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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

       마탑 1층의 역사(驛舍)앞에는 수습생이 갓 도착하는 시기에 버금가는 인파가 몰려 있었다.

        마법사들이 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것은 ‘대체 언제 급행이 출발하느냐’였다.

        선로에 이상이 생겨 수리 중이라는 치안부의 공식적인 발표가 있었으나 누구 하나 플랫폼을 떠나는 이는 없었다.

        역장인 지미는 수정구를 손에 쥐고 답답하다는 듯이 담당자에게 소리쳤다.

       

        “아니, 그러니까 대체 언제 정상화 되냐니까!”

        —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라 저희도 잘은…….

        “지금 여기는 폭동 직전이야! 다들 66층으로 가는 급행의 티켓을 내놓으라 하고 있다고!”

        — 죄송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난리가 난 것은 1층만이 아니었다.

        모든 플랫폼에서 학파를 불문하고 수많은 마법사들이 항의 전화를 하는 중이었다.

        그 이유는 갤러리에 올라온 어느 게시글 때문.

       

        ====

        초전도체은발미소녀

        [여러분, 오랜만인 것이에요…….]

       

        저어는 지금 양지바른 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직접 만나기 위해 콘서트 장소(66층)를 알아보던 도중 한 가문의 마수(플?멜 가문)에 속아 저택에 갖혀 갇은 고초를…… (중략)

       

        지금도 그들의 감시를 피해 글을 쓰는 중이지만 이것도 마지막이 될 것 같은 것이에요

       

        부디 모두 저를 잊어주셨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만날 수 있다면 다시 한 번 콘서트를…….

       

        아니면 찾아오신 분들과 팬미팅이라도…….

       

        — ??

        — 왔다!!!

        — 지옥에서 돌아오셨군요

        — 갖x -> 갇o

         ㄴ 갇o -> 갖x

         ㄴ 니가 뭔데 초전도체은발미소녀님께 맛춤뻡 지적질이야

         ㄴ 이제부터 갖이 맞다…….

        — 66층? 거기 지급 급행 열려 있는데?

        ====

       

        처음엔 장난이라 생각하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지미였다.

        누군가 위험에 빠져 있다는 글 따위 하루에도 몇 개는 올라오는 마탑이었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높은 층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하고, 심지어 기관사까지 나서 자기가 책임지고 급행을 운전하겠다 말하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명령을 내린 치안부의 일선과는 연결이 되지 않고, 멋대로 열차를 출발시켰다가 사상자라도 발생하면 그야말로 대참사일 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사색이 되어 있던 그에게 직원이 수정구를 들고 다가왔다.

       

        “저, 역장 님. 급한 연락입니다.”

        “이번엔 또 어디야?”

        “일층이요.”

        “젠장, 내가 말 했지! 60층 이하로는 전부 부재중이라고 답하라고…….”

        “저, 그게…….”

       

        망설이던 직원이 꺼낸 말에 그는 곧장 수정구를 집어들었다.

       

        “의, 의장님 집무실에서 걸려온 건데요?”

       

       

       

        *

       

        “출혈은 멎었으나 단순한 자상이 아닙니다. 최대한 활동을 피하시고 내려 가시는대로 신성학파에 방문해 추가적인 치료를 받도록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치료사의 당부를 듣고 시엔이 입원한 응접실의 문을 열었다.

        분명 환자복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드레스로 갈아입은 채 허리에 검까지 매고 있었다.

        자괴감과 짜증이 가득한 표정.

        눈이 마주치자마자 입이 댓발 튀어 나오는데,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안 들어도 알 것 같았다.

       

        “방심해서 놓친 거야.”

        “누가 뭐래?”

        “치마가 치렁치렁해서 움직이기 불편했고 장갑 때문에 칼을 잡기도 어려웠어. 나흘 째 화장실 천장에 숨어있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허무하게 당하진 않았다고. 다음에 만날 땐 이길 거야.”

        “정말로? 난 나흘 째 잠도 못 자고 있었는데 운이 좋았네 그럼.”

        “…….”

       

        딱히 그녀의 잘못은 아니었다.

        시엔이 제 아무리 천재라 해도 장차 칠현자가 될 재목을 꺾기란 불가능하다.

        허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승냥이처럼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기에 더 이상 놀리진 않기로 했다.

        패배자에겐 상처를 핥아주려는 선의의 위로마저 쓰라린 법이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시엔 대신 침대에 앉으며 물었다.

       

        “플라멜 가문에 대해 조사할 게 남았다고 했지. 어떤 거야?”

        “저택에 있을 비아지오 경의 직인. 검은별에 보낸 의뢰서에 찍었던 것과 같은 문양인지 확인해야 해.”

        “그건 다른 문서를 찾아 대조해 보면 되는 거 아니야?”

        “뒤가 구린 일을 할 때만 사용하는 종류가 따로 있어. 그리고 십 년전, 66층에서 모종의 이유로 그가 이곳에서 도장을 사용한 것도 확인했고.”

       

        시엔은 부르크 하우스에 왔을 때 직접 갖고 있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며 저택을 찾아보면 나올 거라 말했다.

        그럼 그걸 확인한 뒤 막차를 타고 돌아가면 되겠군.

        다만 잠입은 나 혼자 하는 편이 좋아 보였다.

        루벤의 제안을 거절함으로써 미티어 학파의 협조는 더 이상 구할 수 없어졌기에 그녀가 이 저택에서 나간다면 그걸로 보호도 끝이었다.

       

        “내가 구해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리다가 연락 주면 플랫폼으로 나와.”

        “네가 어째서? 이건 내 일이야.”

        “다쳤잖아. 그리고 넌 연금학파니까 위험할 거 아냐.”

        “저쪽의 보복은 신경 쓸 필요 없어. 이미 여기 오기 전부터 어느 정도 보험을 들어놨으니까.”

        “보험?”

        “나처럼 유능한 사람은 어디서든 스카웃해가려고 하거든. 정보부의 모든 지부가 발각되었는데 내가 다른 애들을 숨겨둘 수 있었던 이유가 뭐겠어?”

        “그럼 상처는?”

        “……그것도 네가 신경쓸 바가 아냐.”

       

        괜찮다는 말과 다르게 시엔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현자의 약관에 부상을 회복하는 구절은 있지만 저주까지 무력화할 수는 없다.

        팔뚝에 감긴 붕대는 벌써 피를 머금고, 검을 쥐어야 하는 손은 계속해서 떨리고 있다.

        오른팔의 근육과 마력회로를 살피던 나는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나 해주학파잖아?

       

        원래 이런 저주를 푸는 것이야말로 해주술사의 일이었다.

        신성학파에 치이고 교국의 사제들에게 치이느라 잊고 있었다.

        일반적인 상황에선 절대 찾을 일이 없었지만 악의의 층에서는 다른 학파의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은 노릇.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나의 존재의의를 드러낼 때였다.

       

        “내가 고쳐줄게, 여기 누워 봐.”

        “뭐? 자, 잠깐! 야아! 하, 하지 마!”

        “네가 머리 때리면 아프거든? 가만히 있어.”

       

        새하얀 이불 위에 시엔을 눕히는데 한 시간이나 걸렸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상처부위에 새겨진 아녜스의 저주를 꼼꼼이 살폈다.

        일반적인 실력으론 택도 없겠지만 다른 건 다 제쳐놓고 간섭기만을 꾸준히 갈고 닦아 온 나라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의지를 깎아내리는 단념, 불의의 존재에 대한 공황, 그리고 손가락 근육을 굳히는 마비라.’

       

        마력을 끌어올리자 팔을 관통한 깊은 자상 형태의 저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짧은 사이에 세 개나 되는 저주를 우겨넣은 걸 보니 역시 해주학파의 최고 아웃풋이었다.

        정신, 영혼, 육체에 모두 간섭하여 확실하게 검을 놓게 만들기 위한 일격.

       

        소마(消魔)를 이용해 단숨에 풀어버리면 좋겠지만 주위의 마력회로를 휘감은 채 붉게 빛나는 모습이 쉽게 떼어내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겠지.

        나는 저주를 단숨에 뜯어내는 대신 방향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단념은 난만(爛漫).

        공황은 친애(親愛).

        그리고 마비는 이완(弛緩)으로 그 성질을 뒤틀어 무력화하는 것이었다.

       

        “괘, 괜찮다고 했잖아. 이것 좀…….”

        “중간에 움직이면 다치니까 가만히 있어. 아프면 말하고.”

        “아픈 건 아닌데 기분이 이상하니까 좀 떨어져 봐! 네 간섭은 너무…… 으읏!”

       

        끄트머리부터 하나씩 술식을 해체하는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도 아닌 아녜스의 것이라 더욱 신중해야 했다.

        시엔의 헐떡이는 숨결과 나를 밀어내려는 몸짓을 무시하며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바뀐 성질을 그녀의 마력회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만드는 작업까지 병행하자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히끅, 몰라, 나, 난 몰라…… 어떡해.”

       

        시엔의 반응을 살피며 간섭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변형시킨 술식 탓인가? 어느덧 저항은 사라지고 몽롱하게 풀린 연녹색 동공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중이었다.

        긴장이 풀려 작게 벌어진 입이 닫힐 줄 모르고 달싹였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하여 귀를 가까이 가져다댔다.

       

        “왜 그래 시엔?”

        “클락, 나, 나 있잖아아…….”

        “치료비는 신성학파에서 받는 금액의 절반만 청구할게. 친구 사이에 빚진 건 없어야 하잖아.”

        “시러, 안 대, 치, 친구 아니니까……!”

       

        떼먹겠다는 거군.

        프리나 때도 그렇고, 탑을 오를수록 친구가 하나씩 사라지는 해주학파의 숙명과 같은 현상이 내게도 찾아오고 말았다.

       

        보험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이 세계에서는 멋모르고 신성학파에 해주를 요청하러 갔다가 눈탱이를 맞는 사례도 잔뜩 있었다.

        특히 저주를 어디서 당했는지, 어떤 종류인지를 모른다면 치료하는 과정에서 각종 항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흐윽, 흣…… 조, 조하아, 클라악…….”

       

        시엔은 자꾸 목덜미에 코를 파묻거나 부끄러움을 잊은 채 허벅지로 내 다리를 비벼댔기에 ‘애착인형 대여’ 항목을 추가해도 될 정도.

        하지만 그간의 우정을 봐서 침으로 범벅이 된 로브의 세탁비만 청구하기로 했다.

       

        귀여워진 그녀의 방해를 받으면서도 마침내 마지막 구절까지 변형시키는데 성공하자, 벌써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주가 사라지며 술식이 사라진 자리에 남아있던 마나가 응접실 전체로 퍼져나갔다.

       

        간섭기 — 개찬(改撰).

       

        마력의 고리가 더욱 견고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4위계.

        당장 모험가 조합에 가입해도 최소 토벌 횟수만 채우면 은 등급 정도는 딸 수 있는 수준이었다.

        탑을 오르는 마법사로서는 아직 한참 낮은 경지였기에 이 정도에서 만족할 생각은 없다.

        내가 마력을 갈무리하는 사이, 시엔 저주의 영향에서 벗어나 역시 정신을 차렸다.

       

        “내, 내가 무슨 짓을……! 잊어! 지금까지 있었던 일 전부 잊어 버리라고!!”

        “전파 잡기 힘드니까 머리 잡아당기지 마. 그리고 여기 증거가 떡하니 남아 있는데?”

        “으읏……!! 아, 안 돼!”

       

        서걱.

       

        칼자루에 손을 얹자 로브가 순식간에 잘려나가 세탁비마저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현란한 솜씨를 보아 하니 부상은 다 나았나보군.

       

        나는 창을 조립한 뒤 갤러리를 확인했다.

        기어이 1층에서 열차가 출발했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생각보다 화력이 좋군.

       

        “괜찮아졌으면 슬슬 저택으로 가자.”

        “잠깐. 나 옷 좀 다른 걸로 받으면 안 돼?”

        “그냥 입고 있어. 이번엔 안 질 거라며.”

        “그, 그렇긴 한데…… 어째서?”

       

        그야 기껏 사람들을 불러 모았는데, 내가 입고 나갈 순 없잖아.

       

        “어…… 보기 좋으니까?”

        “…….”

        “안 돼?”

        “지,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저주를 푸는 데는 하룻밤을 꼬박 샜지만 설득은 2초밖에 안 걸렸다.

        우리는 마차를 타고 플라멜 가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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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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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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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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