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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

       아주 가끔가다 그런 생각을 한다.

         

       만약 내가 물리학과가 아니라 의대를 갔더라면, 미래가 바뀌었을까?

         

       아릿한 기억에선 시큰한 향이 난다. 대입이 막 끝나고 성인이 되기 직전에 있었던 시절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주변으로부터 바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었다.

         

       다들 미친놈이라고 한마디씩 내뱉었다. 부모님은 화를 냈고, 선생님은 초록으로 도배된 배치표를 보여주며 끊임없이 날 설득했다. 우리 집은 반지하 곁방에서 살 정도로 가난했기에 내 학과 선택은 가정불화의 도화선과도 같았다.

         

       ─ 어떻게 하는 짓이 네 누나랑 똑같냐!!

         

       돈이니 뭐니 신경 쓰지 말고 너 하고 싶은 거 하며 살라던 누나.

         

       생각해보면 내 누나는 살리에르 가의 영애와 닮은 사람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보다 남을 먼저 챙겨주는 사람이었고, 현실보다 이상을 좇아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흐으윽….”

         

       로테의 신음소리에 의식의 바다가 사라졌다. 희끄무레한 추억이 신기루처럼 날아간 자리에는 현실이라는 이름의 모래 알갱이만이 남았다.

         

       나는 로테의 물수건을 갈아준 뒤 의자에 등을 붙였다.

         

       잠을 안 자고 룸메이트를 간호한 지 사흘째. 눈꺼풀이 무겁다. 눈을 연신 깜빡이거나 점안제를 넣어도 뻑뻑한 느낌은 그대로였다. 숙면을 취하기 전까진 안 사라질 증상이다.

         

       갈아줘야 하는 건 물수건뿐만이 아니었다.

         

       위생 상태도 신경써야 한다. 나는 수시로 EMP 스크롤과 위생용 스크롤에 마력이 도는 걸 확인하며 얼마 없는 마력을 쥐어짜내야 했다.

         

       병실에서 마력초를 피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로테가 그나마 숨을 쉬려면 주변 공기를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

         

       머리가 터질 듯이 저려왔다. 쪽잠을 붙이려고 하면 반사적으로 눈이 뜨였다. 잠깐 눈을 붙인 사이에 친구가 주검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도무지 발 뻗고 잘 수가 없었다.

         

       의사와 간호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로테를 간호하는 이유는 그런 것에서 기인한다. 다른 사람은 온전히 못 믿었으니까, 무엇보다도 간호인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상황이었으니까.

         

       “흐.”

         

       몽롱하다. 호접지몽을 경험하는 것 같다.

         

       내가 에테르의 몸속에 들어와 있는 건지, 아니면 에테르가 꾸는 꿈에 내가 존재하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만약 후자라면 이 모든 게 하룻밤 악몽으로 끝나길 바랄 뿐이다.

         

       “나아… 갠차느니까아…….”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시트는 땀으로 젖어 축축했다. 머리는 여전히 불덩어리였는데, 팔다리는 차게 식어 있었다. 자칫하다간 철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수건을 갈아주고 경구수액을 먹여주는 것뿐이었다. 주사를 놓는 법도 숙지하지 못해서 항생제의 투여를 보건 선생님에게 부탁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의료쪽 일이 이렇게나 어려울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역시 난 메디컬과 안 맞는다. 이런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이걸 해야만 한다.

         

       나는 의료진이라 불릴 자격이 없었지만 로테를 간호하는 길을 택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모든 계획은 뒤로 미뤘다.

         

       로테가 나에게 은화를 준 보답으로 이러는 건…. 아마 아니다.

         

       “아.”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나흘이 더 지나간 상태였다.

         

       일주일. 이만하면 슬슬 괜찮아질 때도 됐는데.

         

       “안, 아파…?”

       “난 괜찮으니까 네 걱정이나 좀 하라고.”

       “헤헤….”

         

       흐릿해진 정신을 가까스로 부여잡으며 자가진단을 시작했다.

         

       목이 따끔거리진 않는다. 식은땀이 흐른 적도 없다. 발열, 멍울, 오한, 기침이나 가래와 같은 증상도 없다. 흑사병의 잠복기를 고려한다면 나는 감염되었다고 볼 수 없었다.

         

       막말로 누가 저주라도 걸지 않은 이상 여기서 쓰러질 가능성은 때려죽여도 없…….

         

       잠깐.

         

       잠깐만 기다려봐.

         

       그 역병의사가 마지막에 뭐라고 얘기했더라?

         

       ─ 그냥 가면 면이 안 서니 작별선물이라도 하나 놔둘까.

         

       순간 머릿속에 말도 안 되는 가설이 하나 지나갔다.

         

       여태까지 로테는 그 누구보다도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켜 왔다. 감염자와는 일절 접촉하지 않았고, 기숙사 방은 EMP 스크롤을 항시 틀고 있었기 때문에 모기에게 물렸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았다.

         

       설마 직접 저주를 건 건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감염 경로가 말도 안 되게 비과학적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은 반쯤 판타지. 술폰아미드를 대량 생산해낼 수 있는 과학력을 갖춘 시대임과 동시에, 정령술이나 원소마도와 같은 비상식적인 일들도 학문의 일부로서 편입되어있는 세계다.

         

       그걸 고려하면 핍진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역시, 까마귀 부리 가면을 쓰고 다니던 그 놈이 수작을 부린 것이 틀림없다.

         

         

       **

         

         

       로테가 흑사병에 걸린 지 열흘 정도가 지났을 무렵.

         

       유자나무에서 추출한 경구수액과 항생제를 지속적으로 투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철화 증상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병이 중기에서 말기로 향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 입술이 파리하게 떨린다. 안 그래도 난항을 겪고 있던 컨디션 그래프가 수직 하락했다. 하스펠트 교수 밑에서 일했을 시절에도 이 정도로 멘탈이 아작나지는 않았었다.

         

       로테는 이따금씩 기침을 했다. 그때마다 입술 옆으로 피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핫라인을 연결해 추가 의료품을 지원받을 수 있는지 여쭤봤다.

         

       돌아온 말은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항생제가, 떨어졌다고요?”

         

       [지금 물가가 불안정해서 그래! 북방 전선도 밀리고 있는 참이라 수요가 엄청 뛴 것 같아!]

         

       균이 사멸할 때까지 항생제를 지속적으로 투여하지 않으면 내성이 생기고 만다. 당장 아카데미에 남아 있는 의료품도 동이 날 지경이었으니 이를 악물고 시중에 풀린 페니실린의 가격을 물어봐야만 했다.

         

       [가격이 스무 배 이상 뛰었어. 한 번 투여에 금화 열 장은 들어가야 하나 봐.]

         

       “금화 열 장이요?”

         

       제국은 고급 물품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술과 자본을 갖추고 있는 나라다.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의약품이 이 정도로 비싼 가격을 보인다는 건 그만큼 국내 재정 상황이 개판이라는 소리와도 같았다.

         

       [그래. 아카데미에선 가격이 내려간 다음 구매해도 늦지 않을 거라고 기다리는 중이야. 이제 남은 건 상비약 정도밖에 없어.]

         

       나는 고개를 틀었다. 바로 옆에 죽어가는 친우가 있다.

         

       가격 흥정따위 할 시간이 없었다.

         

       “제가 살게요. 일주일치 분량 조달해 주세요.”

         

       [어, 비쌀 텐데….]

         

       “대신, 글리스턴 선생님. 선생님에게 부탁드릴 게 있어요.”

         

       [어? 어. 말해 보렴.]

         

       “저 돈 좀 꿔주실 수 있나요?”

         

       빚지기.

         

       내가 제일 싫어하고,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던 짓이다.

         

       채무는 사람을 무책임하게 만들고, 현실에 안주하게 만든다. 금전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아보자는 사람의 향상욕구를 틀어막아 진취적이지 못한 삶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요, 인간관계를 파탄내는 근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자존심이고 뭐고 없다. 

         

       […살리에르 백작이 좋아하시겠네. 좋은 친구를 뒀어.]

         

       긍정의 대답. 그 말이 있고 얼마 후 핫라인은 끊어졌다.

         

       아직 쉴 수는 없다. 의료 부문에서 로테를 도와줄 수 없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인맥과 처세술을 동원하여 룸메이트를 살려낼 것이다.

         

       나는 여러 방향으로 핫라인을 연결했다.

         

       평소 친했던 친구, 서먹서먹했던 급우. 

       

       존경하는 선생님과, 이름만 알고 지내던 선배들까지.

         

       손이 가는 대로 연락했다. 가오고 뭐고 다 버려가면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나?

         

       나는 절대자에게 기도하기엔 지나치게 오염된 인간이었지만, 논문 하나 잘못 심사했다는 이유로 날 여기로 떨궈버렸던 여신께서는 이런 병신에게도 기회를 주시려는 모양이었다.

         

       반나절이 되지 않아 아카데미 내부로 긴급 의료물자가 이송되었다는 핫라인을 받은 나는 겨우내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보다 입금이 많이 돼서 놀랐어. 금화 5백 장은 누구 명의로 빌린 거니?]

         

       “네?”

         

       빙의자에게도 연락해서 돈을 받아내긴 했지만 그가 그만한 액수를 준 건 아니었다.

         

       “…누구지?”

         

       어지간한 대귀족이 아닌 이상 그 정도의 거금을 서슴없이 내줄 사람은 대륙에 없을 텐데.

         

       나중에 갚을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파졌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감사 인사는 나중에 전하기로 하고 일단은 로테의 바이탈을 체크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였다.

         

       철화된 부분이 있으면 번지기 전에 칼로 긁어내고, 보건 선생님이 오면 비싼 항생제를 맞춰줬다.

         

       12일째 되던 날에는 선도부장인 샤디엘 선배가 나타나서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그녀가 부르는 찬송가는 아르가나 공작가 특유의 고유마도로써, 심신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이쯤하니 내 발병 여부에 관심을 가지는 의사들도 나타났다.

         

       “에테르 양은 흑사병에 안 걸리는 체질인 것 같습니다.”

         

       그 분들은 나중에 내 혈액을 여러 차례에 걸쳐서 제공받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물론 보수는 두둑하게 줘 가면서. 이 일이 끝나면 바로 채무를 갚아야 하는 몸이다 보니 흔쾌히 수락했다.

         

       그러고 보니 이 몸이 된 뒤로는 피를 흘리기는커녕 생채기 한 번 난 적이 없었지. 금안족의 육체능력이 뛰어나긴 한가 보다.

         

       그리고 마침내, 14일째 되던 날.

       

       로테가 철화 증상으로 가장 고통받고 있던 정오 무렵. 슬슬 나조차도 한계라고 느끼고 있었을 때의 일이었다.

         

       쾅!

         

       “얘들아! 치료제 가져왔어!”

         

       두 엘프가 병실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왔다.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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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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