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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

       세상에는 보고도 믿지 못하는 것이 있다. 다니엘은 눈을 비볐다. 한 번으로는 부족한 거 같아 다시 한 번 비볐다.

         

       "한방 더!!!!"

       "진지하게 좀 해요!"

         

       불꽃이 튀었다. 튄 걸로는 모자라 아예 시야 전체를 뒤덮어버렸다. 얼굴이 익어버릴 거 같은 열기. 숨이 막힐 것만 같은 공기의 무게.

         

       다니엘은 딸꾹질했다. 마지막으로 놀래서 딸꾹질했던 게 언제였던가. 어린아이였던 거 같은데.

         

       마냥 영웅들의 이야기를 꿈꾸던 아주 어릴 때.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눈앞에 있는 건 현실이 아닌 꿈만 같은 광경이었으니까.

         

       콰아아아아아아앙!!!

         

       도끼가 다 때려 부순다. 말 그대로다. 그냥 진짜 눈에 있는 걸 다 때려 부수고 있다. 다른 이들은 그저 멍하니 구경하고 있을 뿐이었다.

         

       로즈메리. 그녀의 도끼가 허공을 찢어발겼다. 무식할 정도로 강한 불꽃은 거대한 폭발을 불러일으켰다. 영주의 성 안쪽에 잠들어 있던 거대한 썩은 자의 머리가 날아가고 단면에 불꽃에 타올랐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놀랍다. 다니엘은 속으로 사제에 대한 인식을 급히 수정했다. 제국 기사와 맞먹을 정도로 강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주역이 아니었다. 더 미친 듯이 타오르는 도끼의 존재가 있었으니.

         

       몸보다도 더 큰 도끼가 허공을 내리찍었다. 썩은 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끼에에에에에에엑!"

         

       …저게 원래도 비명을 지르는 거였나?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로즈메리의 도끼가 다 때려 부순다는 것에 그친다면, 저 사람의 도끼는 다르다. 그냥 말 그대로 다 날려버린다. 형체를 남기지 않고 흩어지는 썩은 살점이 모두 짓이겨진다.

       파괴. 멸망. 두려움이 형상화된 자.

         

       다니엘은 그 이름 앞에 뭘 붙여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는 알았다.

         

       "에이. 시발. 싱겁네."

         

       저건 사제랑은 거리가 멀다! 그것도 아득하게!

         

         

         

         

       . . .

         

         

         

       괴물에게서 핵을 뜯어냈다. 도끼가 편한 점은, 무식하게 물체를 짓뭉개 핵의 위치가 어디 있는지 알기 쉽다는 점에 있었다.

         

       로즈메리가 입에 들어간 썩은 살점을 뱉어냈다.

         

       "입에 다 들어갔어요. 퉤퉤."

       "로즈메리. 전보다 실력이 더 늘었던데요?"

       "…진짜요?"

       "실전에 강한 타입이네. 로즈메리. 아이. 장하다. 내 고양이."

       "머리 쓰다듬지 마세요!"

         

       뜯어낸 핵을 포켓 속에 집어넣었다. 이걸로 두 개. 기사 쪽도 지금쯤 두 개를 챙겼으려나.

         

       이제 지하만 뚫으면 되겠군. 그러면 만사 오케이다. 마지막 건 시계탑 밑에 있는 게 국룰이었으니 찾기만 하면 된다.

         

       슬슬 나왔겠지. '문지기'들이 세 명 이상 죽을 시, 나오는 인간들이 있다. 그걸 인간이라고 불러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피난민'.

         

       게임 속에서는 그렇게 불렀다. 딱 적절한 이름이기도 하고 말이야.

         

       파라메르 성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 직후, 고위층의 사람들은 모두 모습을 감췄다. 떼거지로 죽어나간 건 파라메르의 평범한 시민뿐이었다.

         

       그렇다면 그 고위층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나.

         

       시계탑의 지하에 숨었다. 전쟁을 대비해서 만든 벙커. 그 안에는 바흐의 피를 가진 자도 있었다. 모든 비밀이 적힌 일기장도 그 안에 있었지.

         

       그리고 그 지하에는 시계탑의 꼭대기까지 이어지는 좁고 가느다란 통로가 하나 있었다.

         

       딱 조그마한 아이가 드나들 수 있는 작은 통로. 마지막 미니 보스는 그곳에 있었다.

         

       그것만 죽이면 아마 시계탑의 정상이 열릴 게 분명했다. 그리고 약체화된 보스를 해치우면 끝. 보상까지 쏙쏙 빼먹으면…!

         

       드웨인의 코가 납작해지는 거다! 아주 바닥에 붙을 정도로!

         

       "자하드 형제님!"

         

       노아가 내게 달라붙었다. 강아지같이 순한 눈망울을 반짝였다.

         

       "자하드 형제님이 주운 편지들. 아직도 쓸 곳이 있나요?"

       "아뇨? 그냥 장소만 읽으면 상관없는 것들이죠."

       "그럼 저 주실 수 있어요? 사실…저 그런 이야기 무척 좋아하거든요."

         

       아.

         

       이시스 교단의 사도인 노아는 로맨스를 무척 좋아했지.

         

       뭐 안 될 건 없다. 나는 편지 두 개를 그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그게 그렇게 좋아요?"

       "물론이에요! 편지 두 개만 읽어봐도 알 수 있어요.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랑 이야기…마치 생명의 숭고함 그 자체이지 않나요?"

         

       노아가 편지를 품 안에 집어넣었다.

         

       "저는 이 이야기가 무척 좋아요! 엄청!"

         

       노아의 미소가 반짝거렸다.

         

       저게 순수한 아이라는 건가…늙은이인 나와는 다르군…

         

       나는 쓱 고개를 돌렸다. 다니엘과 시선이 마주쳤다. 어째서인지 모를 식은땀이 그의 뺨에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흐으응?

         

       "다니엘 씨?"

       "예, 예예?"

       "감상이 어떠신가요?"

       "그…어…그…"

         

       그가 말을 더듬었다.

         

       "괴, 굉장…"

       "끝?"

       "어, 엄청…"

       "끝?"

       "크으으윽…"

         

       다니엘이 무릎을 꿇었다.

         

       "지렸습니다…의심해서 죄송합니다…사제님…제가 멍청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 없을 테니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봐 드리죠."

         

       나는 씨익 웃었다. 그래. 이것이 너와 나의 눈높이다!

       어딜 감히! 불경하다!

         

       "어, 어떻게 그렇게 강해질 수 있는 겁니까…? 아무리 그 제국 기사라 하더라도 명함 하나 못 내밀 정도의 힘이었던 거 같은데…그게…가능하기는 한 겁니까?"

       "라를 믿고 주변에 널리 퍼트리세요. 믿음은 보이는 것보다 강하답니다."

       "그냥 순전히 재능빨이에요. 무시하세요."

       "불경하다!"

       "불경은 무슨. 저한테 매일 그랬잖아요. 사람은 타고나기를 달라야 한다고."

       "노력 또한 기적의 한 형태이거늘…"

       "애당초 진짜 열여섯 살이 맞긴 해요?"

       "여, 열여섯입니까?! 진짜?!"

       "무력 수준만 보면 거의 전장에서 구른 노장급…"

       "특급 용병들이랑 어깨를 견줄 수 있을 거 같은데…"

         

       수군거림이 짙어졌다. 나는 편지를 열심히 읽고 있는 노아를 훔쳐보았다.

         

       눈을 반짝였다.

         

       "열여섯 맞아요!"

       "……"

       "……"

       "……"

         

       싸늘한 시선과 마주하고 나서 나는 알았다.

         

       아아.

         

       순수한 어린아이 때로는 돌아갈 수 없군.

         

         

         

       . . .

         

         

         

       우리는 밖으로 빠져나갔다. 광장으로 발걸음을 내딛자마자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누가 우리를 바라보는지 알고 있었다. 벽 뒤에 숨어 우리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 슬그머니 포켓 안에서 음식을 꺼냈다.

         

       "앗. 이게 뭐지! 나도 모르게 그만!"

         

       딸그락.

         

       떨어진 비상식량이 소리를 냈다. 지켜보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뭐 하는 거예요?"

       "뭐 하긴요."

         

       나는 도시락을 뜯었다.

         

       "유인 중이죠."

         

       도시락 속에서 맛있는 냄새가 물씬 풍겨 올랐다. 성화를 일으켜 뜨겁게 데워주자, 끝내주게 멀리까지 풍겼다.

         

       "저기요. 그만 보고 나오실래요?"

       "……"

       "지금 안 나오면 이거 그냥 제가 먹어요?"

       "……!"

         

       벽 뒤에서 뛰쳐나온 남자가 헐떡였다. 헐렁한 옷 위로 보이는 검은 반점들.

         

       "저, 저게 뭐야."

       "인간인가?"

         

       나는 도시락은 흔들었다.

         

       "안 먹을 거예요?"

       "머, 먹겠습니다!"

         

       남자가 뛰어왔다. 몸이 좋지 않은 듯 한 번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곧바로 벌떡 일어나 도시락에 얼굴을 처박았다.

         

       두 손으로 반찬을 움켜쥐고 무작정 입으로 쑤셔 넣었다. 하도 게걸스럽게 먹는 탓에 로즈메리가 인상을 썼다.

         

       "대체…얼마나 굶은 거예요?"

       "오랫동안 굶었겠죠. 아예 몸이 검은 게 아니니까, 그나마 인간적인 사람이었나 보네요."

       "네?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직접 물어보세요. 물론 다 먹으면."

         

       흐느끼며 도시락을 입안에 털어놓은 그가 내게 매달렸다.

         

       "사, 사제님! 정말 죄송하지만, 혹시 도움을 주실 수 없겠습니까! 아내가 굶고 있습니다! 머, 먹을 게 있다면 조금이라도 나눠주십시오!"

       "알았으니까 놔요. 실컷 건네줄게요."

         

       파라메르 공략전의 핵심은 시계탑에 잠들어 있는 녀석을 물리치는 걸로 끝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달랐다. 시계탑 밑의 피난민들을 얼마나 살리는 지에 따라, 보상이 갈라지고는 했다.

         

       하나라도 더 많이 살리면 보상이 더 많아진다. 특히 파라메르의 영주 가문을 살릴 시 그에 관한 보상은 어마어마한 정도.

         

       이곳은 현실이니만큼, 더 많이 퍼주지 않을까. 나는 성자처럼 활짝 웃었다.

         

       "라께서 말씀하시길, 부족한 자를 위해 아낌없이 베풀라고 하셨습니다."

       "…사, 사제님…!"

       "모두를 먹일 식량은 충분합니다."

         

       나는 남자를 일으켜 세웠다. 몸에 묻은 흙먼지를 탁탁 털어주었다.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시죠."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아아…!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용병들이 수군거렸다.

         

       "워우씨."

       "사제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

       "괴물 찢던 사람은 어디 가고 저렇게 자비로운 미소를…"

       "라의 교단은 어떻게 되먹은 곳입니까?"

         

       로즈메리가 몰려든 시선을 쓱 피했다.

         

       "저는 모르는 사람이니까, 저 보지 마세…"

         

       로즈메리가 말을 끊었다. 흔들리는 신체를 눈치채고 급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 이게 갑자기 무슨…"

         

       이변이 발생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

         

       갑작스레 파라메르가 흔들렸다. 건물 일부가 무너지고, 썩은 내가 지독하게 솟아올랐다.

         

       대지에 금이 갔다. 조금 전까지 온화했던 분위기는 어디 갔나 싶을 정도로 눈에 닿는 곳 모두가 시끄러워졌다.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 흔들리는 지면에 사람들이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뭐, 뭐야?"

       "지진…?"

         

       아니 잠시만. 단순 지진이 아닌데.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파라메르 전체를 가득 채울 정도의 날카로운 소리가.

         

       콰아아앙!

         

       눈앞의 건물의 벽이 무너졌다. 쏟아진 썩은 살점들이 공명이라도 하듯 건물에서 빠져나와 몸을 일으켰다.

         

       "아. 시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경우는 하나뿐이다.

         

       누군가 파라메르의 보물창고를 건드렸다! 어떤 미친 새끼가 감히!

         

       온전히 뚫었다면 또 모를까. 어중간하게 건드려서 마법 방범 장치가 일부 발동해 버린 게 분명하다.

         

       청각을 쥐어뜯는 날카로운 소리. 썩은 자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경보음 소리가 도시를 뒤덮은 걸 보면 확실하지!

         

       꽁꽁 숨겨진 거기는 또 어떻게 찾아낸 거야?!

         

       "어, 어떡하죠?!"

       "어떡하긴 시발!"

         

       나는 남자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시계탑으로 뛰세요!"

         

       파라메르의 보물창고를 엔딩 전에 열었을 때 일어나는 결과는 하나뿐이었다.

         

       파라메르라는 지역 내부에 나뉘어있던 법칙 중 하나가 파괴된다. 낮과 밤을 이루던 경계가 사라지고 시끄러운 소음이 지속되면서 파라메르 전체가 썩은 자들로 들끓게 된다.

         

       거기서 더 시간이 지체되면 시계탑의 괴물이 일어나기까지.

         

       즉, 낮에도 썩은 자들이 움직이고, 그 지독한 와중에 보스까지 상대해야 한다는 말과 같았다.

         

       당장 저 경보 소리를 멈춰야 한다! 아니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고!

         

       일단 도움 안 되는 녀석들은 시계탑 속에 밀어 넣자! 괜히 데리고 다니다가 휩쓸릴 것이 뻔하니!

         

       "전부 따라오세요!"

         

       시계탑의 지하. 마지막 미니 보스가 있는 곳으로 나는 곧바로 내달렸다.

         

       건물 벽에서 튀어나온 썩은 자들이 고개를 돌렸다. 다니엘이 결전의 의지로 검을 뽑았다. 당당하게 로즈메리의 앞에 섰다.

         

       "로즈메리 사제님! 제가 막겠습니다! 걱정 마십…!"

         

       연달아 터지기 시작한 건물의 외벽 속에서 썩은 자들이 무수히 쏟아졌다.

       검을 들었던 다니엘이 다시금 쏙 집어넣었다. 즉시 고개를 돌렸다.

         

       "튀, 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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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성기사가 성물을 독차지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 world where magic reigns supreme and the influence of gods wanes, a young boy finds himself unexpectedly thrust into the role of an acolyte in the declining Sun God’s Temple. Blessed with the divine stigma of the Sun God, he must navigate the temple’s internal politics, the hostility of his fellow acolytes, and the challenges that come with his newfound powers.

As he delves deeper into the mysteries of the temple, he discovers hidden secrets and powerful artifacts that c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destiny. With the guidance of an enigmatic senior acolyte and the unwavering faith in his own abilities, he sets out to prove his worth and carve his own path in a world that has all but forgotten the true power of the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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