 마음 한구석 의심 때문이리라.

         

       그렇게 노기사들이 생각이 깊어지던 중.

         

       “음?”

       “…귀여운 아이가 나왔군?”

       “허허, 설마 지금 저 아이가 싸우려고 하는 것인가?”

         

       이제 1학년들 모두가 나왔다고 여겼다.

       여생도가 있긴 하지만, 토론이나 나머지 과목으로 성적을 채우는 영애들은 마지막 과목에선 대부분 기권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한데 설마.

         

       “당차군.”

       “허허, 그 옛날 오펜 공의 모습이 새록새록 나는구먼.”

         

       당차게 무대에 선 여생도.

       레비 폴트가 검을 뽑아 들며 그 가냘픈 몸으로 당당히 바위의 마물 앞에 섰다.

         

       * * *

         

       “후우!”

         

       레비 폴트는 가슴이 떨렸다.

       불칸에서 사형들은 멧돼지를 잡고, 행군 도중 변이 곰을 잡는 등 경험을 쌓았지만, 당시 미숙하고 볼품없던 레비로선 그러한 사냥에 참가하는 게 불가했다.

       전날 워 게임에서도 소녀는 지시만 했을 뿐, 사실상 다 차려진 밥상에 포크를 얻는 일밖에 하지 않았던 셈.

         

       한데도 묘한 기대감을 품고 자신을 보는 이들이 많으니, 레비로선 마냥 당혹스럽고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여기 나온 건 저의 선택이니까요.’

         

       그러니 무섭더라도 도망갈 수 없다.

         

       모두가 저의 선택을 뜯어말렸다.

       ‘성적은 이미 다른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느냐?’ 등, ‘다음에 기회가 있을 테니 하지 말라’는 등.

       설득하는 이들은 많았다.

         

       그러나 레비 폴트는 모든 부족함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 자리에 섰다.

         

       ‘나를 증명해야만 해요!’

         

       레비는 떨림을 다잡으며 레이피어의 차가운 그립에만 집중했다.

       가벼운 가죽 갑옷을 입은 소녀는 점차 한 손은 뒤로 가져가며, 앞발을 천천히 내밀고 몸은 옆으로 돌린 채 시선만은 앞으로 향하였다.

         

       귀족 자제라면 기본적으로 익히는 검형.

       격점 혹은 펜싱의 기본 검세로 잘 알려진 자세를 취하며 소녀는 레이피어를 단단히 쥐었다.

         

       [GRR?]

         

       바위 마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연약한 상대가 나온 것에 자세를 낮추었다.

       기세가 너무 하찮아 토끼 같은 소동물로 오해한 것이다.

         

       그러나 레비는.

         

       “무시해줘서 고마워요.”

         

       후욱!

         

       그 자세 그대로 발을 박찼고, 레이피어가 바람을 갈랐다.

       경을 이용한 순간적인 무게 중심 이동과 검의 강화.

         

       그리고 이러한 레이피어가 정확히.

         

       푸욱!

         

       [GRR!?]

         

       바위 마물의 눈을 푹 하고 찔렀다.

       그 미세한 눈동자를 정확히 찔러 넣은 것이었다.

         

       마물은 고통스러워하며 곧장 버둥거리며 난폭하게 몸부림치기 직전, 레비는 레이피어를 재빨리 회수하며 그대로 마물의 왼쪽 측면으로 이동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이동술.

       그녀가 기초 스텝을 발 가죽이 터지도록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 알 만한 대목이었다.

         

       “후우, 후우.”

         

       숨을 몰아쉴 시간을 번다.

       다행스럽게도 눈을 찌른 쪽으로 이동했기에 저를 발견하기 어려우리라.

       바위 마물의 유일한 약점은 시야가 좁고, 감각조차 희미하단 것이니까.

         

       인공 마물이 가진 어설픈 점을 정확히 찌르는 레비였다.

         

       허나 방심은 금물.

         

       콰아앙!

         

       ‘역시 재생하네요.’

         

       급속 재생하며 눈이 원상 복구된 마물이 소녀를 쫓는다.

       방금 전 방심과 달리 분노가 만연한 기색.

       허나 소녀는 영민했고, 냉정함을 유지할 줄 알았다.

       마치 아르노의 훈수를 기억해 둔 것처럼.

         

       ‘아르노 경이 그랬죠, 저희 백팔 나한들은 냉정한 시야를 유지하고, 기회를 노린다면 훌륭한 시합을 벌일 수 있을 거라고.’

         

       그 말대로다.

       냉정함을 유지하니 보인다.

       이 마물은 역시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음을.

       야생 짐승에 비하면 모형이나 다름없다.

         

       허나 저의 약한 근력과 어설픈 칼질로 과연 저 마물을 정녕 이길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자그마한 불안감이 치솟으며 재차 가슴을 떨리게 했으나.

         

       – 정신 차려라!

         

       움찔!

         

       뇌리에서 울려 퍼지는 교관의, 스승의 호통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고, 최선의 공격은 상대보다 한 수 앞을 바라보며 칼을 휘두르는 거다. 애초에 귀족들이 기본예절처럼 익히는 그 펜싱 같은 검술도 원래 전쟁터에서 만들어진 검술이야. 그러니 검사의 역량만 받쳐준다면 얼마든지 위력적인 검술이 될 거다.

         

       ‘네. 알겠어요.’

         

       뇌리에서 울리는 일갈에 불과하지만 레비는 충실히 따랐다.

       교관님의 말씀대로 어설플지언정, 자신이 익힌 검술이 마냥 약한 것은 아니니까.

         

       펜싱의 원류가 되는 격검의 원래 이름은 에스크림(escrime).

       방어와 공격의 뜻을 동시에 담은 검술이었고, 지금도 에스크림만 익혀 검의 달인으로 칭송받는 자들도 있었다.

         

       – 어차피 모든 검술의 기본은 찌르고, 베고, 튕겨 내고, 때리는 데 있다. 그러니 한 가지만 기억해. 상대를 무조건 묵사발 내고 말겠다는.

         

       ‘네, 사부님.’

         

       후욱!

         

       레비는 우등생이었다.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며 실천할 줄 아니까.

       

       소녀는 동일한 전법을 구사하며 계속해서 마물을 공격했다.

         

       때론 눈을 찌르고, 틈을 보며 검날로 턱과 목, 발목 등을 때리고 다시 벤다.

       위험할 것 같으면 회피 후, 방어 동작.

         

       여기서 중요한 건 공격을 구사할 때만 적절히 경을 섞어 위력을 증폭시킬 뿐, 절대 회피하거나 다른 동작에 경을 쓰면 안 되는 것이리라.

         

       ‘체력을 보전해야 해요!’

         

       레비는 체력 분배와 마물의 상태를 전체적으로 관찰하며 대응하길 반복했다.

         

       어차피 놈은 본능밖에 없는 인공 마물.

       이를 농락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다만 필요한 건 마물 앞에 설 수 있을 담대함과 우직함뿐.

         

       그리고 레비에겐.

         

       ‘할 수 있어요!’

         

       그 담대함과 우직함, 배짱이란 놈이 있었다.

       스승이 주입식 방식으로 때려 박아 넣은 것에 불과했지만, 주입식일지언정 이를 실천하는 건 제자의 의무였으니.

         

       레비 폴트는 그렇게 쓰러지고, 지치더라도 꾸준히 달려들었고, 기어이….

         

       쿠우우웅….

         

       “하아악, 하아아…!”

         

       39분 59초.

         

       소녀가 최초로, 그리고 홀로 마물을 쓰러트리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 * *

         

       “……….”

         

       침묵이 감돌았다.

       누구도 레비의 승리를 예측하지 못했기에 벌어진 놀라움이 서서히 주변을 감돈다.

         

       아니, 동기들만 그런 게 아니라, 무대를 보던 모두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리라.

         

       비록 저 승리가 마물을 이루는 피가 가진 힘이 다하여 멋대로 쓰러진 것에 불과했지만, 누구도 편협한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저토록 최선을 다하고 만신창이가 된 검사를 평가절하 하는 것은 웬만한 머저리도 하지 않을 짓이니까.

       

       “저 애, 끝내주는군. 안 그래, 도령?”

       “…네에, 용맹합니다. 확실히 재능이 있어요.”

       “곰순이, 몸은 약해도 머리 좋다. 그리고 전사의 심장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이긴 거다.”

       “전사의 심장?”

       “우리 부족, 재능은 부족해도 전사의 심장을 갖춘 사람은 항상 존중했다. 전사의 심장 가진 사람, 항상 대전사 됐다.”

         

       근골, 재능, 능력 등.

       이런 것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 배움은 빠를 터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진정한 의미로 전사가 되는 이들은 드물다.

       실전이란 무대에서 실제로 훌륭한 칼질을 해낼 이들은 얼마 되지 않기에.

       그런 뜻에서 레비 폴트는 훌륭했다.

         

       전사의 심장을, 용맹한 의지를 가진 자가 아닐 수 없기에.

       하여 쿤타가 지금 내뱉은 찬사는 바바리안이 타인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극찬이었다.

         

       “곰순이는 강해질 거다. 어쩌면 쿤타보다 더.”

       “…지금 당장 그녀보다 강하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된다는 뜻이군요. 잘 알아들었습니다.”

         

       소녀가 보인 용맹함은 앞서 로엔이 보인 검기보다 값진 것이었으니.

         

       모두가 진지한 낯빛으로 소녀를 주목했고, 서서히 그녀에게 환호가 쏟아졌다.

         

       비록 그 누구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명예롭고도 훌륭한.

       그래 용맹한 기사의 결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환호를 받을 자격이 있었음이다.

         

         

         

         

       “아….”

         

       여전히 숨을 헐떡이며 몸 전신이 축 늘어진 레비였으나, 저를 향해 쏟아지는 열광적인 환호 앞에 저도 모르게 고개가 들려졌다.

         

       ‘어떻게 된 거였죠?’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무아지경 상태로 레이피어를 휘두르며, 겁쟁이처럼 찌르고 빠지길 반복했을 뿐이었다.

       한데 어느 순간 마물이 움직이지 않았고, 저 또한 주저앉았다.

         

       하니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저 따위가 정녕 저 마물을 이긴 것이 맞는지, 저보다 열 배는 더 큰 괴물을 향해 어찌 대항했는지조차 모르겠다.

       머리 안이 백지장이 된 느낌.

         

       하지만 박수 소리가, 자신을 위한 열렬한 환호성이 강제로 현실을 일깨운다.

         

       “전, 이긴 거군요….”

         

       이겼다.

       오로지 혼자서 해낸, 말 그대로 인생 첫 승리.

         

       …울컥!

         

       레비 폴트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성취감과 전율, 이 두 가지 단어마저도 차마 지금 자신이 느끼는 모든 감정을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며 깨닫는다.

         

       지금, 이 자리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감싼 알을 깼음을.

       진정한 의미에서 검객이 되었음을 말이다.

         

       “으아아아!”

         

       소녀는 그것이 못내 기뻐 두 팔을 활짝 벌리며 하늘 높이 치켜들었고, 마냥 울부짖듯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

         

       이를 보던 관중은 그녀가 승리의 퍼포먼스를 취한다 여기며 흐뭇하게 바라봤다.

       훌륭한 쇼맨십이 아닌가.

         

       착각이었고, 나중에 정신을 차린 레비가 잠들려 할 때마다 부끄럽다 못해 수치스러워 이불을 걷어찰 흑역사 하나가 생성되는 순간이었으나, 지금은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기쁨의 포효를 전할 뿐.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쁨을 토해내던 레비는-.

         

       “-어?”

         

       ─곧장 안색이 창백하게 물들고 말았다.

         

       후우우웅!

         

       ……저게 뭐지?

         

       멍하니 저것을 올려다보며 레비 폴트는 잠시 멍하였으나, 얼이 나가는 것도 잠시.

         

       싸아아!

         

       알 수 없는 한기가 치밀어 오르며 소녀에게 공포가 덮쳐왔다.

         

       쿠르르릉-!

         

       먹구름.

       지상을 내려다보던 먹구름이 갑작스럽게 역동적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치 회오리와 같은 서클 형태를 이룬 먹구름은 점차 중앙 부분이 넓어졌다.

         

       “뭐야, 저거….”

         

       “…….”

         

       레비의 반응을 시작으로 서서히 먹구름의 불온한 움직임을 읽어낸 이들이 늘어났고,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하늘을 올려다본 모두가 같은 광경을 보았으며, 같은 서늘함을 느꼈다.

         

       칠흑과 닮은, 깊은 공포를 안겨주는 먹구름의 중심.

         

       그리고 그 어두운 공간 속에서.

         

       쑤욱!!

         

       [거인의 손]이 나타났다.

         

       “!!!!?”

         

       …사람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갑자기 출몰한 정체불명의 팔.

       그것은 지나치게 컸고, 지나치게 끔찍했다.

         

       하여 두려웠고, 도망칠 의지마저 빼앗았다.

         

       대항 불가한, 도망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단 것을 알려주는 존재의 등장은 때론 사람의 위기본능마저 마비시킬 따름이니.

         

       “도, 도망….”

         

       다급히 일어난 레비 폴트는 도망가라고 외치고 싶었으나,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안 그래도 체력이 모두 소진된 상태였는데, 저만한 괴물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다.

       천천히 나오고 있지만, 괴물의 팔에서 뿜어지는 불길함이 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것이다.

         

       피어.

         

       대형 맹수와 마물 등이 선천적으로 내뿜는 기운.

       생물에게 자연스럽게 공포를 심으며 몸을 마비시킨다.

       연약한 인간으로선 도무지 저것에게 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터.

         

       죽음이 다가온다

         

       사람들이 지금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이었고, 주마등조차 보이지 않았다.

       팔이 가까워질수록 진해지는 깜깜한 그림자만이 그들을 덮을 따름이었다.

         

       주륵.

         

       “아….”

         

       레비는 어느 순간 눈물이 흘렀다.

       대항조차 불가한 죽음의 공포 앞에서 사람은 처연히 눈물밖에 나지 않는 것이었고, 레비는 머리를 떨구었다.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 여긴 승리의 날.

         

       그 승리이 날이 절망으로 물드는 것도 한순간이었음에 허망함과 서글픔을 느낀다.

         

       …한데 어째서.

         

       스릉.

         

       “전, 왜 검을 들고 있는 걸까요?”

         

       레비는 생애 마지막 순간.

       여전히 검을 뽑는 자신을 발견하며 의문과 함께 답을 구하고 싶었다.

         

       왜 저는 검을 뽑고 있는지.

         

       ……소녀는 궁금했다.

         

         

       “─그건 발버둥이란 거다, 그리고 사람이 살고 싶어 발버둥 치는 데 이유 따윈 없는 거다, 곰순아.”

         

         

       “!!”

         

       저의 의문을 풀어주는 답변이 들려왔고, 레비는 일순 눈을 부릅뜨며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보았다.

         

       거기에는.

         

       “그래도 마지막까지 검을 잡은 건 칭찬해주지, 상점을 주마, 레비 폴트 생도.”

         

       “아아!!”

         

       소녀가 아는 한 대륙에서 가장 믿음직한 스승이 있었고, 레비 폴트는 저도 모르게 안도하며 또다시 울었다.

       방금 전 절망 어린 눈물과 다른 안도의 눈물을 말이다.

         

       “다 큰 처자가 울기는.”

         

       그는 울고 있는 소녀를 타박하면서도 따스하게 웃어 주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소녀에게 기특함을 느끼며.

         

       허나 이도 잠시.

       그가 하늘을 보며.

         

       “-우리 곰순이 네가 울렸냐?”

         

       이한, 그는 으르렁거리며 염동력 노예가 공중에 띄운 600kg 통나무 창을 강하게 걷어찼다.

         

       쿵-!

         

       전심전력의 힘을 담아.

         

         

       -관일창(貫日槍).

         

       해를 꿰뚫지는 못할 터이나, 성벽 정도는 거뜬히 꿰뚫을 발리스타가 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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