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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

     

    내의원 1휴게실은 널찍하다.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면적이지만 대부분은 1황녀파 치유사가 쓰고 있었다.

     

    “어이, 오늘은 내근이야? 3황녀파 자원봉사에 차출되지 않았어?”

     

    어느 직장이 그렇듯 치유사들은 음료를 마시거나 연초를 피우며 잡담을 떨었다.

     

    “어. 고트베르크 선생님이 내근이시거든.”

     

    “오랜만이네. 그쪽은 좀 어때?”

     

    “생각보다 괜찮던데. 의외로 자원봉사도 꽤 보람 있더라고. 선생님도 재밌고.”

     

    치유사들이 커피를 들고 테이블에 앉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의외구만. 요즘 그쪽 사무실에 물건 엄청 들어오더라고. 얼마 전엔 드워프 대장장이까지 오던데?”

     

    “안 그래도 이것저것 사모으시는데 요즘은 특이하게 더 많긴 해.”

     

    “위험하진 않나? 민간요법은 절대 쓰지 말라고 주교께서 항상 그러시잖어.”

     

    “직접 보니까 생각이 바뀌더라고. 효과가 꽤 좋아. 휴고 치유사도 얼마 전에 그쪽으로 넘어갔고.”

     

    휴고의 이름에 치유사가 손가락을 튕겼다.

     

    “휴고 알지. 내의원에 딸을 계속 데려왔잖아. 상태가 안 좋아 보여. 금방이겠어.”

     

    “그러게. 어린데 안 됐지. 오늘도 고트베르크 선생님 사무실로 가던데.”

     

    그 말을 들은 치유사가 잠깐 상념에 빠지더니 심각한 태도로 변했다.

     

    “…잠깐. 설마 진짜 흑마술을 쓰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흑마술이라니?”

     

    “휴고도 저주에 오염됐잖나. 이상한 재료도 잔뜩 모으고 좀 수상하지 않나? 어차피 죽을 애니까 제물로 바친다던가.”

     

    “에이, 주치의나 되는 분이 설마 그러시겠나. 재료야 다 쓸 데가 있어서…”

     

    “고트베르크가 뭘 하고 있다고?”

     

    두 치유사가 엄숙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어느새 알베리치가 다가와 있었다.

     

    “주, 주교님.”

     

    “고트베르크가 흑마술을 쓴다 이 말인가?”

     

    알베리치가 치유사들을 추궁했다. 곧 그가 그의 사무실에 들어가는 수상한 재료들에 대해 알게 됐다.

     

    이게 다 무엇인가. 흑마술 재단에서나 쓸 법한 기묘한 물건들이 아닌가. 대체 내의원에서 미스릴 단검이 왜 필요한가.

     

    “본색을 드러냈군. 전부 따라와라!”

     

    알베리치가 파벌 치유사를 소집했다. 그들을 이끌고 라스의 사무실을 향해 성큼성큼 쳐들어간다.

     

    곧 그는 사무실 앞을 태산처럼 지키고 선 호위기사와 마주하게 됐다.

     

    “고트베르크에게 용건이 있다. 비켜라.”

     

    번뜩, 타냐가 눈을 떴다. 마치 야수같은 위압감에 알베리치가 한 발짝 물러섰다.

     

    “뭐, 뭐냐. 안에 고트베르크가 있나! 뭘 하고 있는지 당장 확인해야겠다!”

     

    “물러서시오. 아무도 들어갈 수 없소.”

     

    “뭐라고? 내의원에서 주치의가 사무실 밖으로 나오지도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업무 태만이다.”

     

    “선생님은 바쁘시오. 나중에 찾아오시오.”

     

    “무슨 짓을 하느라 그리 바쁘냐고 묻고 있지 않나! 어떤 꿍꿍이냐!”

     

    실랑이가 이어질 즈음, 사무실 문이 살짝 열렸다.

     

    안에서 나온 휴고를 보고 알베리치가 잠시 말을 아꼈다.

     

    그의 덩치도 덩치였지만, 표정이 비장했다.

     

    마치 잃을 것이 없는 자가 가지는 눈빛. 잘못 건드렸다간 당장에라도 폭발할 기세다.

     

    하지만 알베리치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가 역정을 내며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 그 해주사로군. 그렇게 문을 막고 있으면 못 지나갈 줄 아는가? 여기가 내의원인지 깡패 소굴인지 알 수가 없군. 고트베르크 파벌 치유사의 수준이 이 정도인가!”

     

    알베리치가 휴고를 손가락질하며 도발했다.

     

    그때 모두가 상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휴고가 쿵,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알베리치를 향해 절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선생님께서 딸을 치료하고 계십니다!!”

     

    휴고가 곰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박력에 알베리치도 순간 할 말을 잊고 한 발짝 물러났다.

     

    “하나뿐인 딸이 많이 아픕니다. 제게 희망은 고트베르크 선생님뿐입니다.”

     

    휴고는 사무실 문 앞을 철벽처럼 막고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방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그것이 휴고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라스가 휴고를 고용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이 자리를 깽판 놓으면 자신 때문에 라스가 알베리치와 본격적으로 충돌하게 되고, 곤란해질 것은 뻔했다.

     

    은인에게는 못 할 짓이다.

     

    당장 알베리치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휴고는 머리를 땅바닥에 있는 힘껏 짓눌렀다.

     

    그 광경을 지켜본 치유사들이 수군거렸다.

     

    “검은 손 휴고잖아.”

    “딸을 내의원에 자주 데려왔었지. 아파서 그랬었군.”

    “고트베르크 주치의가 치유 중이라고?”

     

    알베리치는 휴고에게 기세가 밀렸지만 의심을 치우지 않았다. 애초에 치울 이유도 없었다.

     

    “치유 중이라면 못 보여줄 이유가 뭔가. 안에서 흑마술 의식이라도 진행해서 그런 게 아닌가.”

     

    “아닙니다.”

     

    “아니면 보여달란 말일세.”

     

    “그럴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집중이 필요하십니다.”

     

    알베리치가 얼굴을 붉히다가 결국 발로 바닥을 찍었다.

     

    “믿을 수 없다. 강제로라도 진입하겠다!”

     

    알베리치가 데려온 기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휴고를 일으키려 다가가려는 그들이었으나 눈 깜빡한 순간.

     

    스릉, 목에 검날이 드리워졌다. 타냐였다.

     

    “그 이상 다가오겠다면 목숨을 거시오.”

     

    “이, 이런 미친…!”

     

    설마 진짜 무기를 꺼내드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알베리치가 당황했다.

     

    1분, 5분, 긴장된 대치 상황이 이어진다.

     

    서로 누가 먼저 검을 휘두르는가.

     

    상대 기사가 검집으로 손을 뻗는 걸 확인한 타냐가 검기를 불어넣는 순간이었다.

     

    “무슨 손님이 이렇게 많이 와 계셔?”

     

    철컥, 사무실 문이 열리고 사탕을 입에 문 라스가 밖으로 나왔다.

     

    “고트베르크!”

     

    알베리치가 앞으로 나섰다. 대치 상태가 풀어지고 휴고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뭡니까?”

     

    “자네가 흑마술 재료를 사 모았다는 증언을 받았다. 안에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었나!”

     

    “그야 치료죠. 내의원에서 무슨 다른 일을 하겠습니까?”

     

    “믿을 수 없다. 의식용 칼로 소녀를 제물로 바쳐 사악한 짓을 한 게 아닌가!”

     

    “압빠아.”

     

    청량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알베리치의 역정을 끊었다.

     

    클로에가 잠이 덜 깨 눈을 비비는 에리를 품에 안고 밖으로 나왔다.

     

    “에리!”

     

    휴고가 바로 에리를 안아 들었다. 그의 두꺼운 팔뚝이 편안했는지 에리는 방실방실 웃기 시작했다.

     

    “선생님, 에리는 괜찮습니까?!”

     

    “그래. 성공적으로 끝났어. 클로에랑 치유 주문도 빵빵하게 넣어놔서 기운도 팔팔해.”

     

    “하하, 정말로… 에리, 이제 목 안 아프니?”

     

    “웅!”

     

    휴고가 씩씩하게 대답하는 에리를 품에 꼭 안았다. 그 모습을 본 치유사들이 입을 떡 벌렸다.

     

    “분명 아침까지 다 죽어가며 골골대고 있지 않았어?”

    “그래. 심지어 몇 년 동안 저랬는데.”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알베리치도 그 모습을 보니 할 말이 없었다. 아이의 상태도 그렇고, 휴고의 태도도 도무지 연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가 한껏 기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고트베르크, 어떻게 치유를 했나.”

     

    “에이, 주교님은 영업비밀을 아무에게나 막 알려주고 그러십니까?”

     

    “여기는 내의원이다. 행여 결격사유가 있다면 문제가…”

     

    “또 생트집 잡으시게요? 이번엔 제대로 증거품 첨부해서 청문회 여세요. 안 그러면 헤이케 황녀님한테.”

     

    라스가 엄지를 목 근처에서 흔들었다.

    너 그러다가 진짜 짤린다는 경고였다.

     

    라스가 소속된 3황녀파가 자신의 주군과 동맹인 이상 알베리치도 전처럼 마구 권력을 휘두를 순 없었다.

     

    이제 라스를 청문회에 앉히려면 자신도 주치의 직과 치유사 생명을 걸어야 한다.

     

    오늘같이 현장을 잡는 게 제일이다. 증인으로 쓸 치유사도 잔뜩 데려왔건만.

     

    “마침 잔뜩 모인 김에 치유사들에게 전파할 공지사항이 있어.”

     

    라스가 알베리치의 뒤에 우르르 몰려있는 치유사들을 향해 외쳤다.

     

    “요즘 나랑 봉사활동 나가는 친구들 손.”

     

    열 명 정도의 치유사가 손을 든다.

     

    “다른 치유사들은 저 친구들에게 경험담 들어보고, 마음에 들면 내 사무실로 이직해. 이 문 안쪽이 궁금하면 언제든 활짝 열어줄 테니까.”

     

    “고트베르크! 지금 대놓고 우리 치유사를 빼가겠다는 건가!”

     

    “원래 내의원이 그런 곳 아닙니까. 아, 주교님께는 추가 전달 사항 있어요.”

     

    라스가 툭툭, 알베리치의 어깨를 두드렸다.

     

    “주교님은 이직 오셔도 안에 안 들여보내 줄 겁니다.”

     

    “이익!”

     

    알베리치는 잔뜩 성을 내며 돌아갔다.

     

    치유사들이 라스의 공개 모집 소식에 수군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패잔병처럼 돌아가는 그들을 지켜보는 라스에게 휴고가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정말, 평생 보은하겠습니다…!”

     

    “앞으로 일이나 잘 해보자고.”

     

    라스가 먹던 사탕을 마저 깨물어 삼키고는 휴고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 제가 손이 좀 이래서.”

     

    “그럼 어깨로 하지 뭐.”

     

    휴고는 라스와 어깨를 가볍게 부딪쳤다.

     

     

     

    ***

     

     

     

    첫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농양과 편도 뒤쪽에 박혀있던 바늘을 제거한 후 봉합, 페니실린 처방 후 치유주문으로 체력을 회복시켜 마무리했다.

     

    치유주문은 솔직히 조금 쓰기 껄끄럽다. 마치 다시 전장에 끌려가 마족과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 착각이 인다.

     

    그래도 환자가 소아기도 해서 필요하다고 판단해 클로에와 함께 처방했다.

     

    한 번의 경험이었지만 경험치가 상당히 올랐다.

     

    가능하면 아셀라를 쨀 때까지 B로는 만들고 싶다.

     

    “수술 과정도 좋았고 에리도 건강하지만 합병증이 있나 경과는 봐야 해. 당분간은 유심히 돌봐줘.”

     

    “알겠습니다.”

     

    휴고는 벌써 진중하게 업무를 진행할 태도가 되어있었다.

     

    “그럼 휴고, 일을 해줘야겠어.”

     

    “시켜만 주십시오.”

     

    “우선 클로에에게 의학 지식을 가르쳐달라고 해. 자네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건 이게 뭔지 파악하는 일이야.”

     

    나는 휴고 앞에 몇 개의 수정구를 띄웠다.

     

    우선 아셀라의 복부를 촬영한 엑스레이 사진이다.

     

    “음… 갈비뼈 밑입니까?”

     

    “정답. 그리고 이쪽은 해주되기 전 사룡의 머리를 찍은 사진. 여기는 중급 저주로 움직이는 언데드.”

     

    “그렇군요.”

     

    “자네는 이 사진들을 보고 첫 사진에 걸려있는 저주가 뭔지, 어떤 레벨인지 파악해야 해. 최종적으로는 해주해야 하고.”

     

    “저주 연구로군요. 자신 있습니다.”

     

    휴고는 최고의 흑마술사가 될 인재였으니 정답을 찾아올 거다.

     

    “이 저주는 누구에게 걸려있습니까?”

     

    “그건 때가 되면 알려줄게.”

     

    나는 해주대상이 아셀라라고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그녀를 수술한다는 계획은 구체화되기 전까지는 당분간 비밀이다.

     

    옥체를 칼로 찢겠다는 계획이 행여나 본인 귀에 들어갔다간 나는 그 즉시 처형당할 테니까.

     

    “선생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뭔데?”

     

    엑스레이 사진을 살펴보던 휴고가 진지한 태도로 질문했다.

     

    “혹시 이 사람은 악령에 씌였거나 다른 영혼을 봉인당했습니까?”

     

    벌써 거기까지 파악하다니.

    유능하다.

     

    “자세히 얘기해 봐.”

     

    나는 흥미가 생겨 휴고의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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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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