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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1

        

       을씨년스러운 계단이 그를 맞이한다.

       조명 하나 켜져 있지 않은 끝없는 어둠은 무저갱의 입구처럼, 아귀의 쩍 벌어진 목구멍 안을 보는 것처럼 섬뜩하기 그지없다. 그러한 계단을 한 발 한 발 걸어가다 보면 저벅거리는 소리가 어두운 공간에 부딪히고 퍼지며 자신의 위치가 어딘지 알아보기 힘들게 만들고, 붙잡은 난간마저 소름 끼치는 차가움에 오한이 들게 만든다.

         

       더더욱 오한이 들게 만드는 것은 바로 난간이 차갑게 느껴지지 않을 때.

       그럴 때는 마치 아귀의 혓바닥을 붙잡기라도 한 듯, 난간을 거칠게 놓고 위로 올라가게 만들고픈 충동이 일게 만드는 것이다….

         

       ‘수작을 부려놨군.’

         

       그리고 이러한 공포는 명백히 부자연스러운 것인지라.

       진성은 누군가가 수작을 부려놓았음을 쉬이 깨달을 수 있었다.

         

       고작 어두운 계단에, 난간을 붙잡는다고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공포가 든다고?

         

       ‘허허허. 교묘하구나.’

         

       서울 이능 특성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라면 이러한 수법이 먹혔을 것이다.

       이능을 다룬다고 하더라도 본질은 학생이고, 미성년자.

       당연히 이러한 느낌이 든다면 꺄아악 비명을 지르면서 위로 도망치는 것이 정상이겠지.

       남자라고 할지라도 입으로는 욕설을 내뱉으면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만들었을 테고 말이다.

         

       어쩌면 선생들마저도 꺼림칙한 기분에 더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아린이 말한 ‘학교 괴담’의 존재가 더더욱 이 계단에 대한 꺼림칙함을 증폭시켰을 것이고, 그렇게 선생들은 괜히 경비도 아닌데 호기심에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타협 아닌 타협을 했겠지.

         

       그렇게 계단은 자연스럽게 기피 장소가 되었을 것이다.

       적어도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고 인적마저 드문,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말이다.

         

       ‘공포가 충분히 조성될만한 환경에서 발동하는 형식인 것 같고…. 보아하니 난간을 매개로 신체에 특정 현상을 일으키는 것 같군. 털을 곤두세우거나 오한이 들게 만들거나, 땀샘을 자극한다거나 하는….’

         

       털이 곤두선다.

       오한이 든다.

         

       이것은 공포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털을 곤두서게 만든다는 것은 털을 세우는 근육을 수축시킨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소름이 돋게 된다. 거기에 으스스한 느낌과 함께 땀샘을 자극하여 식은땀을 불러일으키게 되니….

         

       만약 이것을 노린 것이었다면 그야말로 교묘한 방법이라고밖에 할 수 없으리라.

         

       게다가 오한이 든다는 것 역시 아주 절묘하기 짝이 없다.

       실질적으로 온도를 낮추는 것이 아닌, 심리적으로 ‘춥다’라는 감정이 느껴질 수 있도록 온도의 격차를 잘 이용한 것이다. 난간 온도를 미묘하게 달라지게 만들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고, 어느 순간 격차를 확 느끼게 함으로써 커다란 충격을 주도록 설계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된다면 대부분은 ‘갑자기 오한이 들었다.’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겠지.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듯하지만, 효과적인 방식이다.

       사람을 자연스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점에 있어서는 어지간한 결계보다도 쓸만하지 않은가.

         

       게다가.

         

       ‘허. 눈치를 챈 사람을 상대하기 위한 수작도 부려놨군.’

         

       이러한 가벼운 방식의 사람 물리기가 통하지 않은 이에게는 또 다른 수작을 부리기까지 한다.

         

       ‘R.’

         

       손에 느껴지는 오돌토돌한 감각.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냥 난간에 상처가 난 것이다, 난간에 이물질이 묻은 것이다 생각하며 그냥 넘어갈 만한 아주 미묘하고 보잘것없는 그러한 감각.

       하지만 신경을 쓴다면 분명히 느낄 수 있고, 지식이 있다면 이 감각에서 무언가를 유추해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R.’

         

       알파벳 ‘R’에 해당하는 형태의 점자.

         

       ‘N, X, 1, 2, 3, A?’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알파벳과 숫자를 뜻하는 점자들까지.

         

       마치 뭔가 있는 줄 알고 들어왔다면 내가 내는 수수께끼를 맞춰야 한다고, 이 수수께끼를 맞춰야만 네가 원하는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고 장난스럽게 쿡쿡 웃으며 조롱하는 듯한 느낌.

         

       대부분 사람은 이 알파벳이 어떠한 뜻이 있는 것인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자신이 가려는 장소와 어떠한 연관이 있는 것인지 머리를 싸매며 고민을 하게 되겠지.

         

       “헛되도다.”

         

       하지만 진성은 이러한 고민을 그냥 집어던져 버렸다.

       알파벳들의 의미도,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벼운 고찰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러한 수작을 부린 사람에게 가볍게 감탄만 흘려놓고 계속해서 계단을 나아갔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려가고 또 내려가서 계단의 끝자락에 닿았을 때.

         

       그는 수수께끼를 푸는 대신에 출제자가 의도하지 않았을, 하지만 너무나도 간편한 방식으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천천히 팔을 움직였다.

         

       푸석푸석한 피부.

       팔 한쪽이 거친 돌바닥에 쓸리기라도 한 듯 따가운 느낌이 계속해서 든다.

       그리고 그러한 따가운 느낌은 진성이 난간에 팔을 문지를 때마다 더더욱 커지고, 피부가 쓸리고 핏물이 배어 나오며 난간을 붉게 물들인다. 그리고 때인지 피부 조각인지 모를 것들 역시 피와 함께 섞여나오며 곳곳에 묻어나오고, 가루처럼 되어 있는 것들은 핏물을 타고 바닥에 흐르거나 난간 곳곳에 묻거나.

         

       퍼엉-

         

       혹은 그 자리에서 터져나가며 천장과 벽에 달라붙는다.

         

       그리고 그것들은 거무튀튀한 색으로 쑥쑥 자라나 형태를 이루니.

       그 형태는 아까 전 진성이 주술로 불러내었던 버섯의 형태와 그토록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버섯을 보고 말하노니.

         

       “요정의 발자국에서 자라난 버섯아 저기에 너에게 베풀지 않은 자가 웅크리고 있으니 너는 그에게 무엇을 말할 것이냐? 어떠한 말을 할 것이냐?”

         

       그러자 버섯이 입을 열어 말한다.

         

       『 너는 밤에도 낮에도 늘 저주받을 것이다! 누울 때, 일어설 때, 집을 나설 때, 들어설 때 가리지 않고 너는 늘 저주받을 것이다! 나는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영원한 분노의 불길을 마음에 끌어안고 법전에 쓰인 모든 재앙이 너에게 내리기를 바랄 것이다! 』

         

       베푸는 것에 인색하고 탐욕에 찌든 자여.

       받아라.

         

       이것이 분노의 불길을 품고 제 몸을 제물로 바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의 저주로다.

         

       그리하여 저주를 들어주나니.

         

       “터져라.”

         

       저주를 퍼부은 버섯아, 너는 몸을 터뜨릴지어다.

         

       퍼어엉-!

         

       풍선을 터뜨리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버섯이 터지고 포자가 사방으로 퍼진다.

       숨을 들이쉬는 것만으로 폐부를 오염시킬 것만 같은 가루가 사방에 떠다닌다.

       공기의 흐름조차 경직된 계단의 끝자락에 그것은 공간을 가득 메웠고, 저주의 마음을 안은 채 그것은 자그마한 먼지가 되어 배회하고 또 배회한다.

       저주의 대상을 찾아 헤매며 그것은 심판의 그날까지 구원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돌고 연옥을 떠돌아야 하는 사악한 존재들의 그것처럼 집념을 한껏 안은 채 그렇게 움직인다.

         

       보아라.

       저 가루를.

       보이지 않는 것조차도,

       보이지 않음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에도 달라붙기 위하여 저렇게 애를 쓰고 있지 않으냐?

         

       정전기에 먼지가 달라붙는 것처럼 그것들은 달라붙는다.

         

       어둠을 장막처럼 사용하여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에너지의 흐름에 가루가 달라붙는다.

       저주를 품고 에너지를 품은 가루가 움직이며 그것에 달라붙어 비가시(非可視) 현상을 가시(可視) 현상으로 바꾸어놓는다.

         

       그어지는 하나의 선.

       하나의 꼭짓점에서 뻗어나가는 다른 선들.

       마주하고, 각을 만들고, 닫히며 이루어지는 도형.

         

       육각형.

       사각형.

       육각형.

       사각형.

         

       커다란 육각형과 작은 사각형이 들러붙어 형체를 이루니 그것은 구체에 가까우나 각이 존재하는 것이요.

       마치 평범한 도형을 깎아서 만든 것만 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깎은 정팔면체의 형상이다.

         

       허공에 떠 있는 에너지의 선이여.

       버섯의 포자로 인해 색을 입고 형상을 드러내게 된 깎은 정팔면체여.

         

       둥둥 떠다니며 그것은 천천히 회전하고, 부유하고 헤엄치며 그것은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제 존재가 드러났음을 깨닫자 저와 똑같은 형상을 만들고 제 몸에 붙이기를 반복하기 시작하였으니.

         

       보아라.

       공간을 가득 메우는 저 도형을.

       제 몸에 들러붙은 먼지를 없애고, 자기 모습을 본 불청객을 지우려 드는 저 움직임을.

         

       그리고.

         

       “엘레우시스의 신비(Eleusinian Mysteries)가 이곳에 깃들었으니.”

         

       포자를 휘감아 형상을 무너뜨리는 박진성의 손길을.

         

       “선각자의 부름에 숨겨진 신비는 모습을 드러내게 되리라.”

         

       밀가루 포대에 손을 넣었다가 빼기라도 한 듯 하얗게 변해버린 손.

       그 손 곳곳에는 빠르게 버섯들이 피어난다.

         

       아까 길러냈던 굵은대곰보버섯(Morchella crassipes)과는 확연하게 다른 형태의 버섯들.

       어떤 것은 가느다란 대에 앙증맞은 갈색의 갓을, 어떤 것은 눈에 띄는 빨간색의 갓을, 어떤 것은 척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화려함을.

         

       그것들은 진성의 손에 나타났으며, 쩍쩍 갈라진 피부를 땅이나 나무라도 되는 듯 뿌리를 뻗는다. 그리고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실로시빈(psilocybin)을 품은 채 쑥쑥 자라나 성체가 되고, 이내 찢기고 터져나가며 푸른색으로 변하며 제 몸에 품고 있는 진균독을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낸다.

         

       파랗게.

       진성의 손이 파랗게 물든다.

         

       자라났다가 터져버린 환각버섯이 뿜어낸 실로시빈(psilocybin).

       버섯이 단말마와 함께 뿜어낸 피와 같은 물질을 손 곳곳에 휘감고 진성은 움직인다.

         

       그렇게 그는.

         

       허공을.

       깎은 정팔면체를.

       도형을 이루는 선을.

       에너지를.

         

       찌이익.

         

       …찢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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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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