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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

       손안에 들린 말랑쫀득무저항따끈미니사랑의여신조각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이즈가 손바닥에 착 감길 정도로 작을 뿐, 비율 자체는 성인 여성과 동일하다. 아니. 이런 걸 동일하다고 하면 안 되겠지.

       

       순산형의 튼실한 골반과 엉덩이. 그리고 절대 아기 굶길 일은 없을 것 같은 묵직한 가슴.

       

       반면 허리는 가늘고, 팔다리는 가녀린 것이 정욕과 함께 보호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여성성과 아름다움을 극한으로 제련해 낸 이상의 존재.

       

       이러한 몸매를 평범한 성인 여성과 동일시하는 건 너무 심한 처사 아닌가.

       

       거기에 얼굴은 또 어떤가.

       

       별을 박아 넣은 것처럼 반짝이는 분홍색 눈동자.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콧날은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으며.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입가에서는 일종의 모성애가 느껴진다.

       

       기껏해야 내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얼굴을 이렇게나 아름답다고 느낄 줄이야.

       

       여성으로서의 성적 매력과, 모성애. 그리고 당장이라도 쓰러뜨리고 싶다는 정복욕을 동시에 자극하는 외형.

       

       지금껏 내가 봐온 그 어떤 것도 눈앞의 존재만큼이나 사랑스럽지는 않으리라.

       

       “…글줄로만 보던 설정이 실체화되니 이렇게 무시무시한 거구만.”

       

       대리석을 깎아 만든 처음의 모습도 장난 아니게 예쁘다는 생각은 했는데, 이건 그 수준이 다르다.

       

       속으로 감탄을 거듭하며 전체적인 인상 외에도 무엇이 달라졌나 살펴보았다.

       

       조각상이 아닌 진짜 여신이라도 보는 것처럼 아름다워진 외모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세세한 디테일이겠지.

       

       본래도 진짜 옷자락, 머리카락, 살결을 가져온 것처럼 잘 깎인 조각상이었지만…지금은 아예 진짜를 가져다 붙인 수준이었다.

       

       우선 말랑쫀득부들부들한 살결. 순간 처음에 든 생각은 지구에서 종종 보았던 실리콘 재질이었으나.

       

       말랑몰랑.

       

       혼자 사는 작가에게는 말 없는 친구가 필요한 법.

       

       그런 의미에서 인형의 재질에 관해서는 나름 이것저것 공부했던 시기가 있다.

       

       실리콘의 촉감이 좋은 건 사실이나, 이 정도는 아니다. 내구성이 떨어지고 유분이 묻어나오지만 촉감 하나는 실리콘보다 뛰어난 TPE재질도 마찬가지.

       

       이건 그런 인공적인 촉감이 아니다. 진짜 사람 살을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 온기까지 느껴지니 더더욱 실감 났고.

       

       “킁킁.”

       

       혹시나 해서 냄새도 맡아보았지만, 화학물질의 냄새 대신 기분 좋은 살 내음만 느껴졌다.

       

       …하긴. 나한테 체향을 조절하는 가호를 뿌린 만큼 이 정도는 간단한 일이겠지.

       

       피부만 해도 이렇게나 놀라운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음은 머리카락.

       

       웨이브진 분홍색 머리카락이 물결치듯 흔들리며 허리까지 닿는다.

       

       그래. 흔들린다.

       

       놀랍게도 풀강 여신상은 머리카락이 돌이 아닌 진짜 머리카락 같은 재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올 한올 살아있는 머릿결은 평소에 거금을 들여 열심히 털 관리하는 엘리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었다.

       

       한 올만 잡아 슬쩍 잡아당겨 보았는데 뽑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원래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이 정도면 내 여자친구 mk·3처럼 한순간의 실수로 탈모가 될 일은 없다고 보면 되겠지.

       

       “후우.”

       

       깊게 숨을 들이켜 마지막으로 옷을 살펴보았다.

       

       넓은 천 하나를 엮어 만든 고대 그리스의 옷. 토가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

       

       놀랍게도 이 또한 진짜 천과 같은 재질로 변해있었다.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신상을 거꾸로 들고 밑을 들춰보았다.

       

       예전에는 아예 몸과 하나로 이어져 있는 탓에 불가능했지만…이제는 가능할 터!

       

       펄럭.

       

       “아잇!”

       

       하지만 아쉽게도 자세 때문에 허벅지까지만 보이고 팬티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급한 마음에 살짝 무릎을 구부리려 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는 다리. 아무래도 관절은 안 달려있나 보다.

       

       “하아….”

       

       팬티를 보지 못하는 피규어에 무슨 의미가 있지???

       

       이래서는 ‘실사용’이 불가능하잖아!!!

       

       갑자기 세상이 미워졌다.

       

       아쉬운 마음에 말랑한 여신상의 가슴이나 쪼물대며 다른 기능은 무엇이 있는지 하나둘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참이 걸려 알아볼 건 다 알아보았는데 별로 대단할 건 없었다.

       

       기껏해야 은은한 신성력을 내뿜는 성물이 되었다는 것과, 하루에 한 번 그 신성력을 격발시켜 신체 능력과 재생 속도를 높여주는 미니 성역을 펼칠 수 있고, 추운 날에는 손난로 대용으로 써먹을 수도 있으며, 전용 케이스에 집어넣으면 조명이 기존의 모든 색이 연속으로 부드럽게 흐르는 RGB 조명이 된다는 것 정도?

       

       그 외에는 정말 이렇다 할 효과가 없었다.

       

       러브돌…아니, 오나홀…이것도 아니지.

       

       아무튼 엄청 기대하게 만든 것 치고는 영 시원찮은 업그레이드.

       

       “지켜봐달라는 말에 나온 거라 혹시 강신이라도 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고.”

       

       평범하게 예쁘고 귀엽고 야하고 만지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는데, 하필 여신의 외모를 하고 있어 묘한 배덕감이 느껴지는 인형일 뿐이다.

       

       “또 나한테 쓰레기를 줬구나! 언젠가 복수하겠다 사랑의 여신!!”

       

       그리 외치며 손에 쥔 여신상을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전용 케이스에 넣어 머리맡에서 화려한 RGB 조명을 빛내게 한 채로 마지막 두 번째 4성 템인 대용량 아공간 반지를 검지에 끼웠다.

       

       이것도 정말 대단한 물건이고, 유용하긴 하지만…이미 용도와 사용법을 알고 있으니 굳이 이것저것 시험해 볼 필요는 없다.

       

       일전에 나를 납치했던 쌍단검 클랜의 아지매도 썼고, 리디아도 손가락 별로 하나씩 끼워 필요한 무기를 그때그때 소환하지 않던가.

       

       내 것도 똑같이 쓰면 된다. 그저 용량이 훨씬 커졌을 뿐이지.

       

       “얍.”

       

       약간의 마력을 불어넣자 손끝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저항감. 그 안으로 남은 물건을 이것저것 집어넣기 시작했다.

       

       오늘 다 못 먹을 것 같아 남긴 마력초와 회복초, 각종 포션, 그리고 화살과 유니콘 단검과 갈무리 단검까지.

       

       그동안 몸이 무거워져서 일부러 안 쓰고 있던 투척 무기도 몇 개 넣어 둬야지.

       

       그 외에도 더 넣으려면 넣을 수 있지만…몬스터를 사냥하고 나온 부산물까지 생각하면 가능한 자리는 비워두는 게 좋으리라.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문득 침대를 빛내는 RGB 여신상이 보였다.

       

       “설마…?”

       

       언제 어디서든 여신상을 넣어 다니라는 의미로 준 건 아니겠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차마 부정할 수가 없었다.

       

       여신상을 다른 사람한테 넘겼다가 졸지에 여신상 풀돌을 찍은 전례가 생긴바. 그냥 어지간하면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오늘 말고 내일부터.”

       

       누군가에게 변명하듯 그리 말하며 침대에 누웠다.

       

       화려한 조명에 휩싸인 사랑의 여신의 조각상이 나를 자애로운 미소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은근 부담스러웠네.

       

       하지만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신성력 때문일까. 잠은 솔솔 잘 왔다.

       

       몸이 붕 뜨는 것과 동시에 정신이 몽롱해지는 잠에 빠져드는 감각.

       

       희미해져 가는 시야에 여신상의 입가가 계획대로라는듯 삐뚤어진 미소를 짓는 게 보였지만….

       

       분명 잠기운에 취해 잘못 본 것이리라.

       

       ***

       

       푹 자고 일어났다. 창밖에서 눈이 부실 정도의 햇빛이 들어오는 걸 보아 날이 맑은 모양이다.

       

       “사람 죽이기 딱 좋은 날이군.”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섰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오나…아니, 여신상을 케이스에서 꺼내 아공간에 집어넣고는 1층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항상 보이는 엘리는 안보이고, 리디아와 카렌만이 있었다.

       

       “어라? 엘리는요?”

       

       “엘리 선배는 자기 장비 꺼내러 갔어.”

       

       “아하? 그럼 이대로 기다렸다가 함께 가는 건가요?”

       

       “응. 다만, 카렌 심문관은 좀 기다렸다가 나중에 혼자 들어갈 거야.”

       

       “길드에 심어놓은 눈을 경계하는 거군요.”

       

       “정답. 26번 안전지대에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먼저 가서 기다리다가 그때 합류할 생각.”

       

       “좋네요!”

       

       내가 준 여신상에 대고 경건히 기도를 올리던 카렌이 깍지 낀 손을 풀며 말했다.

       

       “한가지 알아주실 게 있습니다 요나 님.”

       

       “뭔가요?”

       

       “어쩌면 그사이에 제가 봤던 것보다 전력이 강화됐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제가 꽤 휘저어 두었으니 말입니다.”

       

       “그렇죠.”

       

       “하여, 혹시라도 저희의 전력이 부족하다 싶으면 이단의 말살이 아닌 의식의 저지를 목표로 삼고 움직이겠습니다. 그나마도 힘들 것 같다면 생존을 최우선으로 할 예정이고요.”

       

       “이해해요. 그런 상황이면 어쩔 수 없죠.”

       

       나는 몰라도 엘리나 리디아 같은 제법 소중한 이들의 목숨까지 걸어서 막아야 하는 일이냐고 묻는다면…글쎄. 그 정도는 아니지.

       

       무엇보다 내 목숨 내가 알아서 쓰는 거면 몰라도, 다른 이에게 나를 위해 목숨을 걸어달라고는 할 수 없잖은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잠시. 평소의 바텐더를 연상시키는 복장이 아닌,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색 전신 슈트를 입고 있었다.

       

       비어있는 한쪽 팔 소매가 덜렁거리지 않도록 묶어놓은 상태.

       

       근육질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낸 엘리를 향해 리디아가 번쩍 손을 들었다.

       

       “엘리 선배. 요나가 못 보던 비싼 장비를 둘둘 말고 있어.”

       

       “…엉?”

       

       고개를 갸웃거리는 엘리를 향해 쐐기를 박는 리디아.

       

       “마탑에서도 구하기 힘든 투명 망토, 마법이 내장된 부츠, 그리고 최고급 아공간 반지까지. 엘리 선배 창고 털린 거 아냐?”

       

       “나한테는 없는 장비들인데?”

       

       “터무니없는 음해에요! 제가 설마 엘리의 장비를 훔쳤겠어요?!”

       

       엘리는 반대쪽으로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발끈해 소리쳤다.

       

       그러자 무덤덤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는 리디아.

       

       “그럼 어디서 훔쳐 온 건데?”

       

       “훔쳐 왔다는 전제로 말하지 말아 주세요!”

       

       “아냐?”

       

       “아니거든요?!”

       

       한숨을 깊게 내쉬고는 옆에서 두리번거리는 카렌을 척 가리켰다.

       

       “어제 카렌 심문관님에게 받은 돈으로 사랑의 여신님께 간절히 기도드리고 잠들었더니 갑자기 생겼어요. 제가 이렇게 신심이 깊은 남자랍니다.”

       

       “음음. 요나 님이라면 그럴 수 있습니다.”

       

       카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나를 향해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걸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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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남녀역전 세계의 가챠 중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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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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