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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1

    <661 – 무책임한 쾌락(9)>

     

    간부회의를 기다리며 집사장은 모처럼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집사장의 취미는 젠가 쌓기.

    <수집>이란 물질의 소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행동의 수집, 결과의 수집.

    이 또한 수집이 될 수 있으니, 세상의 모든 천재들이 유별난 취미활동을 하며 괴짜 소리를 듣는 이유도 이와 연관이 있다.

    집사장은 그중에서도 비교적 온건한 수집취미를 지녔는데, 보드게임이 그중 하나였다.

     

    “제프. 오늘은 젠가를 쌓겠다.”

    “집사장님의 취미에 오늘도 어울려 드려야겠군요.”

     

    집사1부의 집사 제프는 조폭도 눈 마주치면 벌벌 기며 달아날 몰골로 신중하게 금속블록을 마나의 실로 당겨 뽑아냈다.

    고수들의 젠가블록은 일반적인 젠가와 달리, 불어넣은 마나의 속성에 따라 인접한 블록을 불태우거나, 위에 무게가 더해지면 진동이 일어나 상대 턴에 무너지게 만드는 등의 방해술식과 함정술식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이런 술식을 자극하지 않고 뽑아내며 상대턴을 방해할 술식을 잠복시켜두는 행위는 과연 집사장의 취미에 걸맞다고 집사들도 고개를 끄덕일만했다.

    집사장이 마력초를 내려놓고 팔뚝까지 셔츠를 걷고는 주먹을 쥐었다 펴며 감각을 끌어올렸다.

    신중하게 마나술식을 전개하며 블록을 뽑아내고자 빌드업을 쌓는 도중이었다.

     

    벌컥!

     

    “급보입니다!”

     

    와르르.

     

    젠가블록이 무너졌다.

    급한 소식을 들고 들이닥친 집사도, 손을 내민 채로 무너진 블록을 내려다보는 집사장도, 니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아냐고 눈으로 묻는 집사 제프도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는 싸늘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상사의 취미를 제대로 방해했음을 깨닫고 두려움에 벌벌 떠는 집사에게 집사장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간부회의장으로 향하는 인근 모든 도시의 전송마법소가 습격당했습니다. 또한 간부회의장으로 향하던 간부 한 명의 부대가 습격을 받아 궤멸했습니다.”

    “습격자는.”

    “환락의 도시에 목줄이 채워진 고수들로 이루어진 정예부대, 환락쇠사의 습격이라고 합니다.”

    “쥐새끼처럼 얌전히 지내도 모자랄 놈들이 재단에 이를 드러내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외계의 유해한 존재들을 물리칠 덜 해로운 세균이라고 봐주었더니 마왕군이 기어이 미쳐버린 건가?”

     

    이사장 즉위 이전, 재단의 전신인 결사 시절이라면 마왕군의 이러한 습격에는 머리를 조아리며 벌벌 떨고, 저들이 진노한 사정을 알아내고자 안절부절못하며 사정을 파악하기 급급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사장은 결사의 수준을 급격히 상승시키며 재단을 음지 최대조직으로 성장시켰다.

     

    “재단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알고도 협력관계였던 우리를 훼방했다면, 이는 북부에서 입은 손실에 대한 대가를 치르겠다는 보복이겠지.”

    “아닐지도 모릅니다. 무언가 오해가 있다면 진상을 파악하고 해소해야 할지도…”

    “그럴 수도 있지. 우리가 약자였다면.”

     

    집사장의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었다.

     

    “우리가 약자인가?”

    “아닙니다.”

     

    벌떡 일어난 집사 제프가 답했다.

    테이블 위의 반쯤 허물어진 젠가 블록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지만, 누구도 더는 젠가 블록 따위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놀이를 한다면 신중히 대하겠지만, 놀이시간이 끝난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장난감이자 쓰레기에 불과한 존재들.

    거치적거리고 거슬리는, 어딘가 먼 곳에 대충 치워서 박아두어야 할 짐더미들.

    마왕군도 재단의 집사1부 소속 집사들에게는 젠가 블록과 하등 다르지 않았다.

     

    “재단은 누구에게도 시험받지 않는다. 오직 수집하고 격리하고 처분할 뿐.”

    “분부만 내려주십시오.”

    “수집해라. 중간계에서의 휴식을 방해하는 걸림돌을. 우리가 무엇과 싸워왔는지, 인류의 진정한 저력은 어느 정도인지 알려줄 시간이다.”

     

    재단 집사1부의 정예집사들이 환락의 도시에 맞서 출동했다.

     

     

    * * *

     

     

    싱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혹시 재단은 간부회의를 전장에서 적군 모가지를 따면서 합니까? 발언권은 킬수로 주어지고?”

    “음. 내 기억으로는 그렇지 않았군요. 싱 군이 생각하는 그런 회의가 벌어진 적은 없습니다.”

    “그럼 왜 우리한테 환락의 도시의 군단을 습격하라는 지령이 뜬금없이 날아오는 겁니까?”

     

    기껏 핑크베리 교수가 시킨 적도 없는 근육변형술까지 펼친 입장에서 변장한 신체를 유지하기도 빡센데 여기서 힘까지 써야 하니 빡이 안 칠 수가 없었다.

     

    “하하하.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네 차림새가 아주 영락없이 아이돌인데 심지어 배꼽을 노출하고 트윈테일까지 한 자를 누가 남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인식이 문제가 아닙니다. 기껏 힘들게 한 신체변형이 풀릴까 봐 거슬려서 짜증이 나는 겁니다.”

    “스트레스라도 푼다고 생각하십시오. 전장에서 다른 간부가 우릴 보러 옆 전장에 넘어올 것도 아닌데 시원스럽게 다 썰어버리는 겁니다.”

     

    말이야 맞는 말이다.

    혼자 스트레스 받아도 상황이 변하진 않는다.

    환락의 군단 진군로 중 하나를 골라 나아가니, 적잖은 규모의 군세가 눈에 들어왔다.

     

    “이 기운은…”

     

    싱이 눈살을 찌푸렸다.

     

    “암흑마나.”

    “하하. 환락의 도시가 아주 제대로 선을 넘었군요.”

     

    3만은 족히 넘는 군단병력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암흑마나를 받아들였는지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암흑병사로 관측되었다.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의 비율은 저들을 마왕군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스스스스.

     

    거대 철골이 마름모처럼 늘어선 벌판 뒤에 고슴도치처럼 장창을 세운 부대가 자리하고, 그들을 지나쳐 진입하는 길목마다 방패병이 이리저리 길을 형성하며 포진하고 있다.

    진형 내부에는 궁병과 검병, 창병 등이 각 부대를 지휘하는 환락쇠사로 추정되는 지휘관급 강자의 지휘를 받고 있으며 후방에는 본대와 예비대도 있다.

     

    “위험한 느낌이 드는데, 돌진해도 되는 겁니까?”

    “변환방패진. Transmute Shieldgrove라고도 불리는 고등전법입니다. 대군요격과 강자요격에 모두 특화된 진형이지요. 방패병들의 방패에 술식이 새겨져 있어, 저렇게 뭉쳐있으면 근거리에서 방패를 깨부수지 않는 한, 강력한 마법저항력과 물리저항력을 지닙니다.”

     

    대충 들어도 깨는 데 보통 힘이 들어가는 진법이 아닌데,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환락쇠사들이 기습까지 하면 힘이 빠진 채로 갉아 먹히기 딱 좋다.

     

    “아쉽게도 저는 전투특화형 간부가 아닙니다. 그러니 트윈테일츤데레전장의아이돌 속성을 지닌 희귀한 전속 호위 싱 군이 돌진하기 전에 가벼운 견제를 해드리겠습니다.”

     

    파시블 예프가 인간의 가죽을 두른 언데드의 몸으로 대지에 한 손을 짚었다.

    그러자 그와 싱이 선 대지의 초목이 빠르게 시들며 쩌적 소리가 나도록 대지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

     

    싱은 문득 깨달았다.

    감독관 파시블 예프의 클래스는 연금술사.

    <변환>에 있어서는 핑크베리 교수의 변장술 못지않은 전문가임을.

    대지의 초목을 제물로 바친 결과, 전장 저편의 적진이 발을 디딘 땅에서 기괴한 색채를 지닌 이계의 초목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단단했던 진열이 깨지고 급기야 초목이 군대를 공격하기에 이르니, 환락쇠사들이 힘을 쓰기에 이르렀다.

     

    “개인의 힘으로 군단의 진형을 뒤흔들어…?”

    “음, 오늘은 뽑기 운이 좋군요. 저희 세계의 초목과 등가교환을 허가한 세계의 초목이 아주 싱싱하고 공격적입니다. 모처럼이니 숨을 참아보십시오.”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싱은 대기중의 공기가 빠르게 고갈되는 현상을 느끼며 깜짝 놀라 <영역>을 전개하였다.

    그의 영역 내부의 공기가 고갈되는 것을 막아내기 무섭게, 이번에는 사라진 공기를 대신하여 허공에 열린 거대한 문으로부터 유독가스가 분출되기 시작하였다.

     

    “중간계의 신선한 공기와의 등가교환으로 이계의 신선한 공기가 지급된 모양입니다.”

     

    유독가스에 노출된 적병들이 픽픽 쓰러지니, 환락쇠사들이 급히 기운을 전개하여 싱이 벌인 영역보호의 기예를 펼쳐 간신히 공기를 보호했다.

    영역전개가 강제되는 상태로 초목과의 싸움을 이어 나가는 그들에게 파시블 예프가 손끝을 겨누었다.

     

    “마지막은 이걸 바쳐봅시다.”

     

    파시블 예프의 영역이 교묘하게 주변환경을 장악하며 이를 자신의 것처럼 제물로 바치는 현상이 이번에는 창공에서 펼쳐졌다.

    제물영역의 대상으로 전락한 세 번째 대상은 바로 창공 그 자체.

     

    카가강… 콰직!

     

    푸른 하늘과 탁 트인 시야, 하늘 위를 떠다니던 구름과 시체를 노리고 전장을 선회하던 새들이 거대한 뒤틀림에 집어삼켜졌다.

    거울처럼 어긋난 하늘의 균열이 깨지는 순간, 전장에 자리한 모두가 목격할 수 있었다.

    지상의 모든 존재를 공중으로 끌어당기는 커다란 눈이 달린 붉은 달과 촉수를 뻗어 허공에 떠오른 존재들을 집어삼키는 붉은 구름의 존재를.

     

    끄아악

    아아악

     

    애처롭게 들리는 적들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싱은 할 말을 잃었다.

     

    “이래놓고 전투특화형 간부가 아니라고…?”

    “하하. 인간 시절에는 그랬습니다만 세계 따위, 이계에 집어삼켜져도 딱히 상관없지 않나 싶어서 연금술의 금기를 범해보니 의외로 쓸모가 있더군요. 새로운 상위클래스로 금기술사가 개방된 것 같은데 이참에 전직이나 해봐야겠습니다.”

    “……”

     

    문득 싱은 떠올렸다.

    감독관 구출작전에 나섰을 당시, 이미 사다코 교수의 강의에서 감독관을 본 적이 있었던 티토소가와 즈앙이 지나가듯이 했던 이야기를.

     

    -인질로 잡힌 감독관이 어떤 분이셨냐고? 되게 착한 분이셨어! 그래서 그런가? 좀 약했지?

    -착하다기보단 능력의 사용 방법에 ‘제동’을 많이 걸었지. 타인의 신체나 소중히 여기는 물건을 강제로 강탈하기만 해도 연금술의 등가교환의 위험성은 말도 안 되게 커질 수 있을 텐데. 끝까지 그 사람은 자신의 것만 제물로 바쳤잖아?

     

    그제야 싱은 깨달았다.

    파시블 예프가 언데드가 되어 인간성을 상실했다는 말의 의미를.

    그는 인간성이라는 이름의 족쇄로부터 해방되었다.

    진정으로 재단에 어울리는 간부로 거듭났다.

    애초에 멀쩡한 남자에게 여장을 권하는 재단 간부가 애초에 상식적인 존재일 리가 없지 않은가.

     

    “부대원을 아끼는 환락쇠사 몇몇이 산발적인 저항을 하고 있습니다. 들어가서 저들의 힘을 빼고 흩어진 병력이 공중으로 끌려가게 도와주시겠습니까?”

     

    아무리 무해하고 우습게 보이는 재단간부조차도 전장에서는 이토록 잔인해질 수 있다.

    싱은 자신이 어떤 존재와 손을 잡았는지 깨닫고 문득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만일 이 전투에서 시원찮은 모습을 보이고, 이에 인간성이 존재하지 않고 과거 인간 시절의 기억을 어설프게 흉내 낼 뿐인 저 남자가 이를 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왠지 모르게 그는 예상이 되었다.

    아주 불길한 미래가.

     

    -허어. 싱 군의 내면에 아직 망설임이 남아있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군요. 여성의 외형에 신경 쓰느라 영역 전개와 전투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니, 제 금기연금술로 지원을 해드리겠습니다.

    -제물영역에 저의 <호위>를 집어넣고 제물로 바친다면 그간 쌓아온 남성의 근육을 제물로 바쳐 더는 제 몸을 변형하는 데 힘을 소모하지 않아도 되는 바람직한 몸이 될지도 모르겠지요!

    -사소한 부작용으로 사라진 근육의 부피만큼 가슴이나 엉덩이가 커질 수도 있지만 저는 어떤 사이즈도 모두 용납할 수 있는 가능충입니다. 걱정은 마십시오. 하하하.

     

    “…”

     

    그거, 나쁜 걸까 좋은 걸까.

    싱은 제 실력을 발휘해야 할지 태만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혼란에 빠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권동욱_158 님이 새로운 팬아트를 그려주셨습니다.
    티토소가 조명대 뺏는 오크노디입니다.
    애기들의 귀여운 모습에 덥썩 들어다가 표지에 앉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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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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