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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

       

       

       

       

       “헉.”

       

       눈을 떴다. 

       

       캐머해릴의 한 여관.

       더블 사이즈의 푹신한 침대에서 눈을 뜬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거기엔 은색 비늘을 가진 조그만 해츨링이 세상 모르고 침을 흘리며 한 팔은 옆으로 뻗고, 한 팔은 자기 배에 올린 채 자고 있었다.

       

       “큐우우, 큐우….”

       

       멀쩡히 잘 자는 아르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만, 근데 내가 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지?’

       

       악몽이라도 꿨나?

       

       기억을 되짚어 보려 했지만, 방금 꾼 꿈의 내용은 마치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아. 빙의 직후 집에 불화살 떨어질 때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아르를 만나기 전의 꿈을 꾸었는데 아르가 곁에 없어서 불안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옆에서 아주 잘 자고 있는데 말이야.’

       

       아르가 숨을 쉴 때마다 쪼그만 손과 함께 천천히 들썩이는 말랑한 배를 바라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실비아 씨가 안 보이네.’

       

       내가 늦잠을 잔 건가.

       

       꼬르륵.

       

       …늦잠 잔 거 맞나 보네.

       

       ‘실비아 씨야 뭐…. 호위 임무 때부터 비는 시간에 어디론가 가서 수련을 하다 오는 일이 많았으니.’

       

       이번에도 날 깨우지 않으려고 조용히 외출을 한 모양이었다.

       

       나는 어제 남은 음식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거실로 나가 테이블 위 봉투를 뒤적거렸다.

       

       ‘오, 나이스.’

       

       나는 마침 실비아가 여러 개 사 두었던 생크림 조각 케이크가 남아 있는 걸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옆에 놓인 포크로 케이크를 잘라 입 안에 넣자, 달큰한 생크림이 부드러운 빵과 함께 사르르 녹았다. 

       

       ‘크으으…. 아침부터 당 충전 좋고.’

       

       어제 건강을 위한답시고 달달한 간식류는 일부러 자제하고 과식도 안 했었는데, 그래서인지 지금 먹는 케이크가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으음. 그나저나 어제는 쉽게 잠 못 들 줄 알았는데 어느새 호로록 잠들어서 아침까지 다이렉트로 자 버렸네.’

       

       엊저녁, 나는 바로 옆에서 좋은 향을 풍기며 은근슬쩍 내 쪽으로 팔을 뻗는 실비아를 막기 위해 일부러 아르를 가운데에 두고 넘어오지 말라고까지 했었다.

       

       -…점점 가까워지시는 거 같은데요?

       -아르가 귀여워서요.

       -그럼 이 팔은요?

       -아르 배 쓰다듬으려고요.

       -이미 제가 쓰다듬어 주고 있는데요.

       -같이 쓰다듬으면 되죠. 헤헤.

       -쀼우!

       

       아르 배 쓰다듬기를 양보할 수 없었던 나는 손을 떼지 않고 있다가, 실비아의 손이 내 손 위에 얹어지자 어쩔 수 없이 잠깐 동안 양보를 해 주었다. 

       

       -후후. 이러고 있으니까 벌써 결혼한 것 같네요, 저희.

       -벌써라뇨.

       -그럼 아직도인가요? 빠른 시일 내에 할까요?

       -…….

       

       자꾸만 장난을 치는 실비아 때문에 아예 돌아 누워 보려고도 했지만.

       

       -쀼우우…! 삐유!

       

       내가 등을 지고 눕자마자 나를 애처롭게 부르는 아르의 소리에 다시 아르 쪽으로 누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늘 잠은 다 잤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훅 잠들어서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자 버렸다.

       

       ‘뭐, 잘 잤음 됐지.’

       

       꿈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는 걸 제외하면 나름 기분 좋은 스타트였다.

       

       “우움. 이건 식어도 맛있네.”

       

       너무 많이 사는 바람에 아르가 먹다 남긴 초코 찹쌀볼도 하나 집어 먹었다. 

       

       시간이 지나 조금 굳어 있었지만, 천천히 씹어 먹으니 충분히 먹을 만했다.

       특히 식은 상태의 초코 시럽이 적당하게 굳어 있어서 금방 해서 먹었을 때와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그렇게 어제 마음 먹었던 웰빙 식단을 하루 만에 포기한 내가 주섬주섬 간식을 주워 먹고 있을 무렵.

       

       “쀼우…?”

       

       아르가 깬 듯, 침실 쪽에서 작은 쀼 소리가 들렸다. 

       

       “쀼? 쀼우우!”

       

       아르는 곁에 내가 없음을 알아차리고는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좀 더 크게 쀼 소리를 냈다. 

       

       “아르야, 일어났어?”

       “쀼우…!”

       

       나는 마시려던 우유를 내려놓고, 재빨리 일어나 아르에게 달려갔다. 

       

       “쀼….”

       

       아르는 놀랐는지 그새 눈에 말간 눈물이 고인 채로 내게 손을 뻗었다. 

       

       “그래, 그래. 미안, 아르야. 너 잘 자는데 깰까 봐 내가 조용히 거실 가서 아침 먹고 있었어.”

       

       나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아르를 두 손으로 잡아 얼른 품에 안아 들었다. 

       

       자는 환경이 바뀌었다 보니, 일어났을 때 내가 곁에 없으면 무섭고 불안한 모양이었다. 

       

       ‘씩씩하고 가끔 의젓한 모습도 보이지만, 역시 아직은 작은 해츨링이니까.’

       

       나는 아르의 엉덩이를 토닥여 달래 준 뒤, 아르를 안은 채로 넓은 침대에 누워 한 바퀴 휙 뒹굴었다. 

       

       “뒹굴뒹굴!”

       

       그러고는 침대 한가운데에 누운 채로 아르를 번쩍 들어올렸다. 

       

       “쀼우!”

       

       다행히 아르는 금세 기분이 풀린 듯, 공중에서 활짝 웃으며 팔다리를 흔들었다. 

       

       “우리 아르, 비행기 한번 태워 줄까?”

       “쀼우?”

       

       나는 아르를 공중에 든 채로 한쪽 다리를 들어올려, 맨발로 아르의 말랑한 배를 받치고 손으로는 아르가 떨어지지 않도록 살포시 앞발을 잡아 주었다. 

       

       “부우웅!”

       

       그리고 발바닥에 아르를 얹은 채로 마치 하늘을 날게 해 주듯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입으로 효과음을 내 주었다. 

       

       “쀼우우!”

       

       비행기가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신이 나는 듯, 아르는 내 발바닥에 배를 댄 채로 짧뚱한 팔다리를 쭉 뻗어 슈퍼맨 자세를 한 채 쀼 소리를 냈다. 

       

       “슈우웅, 슝슝!”

       “쀼우웃!”

       “아구 귀여워, 우리 아르.”

       

       아르의 등에 있는, 아직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쪼그만 날개가 파닥거리는 걸 보는 내 입꼬리는 이미 귀에 걸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이거, 어릴 때 아빠가 나한테 해 줬던 거였는데. 이렇게 내가 써 먹게 될 줄이야.’

       

       괜히 나도 어엿한 아빠가 된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빠라….’

       

       언젠가 되겠지만, 언제 되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아빠라는 단어.

       그걸 내가 이 나이에 직접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럼 엄마는….’

       

       실비아 씨…?

       

       자연스럽게 사고의 흐름이 그쪽으로 가 버리자, 내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아니, 자꾸 실비아 씨가 결혼 얘기를 꺼내니까….’

       

       나도 모르게 벌써 무의식을 침범당한 것 같았다. 

       

       “쀼우우!”

       “자, 곧 목적지에 도착해 착륙합니다! 푸쉬유우.”

       

       나는 아르에게 비행기를 조금 더 태워 준 뒤, 입으로 효과음을 내면서 무릎을 서서히 접어 아르의 고도를 낮추었다. 

       

       그리고 아르가 거의 내 가슴 가까이 왔을 때쯤, 손으로 아르의 겨드랑이 밑을 잡아 발바닥에서 내려 주었다. 

       

       “비행기 체험은 재밌으셨나요, 손님?”

       “쀼우!”

       

       슈퍼맨 자세 그대로 내 가슴 위에 올려진 아르가 활짝 웃으며 자그마한 손을 쥐었다 폈다.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앞으로도 이런 거 자주 해 줘야겠네.’

       

       나는 아르를 잠시 안은 채 등과 엉덩이를 토닥여 주다가, 창문으로 들어오는 눈부신 햇빛을 맞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네.”

       

       시계를 보니 아직 퇴실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지만, 그래도 아르에게 아침을 먹이고 천천히 준비하려면 이젠 침대를 벗어나야 할 때였다. 

       

       나는 아르를 데리고 거실로 나와 남은 생크림 케이크를 잘라 주고, 파이어 마법으로 꼬챙이에 꽂은 소시지 구이를 따끈하게 한 번 더 데워서 후후 불어 아르에게 먹여 주었다. 

       

       “쀼움.”

       

       나는 아르가 소시지를 야무지게 베어 오물오물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빠 미소를 지었다. 

       

       ‘역시 잘 먹는 게 제일 보기 좋다니까.’

       

       그나저나 이쯤 되면 실비아 씨도 올 때가 됐는데.

       

       “좀 늦으시네. 뭐 다른 일 보고 계시나?”

       

       내가 중얼거리자, 물고 있던 소시지를 꿀꺽 삼킨 아르가 나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레온, 실비아 온니 찾아?”

       “으응. 생각보다 늦으셔서.”

       

       내 말에 아르는 한손을 들어 뭔가를 잡고 슉슉 휘두르는 시늉을 하며 대답했다.

       

       “실비아 온니는 아까 수련 가따 온다고 해써. 레온은 자고 이썼는데, 나만 잠깐 깼어써.”

       “아하. 아르한테 말하고 나가셨구나. 실비아…잠깐만. 뭐라고, 아르야?”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순간 내 귀에 들어온 특정 단어에 놀라 되물었다.

       

       “나는 온니가 더 코오 자라고 배 쓰다듬어 조서, 그냥 다시 자써. 근데 일어나쓸 때 레온도 업써져서 잠깐 무서워써. 그래도 지금은 갠차나. 비행기 잼써써. 헤헤.”

       

       아르는 기분이 좋은 듯 종알종알 말을 하며 웃었다. 

       그러고는 굳어 있는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레온? 왜 구래?”

       

       나는 잠시 머릿속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을 아주 빠르게 반추했다.

       그리고 곧 할 말을 정리한 뒤,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아르야. 근데 그…. 저번에 그렘 마을에서는 길드 직원 누나 보고 ‘누나’라고 부르지 않았었니? 왜 갑자기 실비아 씨 보고는 언니라고 부르는 거야?”

       

       아르는 그 말에 살짝 얼굴을 붉히며 두 손을 소심하게 톡톡 마주쳤다.

       

       “우응…. 그때는 레온도 그렇게 부르길래 그냥 여쟈 어른한테는 다 누나라고 부르는 건 줄 알아써. 근데 나중에 사람들 얘기하는 거 가방에서 듣다가 남쟈 여쟈 따라서 달라지는 거 알아써.”

       “아…. 그랬구나.”

       

       대답은 차분하게 했지만, 내 머릿속은 이미 혼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맙소사. 진짜 전혀 몰랐어.’

       

       아르가 암컷이었다니.

       

       ‘아니, 아니야. 침착해. 레온. 아르가 암컷이었다고 해서 딱히 달라지는 게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 말대로다. 

       

       그냥 지금까지 아들인 줄 알았는데 사실 딸이었던 거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그것대로 혼란스럽긴 마찬가지긴 한데.

       

       ‘진정하자. 내가 혼란스러워하면 아르도 덩달아 혼란스러워할 거야. 그냥 나는 지금처럼 귀여운 아르를 딸처럼 잘 키워 주면 되는….’

       

       그리고 그 순간.

       

       -…소중한 딸을 잘 부탁하마.

       

       쿠웅.

       

       나는 갑자기 깨질 것 같은 두통과 함께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눈을 감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레, 레온? 왜 구래? 어디 아픈 고야? 레온!”

       

       아르가 눈이 휘둥그레진 채 쀽 소리를 내며 내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운명이 부른 자여.

       

       [현재 단계에서 접근하기 힘든 기억을 ‘트리거’를 통해 불러오고 있습니다.]

       [사용자가 기존에 가진 기억을 기반으로, 불러올 정보로 인해 발생할 충격을 완화합니다.]

       [완화에 성공, 접근이 허용되었습니다. 기억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꿈에서 보았던 모든 기억이, 내 머릿속에서 물밀듯 흘러 나왔고.

       

       “레온…. 쀼우우우!”

       

       한참 후, 아르가 나를 보며 어쩔 줄 모른 채 눈물을 펑펑 흘릴 때쯤.

       

       “이제 괜찮아. 아르야.”

       

       나는 땀 범벅이 된 이마를 소매로 닦으며, 아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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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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