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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0

    <660 – 무책임한 쾌락(8)>

     

    선황시절, 제국이 주도하는 대륙의 질서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다.

     

    “네팔루스의 인민들이여. 우리는 제국의 폭정을 피해 독립국가를 세웠으나, 이제 저들은 우리에게 곡물을 상납하거나 모든 자산을 잃고 노예로 돌아가느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크흑. 시장님. 우리는 이제 어찌하면 좋습니까? 정녕 제국에 수탈당하는 길밖에 없는 겁니까?”

    “시간을 주십시오. 우리는 도시의 명운을 뒤바꿀 지혜로운 현인에게 도움을 청할 것입니다.”

     

    먼 옛날, 척박한 대지를 개척하여 개척도시를 세웠던 이들이 모든 특혜가 소멸하고 제국의 내륙도시와 같은 폭정에 당하기를 거절하며 독립을 천명한 결과는 하나같이 수탈과 멸망이었다.

    수많은 국가가 제국이 요구하는 곡물상납량을 감당하지 못해 무너지고 전 국민이 노예로 전락했다.

    그런데 네팔루스와 같은 처지에 놓였던 도시국가들이 기적적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제국은 넓습니다. 그만큼 모든 산업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크지요. 대륙전역에 흩어진 산업기능을 하나의 도시에 집약하십시오. 그리하면 소국들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 제일의 교육기관 기프트 아카데미 행정학부 졸업생 출신의 현자는 20개의 약소국을 정밀제조업 특화, 마도연구 특화, 마석연구 특화, 비공정 조립 특화 등의 특화과정을 거친 특화도시로 탈바꿈했다.

    곡물보다 더한 고가치 기술이 집약된 도시는 자연스럽게 제국의 손에 멸망하는 대신, 제국과 손을 잡고 상생할 수 있었으니.

    멸망의 기로를 벗어나 대부흥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북부이십성의 구원자라 불리는 위대한 현자 <에코너스>이시여. 부디 저희에게도 도움을 주십시오. 어느 산업이 저희를 살아남도록 도울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현자 에코너스는 네팔루스를 돌아보기도 전에 차갑게 단언하였다.

    시장은 충격받아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벌벌 덜다가 현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렸다.

     

    “어째서입니까! 저, 저희는 인구수도 많습니다. 살아남고자 하는 시민들의 의지도, 절박함도 부족하지 않단 말입니다!”

    “우선 자원이 없습니다. 레어메탈이 없으니 신소재 및 첨단산업이 불가합니다. 다음으로 시기가 늦었습니다. 자원이 없어도 수요가 많던 산업특화도시는 이미 다른 도시가 모두 선점했지요.”

    “그들의 도시와 같은 역할을 노린다면…!”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당신들과 같은 처지로 전락하고 싶지 않은, 생존을 위해서라면 모아둔 자산을 모두 쏟아붓는 한이 있더라도 기꺼이 네팔루스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기존도시를 상대로.”

     

    선황의 성정을 고려하면 제국의 두 도시가 서로 전쟁을 일으키더라도 전쟁 전의 세납보다 더한 세율을 매기고 도시가 이를 받아들이기만 해도 기꺼이 사태를 묵인할 것이다.

    제국 전역의 곡물을 가혹할 정도로 모으고 제국의 적을 배제하는 일 외에는 어떠한 관심도 없는 선황이었으니까.

     

    “자원이 없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당신들에게는 불가합니다.”

    “어째서입니까! 우리의 무엇이 그리도 잘못되었기에 기회가 없단 말입니까!”

    “자원 없이 살아남을 방법은 지식특화. 잊혀진 고대의 신비학의 정수를 한 도시에 집약한다면 지식산업과 연구시설, 창업지원기관으로 대륙각지의 인재를 모을 수 있습니다.”

    “한데 어째서 우리는 안 된다는 겁니까!”

    “이 땅은 어떠한 신비와도 밀접하지 않았습니다. 대륙삼대금림, 대륙오대절경, 대륙칠대마경. 그 무엇도 인접하지 않았으니 신비학을 연구할 토대와 기틀이 다져지지 않았고, 정통의 수호지에서도 감히 정통성에 도전하는 당신들을 용서치 않을 겁니다.”

     

    네팔루스의 시장이 다급히 지혜를 쥐어짰다.

     

    “신비가 아닌 마법이라면! 단순한 마법은 어느 신비와 밀접하지 않아도 연구와 탐구만으로 도전할 수 있지 않습니까!”

    “마탑이 우스워 보입니까? 오색마탑은 제국에 이미 둥지를 마련했고 선황의 뜻을 거스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마도지식에 손을 뻗는 순간, 당신들은 대마도사가 도시 하나를 지우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체험할 수 있을 겁니다.”

     

    없다.

    모든 지식과 산업, 신비는 발원지와 특화지역, 독점조직이 존재했다.

    네팔루스는 멸망한다.

    북부이십성의 구원자, 현자 에코너스가 직접 자신의 입으로 종말을 확언했다.

    그들에게는 이제 어떠한 희망도, 미래도 남지 않았다.

     

    “어흐흑. 우린 끝났어.”

    “신이시여…”

    “빌어먹을 신 타령도 집어치워! 신학자 놈들이 세운 직할령이 아니면 우리같은 미천한 놈들은 신의 힘에 의지해서 살아남을 수도 없다고!”

     

    선황은 유일신 태양의 소페미아를 국교로 삼았다.

    주류 24신과 그들을 따르는 신성직할령을 세웠다간 당장 사교도시로 지정 당하여 이단심문관이 출동할 것이고, 도시는 하루아침에 소멸한다.

    제국의 강대한 권력은 그들이 살아남고자 하는 모든 방법을 틀어막고 철퇴를 내리칠 준비만을 했다.

    제국이라는 이름의 폭력.

    그 폭력이 이토록 두렵고도 가증스러울 수가 없다.

    이 순간, 그들은 제국을 대륙에서 가장 증오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 거대한 증오와 원망의 기운은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존재를 불러들였다.

     

    “도시 꼴이 말이 아니구나. 곧 죽을 자들만 모인 죽은 자들의 도시가 따로 없어 보이거늘, 어찌 도시에 살의가 이토록 들끓느냐?”

    “제국이 우리의 살길을 모두 틀어막았기에 그렇습니다. 왜, 당신도 우리에게 살길을 보여주고자 찾아오셨습니까?”

     

    망해가는 도시의 시장에게 접견 요청을 해온 여행자에게 시장은 흔쾌히 접견을 허락했다.

    가질 것 하나 없는 도시에는 방문자도 없을뿐더러, 허튼 소리로 도시의 남은 자산과 시민들을 빼돌리려는 노예상을 열 넘게 베어버리며 이번엔 어떤 사기꾼이 그의 분노를 사서 칼에 맞으려 드는지 살심마저 일었기 때문이다.

     

    “살길이라. 그런 길이 하나쯤 있기는 하지.”

    “하. 대륙의 현자 에코너스조차 멸망이 확정되었다고 공언한 도시에 살길이 있다? 어디 들어나 봅시다.”

     

    도시 주민의 대 이주를 계획했던 자들의 노림수가 도시를 벗어난 부와 주민들의 약탈을 노리는 도적단, 노예상단, 접견도시의 흉계임을 이미 수차례 간파하고 수급을 베어 성문에 걸어왔던 시장이다.

    그는 이 건방진 방문자가 이번에도 허튼 소리를 하는 순간, 단숨에 검을 뽑을 작정이었다.

     

    “개척도시의 시장이여. 가진 게 몸밖에 없는 이들이 무엇을 파는지 아는가?”

    “몸이겠지.”

    “그렇소. 하면 남자가 몸을 팔면 무엇이 되고, 여자가 몸을 팔면 무엇이 되는지 아시오?”

    “깡패와 창녀.”

    “정확하오. 그것이 당신들이 살 방법이오.”

     

    성주는 당황했다.

    깡패와 창녀의 도시라니.

    이보다 모욕적일 수가 없는 험담이었으나, 정작 이 말을 건네는 이의 눈은 심드렁하고 어떠한 욕심도 보이지 않았다.

     

    “귀인의 고견을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의관을 정제한 후 수척한 얼굴이나마 보다 진지한 눈으로 방문객을 대하니, 심드렁한 얼굴로 대충 답하던 방문객 또한 귀찮음을 무릅쓰고 몇 마디를 더해주었다.

     

    “제국의 약소도시들이 살아남을 길이 기술과 지식의 집약이라 하였던 에코너스의 도시집약론은 옳았소. 허나 기술과 지식의 숭고한 발전만을 논하였던 에코너스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에는 어두웠지. 그의 고고한 자존심이 놓친 가장 미천하고 천박한 욕심이 당신들이 살아남을 길이오.”

    “…제국이 이를 용서하겠습니까?”

    “선황이 용서하지 못해도 대륙 각지의 욕망에 눈먼 권력자들이 기꺼이 지키려고 들 욕망의 도시를 만드시오. 많은 것을 내려놓을수록 살아남을 가능성은 더욱 커지지. 시장은 사람을 죽일 용기는 있지만 몸을 더럽힐 용기는 없으신가?”

     

    억울했다.

    제국의 명에 따라 도시를 개척하고, 스스로 일군 모든 것을 다시금 빼앗아 가려던 제국의 폭정이.

    이에 맞서 살아남을 수단을 모두 선점하고 그들에게 죽음만을 택하라며 칼을 겨누는 수많은 특화도시와 거대조직의 잔혹함이.

    연민했다.

    그저 당하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무력함을.

    내일이 두려워 극단적인 선택을 저지른 젊은이와 여인들의 부고 소식을.

    증오했다.

    세상 모든 존재를.

    인류라는 동족의 이기적인 모습을.

     

    “그리하면, 살아남는 것 이상을 해낼 수 있습니까?”

    “바라는 것은?”

    “복수.”

    “인내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기꺼이 당신이 보여주는 미래를 따르겠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어둡고 더러운, 진창을 기며 나아가는 인고의 길이라고 하더라도.”

     

    시장은 결정했다.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십시오. 북부이십성의 구원자 에코너스보다 당신의 이름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겠습니다. 우리의 성공이 당신을 드높이겠습니다.”

     

    인간의 욕망, 가장 낮고도 저열한 길이나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알려준 유일한 현인.

    무엇 하나 바라지 않고 지혜를 빌려준 모험가에게 시장은 기꺼이 고개를 조아렸다.

    모험가는 그 절대적인 충성을 앞에 두고 희미한 호기심이 생겼다.

     

    욕망을 외면하려는 자.

    욕망을 참고 자기 수양을 거듭하는 자.

     

    본성을 등진 이들이 주류로 득세하는 제국에서 그에 정면으로 반하는 길을 걸으려는 이 무지하고도 용감한 인간의 존재가.

    그런 시장의 뜻을 따르며 절대적인 지지와 단결을 보이는 도시 주민들이.

     

    “나의 이름은 레드타이드Red tide. 내게 지혜를 구하며 미래를 구하고자 가장 낮은 길을 기꺼이 길 것을 결정한 너희에게 환락의 도시라는 이름을 선물하노라.”

    “감사합니다!”

    “고개를 들라. 너의 인류를 향한 순수한 적의가 나의 호의를 이끌었으니, 그 정념이 너에게 새로운 미래를 허락하리라.”

     

    인간의 탈 너머에 깃든 사악한 암흑마나의 파동을 앞두고도 시장은 두려움 대신 희열을 느꼈다.

    마인.

    인류의 오랜 적.

    제국을 향한 복수를 이룰 가능성이 가장 높은 존재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으니.

    이미 제국과 인류에게 버림받아 그들에게 적의를 품어왔던 시장에게 이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기연이나 다름없었다.

     

    [암흑의 정수]

     

    시장은 암흑의 정수를 한 입에 집어삼켰다.

    환락의 도시에 새로운 마인, 아스모데우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

     

     

    마왕군 사천왕 레드타이드의 미약한 호기심과 자비 하에 탄생한 환락의 도시.

    제국조차 짓밟지 못한 환락의 도시의 주인 아스모데우스는 도시에 모여드는 어마어마한 부와 부정의 감정을 통해 힘을 쌓았다.

    이는 마인들이 지닌 통상의 암흑마나를 아득히 뛰어넘는, 마인의 그릇을 가득 채우고 그 너머를 넘보기에 충분할 성취를 허락하였으니.

     

    “이 세상 모든 욕망과 타락, 환락을 수집한 내게 이제 인간의 그릇은 원대한 욕망을 모두 품어내기에 부족하도다. 나는 오늘, 새롭게 태어나리라!”

     

    환골탈태.

    한 인간의 가능성을 가장 극대화시키는 형상으로 육신을 탈바꿈하는 진화의 순간이 아스모데우스에게 찾아왔다.

    디스트로이어가 오염된 신체를 절제하고 작지만 순수한 그릇을 새로이 일구었다면, 아스모데우스는 인간이라는 작은 그릇을 뛰어넘는 더 큰 그릇을 새롭게 만들어 내었으니.

    마에서 벗어나는 디스트로이어의 탈마脫魔의 길과 상극에 자리한, 마를 새로운 신체로 입는 아스모데우스의 입마入魔의 길이 열렸다.

    푸슈우우욱.

     

    고도로 농축된 암흑마나의 증기 사이로 세상 모든 환락을 하나로 빚어낸 것처럼 아름다운 미의 결정체가 무릎을 펴며 일어섰다.

     

    “축하하마. 나의 제자 아스모데우스여. 마침내 네가 마왕군 사천왕과 동격의 경지에 올라섰구나.”

    “이것이… 스승님의 경지.”

    “그렇다. 이제 너는 스스로 하나의 영지를 거느리며 세계에 자신만의 영역을 강요할 수 있는 마경과 절경, 금림의 주인이나 다름없다. 너의 환락의 도시는 삼대금림, 오대절경, 칠대마경과 다르지 않도록 성장할 것이다.”

     

    아스모데우스가 한 번의 숨결을 들이쉬자 영지 전역의 마가 요동치며 새로운 암흑신성의 탄생에 전율하여 숨죽였다.

    깊이 마신 숨을 내쉬는 순간, 환락의 도시의 경계면을 따라 세계의 자연마나가 밀려나고 왜곡되며 전율의 비명을 내질렀다.

     

    “자신의 영지를 지닌 마인에게 길을 알려줄 스승의 존재는 필요하지 않지. 영지를 떠나기 전, 마지막 선물을 베풀어 주마.”

    “금과옥조와도 같은 귀한 말씀을 도시의 법령보다 높이 받들겠습니다. 불민한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시옵소서.”

    “쾌락의 도시를 위협하는 새로운 도시가 탄생했다. 트로이 왕국의 수집도시. 진미와 의복, 병기와 체험을 넘나드는 수집은 장차 환락조차 발아래에 둘 거대한 욕망이 태동하는 도시이다.”

    “!!”

    “삼켜라. 나아가라. 그리고 지워라.”

     

    고개를 숙이며 복종의 자세를 취하는 그에게 레드타이드가 엄지와 중지를 붙여 마의 가호를 그었다.

     

    “마왕의 뜻을 따르는 네게 색욕공의 <칭호>를 하사하니, 이것이 너의 힘이 되어주리라.”

     

    마왕군 사천왕 레드타이드.

    그의 직속고위마인 아스모데우스.

    환락의 도시의 주인이 오크노디의 수집도시에 칼을 겨누기 시작했다.

     

    “급보입니다! 재단의 간부가 인접도시국가를 침공하던 3군을 절멸시켰습니다!”

    “…과연, 재단의 다크프린세스. 영토반환요청을 거부하기 무섭게 바로 행동에 나섰는가. 허나 진정한 마의 세력은 재단이 아닌 마왕군임을 알려주마.”

     

    아스모데우스가 손을 들자 창밖으로 번개다발이 연이어 내리쳤다.

    번쩍이는 창문 너머로 어느덧, 망토를 두른 수십 명의 마인들이 늘어섰다.

     

    “환락의 땅에 존재하는 모든 전송마법소의 전송마법사들을 지배, 모든 전송마법소에 더미데이터를 넣어 대륙전역의 연결망을 파괴하라. 재단의 발을 막아 수집도시에 보내질 재단의 지원군을 차단하는 것으로 암흑전쟁을 시작한다.”

     

    오크노디의 가벼운 잽에 애먼 환락의 도시와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동네북 약소국 대신 신흥사천왕이 탄생했는데 엉뚱한 곳에 전쟁이 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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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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