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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

       정원사 가스통은 ‘토마토 온실’의 관리자였다.

       토마토 온실은 폐쇄된 검은 궁전의 북서쪽에 있는 정원 구역을 가리키는 말로, 샤를로티아의 섭정 관저가 있는 곳이었다. 토마토 온실의 관리자라는 말은 샤를로티아 최고의 정원사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가스통이 왕실 정원사로 불리지 못하는 이유는 샤를로티아에 왕실이 없기 때문이었다.

       왕실 사람들은 몰살당했고, 왕궁은 폐쇄되었고, 여왕은 실종되었다.

         

       가스통은 실종된 여왕 샤를로트가 돌아오는 날에는 언제든지 왕실 정원사로 불려갈 사람 1순위였다. 그가 섭정 관저에 들어설 때만 해도 그는 언젠가 왕실 정원사가 되어있는 자신을 상상하곤 했다.

         

       그러나 그가 10살이 되기 전에 실종되었다던 여왕은 그의 나이가 60이 넘어가도록 그 행적조차 찾지 못했다. 샤를로트 여왕은 이제 이 나라의 이름이 왜 ‘샤를로티아’인가를 설명할 때나 나오는 동화 속 인물로 여겨졌다.

         

       여왕의 치세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 손에 자란 젊은이들 사이에서 슬슬 섭정 가문을 왕가로 인정하는 게 낫지 않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그들은 섭정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사실 자체가 나라의 위신을 깎아 먹는다고 생각했다.

         

       가스통은 술자리에서 그런 철없는 소리를 토하는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러나 막연히 ‘여왕님 때가 좋았었지’라고 지껄이는 늙은이처럼 보일까 봐 화내는 것은 자제했다.

         

       멍청한 놈들.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을 나라의 주인으로 삼는 것이 분열되는 나라를 하나로 묶어주는 효과가 있다는 걸 모르나. 교황청과 교황령을 보라고.

         

       가스통은 토마토 온실의 관리자 자리를 30년 넘게 지켜오고 있었다.

       30년이라는 세월은 흙을 파고 가지를 치는 일을 자신의 천직으로 여기던 사람에게도 정치적 식견이 생기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특히 그처럼 샤를로티아 최고 지도자의 울고 웃는 모습을 덤불 너머에서 지켜볼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가스통은 처음 섭정 관저로 들어왔을 때가 생각났다.

       그가 사는 나라의 지도자는 그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힘이 없는 인물이었다.

         

       항상 귀족원의 대귀족들의 눈치를 살피고, 귀족 파벌 간의 분쟁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매는 일이(그리고 양 파벌에 그렇게 보이도록 연기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보다 더 힘이 없어서, 쩔쩔매는 연기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그의 손자인 이번 섭정은 취임한 지 얼마 안 됐으나 이전보다 더 형편없을 거라고 정원사는 확신했다.

         

       왜냐면 이전 섭정은 그래도 자기 아내에겐 큰소리치고 정원의 사냥개는 걷어찰 수 있는 인물이었으나, 이번 섭정은 자기 어머니한테 꼼짝 못 하고 정원의 사냥개한테 물리기나 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만 봐도 그는 제 아버지보다 못한 사람임이 확실했다.

       그건 그를 아기 때부터 30년이나 봐온 가스통이 아니어도 다들 느끼고 있었다.

         

       가스통은 루즈의 메트로폴 호텔 정원이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며칠 전에 들었다.

       그곳은 그가 조경작업을 완료했을 때, 당시의 섭정 부인이 극찬했던 곳으로, 그가 매년 한 번씩 들러서 형태를 다듬어주고 있었다.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당연히 자신이 호출될 줄 알았다.

       당시 섭정의 부인이었던 여인은 지금 섭정의 어머니가 되었고, 현재 섭정은 자기 어머니 말이라면 꼼짝 못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섭정 관저에서 그의 출장에 대한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

       현 섭정이 드디어 어머니에 대한 반항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가 유력한 귀족들이 주로 머무르는 호텔의 정원을 내버려 둠으로써 안 먹어도 될 욕을 굳이 먹을 만큼 멍청한 사내도 아니었다.

         

       루즈로 가게 해달라는 정원사의 요청을 들은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질문을 회피했다.

       대신 휴가를 떠나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해왔다.

         

       가스통은 경험적으로 정치적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30년 전의 순수한 장인 정신으로 무장했던 정원사라면 그러건 말건 자기 장비가 담긴 트렁크를 손에 들고 루즈 행 비행선을 타러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그는 젊은 시절의 그가 아니었다.

         

       첫째로 그는 늙어서 장비가 모두 담긴 트렁크를 혼자서 들 힘이 없었다.

       둘째로 정치적 다툼에는 절대 끼어들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걸 지난 세월 동안 경험했다.

         

       정치가들은 식탁을 장식한 꽃의 괜한 꽃말 하나를, 배경으로 둔 정원 조경의 형태 하나를 그들에게 던지는 암시로 해석하곤 했다.

       가스통의 전임 정원사는 한 대귀족이 자신의 가문의 상징인 동물이 적대 가문의 상징 동물 앞에 엎드려 있는 상황을 연상시키는 수석(樹石)을 보고 섭정에게 항의한 덕분에 쫓겨난 것이었다.

         

       지금은 그 정도로 시절이 험악하지는 않지만, 가스통은 항상 조심하려고 애썼다.

       

       샤를로티아의 섭정은 신체적인 신호로 혹은 언어적인 수사로 또는 정치적인 행동으로 ‘나는 중립이오’라는 표현을 언제든 할 수 있도록 가문 대대로 훈련을 받아왔다.

       그는 지금 시점에 정원을 수리해주기 위해 자신의 정원사를 루즈에 파견하는 것이 호텔을 빌린 귀족의 편을 든다는 정치적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피하고 싶은 것 같았다.

         

       섭정은 나중 일을 대비해 그의 정원사에게 30년 근속 기념 특별 휴가를 내려주었다.

       이것으로 그는 미처 정원사를 파견하지 못했다는 구실을 마련한 것이다.

         

       늙은 정원사가 공항에서 플로랜드 행 비행선 표를 루즈 행 비행선 표로 교환한 것은 그가 갑자기 플로랜드의 따뜻한 햇볕이 싫어졌거나, 루즈의 화려한 윤락에 눈이 돌아갔기 때문은 아니었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 자부해온 일을 모욕하는 작금의 상황에 분노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지난 30년의 세월 동안 정원사도 정치를 배웠다.

       그는 섭정 가문의 대부인이 나중에 진상을 알고 진노했을 때를 대비했다. 그래서 휴가 동안 몰래 메트로폴 호텔을 둘러봤다는 면죄부를 얻기 위해 루즈에 온 것이다.

         

       호텔의 지배인은 자신이 온 것을 비밀로 해달라는 샤를로티아 제일의 정원사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지배인은 다른 손님들이랑 마주칠 일이 적은 구석의 방을 그에게 내주었다.

         

       가스통은 트렁크를 열어 누덕누덕 기운 밀짚모자를 꺼내 쓰고 멜빵바지를 착용했다. 트렁크 안에는 작업복 외에도 끌, 망치, 줄자, 연화제, 사포, 집게, 절단 가위, 손질 가위, 작은 톱, 고정용 못, 고리, 결합용 고무줄 등이 가득했다.

       휴가를 떠나면서도 남국의 정원은 어떨까 고민하며 챙겨온 것이 이런 순간에 도움이 됐다.

         

       그는 일단 줄자와 표시용 분필 등 몇 가지 간단한 측량 장비만 챙겨서 정원으로 나갔다.

       정원은 과연 폭탄이 터진 것처럼 쑥대밭이 되어있었다.

       검게 그을린 곳을 중심으로 흙바닥이 뒤집혀 있었고, 꽃과 나무들은 마구 뒤엉켜 쓰레기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못된 말썽꾸러기들이 한바탕했나 보군.”

         

       그는 바닥에 너부러진 비싼 조경 식물들을 보며 혀를 찼다.

       완벽한 각도와 적당한 크기로 자라도록 새싹 때부터 조심히 물과 햇빛을 조율해가며 키웠던 것인데 다들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는 아예 새로 디자인을 짜야겠고, 흠, 여기는 수목원에서 대체할 식물들만 심으면 되겠군. 저쪽부터는 가지만 정리하면 충분할 것 같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후원을 둘러보던 가스통은 구석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손에 정원용 나이프와 가위를 들고 방금 그가 가지만 정리하면 충분할 것 같다던 나무를 살피고 있었다.

         

       ‘허, 호텔에서 고용한 정원사인가? 지배인에게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가스통은 그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젊은 청년이었다.

       키는 컸고, 피부는 희고 고왔으며, 얼굴은 조각을 깎은 듯 반듯했다.

       아무리 봐도 정원 일을 하는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귀족을 연상케 하는 외모와 달리 복장은 호텔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 입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망가진 잔해들을 치우도록 고용된 청년인 듯했다.

         

       그는 입에 미소를 띠며 가지가 부러지고 꺾이고 휘어진 나무를 찬찬히 살폈다.

       그 눈빛이나 행동을 보면 그가 어설픈 정원사 행세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하러 왔으면 일이나 할 것이지. 생긴 값을 못 하는 놈이군.

       정원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그가 갑자기 껍질이 벗겨진 나무의 모서리에 나이프를 가져다 댔다.

       가스통은 그 움직임을 보고 움찔 몸을 떨었다.

         

       분명 정원 일에 무지해 보였던 그의 동작이 너무나 유려하고 깔끔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십 년 동안 수목을 살펴온 노련한 정원사의 것이었다.

         

       서걱서걱.

       놀라운 건 그의 겉모습만이 아니었다. 망가진 껍질을 처리해나가는 그의 솜씨는 흠잡을 데 하나 없었다. 자기 밑에서 일하는 제자들도 저 청년보다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껍질을 다 벗겨낸 그는 나무의 속살을 이리저리 살폈다.

       가스통은 조금 긴장한 기색으로 그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껍질 벗기기는 망가진 부분을 마구잡이로 뜯어낸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속살을 보고 나무의 생장의 방향을 살피고, 앞으로 나무가 다시 껍질이 자라났을 때, 어떤 형태와 두께로 자랄지 예측해내는 능력이 필요했다.

         

       이건 손재주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무가 어떻게 자라고 회복해나가는지 오랫동안 살펴온 경험이 필요했다.

         

       가스통 정도 되는 사람은 조금만 살펴봐도 속살의 어느 곳을 잘라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모든 정보를 종합해 봤을 때, 지금 저 나무의 저 상처 부위에 칼을 들이대야 하는 선은 딱 하나였다.

       그 선에서 1cm가 어긋나면 90%의 완성도가 나오고, 2cm가 어긋나면 완성도는 50% 이하로 떨어졌다.

         

       가스통은 자신이 왜 긴장하는지 알 수 없었다.

       방금 그의 칼질이 조금 능숙했다고 해서 놀랄 이유가 없었다.

       생김새는 전혀 아니었지만, 나이는 20대 중반쯤 되어 보였으니 경력이 10년 정도 된 젊은이일 수 있었다.

       그러면 납득이 가는 실력이었다.

         

       껍질 벗기기의 선은 저런 젊은이가 잠시 살핀다고 해서 파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원예 도감 같은 것을 들고 와서 이리저리 계산을 해보거나, 일단 뭉텅 잘라낸 다음 자라나는 걸 보면서 조금 쳐내고 조금 쳐내고를 반복하는 게 그 나이대의 정원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청년이 칼을 속살에 갖다 댔다.

       그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한 톨도 없었다.

       오직 평온한 미소만이 가득했을 뿐이다.

         

       그의 칼이 움직였다.

         

       “아.”

         

       가스통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의 칼은 단 0.1cm의 오차도 없이 그가 예측했던 선을 가르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칼솜씨 하나는 정말 완벽했다.

         

       “누구시죠?”

         

       청년이 노인을 돌아봤다.

       가스통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숫눈 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리메이크하는 동안에도 믿고 기다려져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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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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