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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

       

       

       “미, 미르···?”

       

       

       구체로 된 무언가를 들고 온, 위버멘쉬로 추정되는 사람이 울먹이며 누군가를 불렀다.

       

       하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게는 더 중요한 게 있었으니까.

       

       

       “···살아있어.”

       

       

       피를 흘리고 있지만 분명히 살아있었다.

       

       최대한 빨리, 안전하게 병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남아있는 실을 모두 사용해 유시우를 감싸 안았다.

       

       

       “미, 미르···! 미르!”

       

       

       대충 후드티로 몸을 가린 채 아카데미를 나서기로 했다.

       

       부끄러움 같은 걸 느낄 겨를은 없었다. 긴급상황이었으니까.

       

       이곳에 더 있어 봐야 유시우에게 도움이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부상자가 한두 명이 아닐 테니까. 분명히 치료는커녕 응급처치만 할 게 뻔했다.

       

       병원으로 가야 해.

       

       

       [도, 독자님?! 저, 저거 마무리 안 해요?!]

       

       “그럴 시간 없어요.”

       

       [네?! 하, 하지만···!]

       

       

       작가님의 말은 가볍게 무시했다.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실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저런 것보다 훨씬 중요한 걸 해야만 했으니까.

       

       저런 인형 정도야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지워도 충분해.

       

       하지만, 하지만 유시우는 달라.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만 하는 존재니까.

       

       

       “주인공이잖아요. 만약 위험해지면 큰일나요.”

       

       [그, 그렇기는 하죠···?]

       

       “그래요. 이건 모두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에요. 설정 변경도 못 한다면서요? 주인공이 여기서 죽으면 어떡하시려고.”

       

       

       작가님은 아직 연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니, 작가님이 기겁할법한 말을 해주도록 하자.

       

       

       “설마, 작가입니다… 하며 연재 중단 공지를 쓰고 싶으신 건 아니겠죠?”

       

       [···알았어요.]

       

       

       작가님을 대충 수긍시키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야 수긍할 수밖에 없겠지. 자기 입으로 주인공은 수정이 불가능하다고 했으니까.

       

       그렇다면 유시우가 사실 멀쩡했다는 식으로 수정할 수도 없다. 지금은 정말 다쳤다고. 그것도 크게.

       

       만약 여기서 후유증이라도 생긴다면?

       

       그래서는 안 돼.

       

       빌런들과 싸우고 있는 학생들, 급하게 아카데미 본관으로 찾아오는 선생들.

       

       그리고 어느새 사라진 위버멘쉬 수장의 시체와 옆에 있던 개 수인까지.

       

       모두 신경 쓰이지 않았다.

       

       고치처럼 칭칭 묶인 내 실 안쪽에 잠들어있을 그.

       

       세상의 주인공, 유이한 인간. 유시우만이 신경 쓰일 뿐이었다.

       

       다른 놈들은 알 바 아니야.

       

       

       

       ***

       

       

       

       시우는 문득 얼굴을 찌푸렸다.

       

       밝은 빛이 시우의 감긴 눈을 괴롭히듯이 밝게 빛났다.

       

       

       “으윽···.”

       

       

       눈동자를 찔러오는 것 같은 감각을 무시하며 더 잠을 자기 위해 뒤척여보기도 했지만, 더 잠이 오지 않기에 시우는 일어나기로 했다.

       

       머리가 멍하기는 했지만 더 이상 눈을 감고 있을 수도 없었으니까.

       

       갑작스레 일어난 짜증을 삼키며 시우는 눈을 떴고, 다시 기겁했다.

       

       

       “···일어나셨나요?”

       

       “히익?!”

       

       

       평소의 실눈과는 달리 붉은 눈동자를 크게 뜨며 나를 지켜보는 아르테가 보였으니까.

       

       

       “억?!”

       

       “아윽···. 아, 아파라···.”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켜 세우다가 아르테와 충돌.

       

       나와 아르테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해 붉어진 이마를 매만졌다.

       

       

       “건강한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죽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그게 무슨···.”

       

       “근육이 손상되고, 뇌마저 손상될 뻔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며칠 동안 일어나지를 못하니까 정말 죽어버린 줄 알았어요.”

       

       “뭐?!”

       

       

       방 안을 급하게 둘러보았다.

       

       새하얀 방과 꽂혀있는 링거. 살짝 쿰쿰하지 않은가 싶은, 병원 특유의 약품 냄새.

       

       자신이 누워있던 장소가 병원이라는 것을 깨달은 시우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 아카데미! 아카데미는 어떻게···!”

       

       “이미 다 끝났어요.”

       

       “···끝났다고?”

       

       “네, 확실하게. 위버멘쉬는 궤멸했답니다. 짜잔.”

       

       

       마치 어린아이가 연극을 말하듯 가벼운 말투로 아르테가 이야기했지만, 그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위버멘쉬의 궤멸.

       

       즉, 내가 자는 사이에 모든 것이 끝났다.

       

       

       “뉴스에도 나오고 장난 아니었어요? 아카데미는 무얼 했던 거냐. 무능한 협회 놈들, 하고.”

       

       “피, 피해자는?! 아니, 아멜리아랑 도로시는 멀쩡해?!”

       

       “···일어나자마자 다른 사람 걱정부터? 걱정하지 마세요, 다들 무사하니까.”

       

       “멀쩡하다고···?”

       

       

       싱긋 웃은 아르테가 탁자 위를 가리켰다.

       

       탁자 위에 보이는 것은 달력.

       

       자연스럽게 달력을 넘긴 아르테는, 내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일주일 남짓 잠만 자고 있던 사이에 다 끝났답니다?”

       

       “일주일?!”

       

       “네. 일주일. 확인 결과 사망자는 없고 중상자가 열 명 남짓, 대부분은 경상이었어요.”

       

       

       크게 다친 사람은 대부분 선생님이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아르테는 선생님들이 없었더라면 더 큰 피해가 발생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간부는 한 명 실종, 세 명 사망. 빌런 대다수는 체포. 끝이에요, 끝.”

       

       “···그렇구나.”

       

       

       그 난장판에서 죽어 나간 학생들이 없다니.

       

       

       선생님들이 왜 오지 않나 싶어 본관에서 버티던 무렵에 살짝 원망스럽기도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구나.

       

       

       “그런데 아르테.”

       

       “네?”

       

       “조금 떨어져 줄래?”

       

       “···어째서죠?”

       

       

       어?

       

       이런 식의 반응이 돌아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당연히 어라, 죄송해요. 하며 살짝 거리를 벌릴 줄 알았는데, 상상하지도 못한 반응이 돌아왔다.

       

       뭐, 뭐지?

       

       무언가 이상했다. 평소의 아르테···는 맞는데.

       

       

       “그, 그게···.”

       

       

       어떻게 말해.

       

       붙어있으니까 냄새가 너무 좋아서 조금 떨어져 줬으면 한다?

       

       절대로 말할 수 없었다.

       

       깨어나자마자 한다는 말이 그런 말이라면 변태취급을 받아도 할 말이 없었으니까.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놓고 성범죄자 빌런이 될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예상치 못했던 사람이 나를 도와주었다.

       

       

       “일어났네?”

       

       “아. 안녕하세요.”

       

       “아멜리아···!”

       

       “···뭐야, 그 반응은? 징그럽게.”

       

       

       우연히 들어온 시기적절한 도움.

       

       아멜리아의 난입으로 아르테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그녀를 향해 쏠리고, 나는 은근슬쩍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완벽해, 아멜리아. 고마워.

       

       

       “다리는 괜찮나요?”

       

       “응? ···아, 괜찮아. 슬슬 걸어도 괜찮다고 하니까.”

       

       

       배시시 웃으며 아멜리아가 목발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아멜리아가 크게 다쳤음을 눈치챘다.

       

       다리 한쪽이 붕대로 두껍게 감싸져 있는 모습. 중상자 중 한 명이 아멜리아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다쳤어?”

       

       “···응, 뭐. 걔 빠르더라. 로우킥 한 대 맞았더니 다리가 뒤틀렸어.”

       

       “뭐?!”

       

       “걱정하지 마. 후유증은 없을 거래.”

       

       

       두꺼운 붕대로 감싼 다리를 멀쩡하다는 듯 흔들어 보인 그녀가 맑게 웃었다.

       

       

       “아빠가 복수도 해줬고!”

       

       “···아빠? 그 히어로인···.”

       

       “응. 죽을 뻔했는데 다행히 아빠가 와줬거든. 피할 겨를도 없이 파사삭.”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그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죽을 뻔했는데도 저렇게 쉽게 넘기다니.

       

       역시 아멜리아는 강해.

       

       평소에는 보여주지 않지만, 가끔 보여주는 강인함이 인상 깊었다.

       

       

       “···아, 아르테. 미안한데 잠깐 유시우랑 대화 좀 할 수 있을까?”

       

       “그걸 왜 저에게···?”

       

       “아니, 그게. 친구끼리 대화 좀 나누고 싶어서. 허심탄회하게.”

       

       

       슬쩍, 슬쩍.

       

       아멜리아가 아르테의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뭐지? 왜 눈치를 보는 거지?

       

       아멜리아가 유독 친구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아르테에게 부탁했다.

       

       

       “좋아요. 한 시간 정도 뒤에 오면 될까요?”

       

       “고마워. 그 정도면 충분해.”

       

       “별거 아니에요.”

       

       

       아멜리아의 배웅을 받으며 아르테가 병실 밖으로 나가고 잠시 뒤.

       

       아르테가 확실하게 나갔다고 판단한 아멜리아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 너···! 유시우! 너 뭐 한 거야!?”

       

       “뭐, 뭘?”

       

       “아르테에게 대체 뭘 한 거냐고!”

       

       “잠만 자고 있었는데 하긴 뭘 해?!”

       

       

       아멜리아가 나를 타박하는 줄 알았다.

       

       그런 줄 알았는데, 내가 생각하던 것과 달랐다.

       

       타박하는 게 아니라, 흥분한 것 같은 느낌.

       

       아니, 느낌이 아니다. 확실해. 아멜리아는 흥분하고 있었다.

       

       ···불안함이 엄습했다.

       

       아멜리아가 이런 반응을 보였을 때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너, 너 이 자식···! 잘했어! 뭔진 모르겠지만, 진짜 잘했어!”

       

       “뭘?!”

       

       “아르테가 저러는 거, 네가 뭔가 한거 아냐? 반쯤 넘어온 것 같은데!”

       

       “또 무슨 소리를···.”

       

       “그렇게 싸우는 와중에도 여자를 꼬시다니,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좀 하는구나?”

       

       

       그리고 내 걱정은 틀리지 않았다.

       

       또 헛소리네.

       

       

       “무슨 헛소리야?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

       

       “그럴 리가 없잖아. 너는 못 봐서 모르겠지만, 아주 지극정성으로 널 보살피던데?”

       

       “그건 또 무슨···.”

       

       “하루도 빠짐없이 세 시간 이상 지켜보다가 가던데? 너 뭐 했어, 솔직히 말해!”

       

       

       ···뭐?

       

       세 시간 이상 지켜보다가 갔다고?

       

       

       “그, 그게 무슨···.”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나한테도 좀 말해줘. 그래야 다음 계획을 짜지.”

       

       

       하루에 세 시간이 넘도록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진짜?

       

       문득 눈을 뜨자마자 보였던 아르테의 불길하게 빛나던 눈동자가 떠올랐다.

       

       갑자기 일어나자 이마를 부딪힐 정도의 위치에 있던 그 얼굴과 함께.

       

       

       “서, 설마 아까 그것도···.”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도대체 왜?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나는 아무것도 한 적 없는데?

       

       아르테의 스토킹도 익숙해져서 그녀가 무서울 일은 더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해할 수 없는 행보에 소름이 끼쳐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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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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