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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

    <66 – 자 다 썼죠>

     

    “그러면 못쓴다, 인석아.”

    “아얏.”

     

    팔뚝만한 바위에 머리를 부딪친 충격에 고개를 들자 손오천이 한심하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쥐방울아. 고용주 녀석이랑 종종 같이 다니더니 상인 노름을 배우기라도 했냐?”

    “씨잉. 아프잖아요!”

    “아프라고 때렸다. 삥 뜯고 포인트 내라고 하는 건 강매질 아니냐?”

    “그치만 얘들은 다 헤스티아한테 심한 말을 했던 못된 놈들인걸요!”

     

    헤스티아도 범행을 저지를 상대 정도는 골라서 저질렀다.

    자세히 보면 하나같이 당해도 싼 녀석들뿐이다.

     

    “그렇다고 너보다 약한 놈들 삥을 뜯고 싶냐? 시원하게 죽을 때까지 패버리면 몰라도 악덕기업인처럼 그렇게 강매나 하고 그러는 거 아니야.”

    “알았어요…. 다음부터는 참고할게요…….”

    “다음부터가 아니라 이번에도.”

    “네…. 이번에도요…….”

     

    손오천도 나름 레귤러 동료, 오크노디 원년파티 정직원급 원로멤버다.

    원숭이답게 한 번 말 안 들었다가 삐지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한 번만 고집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런데 눈탱이밤탱이가 된 학생들은 이쪽을 더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자, 여기 깃발이요.”

    “괘, 괘, 괜찮습니다. 깃발 안 받아도 되니까 제발 살려만 주세요.”

    “어? 괜찮다는데요?”

    “임마. 쫄아서 그러는 거잖아. 빨리 깃발 줘.”

    “네에…….”

     

    결국 마지못해 한 놈한테 깃발을 줬다.

    그런데 깃발을 받은 녀석이 엉엉 대성통곡을 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근처 좌석에서 같이 식사를 하던 친구 녀석들은 식판에 머리 고정하고 수저도 안 움직이면서 진짜 쥐 죽은 듯이 침묵하고 있다.

    뭐야 이 분위기.

    손오천 아저씨 말대로 깃발도 돌려주고 착한 짓 했는데 왜 이렇게 무서워하냐고!

     

    “뭐지? 뭐 안 좋은 일 있으셨나?”

    “아, 아니에요. 그냥 저희가 좀 과묵해서.”

    “야, 닥치고 밥이나 처먹어.”

     

    눈탱이 맞은 친구를 커버 치려던 옆자리 학생을 다른 학생이 옆구리를 쿡 찔러서 입 다물게 했다.

    바보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두려워하는 분위기에 섭섭해 하기도 잠시.

    뭔가 따가운 시선들이 느껴져서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쟨 이제 아카데미 생활 조졌네.”

    “심심하면 한 번씩 찾아와서 줘패는 거 아니야?”

    “깃발을 삥 뜯는 대신에 죽을 때까지 패버리려나봐.”

    “빨리 튀자.”

    “잡히면 우리도 찍힐지도 몰라.”

    “나 아직 우유 못 마셨는데…….”

    “밥 먹고 아카데미 생활 조질래, 그거 안마시고 편하게 다닐래?”

     

    갑자기 부식으로 나온 우유를 버리고 먹던 식판을 잔반통으로 들고 가는 학생들.

    귀한 고기도 모조리 탈탈 털어 버리고는 다급히 식당을 벗어났다.

    얼굴에 멍이 든 피해자들과 그 친구들의 도주에 오크노디가 당황했다.

     

    “아앗, 거기서요! 사과 받아야죠!”

    “괜찮아, 안 해도 돼!”

    “깃발도 가져가야죠!”

    “너 가져! 다 줄 테니까 우린 제발 용서해줘!”

    “??”

     

    시키는 대로 순순히 사과도 하고 착하게 굴었는데, 더욱 두려움을 사버린 오크노디였다.

     

     

    * *

     

     

    “그런 일이 있었는데 혼 좀 내주세요!”

    “우리가 왜 그래야하지?”

     

    교관들에게 달려와 미주알고주알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털어놓으며 하소연을 하는 학생들에게 아카데미를 순찰하던 교관들은 사무적으로 대꾸했다.

     

    “교장의가르침 강의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깃발을 쟁탈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폭력은 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무력제제는 없다.”

    “그런 법이 어딨어요!”

    “너희가 권력을 이용해서 하급반 학생들에게 ‘보호비’ 명목으로 포인트를 받고 B그룹 훈련시설의 이용시간을 통제하는 것도 교관들은 관여하지 않았다.”

     

    학생들보다 실력이 부족하거나 그들의 뒷배가 두려웠기 때문이 아니다.

     

    “교장님께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선한 의지이든, 악한 의지이든.”

     

    교장은 선악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러니 아카데미의 기조는 기본적으로 학생들에게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는다.

     

    “대신, 교관들은 평가한다. 학생들의 아카데미 활동을. 누가 어떤 교칙을 어기고, 어떤 상점을 받을 모범적인 생활을 했는지. 그리고 포인트를 측정하지.”

     

    포인트 만능주의.

    아카데미의 정의는 오직 포인트로 구현된다.

    학생들도 그제야 포인트가 전부라던 교장의 말이 있는 그대로의 말이었음을 깨달았다.

     

    “분하다면 기사학부의 체술강의를 들어라. 배움의 힘으로 강해지거든 맞고 다니진 않겠지.”

    “흥. 됐습니다. 교관한테 의지하려고 했던 저희 잘못이죠. 귀족의 문제는 귀족답게 해결하겠어요.”

    ‘귀족은 귀족답게 인맥으로 승부를 봐야지!’

     

    귀족의 체면을 챙겨줄 사람은 같은 귀족밖에 없다.

    학생들은 제국귀족 출신 교수님을 찾아가서 하소연하기로 결심했다.

     

     

    * *

     

     

    수요일 3교시, 위어드 교수님의 <마나사용의 기초와 이해> 강의시간.

    오늘도 나뭇잎과 넝쿨을 엮어 만든 살을 가린 면적보다 드러난 면적이 더 많은 파격적인 차림새의 드라이어드 교수님은 학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난 시간에는 자연마나의 퍼즐조각을 찾았었죠. 오늘은 그렇게 찾은 퍼즐조각을 이용하는 마나사용에 필요한 이론식을 적어보겠어요.”

     

    분필을 든 드라이어드 교수님이 등을 돌려 칠판을 바라보자 학생들의 시선이 칠판 대신 교수님의 뒷모습으로 향했다.

    앞모습일 때에도 교수님은 나뭇잎으로 차마 다 가리지 못한 밑가슴이나 윗가슴이 탐스러운 과육처럼 무르익은 가슴모양을 상상하게 했다.

    노출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드러난 복부의 십일자 근육과 앙증맞은 배꼽에 마음을 빼앗긴 학생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수강생의 반절은 될 것이라고 오크노디는 확신했다.

    나머지 절반은?

    교수님의 뒷모습에 반한 것이 틀림없다.

    등을 따라 아래로 S자를 그리면서 내려가는 잘록한 허리를 보면 안아보고 싶다는 생각부터 등골을 손으로 훑고 싶다는 생각까지, 별에 별 생각을 다 하게 만든다.

    그렇게 한눈을 팔다보면 분필로 칠판을 필기하는 속도가 뭔가 빠르지 않나? 하는 사실을 학생들은 뒤늦게 깨닫게 된다.

     

    “오크노디. 교수님 힙 굉장하지 않아? 저렇게 예쁜 엉덩이는 처음 봐. 드라이어드가 매력적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힙업 운동도 따로 하는 걸까?”

    “도로시. 그러고 있다가 후회할거야. 얼른 필기해.”

    “필기? 교수님이 다 적으면 그때 가서 해도 되지 않… 어어? 언제 이렇게 많이 쓰셨지?!”

     

    답은 넝쿨에 있었다.

    드라이어드가 손처럼 자유롭게 다루는 넝쿨들이 하나씩 보드마커를 쥐고 1200×5000 사이즈의 대형칠판 위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려나갔다.

    두 손으로 그려도 학생들이 따라가기 벅찬 속도로 그리는 그림을 열 개도 넘는 넝쿨로 동시에 그린다.

    따라서 적는 사람의 손은 두 개 밖에 없는 이상에야 당연히 필기조차도 벅찰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참 애를 먹는 학생들을 돌아보며 교수님은 뿌듯하게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 다 적었죠? 그럼 지울게요.”

    “아니 교수님!!!”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방금 다 적으셨잖아요!!!”

    “하나도 다 못 적었어요! 필기할 시간은 주셔야죠!”

     

    당황해서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

    위어드 교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

    “네??”

    “제가 다 적었다고요.”

    “…….”

     

    그렇다.

    옷도 제대로 안 입고 다니는 밖에서 보면 노출증 환자 소리 듣기 딱 좋은 젊고 건강한 위어드 교수님에게도 단점은 있었다.

    바로 학생의 마음을 모르는 이기적이고 잔혹한 정교수라는 사실이었다.

     

    ‘나무요정의 훌륭함은 학생들에게도 똑똑히 보여줬으면 됐지. 학생의 마음을 왜 알아야해?’

     

    위어드 교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오크노디는 당연히 이 교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 사람은 자기가 이렇게 열심히 완벽하게 필기를 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만족스러울 뿐.

    자기능력을 세상에 더 널리 과시하는 것이 목적이지, 참된 교육자로서 돌대가리들에게 지성과 교양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으아앙! 반도 못 적었어!”

    “술식을 절반밖에 못 적어서 하나도 이해 못하겠어. 작동하지 않는 술식 따위, 그냥 쓰레기잖아!”

     

    변방의 숲지기 도로시도, 제국의 오만한 마탑출신 학생인 적색마탑의 로지니와 황색마탑의 샌드쿠커도 모두 개같이 멸망했다.

     

    “1-2 섹터 필기본 구합니다!”

    “1-3 섹터 필기 성공하신 분 있나요?”

    “저 1-4 섹터 필기했는데 1-3섹터 필기하신 분 있으면 교환 좀…”

    “5포인트 줄게! 한 번만 보여줘 제발!!”

    “나는 5포인트에 부식으로 나오는 젤 맛있는 음식도 얹어서 줄게!!”

    “10포인트!!!”

    “뭐어엇!! 필기 한 페이지에 두 끼를 포기하다니, 미친 거 아니야?!”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어. 포인트는 복구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한 번 잃어버린 학점은, 떨어진 성적과 가문에서 돌아올 멸시는 돌이킬 수 없어!!”

     

    강의가 끝난 뒤, <마나사용의 기초와 이해> 강의는 물물거래의 장보다는 아수라장에 가까워졌다.

    대부분의 학생이 상식대로 가장 왼쪽에서부터 필기를 이어나가다보니 1-1페이지만을 필기하고 다른 페이지는 필기에 성공한 내용이 거의 없었다.

    다른 학생들과 필기노트를 바꿀 생각으로 칠판의 다른 부분을 필기한 학생들은 극소수였던 것이다.

     

    “으아앙. 어떡해. 두 번째 강의부터 망해버렸어!”

    “울지 마, 도로시. 내가 필기 해놨어.”

    “정말? 어느 페이지 필기 했는데?”

    “1-3페이지랑 2-3페이지.”

    “뭐어어?! 1-3은 매물도 없고 2-3은 그나마 필기한 사람도 한 명밖에 없던 파트잖아!”

    “원래 필기는 제일 가치가 높은 부분을 하는 거야. 그래야 남들이랑 바꿔서 완성본을 만들 수가 있지.”

     

    도로시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도 난 1-1페이지랑 2-1, 2-2페이지밖에 필기 못했는걸.”

    “괜찮아. 내거 보여줄게.”

    “정말?! 내가 가진 페이지는 가치도 낮은데, 정말 그래도 괜찮겠어?”

    “물론이지. 우린 친구잖아.”

    “오크노디…!”

    “대신 나한테 필기해간 페이지로 다른 애들한테 페이지 당 10포인트에 받고 팔아서 번 돈의 절반은 나한테 수수료 떼줘!”

    “…….”

     

    다 아는 내용인데 필기한 이유는 당연히 포인트 복사를 위해서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학생의 마음을 모르는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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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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