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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

       

       

       

       

       

       

       

       

       베드란 남작령.

       한때는 윤기가 흐르고 활기가 넘쳤던 땅은 20년 전, 괴인족과의 기나긴 전쟁으로 인해 점차 시들어가기 시작했고, 그 끝에 패전을 하며 방벽이 무너지고 모든 것들이 붕괴되고 말았었다.

       십여년이 흘러 신흥 귀족이 터로 삼고자 해 재건의 바람이 부는 듯 했으나, 이미 세월의 녹이 쓸어버린 땅은 복구보다 폐허가 어울렸고, 그렇게 20년 째 버려진 땅으로써 지면 아래로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다.

       

       피와 죽음으로 얼룩진 땅.

       백골이 지천에 깔려있는 땅.

       철저히 버림 받은 땅.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뭉개진 폐허의 그림자만 가득한, 벌레의 울음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그 땅엔 서슬퍼런 달빛만이 비추고 있었고, 그 달빛의 아래에서 한 인영(人影)이 외로운 걸음을 하고 있었다.

       

       후드를 뒤집어써 그 모습이 보이진 않지만, 비친 그림자만 보아도 위태로워 보였고, 죽음이 그 인영의 뒤에서 음흉한 입맛을 다시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따금씩 크게 휘청거리며 걷고, 또 걷는 인영.

       후드 망토 아래로 드러난 다리는 가녀리다 못 해 앙상하기 그지없었으며, 신발조차 신지 못 한 발은 상처와 얼룩이 가득했다.

       

       저벅… 저벅….

       

       절망, 그 지독한 것보다 더 깊은 것을 담은 듯한 걸음이 이어진다.

       폐허, 그 모든 것이 무너지고 바스라진 곳과 닮은 걸음이 이어진다.

       

       무언갈 찾아 해매는 건지.

       무언가로부터 쫓기고 있는 건지 모를 걸음.

       

       그 걸음이 이내, 멈추었다.

       후드 아래의 그림자가 고개를 들었다.

       달빛이 후드에 감춰져있던 얼굴의 하관을 비춘다.

       번영을 이루던 베드란 남작령처럼 화사했을 피부는 비 한방울 내리지 않은 황무지처럼 퍼석해져 있었고, 드높게 휘날리던 베드란 가의 붉은 깃발처럼 영롱한 붉은색이었을 입술은 버려진 땅에 버려진 시신들처럼 검붉게 질려있었다.

       

       산송장.

       

       버려진 땅을 찾은 인영을 지칭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였다.

       그리고 그 산송장이 다시금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베드란 남작가의 찢겨진 깃발을 짓밟으며, 한때는 그 깃발을 걸었을 무너진 저택으로.

       그렇게 걸어들어가는 인영이었다.

       

       마치 묫자리를 찾은 듯.

       

       그렇게.

       

       무너진 폐허의 속으로 들어간다.

       

       10월의 어느 날이었다.

       

       

       **

       

       

       아늑한 곳이었다.

       제게 썩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비루한 여생의 종지부를 찍기에 훌륭한 곳이었다.

       어리석고 이기적인 자의 말로(末路)로 부족함 없는 곳이었다.

       아니.

       과분한 곳이었다.

       이제야 있어야 할 곳에 도착한 듯한 느낌.

       

       인영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군가의 침실이었을 곳이었다.

       침대 위에 누워있는 어느 여인의 침실.

       붉은색일지, 검은색일지 모를 머리카락이 머리맡에 널브러져있고, 세월의 풍화로 삭아버린 백골은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평온해보여 부러웠다.

       자신은 죽어서도 누리지 못 할 영면과 안식을, 저 이름 모를 여인은 누리고 있는 듯 했으니까.

       저주의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 한 채, 감내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을 참아내다 기어코 모든 것을 놓아버린 자신과 다른 결말을 맞은 것 같아 부러웠다.

       

       이제 곧, 저 이름 모를 여인과 같이 이름 모를 이곳에서 이름 없이 생을 마감할 터였다.

       생의 끝자락에서 회한, 후회, 절망, 애환 따위를 느끼기엔 닳고 닳은 것이 너무도 많았다.

       깎이고 꺾인 것이 너무도 많아, 감정이란 게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혹한의 추위에 감각을 잃어버린 듯, 절망의 지옥에 감정을 잃어버린 것이다.

       텅빈 속에 무엇이 남았는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게워낸 것이 너무도 많아.

       

       토해낸 것이 너무도 많아.

       

       더 이상 아무것도 게워내고 토해낼 수 있는 게 없으리라 생각했다.

       

       “….”

       

       붕괴된 창가로 스며드는 스산한 달빛.

       그것을 맞으며, 제 손에 쥔 빵 한조각을 내려다보는 인영.

       텅 비어버린 속은 이 빵조각처럼 곰팡이가 가득 낀 더러운 것으로 채워넣어야 하리라.

       그리고 이 마지막 빵조각으로써 질기고 질겼던 생도 이제 놓으리라.

       메말라가다 못 해 피골이 상접한 몰골이 어떠할지는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흉측하겠지.

       흉물스럽겠지.

       

       그리고.

       

       참으로.

       

       잘 어울리겠지.

       

       히죽.

       

       웃은 인영이 마지막 빵조각을 입에 넣었다.

       

       으득, 으드득.

       

       퍼석해지다 못 해 딱딱해진 빵조각이 입 안에서 잘게 부서진다.

       생의 끝자락에서 마지막으로 먹는 곰팡이가 핀 빵조각.

       그 맛이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제야 죽음이란 사치를 부릴 수 있으리란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릇된 판단으로 소중한 이를 다치게 하고 목숨마저 빼앗은 자에겐 죽음은 이기적인 도피처이자, 치졸한 피난이니까.

       

       그렇기에 버티고 버텨왔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꺼져가는 육신은 고장나기 시작했고, 먹을 것도 떨어졌으며 죽음이란 사치를 부리려는 자신을 억제해줄 어떠한 도움도 장치도 없다.

       끈질기게 따라붙던 죽음에게 비루한 영혼을 바칠 때가 온 것이다.

       

       이제 전부 끝나는 것이다.

       그릇된 시작으로써 맞이한 파국도 전부.

       빵조각을 삼킨 인영이 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빛을 잃은 백발이 드러났고, 빛을 잃은 청안이 드러났다.

       

       그녀가 품에서 무언갈 꺼내들었다.

       

       피 묻은 손수건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소중한 이의 유품이었다.

       

       피를 토하면서도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하던 소중한 이의 손수건.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며 응원하던 소중한 이의 손수건.

       볼 때마다 그때의 절규가 차올라 이제는 토해낼 것이 없으리라 여긴 눈동자와 목구멍에 토해낼 것을 만드는 손수건을 꺼낸 것이다.

       

       그 마지막 위로와 응원이 헛되이 되지 않으려면 죽음으로부터 도망쳐야겠지만, 고장나기 시작한 육신은 미약한 의지마저 짓뭉개버린다.

       

       “흐윽….”

       

       피 묻은 손수건 위로 눈물이 떨어진다.

       메말랐던 손수건이 적셔진다.

       메말랐던 마음이 마지막으로 적셔진다.

       

       “흐으윽…….”

       

       잊어버렸던 악인들을 불러들이지 않았더라면.

       

       만인의 축제를 복수에 이용하려하지 않았더라면.

       

       주동자와 혼약을 맺을 리 없었을 것이고.

       

       혼약을 맺은지 100일째 되던 날, 소중한 이가 자신을 지키려다 죽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자신이 소중한 목숨을 빼앗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마지막으로 또 한번 사죄를 읊어야겠지만, 그날의 절규 이후로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주둥이는 멍청한 울음만 토해낼 뿐이었다.

       

       손수건을 품에 안았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말없이.

       

       울었다.

       

       “흐윽…. 흐으윽…….”

       

       마지막 남은 생명을 불태워, 소중한 이의 덧없는 희생을 기렸다.

       부디, 자신과 다른 곳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길 바랐다.

       저주 받은 이와 엮여, 길었어야 할 생명의 축복이 서둘러 끊겨버린 이가 자신과 다른 곳에서 못다한 축복을 누리고 있길 바랐다.

       

       이제 영원한 작별을 고할 시간이었다.

       

       사죄든, 인사든 그 어떠한 말이라도 건네고 싶어 미련한 주둥이를 때려보지만, 어떠한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통조차도.

       

       “아으… 흐윽….”

       

       퍽퍽.

       

       답답함에 주먹으로 가슴팍을 두들겨보지만, 고동을 일으켜야 할 충격은 미약하기 그지없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지막 이 순간만큼은,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었으면 했다.

       고집이 빚어낸 저주의 시작으로 인해 소중한 이들을 다치게 만드는 자의 마지막 순간은 외로워야 한다 생각해 모든 것을 버리고 야반도주를 했었다.

       

       아버지에게 편지 한장만 남겨둔 채로.

       

       자신의 곁에 서는 소중한 이들을 더 이상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괴인족장의 저주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고, 그것을 해결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음을 이제는 깨달았으니까.

       저주 받은 자는, 결코 사랑 받아서 안됨을 이제는 깨달았으니까.

       

       그래서 고독한 생을 마무리짓기 위해 홀로 가출을 행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군가 도와주었으면 했다.

       소중한 이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픈 인사와 사죄를 해내지 못 하는 아둔한 주둥이 때문에, 참으로 간사하고 간악한 바람이 든 것이다

       

       “흐아으… 으우….”

       

       생명이 다할 때까지 부던히 주둥이를 움직여보지만 나오는 것은 그 누구도 알아듣지 못 할 원시적인 웅얼거림 뿐.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웅얼거리는 인영이었다.

       

       위로와 응원을 저버려 미안하다는 사죄.

       이제는 영원한 안녕이라는 인사.

       

       그리고.

       

       그날의 절규를 만들어내고 도망쳐버린 놈을 지옥불구덩이로 데려가지 못 해 미안하다는 사죄.

       

       그것만큼은 꼭 전하고 싶었는데, 고장나버린 주둥이는 엄한 소리만 토해낸다. 

       

       점차 기력이 꺼져가는 것이 느껴져왔다.

       손수건을 품에 안은 손이 풀려가는 것이 느껴져왔다.

       정신이 아득히 멀어지는 것이 느껴져왔다.

       끝이 다가옴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끼릭.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더러운 영혼을 탐식하려던 사자(死者)가 찾아온 소리이리라 생각했다.

       

       제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죽음이 찾아온 소리이리라 생각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소리, 이리라 생각했다.

       

       두 눈을 떴다.

       

       눈물 속에 잠겨버린 시야가 일렁거려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함박미소가 지어졌다.

       

       죽음.

       

       비겁한 도망이라 생각해 버티고 버텨왔던 그것이 친히 방문해준 것이 기뻐 그리 웃었다.

       

       힘들고 또 힘들었다.

       

       이제는 쉬고 싶었다.

       

       고개를 틀어 친히 찾아와준 죽음을 바라보았다.

       

       점차 옅어지는 일렁임.

       

       점차 또렷해지는 시야.

       

       죽음을 뒤쫓는 사자(死者)답게 새까만 머리가 보인다.

       

       죽음을 뒤쫓는 사자(死者)답게 새빨간 눈동자가 보인다.

       

       그리고 그 사자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인영은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르, 르미앙……?”

       

       죽음의 파수꾼이란 사자의 목소리가.

       

       어째서.

       

       당황을 담고 있는지.

       

       어째서.

       

       낯이 익은지.

       

       모른 채로.

       

       그렇게.

       

       쓰러지고 마는 르미앙 윈터펠이었다.

       

       풀썩.

       

       혼약대전이 끝난지 6개월이 지난.

       

       11월의 북부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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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후피집물의 후회캐가 되었습니다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curious about what a female-oriented tragic romantic fantasy was like, so I skimmed through only the free chapters. And then… “…Ha.” I found myself transmigrated into one of the main male characters, destined for tears of regret, exhaustion, and obsession. So, the first thing that had to be done was… “I, Elden Raphelion, hereby declare my withdrawal from the competition for the betrothal of the Third Northern Duchess.” To escape this trag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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