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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0

        

       먹는다.

       마신다.

         

       박진성은 벤치에 앉은 채 단순한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여러 방법을 통해 소화를 촉진했고, 위장이 비어있지 않도록 끊임없이 전투식량을 욱여넣었다.

       칼로리 폭탄 그 자체인 전투식량을 말이다.

         

       ‘흐음. 한 5,000칼로리 정도 먹었나….’

         

       그 전투적인 식사가 끝난 것은 일반적인 성인 남성이 하루에 섭취하는 열량의 두 배 정도를 먹었을 때야 끝을 맺었다.

         

       ‘시간도 어둑해진 것이…. 나쁘지 않군.’

         

       거기에 더해서, 날이 슬슬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고 말이다.

         

       진성은 전투식량 쓰레기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쑤셔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천천히 학교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보충 때문인지 인적이 드물게 변해버린 교정을 거닐고, 휴교 전에는 무인들이 영화에서 나올법한 온갖 아크로바틱한 동작과 기기묘묘한 무공을 사용하며 축구를 하던 운동장을 거닐기도 했으며, 환경미화부가 관리하는 화단을 보기도 했다.

       무인들이 밖으로 도망갈 때 사용하는 가스 배관을 보기도 했고, 창문으로 탈출하는 학생들을 붙잡기 위한 촉수 트랩도 보았다.

       학교 밖으로 도망치려고 하는 학생들을 제압하기 위한 수위의 제압용 둔기가 태양열에 충전되는 것도 보았고, 담배 피우는 학생들을 엿 먹이기 위해 설치된 물 폭탄 함정도 보았다.

       양지바른 곳에서 숙성되고 있는 유통기한이 지난 팩 우유를 보기도 했고, 학교 곳곳에서 잡힌 개미들을 태우고 있는 소각장을 보기도 했다.

         

       곳곳에 보이는 학생들의 흔적들.

       누군가에게는 장난스러운, 하지만 소중한 추억이 될만한 것들.

         

       진성이 거니는 곳곳에서는 바로 그러한 것들이 보였다.

         

       아마 그의 여동생들 역시 이러한 추억을 만들고 있겠지.

       아나스타시아도, 엘라도 같이 말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 진성이 보는 흔적 중 몇 개는 그녀들이 행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묘한 장난을 좋아하는 아나스타시아와 활발한데다가 장난기 많은 이아린의 조합은 그야말로…이세린의 말처럼 ‘최악의 조합’ 그 자체일 테니까 말이다.

         

       꿈속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오는 아나스타시아의 능력.

       발이 넓은데다 활동적이기까지 한 이아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둘이 합쳐진다면 가벼운 장난으로 끝나지는 않겠지.

         

       ‘즐겁게 지내면 좋은 것이지.’

         

       뭐, 그게 나쁜 것은 아니다.

       옛날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장난으로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요정 같은 짓을 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잠깐 화를 내거나 짜증을 냈다가도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장난을 치고 다니는 것이 무어 문제가 있겠는가?

         

       그것 또한 학생 시절에 할 수 있는 장난이요, 나중에 돌이켜보면 즐거울 추억이라.

         

       그녀들이 그러한 추억을 쌓는 것은 진성에게는 기쁜 일이었다.

         

       ‘나쁜 기억은 흉터와 같아 강렬한 충격을 주고, 그 흔적은 오래오래 남는다. 좋은 기억은 그림과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래거나 풍화되고, 나쁜 기억에 흉터가 생기면 일그러지거나 부서지기도 하는 법이라.’

         

       다만 그 그림의 숫자가 많을수록 그 장엄함은 배가 되고, 군데군데 보이는 흉터마저도 그림 일부로 품을 수 있게 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나쁜 기억에 집착하지 않아야 할 이유이며, 좋은 기억을 쌓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좋은 기억만 쌓으면서 살기에도 짧은 것이 인생이라.

         

       ‘좋은 일이지….’

         

       특히 태생부터가 뒤틀렸으며, 탄생 역시 기괴하였고, 결국에는 전쟁터를 오가며 끔찍한 것만 보다가 호기심 속에서 단명하기까지 한 아나스타시아는….

         

       ‘좋은 일이야.’

         

       참으로 좋은 일이라 할 수 있으리라.

       포성과 비명 대신에 친구들의 목소리를.

       차갑게 식어가는 시체 대신에 친구들끼리의 따뜻함을.

       살육의 기억 대신에 좋은 기억을.

         

       그 모든 것이 어찌 복이 아니라 할 수 있으랴?

         

       그렇기에.

         

       ‘내가 지금 이곳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지….’

         

       그 행복이 깨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 할 수 있겠지.

         

       이아린이 회귀 전처럼 되지 않게 하려고.

       다른 이름을 받게 된 아나스타시아가 회귀 전과는 다르게 행복하게 오래 살게 하려고.

       그래서 진성은 이곳에 온 것이 아니겠는가.

         

       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매연 때문일까?

       하늘은 새까맸다.

         

       하지만 그의 눈에 흩날리는 불꽃은 그 매연마저 꿰뚫어 보았고, 구름 너머에 있는 별들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그 별들은 빛으로, 깜빡임으로 그에게 속삭인다.

         

       아.

         

       하늘에서는 별이 빛으로 속삭인다.

         

       땅에서는 균근이 박테리아로, 화학 물질을 뿜어 그의 코끝을 간질이며 속삭인다.

         

       시각으로.

       후각으로.

         

       그렇게 두 가지 감각이 그에게 언어가 되지 못한 것으로 속삭이니, 그 두 정보는 안으로 들어가며 뒤섞이고 흩어지고 합쳐지기를 반복하며 의미가 되어 그의 뇌리에 들어가게 되고, 번개처럼 흩어지며 그의 영혼에 어떠한 직감을 준다.

         

       그 직감은 압축되고 희미한 그것이라.

         

       진성은 그 속삭임 속에서 발걸음을 옮긴다.

         

       서울 이능 특성화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동아리 활동을 하는 그곳.

       이아린이 말했던 ‘엘리베이터’가 있는 그곳.

       진성이 특히 신경 써서 군대개미를 보냈던 바로 그곳으로.

         

       지도를 확인하지도 아니 하였고, 안내를 하는 이도 없건만.

         

       그는 오직 속삭임을 들으며 발걸음을 옮긴다.

       개미가 페로몬으로 길을 찾듯이 그렇게 그는 움직인다.

         

       익숙한 움직임으로 조명이 꺼진 계단을 내려가고.

       군대개미가 휩쓸며 난장판이 되어버린 부실들을 거닐고.

       그리고 마침내 어떤 한 엘리베이터 앞에 그대로 멈추어 선다.

         

       “흐음.”

         

       위험 화물 엘리베이터.

         

       일찍이 이아린이 괴담에서 언급했던 바로 그곳이다.

         

       진성은 그 엘리베이터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아린이 말했던 것처럼 그곳을 통해서 비밀스러운 장소에 갈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딱히 진성의 눈에 보이는 것은 없었다.

         

       하기야 맨눈으로 보인다면 그것 또한 이상한 일이겠지.

         

       비밀스러운 장소에 가는 장치가 눈으로 보인다면 설계 미스가 아니겠는가.

         

       진성은 왼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뿌득!

         

       그리곤 아까 주술을 사용하느라 손가락 끝에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손톱 하나를 힘줘서 뽑아버린 뒤,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곤 품 안에서 수통 하나를 꺼내 뚜껑을 연 뒤 왼손에 붓기 시작했다.

         

       쩌저적.

         

       수통에서 물이 쏟아지고, 끌어올린 한기가 손끝에 집중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만난 한기를 만난 물은 얼어붙으며 손끝을 얼리기 시작한다.

         

       마치 없어져 버린 손톱을 대체하기라도 하는 듯 뾰족하게.

         

       “기맥(氣脈)을 이곳에 새기니 기는 그 길을 따라 움직이게 되리라.”

         

       얼음 손톱을 만든 진성은 그것을 오른손바닥에 가져갔다.

       그리곤 자기암시에 가까운 말을 하며 천천히 오른손바닥을 긋기 시작했다.

         

       길게 이어지는 선.

       곡선을 그리며 원을 그리고, 그 원 안에 또 원이 그려진다.

         

       마치 문어의 빨판 같은 형태로.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상처는 피를 줄줄 흘리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뿜어내고, 그와 함께 진성의 자기암시로 중얼거린 말처럼 기가 흐르는 통로가 되었다.

         

       다만 단전을 만들지도 않았고, 무인들이 자연경이라 부르는 경지처럼 자연과 일체가 되었기에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는 경지에 이른 무인도 아니었던지라 그곳에 흐르는 것은 정말로 보잘것없는 수준의 기(氣).

         

       무공 입문자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잘것없는 수준의 기운이다.

         

       하지만 작은 것에는 작은 것 나름의 쓰임이 있는 법.

         

       진성이 그려놓은 상처대로 흐르는 기(氣)는 원시적인 형태의 무공의 묘리를 구현해낸다.

         

       그것은 주술에 가까운 재주.

         

       무인들이 훗날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흡(吸)의 묘리로 발전시키는 것의 원형.

         

       덜컹.

         

       원시적인 형태의 흡(吸)의 묘리가 약한 형태로 발현된다.

       오른손바닥이 엘리베이터에 단단하게 밀착되고, 문어의 빨판처럼 손바닥과 엘리베이터의 철문 사이를 진공으로 만들며 착 달라붙는다. 그리고 그렇게 달라붙은 손은 무인 못지않게 단단하게 진성의 몸을 고정해주었고.

         

       끼기긱.

         

       진성이 얼음 손톱을 세워서 엘리베이터 문을 열 때 그를 지지해주었다.

         

       끼기기기긱.

         

       그렇게 위험 화물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아주 약간.

       사람이 지나가기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말이다.

         

       아마 이 이상 열기 위해서는 주술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위험 화물 엘리베이터’라는 이름에 걸맞게 문은 육중하고 두꺼웠으며, 일정 수준 이상 열리지 않도록 어떠한 장치가 있는 듯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자그마한 틈이라고 해도 쓸모는 있는 법.

         

       진성은 그 틈새 사이로 조금 전 뽑았던 손톱을 밀어 넣었다.

         

       톡.

         

       피범벅이 된 손톱은 틈새 사이로 들어가 자그마한 소리와 함께 튕기며 바닥을 향해 자유낙하를 시작하였다.

       엘리베이터가 지나가는, 하지만 손톱에는 너무나 멀고도 깊은 그 공간을 향해서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손톱이 바닥에 닿고.

         

       …

         

       정말로 작디작은 기척을 내었을 때.

         

       ‘이곳이 아니군.’

         

       진성은 그 기척이 내는 소리를, 그 속삭임을 듣고는 깨달았다.

         

       이아린이 말한 용맥과 정기는 저 위험 화물 엘리베이터가 아니라는 것을.

       저 위험 화물 엘리베이터를 탄다고 해도 그곳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엘리베이터가 아니다…흐음.’

         

       그렇다면 어디인가?

       괴담의 내용이 맞지 않는다면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어디에 비밀스러운 장소가 숨어있고, 어디로 가야 이아린에게 닥칠 일을 막을 수 있는가?

         

       진성은 눈을 감았다.

       코로 네트워크로 전해지는 향기를 맡았고, 자신의 직감을 날카롭게 세웠다.

         

       균근이 말한다.

       직감이 속삭인다.

       의미조차 되지 않는 것을 그의 머리에 전달한다….

         

       아.

         

       그곳이구나.

         

       “계단이로군.”

         

       계단이다.

         

       그곳에 찾는 것이 있다.

         

       피어오른 버섯을 요정의 발자국으로 삼아서.

       그 인도를 따라서.

       버섯의 속삭임을 듣고, 포자의 흐름에 맞춰서.

         

       갈지어다.

       계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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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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