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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

   EP.66

     

   플레이어가 되고 신체 능력이 극도로 상승하며 원래였다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묘기들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100미터를 3초 만에 주파한다든지. 서전트 점프로 4, 5미터를 풀쩍 뛴다든지 그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신체적인 변화에 앞서서 가장 말도 안 되는 변화는 바로 ‘마력’이라는 개념의 유무였다.

     

   “흐읍!”

     

   마력은 몸에서 맴도는 무형의 기운이다.

   하지만 그것에 색을 입히고 속성을 부여하는 것은 각 플레이어들의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랐고 지금 나의 속성은 확실히 ‘화기火氣’에 근접한 무언가였다.

     

   월광검법 月光劍法

   제일식 第一式

   신월 新月

     

   [‘염화炎化’ 상태입니다. 음의 기운이 충돌합니다.]

     

   검에서 뿜어진 달빛에 근접한 기운이 서서히 사위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한다.

     

   달보다는 태양에 가까운 무언가.

   애초에 달빛 또한 햇빛을 반사시켜 빛을 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상할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거대한 열양지기가 나의 몸에서 폭발하며 랜든에게 광선처럼 쏘아졌다.

     

   – 하아아…!

     

   랜든이 입으로 서리를 쏟아 내며 얼음 검을 가지런히 들어올린다.

   그에 맞춰 땅에서부터 솟아오르는 빙벽. 확실히 놈의 기운이 빠지긴 한 건지, 광선과 충돌한 빙벽이 빠르게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화르르륵!!

     

   “흐읍!”

     

   기합과 함께 반쯤 녹아내린 빙벽을 세로로 베어 갈랐다.

   그 뒤로 드러난 랜든의 신형. 나는 올려친 검을 그대로 고쳐 쥐며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검을 내리쳤다.

     

   카아아앙!

     

   나의 검.

   아니, 나의 기운과 놈의 기운이 공중에서 충돌했다.

     

   괜히 Lv.6의 최종 보스가 아니었던지 단단한 마력에 맞서려는 몸이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울컥!

     

   내기(內氣)가 뒤틀린 것인지 속에서 피린 혈향이 올라온다.

   하지만 이대로 힘 싸움에서 패배한다면 이 얼음 괴물을 사냥할 방법은 더 이상은 없을지도 몰랐다.

     

   으지직.

     

   냉기와 화기가 만나 만들어 낸 폭풍이 주위를 쓸기 시작한다.

   열풍에 나무에 불이 붙었고 이윽고 냉기가 그곳에 닿자 불이 꺼지며 나무가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폭풍에 달궈진 돌과 얼어 버린 넝쿨이 숲을 난도질했고 모든 풀이 마치 유리 조각처럼 산산조각 나는 광경이 펼쳐졌다.

     

   씨익.

     

   힘의 기세가 점차 냉기의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랜든의 입에 비릿한 미소가 걸린다.

     

   점차 마력이 떨어져간다. 이대로 간다면 힘겨루기에서 승기를 잡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이제 나에게 남은 수단은 두 가지.

     

   하나, 코인으로 마력과 신체 능력을 끌어올려 놈을 잡는다.

   둘, 전심전력을 사용해 제한 시간 안에 놈을 제압한다.

     

   하지만 내가 그 선택을 하려는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퍼어억!

     

   어디선가 날아온 사람 머리통만한 돌덩이가 랜든의 허리에 직격했다.

   정확히는 허리 부근의 냉기 보호막을 때리고 튕겨진 것이었지만, 그 찰나의 빈틈은 놈에게 아주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 크하!

     

   돌덩이로 인해 놈의 균형이 흔들렸다.

   순간적인 충격으로 마력이 요동쳤고 나를 향해 집중되던 마력이 허리로 빠지면서 정갈하던 기운이 삐걱거리는 순간이 있었다.

     

   서걱! 화르륵!

     

   나의 검이 놈의 어깨에 닿았다.

   화염을 뿜어내던 검이 놈의 팔을 집어삼켰고 잠시 후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놈의 오른팔은 주인을 잃고 호선을 그리며 날아가고 있었다.

     

   – 우!! 아!! 우!! 아!!

     

   돌이 날아온 방향에서 단발성 외침이 반복되어 터져 나온다.

   복수에 성공해서 기분이 좋은지, 가슴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원숭이.

     

   언제부턴가 랜든의 얼음에서 빠져나온 녀석이 의기양양하게 나를 바라보며 소리를 치고 있었다.

     

   [‘백수원숭이 Lv.4’의 소환 시간이 끝났습니다.]

   [소환 몬스터가 ‘백수원숭이의 돌’로 되돌아갑니다.]

     

   [다시 ‘백수원숭이’를 소환하기 위해서는 일주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다시 검을 휘둘렀다.

   화염이 흩뿌려지며 놈의 몸에 군데군데 생채기를 만들어낸다.

     

   – 하아악!

     

   놈이 왼손으로 검을 옮겨 잡고 마지막 발악을 시작했다.

   하지만 팔이 날아간 검사가 박살난 몸의 균형을 다시 이해하는 데에 지금의 시간은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다.

     

   카카캉! 서걱!

   챙! 화르륵!

     

   놈의 눈이 순간 불안과 공포로 물든다.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죽음의 갈림길. 그리고 그의 앞에서 검을 휘두르는 저승사자는 놈의 안녕과 무사를 빌어 줄 신사가 아니었다.

     

   푸우욱!

     

   놈의 검을 저 멀리 튕겨 낸 나의 검이 똑바로 놈의 심장을 꿰뚫었다.

     

   둘 다 더 이상의 마력은 없었다.

   지긋지긋하던 얼음의 보호막도 더 이상은 없었고 나의 몸을 화끈하게 불태우던 염화의 마력도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순수한 검이었기에 잡음 따위는 발생하지 않았다.

     

   띠링!

     

   [‘한기의 기사(랜든) Lv.6’를 처치하셨습니다.]

   [S급 보물 ‘한기의 심장’을 획득합니다.]

     

   [‘죽음의 숲’의 동쪽과 서쪽의 보물을 모두 획득하셨습니다.]

   [마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신체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

     

   눈앞에 다양한 보상이 떠오르며 몸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물론 탈진에 가까운 전투를 치른 상태였기에 그것조차 미미했지만 말이다.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가 만족스러운 성장에 박수를 칩니다.]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가 당신이 사망하지 않음에 따라 합당한 보상을 내립니다.]

     

   [스킬 ‘투지(A)’를 획득합니다.]

     

   —

   [투지]

   랭크 : A

   분류 : 패시브

   설명 : 상대가 강할수록 전투력이 증가합니다. 당신보다 약한 적이 당신에 대한 전의를 상실할 수 있습니다.

   —

     

   [플레이어(랜든)를 죽였습니다.]

   [플레이어(데스)를 죽였습니다.]

   [랜든과 데스의 보물을 일부 획득합니다.]

     

   새로운 스킬 보상과 함께 내가 죽인 두 사람이 소지하고 있던 보물들이 떨어졌다.

     

   촤르르륵.

     

   20개가 훌쩍 넘어가는 보물 개수.

   랜든에게서 떨어진 것은 멀쩡한 것만 두 개 정도 보였는데 데스라는 놈은 사람을 사냥하고 다녔던 건지 피가 묻은 보물이 수두룩하게 떨어진다.

     

   반지, 목걸이, 브로치, 팔찌 등등.

   이걸 귀에 걸면 귓불이 찢어지지 않을까 싶은 사이즈의 귀고리도 있었고 도대체 용도를 알 수 없는 형태의 장신구들도 눈에 들어온다.

     

   ‘이게 황금 고블린인가?’

     

   나는 모든 보물을 차근차근 품에 챙겨 넣었다.

   지금 여기 떨어진 보물이 내가 개인전에서 챙길 수 있는 모든 것.

     

   더 사냥을 하고 싶어도 체력과 마력이 바닥을 친 상황이었고 이걸 들고 다니다가 죽으면 그것만큼 바보 같은 개죽음이 또 없을 것 같았다.

     

   ***

     

   “크아악!……어?”

   “살려…! 어?”

   “끼야아……어?”

     

   각자 나름대로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 어벙한 비명을 지르며 로비로 소환됐다.

   5개 이상의 보물을 수집해 귀환에 성공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극소수.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제대로 임무를 성공하지 못한 채, 능력치만 잃고 로비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게 말이 돼?!”

   “도대체 이딴 임무를 어떻게 클리어하라는 거야! 밸런스가 하나도 안 맞잖아!”

     

   플레이어들이 너도나도 불평불만을 터트리며 인상을 구겼다.

   그도 그럴 것이 개인전 자체가 Lv.3 이상의 몬스터에게만 보물이 떨어지는 구조다 보니, 보물을 제대로 수집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젠장! 그 새끼 눈에 띄기만 해 봐라!”

     

   하지만 모든 사람이 몬스터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플레이어들의 사망 원인 중 상당수가 타 플레이어에 의한 사망.

     

   애초에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보다 몬스터를 사냥하고 지친 플레이어를 처치하는 게 더 쉬운 일이었으니 딱히 이상한 상황은 아니었다.

     

   츠츳!

   우웅. 우웅.

     

   그때 로비의 빈 공간에 소수 파티로 보이는 남녀와 함께 어인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대로 돌아왔군요.”

   “와. 진짜 죽을 뻔.”

   “후우…… 다들 괜찮으신가요?”

     

   그들의 등장에 도우미들의 표정이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했다.

   아닌 말로다가 가장 빠르게 PK를 당해 로비로 돌아올 것 같은 좌표의 인간들이 보물을 넉넉하게 챙긴 상태로 무사 귀환을 했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저거 설마…… 토끼네 좌표 플레이어들입니까?

   – 그럼 뭘로 보이냐? 젠장.

     

   구석에서 플레이어들을 살펴보던 도우미의 대화에 몇몇 중위권 도우미들의 표정이 굳어진다.

     

   토끼의 좌표라면 현재 기수 중, 최하위를 달리고 있던 비능력자 집단.

   그런 하위 랭킹의 플레이어들이 수두룩하게 임무를 완료했다는 건 곧, 그들의 랭킹이 토끼 아래로 내려가게 될 가능성이 있음을 뜻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말해 곧 토끼를 신랄하게 갈구던 그들의 위신이 땅에 떨어질 수도 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 ……

   – ……

     

   도우미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토끼를 향했다.

     

   – …힉힉…이힛…

     

   냉정해 보이려는 ‘척’하며 웃지 않은 ‘척’하는 토끼.

   다 티가 났지만 기뻐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게 눈에 들어오니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더 암울하게 느껴진다.

     

   슬슬 개인전이 끝나 가자 플레이어들이 우후죽순 귀환하기 시작한다.

   보물을 들고 나타나는 사람들. 보물을 빼앗긴 채, 생생한 단말마를 터트리며 엉덩방아를 찧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인물은 단연코 에키온이 그렇게나 자랑하고 내세우던 2층에서 성좌와 계약한 데스였다.

     

   우웅.

     

   그의 등장에 몇몇 사람들이 눈을 부라리며 그를 노려봤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그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니 그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리라.

     

   “씨발, 재밌네?”

     

   로비로 돌아온 데스가 쌍욕을 날리며 미친 사람처럼 실실 웃기 시작했다.

     

   “……”

   “……”

     

   그 모습에 ‘자신을 죽인 놈을 용서하지 않겠다’며 길길이 날뛰던 몇몇이 슬쩍 눈을 내리깔며 침묵했다.

     

   원초적인 공포심.

   자신의 목을 치고 팔을 날리고 복부에 검을 쑤셔 넣은 살인마를 보며 억울함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이곳에 없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와는 달리 토끼의 눈이 미묘하게 반원을 그리며 휘어졌다.

   중간에 플레이어들을 학살했을 때만 해도 무조건 1등으로 개인전을 마무리할 것 같았던 놈이 빈손으로 돌아오니 그것만큼 꼬신 게 없던 모양이다.

     

   우웅.

     

   “으윽.”

     

   신성국의 대표로 보였던 적색 기사가 로비에 모습을 드러내자 도우미들이 슬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 근데 아직도 안 나온 플레이어가 있답니까? 시간이 좀 지체된 것 같은데. 뭐 하는 거지?

   – 맡은 좌표의 플레이어들이 빠져나오면 필드를 볼 수가 없으니… 쯧.

     

   점점 늘어지기 시작한 개인전.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도우미들의 머릿속을 휘몰아쳤다.

   자기 좌표의 플레이어들이 빠르게 리타이어 되었으니 짜증나기도 했고 다른 좌표의 플레이어가 아직 남아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잠시 후.

     

   우웅.

   차르릉! 샤라랑!

     

   목걸이와 목걸이가 부딪치며 만드는 공명.

   수십 개의 보물을 주렁주렁 매단 사나이의 강림.

     

   모두가 무시하던 토끼네 플레이어의 등장에 도우미들은 도저히 표정을 관리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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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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