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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2

        

         

       찢겨나가는 에너지의 저 덧없는 모습을 보라.

       산화되는 미물.

       스러지는 불똥.

       하늘거리며 사라져버릴 신기루.

       밤의 어둠에 삼켜질 불꽃의 단말마.

       한때 빛났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허깨비와 같은.

         

       찢기고 부서지는 저 에너지들.

         

       ‘여기로군.’

         

       그리고 그 에너지의 찢긴 그 사이.

       문을 위장하고 있는 벽지가 찢기고, 벽 너머의 숨겨진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공간 자체를 점유하고 환각으로 사람의 접근을 막아 세우던 처녀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니지. 처녀지(處女地)라 하기에는 사람의 발길이 닿았고, 순결하다고 하기에는 모자람이 있는 풍경이니. 이곳은 처녀지보다는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라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

       미지의 땅.

       야만족이 살아 숨 쉬는 그곳.

       신을 모독하는 괴물들이 즐비한 그곳.

         

       지금 진성의 눈앞에 있는 공간은 바로 그러한 곳에 가까울 것이다.

         

       우우웅-

         

       공간이 드러나자마자 들리는 귀가 멀어버릴 것만 같은 소음.

       마치 고층 건물이 즐비한 대도시의 풍경을 따라 하기라도 하려는 듯 서버들이 즐비하다.

       수많은 전선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있음에도 난잡하다고 느끼게 하였고, 서버가 구동하는 소리는 진동처럼 울려 퍼지며 공간 전체를 메운다.

         

       그리고 그 서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식히려는 듯 반투명한 관이 서버를 칭칭 감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멸망한 세상의 고층 건물에 덩굴식물이 잔뜩 자라나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쩌면 외계의 그것 같기도 했고.

         

       반투명한 관 안에는 푸른 빛을 뿜어내는 액체가 쉼 없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것은 진성이 몇 번 본 적이 있는 냉각수였다.

         

       마력이 함유된 물에 냉기와 관련된 특성을 집어넣어 만든 냉각수.

       효과는 좋지만, 가격이 비싸고,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으면 사고가 터지기 쉬워 특수 산업이나 연구실에서 주로 쓰는 물건이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 냉각수에 함유된 마력이 점점 사용되며 냉각 효과가 사라지기에 주기적으로 교체를 해야 하기까지 하니, 일반적인 상황에서 쓰기에는 사치에 가까운 물건이기도 했고.

         

       그러니 그 말은 곧.

         

       ‘학교가 관련되어 있군.’

         

       이 장소가 단순히 학생들의 동아리라거나, 외부인이 몰래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주기적으로 관리와 교체가 필요한 냉각수를 사용 중이라는 것은 주기적으로 이 안에 관리자가 드나든다는 이야기이며, 그 말은 곧 최소 학교, 최대 정부까지 이 건에 얽혀있다고 여기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학교가 관련되어 있다고 하면…. 정부나 군대의 행위를 묵인하거나…. 혹은 이 일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겠지.’

         

       그렇다면 이 시설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학교 건물에, 위장까지 하면서 이러한 시설을 만들 이유가 있는가?

       그것도 비밀 통로나 벙커 같은 정말로 비밀스러운 공간이 아니라, 이러한 계단의 끝자락에 이능을 통한 위장을 해놓을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진성은 턱을 한 차례 쓰다듬고는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천천히 서버들을 바라보았다.

         

       냉각수로 식혀지고 있음에도 미친 듯이 돌아가며 열을 뿜어내는 그래픽카드를 보았고, 열기를 밖으로 빼내는 쿨러가 금방이라도 터져나갈 듯이 덜덜거리며 어서 이 끔찍한 사명에서 자신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진성에게 애원하는 모습을 보았다.

       서버 사이사이에 놓인 관에서 주기적으로 열기가 훅 뿜어져 나오는 것도 보았고, 서버가 일정한 규칙대로 놓여 있는 것 역시 확인하였다.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화(火)와 풍(風)의 역할을 하고 있고…. 관은 수(水)의 역할을 하면서 입체적으로 선을 그린다. 서버는 땅에 박혀서 목(木)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기둥과 축이 되어 있고…. 보자. 천장의 등불은 자외선과 원적외선을 뿜어내게 개조되었으니 저것은 해의 역할을, 그리고 주기적으로 미스트를 뿜어내는 것은 구름의 역할을 하게 만드는 것이로군.’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서버실처럼 보이는 공간.

       하지만 자세히 본다면 그것들이 하나같이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서버의 위치에서부터 장치까지.

       그 모든 것이 진성에게서 어떠한 것을 떠올리게 만들고 있었다.

         

       ‘이거. 진법이군.’

         

       진법.

       오행진을 기반으로 한 진법이다.

         

       물론 기존의 오행진과는 다르게 풍(風)이 들어가고, 그 바람을 기반으로 해와 구름을 넣음으로써 하늘이라는 요소를 만들어내었다. 오행을 기반으로 해서 자연을 불완전하게 구현해내는 진법인 것이다.

         

       아니, 어쩌면 자연을 불완전하게 구현해내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폐쇄된 공간, 유지되는 생태계. 갇힌 자연이라….’

         

       이 서버실은 기계로 이루어져 있을 뿐.

       테라리움(terrarium)과 너무나도 흡사한 형태였으니까 말이다.

         

       ‘깎은 정팔면체 역시 이것을 위함이었을 터.’

         

       진성은 이 진법을 만든 사람이 테라리움을 많이 참고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테라리움의 모방에는 이 깎은 정팔면체가 가장 유용했겠지.

         

       ‘3차원 진법에 깎은 정팔면체를 사용했다…. 흠. 이런 것은 처음 보는데.’

         

       육각형과 사각형이 있는 깎은 정팔면체의 주술적 의미 때문일까?

       아니면 유클리드와 연관이 있는 것인가?

       아니, 어떤 과학적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

         

       ‘허허허. 무엇을 위하여 계단 끝자락에 이러한 형태로 공들여서 만들었을꼬? 이거 참 궁금하게 만드는구나.’

         

       기대감이 든다.

         

       보잘것없는 것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없는 법.

       이곳이 거창하게 보일수록,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이 발굴되는 것을 발견할수록.

       이곳의 가치는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성은 기대감을 품은 채 사뿐사뿐 걸어갔다.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발자국을 남기고, 그 발자국에서 요정처럼 버섯이 나타나게 만든다.

         

       무얼.

       어렵지는 않다.

         

       요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던 사람에게 얻은 재료가 있질 않은가.

       그것을 매개로 주술을 사용한다면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본래 모방이라는 것은 가까울수록 더더욱 쉽게 할 수 있는 법이 아니겠는가?

       공통점이 많으면 많을수록 진성이 행할 수 있는 선택지는 넓어진다.

         

       주술에 관한 관심.

       집착에 가깝게 변해버린 욕망.

       그 모든 것이 진성의 힘이요 그의 길이니.

       대가를 감내할 수 있다면 무엇인들 하지 못하겠는가?

         

       그리하여 요정을 흉내 내는 걸음은 진실에 가까워지고.

       발자국에서는 버섯이 태어나고 움직인다.

       그 버섯들은 포자를 흘리며 이 공간을 오염시킨다.

         

       갇힌 생태계의 초대받지 못한 이물.

       기계를 고장 내는 골칫덩이.

       그리고 바깥의 버섯과 네트워크를 이어지게 만드는 스파이와 같은 존재.

         

       그렇게 서버실은 버섯으로 뒤덮인다.

         

       스윽.

         

       그리고 그것을 당당하게 알리듯, 깃발처럼 버섯 하나가 솟아났으니.

         

       아.

       이곳은 이제 그의 손에 들어왔구나.

       진법을 찢고 들어온 불청객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구나.

         

       그리하여 숨겨진 것을 드러낼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다른 공간이 또 있군?’

         

       결국 비밀을 들켜버리고 말았구나….

         

         

         

        * * *

         

         

         

       갇힌 공간에는 무엇이 있는가?

       진법으로 모습을 감추고, 서버로 이루어진 테라리움을 만들고.

       그렇게 해서까지 감추려 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허허. 이것 참. 똑똑한 자들이로고….”

         

       그 비밀이 이곳에 있다.

       텅스텐으로 이루어진 설비와 에너지 저장 능력을 가진 액체의 모습으로 이곳에 존재한다.

         

       피라미드 형태라도 만들려는 듯 사각뿔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텅스텐 기둥.

       피라미드 주위에 부유하는 반자성(反磁性) 물질로 만든 구체 두 개.

       반자성 물질이 피라미드를 중심으로 공전이라도 하듯 움직이게 만드는 에너지의 선.

       피라미드의 면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관.

       그리고 관의 틈새 사이로 보이는, 사각뿔의 꼭대기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액체….

         

       똑.

       또옥.

         

       또옥 또옥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액체는 바닥에 놓여 있는 장치에 들어간다.

       그리고 장치는 윙윙대는 소리와 함께 액체를 가공하여 곳곳으로 퍼뜨리고, 그렇게 가는 장소마다 다른 색으로 염색이 된 채 투명한 관을 타고 어디론가 움직인다.

       그리고 그렇게 퍼져나가는 관은 동서남북 방위마다 서 있는 설비에 들어가 가공이 되기 시작하였으니.

         

       진성은 이 설비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아니, 알 수밖에 없겠지.

         

       얼마 전 진성이 행했던 행위와 일맥상통하는 것이었으니까.

       아니, 심지어 진성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하기까지 했다.

         

       비유하자면 뗀석기와 증기기관 수준의 차이 정도일까?

         

       ‘허허. 아린아, 이아린아. 네가 잘못 알고 있었다. 용맥도 아니요 땅이 품고 있는 기운도 아니다. 이것은 너희에게서 비롯된 것이요, 너희가 흘린 것들을 압축해서 만든 것이로다….’

         

       에너지.

       이 설비는 지금 에너지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 범위는 현재 진성이 있는 건물.

       그리고 대상은 바로….

         

       학생.

         

       서울 이능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재학 중인 학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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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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