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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

       파스텔은 멀리 떨어진 마족 용병단의 비공정을 미심쩍게 응시했다.

         

       “준기사급 인력을 갖춘 용병단이 아무것도 안 하고 정박장에서 대기만 한다?”

         

       게다가 인종 구성은 마침 암살과 테러를 시도하던 마족들과 동일하다.

         

       “완전 수상!”

       “그렇다니까. 저것들은 더 볼 것도 없어. 바로 때려잡아야 해.”

         

       레너드가 삐딱하게 짝다리를 짚은 자세로 대답했다.

         

       때려잡는다?

         

       파스텔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살짝 목이 타는 기분.

         

       “준기사급 용병이면 얼마나 대단한 거야?”

       “뭐?”

         

       레너드가 희한한 질문을 받았다는 듯이 쳐다봤다.

         

       “평민이 준기사급이면 남작위 정도는 대귀족 아래 들어가 공을 세우면 종신 작위로 얻어낼 수 있는 역량이지.”

       “남작?”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머릿속에서 신분제 피라미드가 슝~.

         

       남작, 자작, 백작, 후작…….

         

       잉.

         

       남작?

         

       신분제 피라미드를 상상하고 보니 갑자기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야 그럴 게 내가 후작인걸.

         

       아 맞아!

         

       남작 앞에 평민이 있었지.

         

       사실 사람 대부분은 평민이잖아.

         

       그러면, 준기사급은 평민 신분을 뛰어넘어 싸움 실력만으로 귀족이 될 수 있는 역량인 건가.

         

       신분제조차 막아설 수 없는 재능.

         

       이름하여 슈퍼 울트라 싸움꾼.

         

       허억.

         

       슈퍼 울트라 싸움꾼?

         

       슈퍼 울트라 권력자인 나와 견주고도 남아.

         

       어어, 생각해 보니 글자 수까지 똑같잖아?!

         

       으아아.

         

       글자 수까지 똑같대……!

         

       말도 안 돼……!

         

       나, 그런 용병대장과 싸우러 가야 하는 거야?

         

       허윽.

         

       파스텔은 창백하게 질린 채 손을 떨었다.

         

       “귀족이 될 수 있는 역량이라니!”

         

       안 싸우면 안 될까?

         

       레너드가 의아하게 바라봤다.

         

       “종신 작위잖아. 세습도 못 하고 가문도 없는 평민이 뭔 귀족이야. 그냥 출세한 평민이지.”

         

       오잉.

         

       파스텔은 눈을 동그랗게 하고 올려봤다.

         

       “그럼 넌 이길 수 있어?”

         

       너, 준기사급?

         

       “뭐?”

         

       레너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더니 인상을 더 구기며 주먹을 꽉 쥐었다. 나이답지 않게 타고난 체구와 골격은 강한 손아귀 힘을 만들었다.

         

       “내가 못 이길 거 같냐? 몇 년만 지나면 저런 운 좋은 평민쯤 맨주먹으로도 이길 수 있어.”

         

       주먹이 허공을 때렸다.

         

       몇 년만 지나면?

         

       헤에.

         

       못 이기는구나.

         

       파스텔은 딱히 실망하지 않았다.

         

       기대도 안 했기 때문이다.

         

       대신 마검을 꼭 끌어안았다.

         

       악마님 악마님!

         

       역시 제겐 악마님밖에 없어요.

         

       동급생은 뭐랄까, 마음 놓고 의지하긴 곤란해요. 역으로 내가 챙겨줘야 할 거 같은 기분?

         

       곤란곤란해.

         

       챙겨주는 건 친구로서 매우 즐겁지만, 업무 관계로는 쪼끔 떨떠름하달까~.

         

       전 욕심쟁이라 이게 친분 관계인 건 알고 있어도 가끔은 업무 관계로도 유능했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있거든요!

         

       바로 지금처럼!

         

       무서워하는 나 대신 외견은 든든한 레너드가 싸워줬으면 좋겠는데 전혀 못 한다니 유감.

         

       응응.

         

       “야! 그건 무슨 표정이냐?!”

         

       레너드가 자존심 상한 듯이 얼굴을 붉혔다.

         

       “아무것도! 괜찮아 레너드! 넌 애들을 잘 통솔해 주고 있으니까! 사람마다 적성이 있는 거지! 혹시 누가 널 괴롭히면 날 불러! 내가 친구친구로서 도와줄게!”

         

       파스텔은 레너드보다 확연히 작은 주먹으로 허공을 후려쳤다. 공기가 터지고 작은 파열음이 울렸다.

         

       으쌰으쌰.

         

       “뭐? 뭐?!”

         

       레너드가 얼굴을 왈칵 구겼다. 레너드의 주먹이 꽉 쥐어지고 옅게 흔들렸다.

         

       그리곤 굴욕감을 느낀 듯이 성질을 내며 언어를 쏟아냈다.

         

       네가 언제까지 이길 거 같냐며 착각하지 말라느니. 쥐방울만 한 게 싸움 좀 잘한다고 나대지 말라느니.

         

       왈왈 짹짹.

         

       우와왓.

         

       거친 반응!

         

       나 말실수했나 봐!

         

       파스텔은 미안해져서 양손을 허둥댔다.

         

       “레너드! 레너드! 나보다 약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나는 초-천재니까!”

         

       스스로를 척 가리켰다.

         

       초-천재.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

         

       윙크하며 화이팅 자세를 취했다.

         

       “아자아자 화이팅! 할 수 있다, 레너드!”

       “놀리는 거냐?!”

         

       레너드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우왓.

         

       위로해주니 더 상태가 안 좋아졌어.

         

       이게 열등감이라는 걸까?

         

       인기인으로서 자주 겪은 일이었다.

         

       이럴 땐 역시…….

         

       무시가 서로에게 좋지.

         

       파스텔은 힘내라는 의미로 엄지를 치켜 세워주곤 마족 비공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옆에서 뭐라뭐라 하는 레너드를 무시하며 레너드가 알려준 내용을 떠올렸다.

         

       준기사급 용병이라니. 그것도 온실 속에서 자란 귀족이 아니라 평민으로서 밑바닥부터 올라온 마족.

         

       으아.

         

       좀 많이 무서우니까…….

         

       혐의만 확정 짓고 전투와 체포는 기사단에 넘겨야지!

         

       헤헤.

         

       파스텔은 자신의 모습을 살펴봤다.

         

       분홍 머리카락 분홍 눈동자에 하얀 옷차림.

         

       누가 봐도 파스텔 러브 크래프트.

         

       내가 앞장서면 경계심이 확 늘어나고 전투까지 벌어질 가능성이 높겠지?

         

       “레너드 네가 앞장서! 난 뒤에서 살펴볼게!”

       “내 말은 듣고 있지도 않지?!”

       “응!”

         

       파스텔은 발랄하게 비공정을 가리켰다.

         

       “가라, 레너드! 아닌 척 접근해 혐의를 확인하는 거야! 네 연기 실력을 보여줘!”

         

       레너드가 더 흥분했지만 금방 진정됐다. 오히려 다른 방법을 제안해 오기까지 했다.

         

       “굳이 혐의를 확인할 필요가 어딨냐. 준기사급인 평민이 용병 생활을 전전하며 지내는 것 자체가 불손한 의도가 있는 거지.”

       “그런가?”

         

       이게 귀족다운 판단?

         

       파스텔은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혐의 확인부터! 정말 선량한 마족들일지도 모르잖아!”

         

       레너드는 혀를 찼지만 별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대신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조사해 보니 저 마족들은 계속 비공정에만 있다가 엊그제부터 근처 식당에서 단체 회식을 했다고 해.”

       “엊그제부터?”

       “비공정에만 있으니 답답했겠지. 아니면 토너먼트 행사가 곧이니 테러 작전 전에 의기투합을 하는 거거나.”

         

       레너드가 뒤편에서 대기 중인 사병들과 먼 곳의 마족 비공정을 번갈아 봤다.

         

       “혐의만 확인할 거면 괜히 비공정에 접근해 경계심을 높일 게 아니라, 저놈들이 몰려간 식당을 치안대가 마침 조사하도록 하는 게 어떻냐. 치안대는 저놈들 말고 식당만 조사하는 거야. 탈세든 뭐든 이유를 대고.”

       “앗! 그거 좋은 생각!”

         

       파스텔은 분홍 눈동자를 반짝였다.

         

       “우연히 공권력을 마주치게 만들어서 얼마나 긴장하는지 표정을 확인한다는 거지? 조사 대상은 본인들이 아니고 장소도 식당이니 전투 가능성도 덜할 거고!”

         

       레너드가 씩 웃었다.

         

       “필기 수석에 연구 수석까지 먹은 크래프트 각하셔서 그런지 머리는 똑똑하네.”

       “당연한 말씀!”

         

       파스텔은 양팔을 번쩍 들었다.

         

       “좋아! 당장 시작해, 레너드!”

         

       출발출발!

         

       레너드가 멈칫했다.

         

       “뭐냐. 이것도 내가 해야 하는 거냐?”

         

       파스텔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네가 제안했잖아.

         

       “아니 씨이!”

         

         

         

       #

         

         

         

       마족들의 식당 방문 소식을 전해 듣자 파스텔은 마석 나이프 위에 탑승했다.

         

       “항상 노는 것처럼 보여도~.”

         

       작은 나이프에 요령껏 발을 얹고 정신을 집중하니 몸이 떠올랐다.

         

       “항상 일을 하는 나~.”

         

       그대로 낮게 날아 정박장 비공정의 뒤편으로 이동했다. 비공정 그림자가 분홍색 소녀를 덮었다. 정박장을 거니는 사람들의 눈엔 잘 띄지 않는 비공정 뒤편 사각지대였다.

         

       사람 시선을 주의하며 비공정들의 그림자와 그림자를 넘나들어 비행했다. 마족 비공정이 지척까지 가까워졌다.

         

       레너드에겐 말 안 했지만 마족들이 회식하느라 빠져나간 비공정을 몰래 수색해 볼 생각이었다.

         

       식당에 간접적으로 공권력을 동원해 마족 용병단의 반응을 본다고 했지만 그것만 하기엔 다소 미적지근한 조치였다. 이건 엄연히 암살과 테러가 엮인 사태니까.

         

       파스텔은 살짝 경직된 표정으로 팔을 문질렀다.

         

       어차피 다 떠났어.

         

       무서운 마족들이랑 싸울 일 없어.

         

       팔에 올라오던 소름이 가셨다.

         

       “악마님, 들어가 볼게요.”

         

       악마가 담담하게 말해왔다.

         

       『저번에도 비공정에 잠입해 봤으니 이번엔 더 잘할 거다. 긴장을 적절히 풀어라.』

       “앗, 맞아요.”

         

       파스텔은 반색했다.

         

       생각해 보니 나, 경력 있는 신입이었어!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남의 비공정에 멋대로 침입하긴 이미 해봤으니 이젠 더 잘할 수 있었다!

         

       나이프를 뽈뽈 띄웠다.

         

       몸이 동동 떠올랐다.

         

       적정 높이에 오르자 파스텔은 비공정 난간 너머로 갑판을 조심스럽게 힐끔 살펴봤다.

         

       아무도 없음.

         

       자신감이 뿜뿜 올라왔다.

         

       파스텔은 쏜살같이 침입했다. 갑판을 질주하고 실내 통로를 소리 없이 달렸다.

         

       증거증거.

         

       혐의혐의.

         

       방과 방을 살피며 이동했다.

         

       모든 마족이 떠난 건 아닌지 실내엔 지키는 사람이 두 명 있었지만 괜찮았다. 회식에서 배제된 게 짜증 나는지 식당 의자에 앉아 술을 마시며 잡담을 했기 때문이다.

         

       복도 벽에 숨어 슬쩍 듣자 하니 둘뿐이라는 대화를 하길래 안심하고 몰래 지나쳐 더 깊은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파스텔은 선장실과 조타실을 수색하고 작전실인 듯한 넓은 공간을 살펴봤다.

         

       증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다가 작전실의 벽난로에서 수북한 잿더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잉.

         

       굉장히 의심스러운 잿더미.

         

       살펴보니 구석에 타다 남은 종이 쪼가리를 발견했다. 문서들이 통째로 불탄 모양이었다.

         

       으아아.

         

       “악마님 전부 탔는데요? 여기가 테러범 소굴이라면 이거 증거 인멸 아니에요?”

       『작전 전에 증거 인멸을 해놓은 건가. 증거는 없어도 일단 체포해 조사해 볼 혐의는 충분하다.』

       “좀만 더 살펴보죠.”

         

       파스텔은 다른 곳들도 돌아다녔다. 도중에 식당도 지나쳤는데 술 마시던 마족 둘은 아예 곯아떨어져서 다시 안심할 수 있었다.

         

       다만 그것과 별개로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건 여전해서 수상한 무언가는 웬 일자 통로 끝의 창고를 발견하고서야 찾을 수 있었다.

         

       파스텔은 철제문으로 잠긴 창고를 바라봤다. 여태 나무 문이 대부분이었는데 철로 된 문이었다.

         

       허억.

         

       굉장히 들어가고 싶은 비주얼.

         

       『뭔가 있다면 여기군.』

       “그렇죠?”

         

       헤헤.

         

       파스텔은 철문을 만지작댔다.

         

       튼튼하네.

         

       뭘 숨기려는 진 몰라도 중요성만큼은 팍팍 느껴졌다.

         

       하지만하지만~.

         

       파스텔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선장실에서 훔쳐 온 열쇠 뭉치가 반짝였다.

         

       따라란~!

         

       열쇠 뭉치!

         

       무엇이든 풀 수 있어요!

         

       열쇠 여러 개를 사용해 시도하자 철문이 열렸다. 조용한 통로에 삐걱이는 철문 소리가 났다.

         

       오예오예.

         

       들어갑니다~!

         

       이 나쁜 사람들인지 아닌지 가려보아요~!

         

       『흠?』

         

       순간 악마가 멈칫했다. 미묘한 목소리라 파스텔도 덩달아 움직임을 멈췄다.

         

       악마님?

         

       『기다려 봐라. 미세한 발소리가 들리는군. 자연의 이치가 순응하고 세상이 동조하는 인기척.』

         

       돌아본 채 기다리자 파스텔은 통로에서 걸어오는 용병대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술을 들이켜던 용병대장이 술병을 대충 던져 버렸다. 그리고 허리춤의 한손검과 권총을 뽑으며 흉흉한 눈빛을 보냈다.

         

       “술맛이 안 좋아 돌아왔더니 마침 증오스러운 크래프트가 제 발로 와주셨어. 크흐, 마왕님 묘비에 바칠 머리 하나가 더 늘었네.”

         

       으아아.

         

       파스텔은 입이 벌어졌다.

         

       들켰어!

         

       들켰어어!

         

       허둥지둥 도망칠 곳을 찾았다. 일자 통로여서 마땅한 탈출구가 없었다.

         

       우와악!

         

       대놓고 이상한 일자 통로!

         

       누가 봐도 함정인 장소!

         

       파스텔은 혼비백산하다가 용병대장이 다가오자 몸을 돌렸다.

         

       열린 철문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철문이 소음을 내며 닫혔다. 떨리는 손으로 황급히 문을 걸어 잠갔다.

         

       으아아.

         

       파스텔은 창백한 안색으로 뒷걸음질 쳤다.

         

       “저분! 저 사람! 준기사급 맞죠?! 맞는 거죠?!”

       『그건-』

         

       악마의 목소리를 끊듯 이변이 일어났다.

         

       몇 차례의 검격이 철문을 갈랐다. 평범한 한손검이 철문을 관통하고 부드럽게 썰어내며 조각냈다.

         

       철문이 걷어차이고 쓰러졌다.

         

       용병대장이 소녀를 노려봤다.

         

       『준기사급이 맞군.』

         

       우와악!

         

       담담한 목소리로 사형 선고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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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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