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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

       시야 가득한 홍염이 모든 것을 불태우며 다가온다.

       

       광선. 놈이 발사한 것은 말그대로 순수한 ‘열’과 에너지로 형성된 파괴 광선이었다.

       

       지이이잉-!

       

       “현상거절, 개악!”

       

       응축된 에너지가 지척까지 다가와 광포한 힘을 선보이는 순간.

       

       이미 능력의 발동을 준비하던 나는 서둘러 진언을 내뱉었다.

       

       [ 지금, 내게 가해지는 모든 충격을 무효로 돌린다! ]

       

       치지지지직!

       

       섬뜩한 죽음의 칼날이 온몸을 난도질…… 할 것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방어는 성공이었다.

       

       귀가 먹먹한 소음이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었지만,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흘려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쿨럭!”

       

       진언 한 줄로 <페이즈 체인저>의 필살기를 막아내는 건 제법 쉽지 않은 일이었던 모양이다.

       

       곧장 온몸에 무리가 찾아왔다. 그 결과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기침에 거무죽죽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호오. 정말, 이토록 고귀하고 엄숙한 장면이라니. 그대는 다시 한번 나를 감탄하게 만드는구려.”

       

       자신의 필살기가 이토록 쉽게 틀어막힐 줄은 상상도 하지 않았던 걸까?

       

       <페이즈 체인저>는 경악한 얼굴로 당황에 찬 음성을 흘렸다.

       

       ‘빌어먹을. 이래서는…….’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절로 조급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나는 <공간왜곡>이나 <페이즈 체인저>와 싸우기 위해 이 비밀 연구소를 습격한 것이 아니다.

       

       ‘한유리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학생회장, <재창조의> 한유리. 일성에 의해 납치된 그 녀석을 찾기 위해서 온 것이다. 자연히 예정에 없던 전투는 극심한 내적 갈등을 야기했다.

       

       “터무니 없이 황당한 일이오. ‘현실조작’이 <흑점폭발> 마저 삼키다니!”

       

       감탄사를 흘린 적은 씁쓸히 웃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얼굴에 걸린 웃음은 더 없이 상쾌하게 보였다.

       

       “허나, 안타까운 것은 그대가 전투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오.”

       “눈썰미가 좋네. 나는 너와 생사결을 벌이려고 여기에 온 게 아니거든.”

       “후후! 아쉽게 되었소. 나 또한 사정이 있소. 본디 인간에게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법 아니겠소.”

       “…….”

       

       <페이즈 체인저> 루터스 블라드.

       

       다시 생각해도 녀석은 참 기이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전투 속에서 저런 여유를 품을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나에겐 시간이 없다. 진중하고 천천히 능력을 사용하며 일진일퇴를 반복할 수 없다는 소리였다.

       

       ‘거기다…… 시설이 불안정해. 이러다 곧 무너질 수도 있겠어.’

       

       <페이즈 체인저>가 소환한 ‘태양’ 덕분이었다. 존재만으로 주변의 모든 걸 모조리 불태우는 그것은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속전속결.’

       

       최대한 빠르게 녀석을 무력화하는 방법. 놈의 목숨을 취하고 완전한 승리는 내 능력으로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렇다면…….

       

       ‘<페이즈 체인저>의 능력을 일시적으로 봉인한다. 그정도면 ‘개연성’에 무리가 크지 않겠지.’

       

       고작 인간 하나다. 물론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우주의 천체에 영향력을 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부담이 적은 일일 것이다.

       

       “현상거절.”

       

       능력을 개방한 나는 더 없이 날카로운 눈으로 적을 응시했다. 녀석도 곧이어 공격이 날아들 것을 예상했던 건지, 두 팔을 뻗어 기수식을 취한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개악.”

       

       실타래 같은 기억이 서서히 풀려나간다. 그리고 풀려나간 실은 다시 한데 모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진 능력, <현상거절>의 단순한 진언으로 저 강대한 적을 뚫는 건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 <루터스 블라드>의 힘을 거절한다. ]

       [ 대상은 ‘10분’ 동안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 ]

       [ 대상은 ‘10분’ 동안 신체 능력이 극도로 저하된다. ]

       

       울컥!

       

       “쿨럭! 쿨럭! 빌어먹을!”

       

       <현상거절>의 힘은 진언이 디테일하고, 명확할 수록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물론…… 그 진언을 내 신체가 버틸 수 있어야 의미가 있겠지만 말이다.

       

       “이런! 능력이……!”

       

       <페이즈 체인저>의 태양이 저물어간다.

       

       나름대로 비유적인 표현이었으나, 거짓은 아니었다. 정말 그 말처럼 녀석의 환한 구체가 차츰 작아지더니, 이내 모습을 감춘 것이다.

       

       “……그대는.”

       

       방금 사용한 능력이 더 없이 황당한 걸까?

       

       얌전히 방어자세를 취하던 <페이즈 체인저>가 경악에 찬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그렇게 까지 하는 것이오?”

       “……뭐?”

       “그대는 지금 피를 흘리고 있지 않소.”

       “피?”

       

       그야 뻔한 일이다.

       

       <현상거절>은 그저 내가 원하는대로 현실을 조작하는 능력이 아니었다. 현실을 조작하기 위해선 리스크가 존재하며, 능력 발동의 개연성을 넘어서면 어마어마한 부하가 가해진다.

       

       ……거기다 진언을 강화시키는 ‘개악’은 기억을 소멸시킨다. 그렇다고 ‘공허’를 사용하기엔 각성한 <공간왜곡>에게 판을 깔아주는 일이었고.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저 그 생각 뿐이었다. 겨우 출혈 따위에 포기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고.

       

       슥슥.

       

       얼굴을 문지른 나는 마른 목소리를 내뱉었다.

       

       “겨우 피 따위가 문제냐.”

       “겨우 피…… 의 수준이 아닌데? 그대의 눈과 코, 입, 귀까지. 모두 출혈이 발생했다는 말이오!”

       “그거나 그거나.”

       “허어!”

       

       히어로 랭킹 2위, <페이즈 체인저>의 능력을 봉인하는 대가로 제법 싼 거래가 아닐까.

       

       저벅.

       

       천천히 걸음을 뗀다. 지금 여기서 대화를 하는 것도 결국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이 시설 깊은 곳에는 어떤 존재가, 어떤 적들이 기다릴지 알 수 없었다. 서둘러 내부 깊숙한 곳으로 진입할 필요가 있던 것이다.

       

       툭.

       

       “…….”

       

       쿠당탕!

       

       멍하게 선 <페이즈 체인저>의 곁을 지나친다. 동시에 녀석의 어깨를 슥 밀어내니, 녀석은 힘 없이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푸른 피 보다, 고귀한 자…….”

       

       나름대로 느끼는 것이 많았던 걸까.

       

       내 작은 행동에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처럼, <페이즈 체인저>는 멍하니 내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이잉.

       

       복도의 끝에 다다른다.

       

       삼엄한 보안을 자랑하는 시설의 문이 조용히 슥 열린다.

       

       “……뭐지?”

       

       다시 한번, 능력의 사용을 준비하던 나는 몸을 돌려 중얼거렸다.

       

       그런 내 시야 끝에는 화염이 이글거리는 복도의 중앙에 멍청히 앉은 <페이즈 체인저>의 모습이 걸려있었다.

       

       “가시오.”

       

       녀석의 손에는 작은 휴대용 단말이 들려있었다. 굳이 확인차 물어볼 필요도 없이, 저 물건을 이용해 굳게 닫혀있던 문을 개방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과거, 나와 동향인 <성녀>를 보았던 적이 있었소. 하지만 그대는 그 <성녀>보다도 가슴에 큰 무언가를 품고 살아가는 듯 보이오.”

       

       뻔뻔하게 낯 뜨거운 소리를 내뱉은 녀석은 아예 복도 중앙에 벌렁 드러누워버렸다.

       

       본래 열기에 저항력이 아주 강한 걸까? 주변에는 불길이 가득한데도 여유가 가득한 모양새다. 녀석에게 신경을 끈 나는 앞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붕괴가 임박한 이상 확인사살도 시간 낭비야.’

       

       한유리, 그 멍청한 녀석을 찾아야지. ‘랭커’라는 칭호를 갖고도 같은 가족들에게 납치당한 녀석을.

       

       멈칫!

       

       ‘빌어먹을.’

       

       하지만 문제가 몇가지 있었다. 전신에 느껴지는 통증이 매우 심각하게 다가온 것이다.

       

       피를 많이 흘린 까닭일까? 시야가 흐릿하고, 의식의 끈이 날아갈 것만 같다. 더군다나 일정 ‘선’을 넘은 능력 사용 덕분에 천천히 걷는 것도 힘이 들 지경이었다.

       

       “……그나마 다행히 문은 다 열려있네.”

       

       생각보다 <페이즈 체인저>의 시설 권한이 막강한 모양이다. 갈림길 없이 펼쳐진 새하얀 복도의 문은 모두 활짝 개방되어 있는 상태다.

       

       “히, 히이익!”

       “사, 살려주십시오! 우리는 그저 돈만 받고 일하는 말단 직원입니다!”

       

       그렇게 잠시간 걷고 있으니, 이내 커다란 연구실과 함께 사람 몇몇이 모습을 드러냈다.

       

       침입을 이미 알고 있었던 그들은 곧장 무릎을 꿇으며 목숨을 구걸했다. 애당초 이곳을 청소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던 나는 턱짓하며 말했다.

       

       “한유리. 어디에 있어?”

       “저, 저기! 연구실 안쪽입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는 연구실 뒤편을 가리키고 있었다.

       

       ‘수술실?’

       

       통유리로 이루어진 공간은 마치 대학병원 수술실과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 수술실의 중앙엔, 내가 이제껏 찾아다니던 한 사람이 정신을 잃은 채로 누워있었다.

       

       “……한유리.”

       

       스윽.

       

       비틀대는 걸음을 옮긴다. 아무런 초능력도 없는 연구실 직원들은 이제 내 관심사 밖이었다.

       

       의식이 없는 한유리를 챙기고, 송수아와 안젤리카의 도움을 받아 이 빌어먹을 지하를 떠나면 내 임무는 끝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연구실 직원들을 지나쳐, 수술실로 무거운 걸음을 옮기던 순간.

       

       “죽어!”

       “쏴라! 놈을 죽여!”

       

       탕! 타다당!

       

       ……아.

       

       평소라면 이들의 무장해제부터 시켰을 거다. 이번엔 마음이 급했다. 나는 그 실수를 순순히 인정하며 몸을 돌렸다.

       

       “총알에 초능력을 담았다면 결과가 달랐을 거다.”

       

       단검에 ‘태양’의 기운을 덧씌워 내 방어벽을 꿰뚫은 <페이즈 체인저>처럼.

       

       스윽.

       

       손을 든 나는 진언을 내뱉었다.

       

       퍼버벅!

       

       그러자 지하 연구실에는 삽시간에 머리 없는 시체가 십여 구 생겨났다.

       

       “…….”

       

       안타까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애당초 비열하게 뒤를 급습한 그들의 업보이니.

       

       끼익!

       

       수술실 문을 연다. 비척비척 내부로 진입한 나는 그제서야 한유리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창백한 얼굴, 말라붙은 입술. 그녀가 사라지고 한나절이 되었을 뿐이지만,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더 없이 위험한 상황처럼 보였다.

       

       죽음 물질을 투여한 거겠지.

       

       그저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녀석을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대단해! 설마하니 <페이즈 체인저>를 무력화시킬 줄이야!”

       

       날파리 한마리가 찾아왔다. 

       

       막타를 노린 걸까, 놈은 우습게도 아주 좋지 않은 타이밍에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구구구구궁……!

       

       땅이 흔들린다.

       

       지진? 아니다. 마치 거대한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는 것처럼, 지하 깊은 곳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우, 우와앗! 이 자식! 아군이 있었나?!”

       

       갑작스러운 이변에 김인만이 놀라 소리쳤다.

       

       예상이 가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애당초 ‘지진’이나 ‘지각 변동’ 따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카데미 안에 없다.

       

       그렇다면…….

       

       능력의 사용자를 ‘땅’ 따위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닌, ‘자연’을 다스리는 사람으로 봐야 옳겠지.

       

       “늦었잖아.”

       

       그제야 허탈함과 안도 섞인 웃음이 픽 튀어나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방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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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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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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