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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

       “괜찮으세요, 교수님…?”

       

       리나가 걱정스럽게 묻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 괜찮아. 그냥 꿈이었어. 다들 신경쓰지 말아요.”

       

       타타노크 마을 행사 초대장을 본 직후라 꿈도 하필이면 이런 것을 꾸네.

       

       두피 안마를 마치고 보니 머리는 제법 괜찮게 됐다.

       

       “어머나, 세상에!!”

       

       그런 나를 본 리나가 손을 맞잡고 호들갑을 떨었다.

       

       “진작 이렇게 자르시지 그러셨어요!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보기 좋아요! 그렇지, 애나?”

       

       “아, 네….”

       

       나를 힐끔 쳐다본 애나가 황급히 시선을 떨구며 웅얼거렸다.

       

       이제 전쟁 때도 아니고 바로 옆에 미용실이 있으니 자주 와야겠네.

       

       그 말에 원장은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수석교수님은 특별히 제가 전담으로 맡을게요. 꼭 오셔야 해요?”

       

       “네네. 감사합니다.”

       

       밖으로 나가자 일과 후 자유시간을 보내러 상점가에 온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몰려들었다.

       

       “수석교수님이다!”

       

       “디안 교수님!”

       

       어찌나 애들의 기세가 흉흉한지 애나와 리나는 그 물결에 저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머리가 너무 잘 어울려요!”    “잘생겼어요!”

       

       “저는 언제 개인교습 넣어주시나요!?”

       

       “비밀황자님!!”

       

       한창때의 아이들이라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다.

       

       게다가 비밀황자라니. 아직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찌라시를 믿는 애들이 있구나.

       

       적당히 대꾸해 주면서 교직원 구역으로 가는데 내 시야에 뭔가 들어왔다.

       

       그것은 상점가 모퉁이에 숨어서 나를 훔쳐보는 키르린.

       

       짐작을 좀 해보자면 오늘 나랑 저녁식사를 하자고 제안하러 왔다가 애들이 몰려드는 통에 기회를 놓친 건가.

       

       손을 흔들자 키르린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춰 버렸다.

       

       

       # # # # #

       

       

       “흐음, 뭘까….”

       

       디안과 반강제로 헤어진 후.

       

       리나 교수는 혼자 생각에 잠겨 길을 걸었다.

       

       “흐으으음, 뭐지….”

       

       “뭐가 뭔가요, 교수님…?”

       

       옆에서 나란히 걷던 애나가 음침하게 묻자 리나가 걸음을 멈추고 애나를 홱 돌아봤다.

       

       “방금 너, 수석교수님이 잠꼬대하는 거 들었지?”

       

       “글쎄요…. 자세히는 못 들었어요…. 워낙 갑자기 소리를 지르시는 통에….”  

       

       “라이너스랑 뿔쟁이라는 건 정확히 들었어. 흐으음…. 뭐였을까….”

       

       “그게 큰 문제가 되는 건가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리나가 계속 고민하자 애나가 우물쭈물 말했다.

       

       “그냥 잠꼬대잖아요…. 라이너스 경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고… 교수님께서 참전용사시니… 아마 라이너스 경과 같이 싸우는 꿈이라도 꾸셨나 보죠….”

       

       “그런 거려나…. 흐으으으으음….”

       

       그러나 리나는 애나처럼 그렇게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분명 디안 교수가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는 지금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던 리나였다.

       

       그러나 아까 두피 안마를 받으며 잠들었던 디안 교수의 급작스러운 외침은 너무도 생생했다.

       

       “너네 어디 다녀오는 길이야? 어? 애나는 머리를 잘랐네?”

       

       때마침 저쪽에서 펠레미아 교수가 인사하자 리나가 그쪽으로 달려가 물었다.

       

       “교수님! 저번에 수석교수님한테 심리전 거셨죠?”

       

       “뭐? 어… 아니…?”

       

       펠레미아가 안경을 고쳐 쓰며 시선을 피했다.

       

       “하셨잖아요? 그래서 막 무릎 꿇고 토하고 하신 거 아니었어요?”

       

       “그건 그냥…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 거였는데?”

       

       “네에? 교수님! 설마 제가 교수님 심리전 쓰는 거 포착 못 했을 거라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말문이 막힌 펠레미아가 황급히 망토를 추스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래. 심리전을 시도한 건 맞아. 실패했지만. 그런데 그게 뭐?”

       

       “그게 아니라, 아까 미용실에서 수석교수님이 이상한 잠꼬대를 하셨거든요.”

       

       미용실에서의 일을 말해주자 펠레미아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지. 그냥 잠꼬대잖아. 뭘 그렇게 의미부여를 해?”

       

       “그런가요…. 하지만 펠레미아 교수님도 직접 들으셨으면 분명 의심을 하셨을 걸요?”

       

       “의심은 무슨…. 그럼 다들 쉬어.”

       

       “안녕히 가세요.”

       

       펠레미아는 빠른 걸음으로 리나와 애나에게서 벗어나 기숙사로 향했다.

       

       그때 이브로니크 성에서 참전용사들과 재회한 디안을 본 펠레미아는 절대로 자신이 알아낸 그의 정체를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

       

       디안의 의지에 반해 진실을 드러내는 건 숭고한 희생을 치른 영웅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기 때문.

       

       그래서 리나의 물음에 무조건 모르쇠로 일관하기는 했는데….

       

       리나 교수는 마냥 좋아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굉장히 예리한 직관과 날카로운 판단력을 지니고 있다.

       

       펠레미아가 그날 술집에서 디안에게 심리전을 건 것도 알아차렸고 디안의 잠꼬대 한 마디로 순식간에 진실의 경계까지 파고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펠레미아가 나서서 디안을 변호할 수도 없는 노릇.

       

       그러나 걱정은 하지 않는다.

       

       디안 교수는 라이너스 경과 함께 대륙을 구한 영웅 중 하나.

       

       리나 교수가 단순 호기심으로 어떻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 # # # #

       

       

       “원래 이렇게 생기신 분이었나요?”

       

       정장을 입은 나를 본 올리시아가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평소에도 이렇게 입고 다니시면 얼마나 좋아요.”

       

       지금 나는 올리시아가 시내 기성복점에서 사온 정장을 입고 반딱반딱한 구두를 신는 중.

       

       오늘이 바로 타타노크 마을 재건의 날 행사에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호오오, 그래요그래요. 자고로 황립 특수임무 아카데미의 전투수석교수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죠.”

       

       내 어깨를 탁탁 털면서 올리시아가 연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녀올게.”

       

       나는 교직원 구역을 나와 정문으로 걸어갔다. 라이너스가 마차를 정문으로 보내주기로 했기 때문.

       

       “안녕, 애나.”

       

       “어…? 누구세요…?”

       

       뭔가를 가득 끌어 안고 마굿간으로 이동하던 애나가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야, 나.”

       

       “수, 수석교수님…?”

       

       “주말에 뭐하냐? 애들 보러 가냐?”

       

       “어, 네…. 그런데 오늘 옷이… 어어….”

       

       뭐라고 횡설수설하던 애나가 황급히 저쪽으로 도망쳐 버린다.

       

       계속 정문으로 가니 저앞에 학생들이 바글바글 몰려 있었다.

       

       주말 외출을 나가려는 아이들.

       

       “어?! 디안 교수다!!”

       

       옆으로 돌아서 가려는데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는 비명을 질렀다.

       

       “어디어디?!”

       

       그 소리에 학생들이 마치 양떼마냥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디안 교수님!! 너무 멋져요!”

       

       “어디 가세요!!”

       

       “으응. 드래곤이랑 결혼하러 간다.”

       

       그다지 웃기지도 않은 농담인데도 아이들이 꺄르륵 꺅꺅 웃어대고 난리다.

       

       그런데 오직 한 명. 경악스러운 정색을 하고 있는 아이가 있었으니.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드래곤하고 결혼을 한다니…!?”

       

       바로 분홍대가리 화이트드래곤 힌드라스타다.

       

       저거는 맨날 놀러 나가고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기는 한 거냐.

       

       “드래곤이라면… 나밖에 없는데….”

       

       힌드라스타는 발발 떨면서 혼자서 미친 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싫어, 싫어…. 너 같은 거랑 교미 절대 못 해!!!!!!”

       

       거의 드래곤로어에 가까운 괴성에 학생들이 깜짝 놀라 힌드라스타를 돌아봤다.

       

       “저번에는 그렇게 두들겨 패더니 이제는 강간이라도 할 생각이야?! 싫어! 차라리 죽여! 죽이라고!!”

       

       “소피에, 너 혼자서 왜 그래…?!”

       

       힌드라스타를 거의 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하위권 학생들이 걱정하자 힌드라스타가 와락 울음을 터뜨리며 뛰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앙! 살려줘!!”

       

       “어디가! 외출 안 가!?”

       

       기숙사 쪽으로 도망치는 힌드라스타를 하위권 학생들이 쫓아갔다.

       

       어휴, 저 미친 드래곤. 쯧쯧.

       

       “멋진데요?”

       

       쏜살같이 멀어지는 힌드라스타를 보고 있는데 나이틀리가 학생들을 밀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너도 놀러 가냐?”

       

       “네. 그런데 어디 가세요?”

       

       “말했잖아. 드래곤이랑 결혼하러 간다고.”

       

       “하. 그러시군요. 시내 가실 거면 같이 가죠? 가는 길도 같은데.”

       

       “알아서 갈게.”

       

       “마차도 불렀어요. 그러지 말고 같이 가요.”

       

       나이틀리가 턱으로 정문에 서있는 마차를 가리켰다.

       

       가만 있어 봐, 저거 마차 저거….

       

       “너희는 다른 마차로 와.”

       

       마차 문을 열던 나이틀리가 세상 싸늘한 눈빛으로 추종자들을 돌아봤다.

       

       “이 마차는 나와 수석교수님이 탈 거니까.”

       

       “으응, 그래….”

       

       추종자들이 물러나자 나이틀리가 코웃음을 치며 먼저 마차에 올랐다.

       

       그리고는 좌석에 앉다 말고 엉거주춤 굳어버렸다.

       

       “어…?”

       

       “마차를 착각한 모양이군.”

       

       “어….”

       

       좌석 맞은편에 앉은 라이너스를 보는 나이틀리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아이고, 이거 라이너스가 타고 온 마차였네.

       

       “어, 음… 그러니까….”

       

       평소 늘 냉소적이던 나이틀리가 놀랍게도 멍청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니까… 라이너스 경…?”

       

       “비켜, 이 녀석아. 이거 네 마차 아니야.”

       

       뒤에서 다그치자 나이틀리가 꾸물거리면서 거꾸로 계단을 내려왔다.

       

       “아카데미에서 인기가 굉장히 많은 모양이군, 디안.”

       

       마차에 타며 문을 닫자 라이너스가 낮게 웃었다.

       

       “학생이 스스럼 없이 수석교수와 같이 마차를 타다니.”

       

       “쟤가 유별나게 싸가지가 없어서 그런 거야. 저 아이가 저번에 말했던 나이틀리 톨루즈다.”

       

       “아, 그래. 톨루즈 공작가의 영애 말이지. 당돌한 게 나중에 큰 인물이 되겠어.”

       

       “그건 모르지. 그래도 능력 하나 뛰어난 건 인정해. 보통의 학생이었다면 내가 시키는 거 반도 못 따라오고 관뒀을 거다.”

       

       “피는 못 속이는 법이니까. 그나저나.”

       

       라이너스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아주 멋지게 차려 입었군 그래.”

       

       “올리시아가 난리였어. 예의가 아니라고.”

       

       “잘했다. 마을 사람들도 좋아할 거다.”

       

       과연 그러려나.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나이틀리 저 녀석 괜찮으려나?

       

       당연히 괜찮지.

       

       ‘아카데미 정문에 라이너스 경이 마차를 타고 와서 디안 교수를 태우고 나가더라’라고 떠벌려 봐라. 누가 믿어주나.

       

       

       # # # # #

       

       

       “나이틀리. 나이틀리!”

       

       “네…?”

       

       리나 교수의 부름에 나이틀리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눈을 깜빡였다.

       

       “너 여기서 뭐하고 멍하니 서있어?”

       

       리나는 시내에 볼일이 있어 나가던 중 길가에 바보처럼 서있는 나이틀리를 발견한 것.

       

       잠시 리나 교수를 보던 나이틀리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교수님…. 라이너스 경을….”

       

       “응?”

       

       “라이너스 경을 만났어요…. 방금 전에….”

       

       “무슨 소리야? 라이너스 경이라니?”

       

       “저기 마차에 타고 있었어요….”

       

       나이틀리가 대로 저편으로 멀어지는 마차를 가리켰다.

       

       “디안 교수도 같이 함께 타고 갔어요….”

       

       “수석교수님께서…?”

       

       순간 리나는 어제 미용실에서 디안 교수가 했던 잠꼬대를 떠올렸다.

       

       “교, 교수님? 어디 가세요? 엇?! 그거 제가 부른 마차인데!?”

       

       “저 마차를 따라가 주세요!”

       

       리나가 정문에 막 멈춰서는 마차에 올라타 멀어지는 마차의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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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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