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딘 백작.
전선에 합류한 지원군을 이끄는 수장이었다.
백작의 작위를 가진 그는 꿀릴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공을 세울 기회까지 얻었으니 두말 하면 입만 아픈 일.
하지만 이곳에 합류한 그는 잔뜩 위축되어 있었다.
파견을 명 받았을 때 후작들이 어깨를 두드려 준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가 이런 것이었을 줄이야.
“허험…”
기침 소리 한 번에 노르딘 백작이 먼지가 피어오르도록 달려갔다.
“예! 파라몬님! 부르셨습니까!”
“음? 그냥 기침한 것일세. 긴장 푸시게나.”
이번에는 다른 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흐음…”
이번에도 백작은 부리나케 달려갔다.
“예! 클로셀님! 부르셨습니까?”
클로셀이 멀뚱멀뚱 백작을 바라보았다.
“부른 적 없네만?”
“죄송합니다!”
노르딘 백작의 얼굴 위로 땀이 흘러내렸다.
백작의 작위고 나발이고 이 두 사람 앞에서는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작위를 물려주고 돌아가신 아버지조차 두 사람에게는 깍듯하게 예의를 지켰으니까.
“흐음…그래, 노르딘 백작.”
“예! 파라몬님!”
“자네의 아버지와 나는 제법 돈독했다네. 알고 있는가?”
“큰 은혜를 입으셨다 들었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큰 은혜였다.
파라몬 덕분에 가문이 백작의 작위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전쟁에서 세운 모든 공을 수하들에게로 돌린 사람이니까.
“자네의 아버지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었지. 내 똑똑히 기억하네.”
“가…감사합니다!”
그 뒤로도 파라몬이 여러 말을 전달했다.
그리고 그 말을 전해 듣는 노르딘 백작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파라몬은 정말로 그의 부친에 대해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직접 언데드와 싸워 보니 어떠하던가?”
언데드의 싸움보다는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이곳에 온 뒤로 치른 전투는 총 세 번.
그리고 세 번 모두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있었다.
파라몬이 그런 기색을 눈치채고는 빙그레 웃었다.
흠칫.
백작은 그런 얼굴을 보며 몸을 굳혔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파라몬님께서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었거늘…’
어쩌면 파라몬의 웃음을 볼 수 있는 이유는 전투 중이기 때문이 아닐까.
과연 전쟁영웅 다운 풍모였다.
백작의 귀로 파라몬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성문 앞에 있는 목상이 신경 쓰이나 보군.”
“…맞습니다.”
이곳에 있던 병사에게 벌써 이야기를 들었다.
헌데 그것이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리였다.
하늘 아래 기사님과 땅 밑의 여기사님이라니.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은 말이었다.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말이다.
“크리스라는 자가 가지고 왔다는….”
“맞네. 그 친구는 신비한 구석이 많은 사람이지.”
백작의 얼굴에 미묘한 기색이 감돌았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토록 칭찬이 넘쳐 난다는 말인가.
여기를 가도 저기를 가도 온통 그 자에 관한 칭찬 뿐이었다.
심지어 대마법사라 칭해지는 클로셀 마저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뿐이겠는가, 지금도 성벽아래에는 마법사들이 모여 목상을 관찰하는 중이었다.
“도대체 저것이 무엇이기에 언데드들이 접근하지 못 하는 것입니까?”
“장승이라고 한다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장군이들이라 불리지.”
“특수하게 제작된 아티팩트입니까?”
백작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
열려진 성문.
성안으로 옮겨지고 있는 병사들의 시체들.
파라몬은 말없이 그곳을 보고 있었다.
“내가 검을 한 번 더 휘둘렀다면 누워 있는 사람의 숫자가 줄었을 테지…”
“이미 파라몬님께서는 충분히 휘두르셨습니다.”
그 누구라도 파라몬의 말에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이곳에 합류할 때 봤던 전투는 파라몬과 클로셀, 그리고 마법사들이 주축이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특히나 파라몬의 활약은 말하기도 힘들 만큼 굉장했다.
혼자 성 밖에서 언데들을 휘젓고 다녔으니까.
그가 아니었다면 피해의 규모는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산 위에 그들이 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
“피해를 줄이는 방법은 저들을 먼저 없애는 것뿐입니다.”
지원군의 규모는 상당했다.
방어만 할 것이 아니라 공격을 해도 충분한 전력이었다.
애초에 저들을 박멸할 목적으로 편성된 지원군이었다.
곧 합류 할 백작만 둘이 더 있었고 그들이 이끌고 올 병력은 하나같이 정예들이었다.
거기다 인간을 초월한 강자가 둘.
더 이상의 고민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파라몬의 태도는 부정적이었다.
“지원군의 책임자는 자네일세. 허나, 나는 저곳으로 가지 않는 것을 권유하지. 이것은 로셀 역시 마찬가지일 걸세.”
이미 몇 번이나 비슷한 말을 들었다.
절대로 저 산을 오르면 안 된다고.
다른 사람의 말이었다면 코웃음을 치며 병력을 이끌고 산을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무려 파라몬과 클로셀의 말이 아닌가.
전쟁에 있어서 그들보다 베테랑인 사람은 찾기가 힘들다.
분명 그들만이 꿰뚫어 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터.
지원군으로 파병된 귀족들이 가만히 있는 이유였다.
“이유를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불만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수성이 길어져서 좋을 것은 없습니다. 저들은 지치지 않는 언데드이니…”
“자네의 생각을 들어 보고 싶군.”
노르딘 백작의 안광이 번뜩였다.
“저들이 무엇을 노리는지 부터 조사해야 합니다.”
네크로맨서는 보이지도 않고 언데드만 공격해오는 기이한 전황.
심지어 그들이 자리를 잡은 곳이 산 위쪽이었다.
풋내기 젊은이가 와도 저곳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은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작령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 단순히 언데드를 만들기 위함은 아닐 것입니다.”
“목적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생명을 대가로 하는 일.”
네크로맨서들이 생명을 필요로 한다면 목적은 하나였다.
“마족을 소환하기 위한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호오…”
목적이야 쉽게 유추할 수 있지만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저들이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군대가 몰려올 것이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을 텐데도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것은 그것을 감수할 만한 무언가가 있다는 소리.
“남작령의 사람들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한 방법 또한 알아내야 합니다.”
조사가 더 필요한 일이었다.
병력의 우세로 밀어붙일 수야 있겠지만, 목적과 방법을 모르면 같은 일이 또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파라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영지전은 해 보았는가?”
“예! 해 보았습니다!”
“용케도 영지를 지켜냈군.”
파라몬의 평가는 상당히 박했다.
백작의 작위를 가진 사람이 받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자네는 저들을 섬멸하는 것에만 중점을 두는 것 같군.”
당황한 노르딘 백작이 말을 더듬었다.
“그…그것이…”
“저들의 목적과 수단을 알아내고 저들을 무찌르면 끝이 날 것 같나? 저들만 잡는다고 네크로맨서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이 아닐세.”
파라몬이 먼 산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산을 오르건 오르지 않건 저들이 이득을 볼 수 있는 전략이 있을 것이네. 그것이 먼저 선수를 둔 자의 이점이지.”
“…”
“싸워 이길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유리해 지지 않도록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이 먼저일세.”
“…명심하겠습니다.”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네크로 맨서 전체를 놓고 생각해야 할 걸세. 이것 또한 저들의 계획 중 일부일테니. ”
파라몬이 여전히 산을 본채로 말했다.
“지휘관의 결정에 수많은 목숨이 달렸네. 나처럼 헛되이 수하들을 잃지 마시게나.”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한 백작이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더 이상의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무언의 축객령이었기 때문이다.
노르딘 백작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클로셀이 다가와서 섰다.
“저 친구의 아버지가 훌륭한 동료였었나 보군. 자네가 이리 배려를 하는 것을 보니.”
“허허…”
클로셀은 누구보다 파라몬의 마음을 잘 알았다.
수하들을 잃고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고통을 똑같이 겪게 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마족의 소환이 목적이라면 기다리고만 있어선 안 될 것이네….”
클로셀이 말끝을 흐렸다.
그렇다고 산을 올라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크리스가 그토록 당부했던 말이 있었으니 말이다.
“폐하께 부탁드려 크리스를 도우려고 했던 게 물거품이 되었다지?”
“벌써 끝났다고 하더군.”
클로셀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파라몬 역시 흐뭇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런 생각을 해보았네. 그 친구에게는 우리가 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말일세…”
“당연한 소리. 정작 당사자는 자기의 가치를 모르는 것 같지만…”
두 사람은 크리스의 가치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증명이 되지 않았던가.
“내 마법사로서의 능력이 부족하다 생각한 적은 없네만…갈수록 초라해 지는군.”
“우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크리스 그 친구가 규격 외에 있는 것이네.”
파라몬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미래를 점칠 수 있는 사람에게 전략 전술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디로 가면 사람이 죽고, 어디를 가야 사는지를 알 수가 있다.
이미 이것만으로 전쟁에 있어서 엄청난 이점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성기사들과 성녀를 맞이하러 갔으니.
“네크로맨서들에게는 재앙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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