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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3

    <663 – 무책임한 쾌락(11)>

     

    싱은 설마 하는 마음에 혼전을 틈타서 남자검술을 은근슬쩍 섞어보았다.

    그러자 근처공간이 뒤틀리며 매우 빠른 속도로 접근, 동시에 자신이 내지르는 검이 매우 느리게 나아가는 현상을 인지했다.

    싱은 원점영역이 일정범위 너머로 나아가기 무섭게 급격히 넓어지는 현상을 인지하고 깨달았다.

     

    ‘시간왜곡. 시간의 정령이 나타났구나!’

     

    인체연성부터 시간왜곡까지, 금기란 금기는 아낌없이 다 범하는 금기술사 파시블 예프의 과감함에 이제는 욕을 할 정신도 남아나지 않았다.

     

    “아니, 이럴 수가!”

    “수많은 차원계에서도 가장 흉악하다고 알려진 시간계의 정령과 권능까지 이용한다고…?”

    “안 돼, 이건 틀렸어. 도망쳐야…”

     

    뒤돌아 달아나려던 병사들이 부지불식간에 뒤에서부터 날아든 공격에 쓸려나갔다.

    공격의 주인은 뜻밖에도 환락쇠사들이었다.

    시간왜곡의 너머에서 공격을 내지르던 환락쇠사들마저도 한마음 한뜻처럼 공격을 중지했다.

     

    “…?”

     

    싱이 호기심을 느끼고 검을 멈추었다.

    그러자 환락쇠사들이 흐느껴 울었다.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당황한 그에게 초로의 노인이 고개를 조아렸다.

    노인의 목소리는 감격에 벅찼다.

     

    “아아, 드디어 이 저주받을 도시에서 해방될 길을 찾아냈구나!”

    “재단의 귀인이시여, 부디 우리에게 시간의 권능을 베풀어주소서. 환락쇠사가 되기 이전의 자유로웠던 시간을 허락해주소서!”

    ““허락해주소서!!””

     

    그제야 싱도 이들이 무슨 착각을 하는지 알아챘다.

    시간왜곡과 시간정령의 존재를 싱이 자유자재로 펼치는 하수인과 정령계약의 부산물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적의 오해는 내버려두는 것이 상책.

    싱은 시치미 뚝 떼고 물었다.

     

    “용케도 눈치챘군. 어떻게 알았지?”

    “여성과 남성을 넘나드는 검술과 근육으로부터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남자이자 여자. 원한다면 노인이자 아이도 될 수 있는 유한의 굴레로부터 벗어난 존재. 당신께서는 시간의 정령의 계약자가 틀림없습니다!”

    “…나의 남자로서의 면모를 알아차렸다?”

     

    분위기 파악 못 하고 환락쇠사가 두 팔을 크게 벌리며 희열에 벅찬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일생의 시간조차 넘어 성별을 달리하는 시간대조차 허락하는 귀인이라면 능히 환락쇠사에게 걸린 영혼종속의 계약도 다른 시간대의 영혼을 불러와 파할 수 있으니, 부디 우리를 구해주십시오!!”

     

    이 순간, 싱의 사고는 팽팽하게 가속했다.

    남자인 자신이 발각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우선 파시블 예프가 남자의 몸을 잃어버리면 남성검술 따윈 다시는 쓰지 못할 거라면서 신체를 여성의 것으로 변형시킬지도 모르지.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사내놈의 양물을 아랫도리에 달고 있으니 자꾸만 사내로 돌아가려는 성질을 지니는 것이라고 아예 남성의 것을 여성의 것으로 바꿀지도 모르지.

     

    그러면 이득 아닌가?

    부지불식간에 솟구치는 생각에 저항감도 없이 이득 같다고 고개를 끄덕이려던 싱이 멈칫했다.

     

    -오라버니.

     

    자신만을 따르며, 외롭고 쓸쓸한 감정을 꾹 억누르며 그를 부르던 아이.

    여동생이 더 이상 자신을 오라버니라고 부를 수 없게 된다.

    단순한 호칭의 변화가 아니다.

    이것은 정체성의 상실.

    우선순위의 문제다.

     

    ‘나의 복수는 여동생을 위한 복수. 여동생의 오라버니로서 이루어야만 할 사명.’

     

    그런데 어찌하여 이토록 가볍게 남자임을 포기하고 몸을 변형시키고자 하는가.

    몸에 오른 열기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식었다.

    저항감도 없이 잘만 펼쳐대던 변형공에 들이붓던 내공이 풀려나니, 남성과 여성의 형체를 넘나들던 신체가 남성으로 기울었다.

     

    “오오오! 귀인께서 육신의 제약을 넘나드는 시간의 권능을 과시하니,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 징조로다!”

     

    뭣 모르는 환락쇠사들이야 자신들을 위한 행동이라 여기고 찬사를 퍼부었으나, 싱은 달랐다.

    깨달아버리고 만 것이다.

    앞서 물리친 환락쇠사의 침식영역보다 더욱 거대한, 도대체 언제부터였는지 가늠도 되지 않을 정도로 영혼과 육신에 깊이 파고든 이질감을.

     

    침식을 넘어선 기생.

    숙주를 원하는 방식으로 변형시키는 영역.

     

    거부감도, 저항의지도 상실시키는 잔혹하리만치 인간을 손쉽게 바꾸는 기생영역.

    처음 겪는 현상이나, 처음 겪는 원리가 아니었다.

    영역의 경계겨루기나 힘 싸움, 영역충돌 따위조차 허락하지 아니하고 부지불식간에 침투하는 힘.

    혈비객이 보여준 그가 도달해야 할 다음 경지.

    영역 4단계.

    관측조차 허락하지 않는 필중의 습격이 그의 영혼에 꽂혀 심신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이런. 깨달았습니까? 역시 당신은 호위로서 극상의 소재이군요. 다크프린세스가 곁에 두며 아껴왔던 심정도 이해가 갑니다. 이런 원석을 봐버리면 방치하기는 어렵죠.

    “왜냐. 이딴 짓을 하지 않아도 나는 네게 협력할 의사가 충분했다. 우린 충분히 서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협력자가 될 수 있었다.”

     

    싱의 눈이 전장 저편의 파시블 예프에게 향했다.

     

    “그런데도 너는 선을 넘었지. 대답해. 왜냐!”

     

    파시블 예프의 얼굴이 비스듬히 기울었다.

     

    -왜냐니요. 이편이 경제적이지 않습니까?

    “…뭐라고?”

     

    경제적.

    이 모든 사태를 해명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변명이었다.

     

    -어차피 서로가 협력을 한다면 협력자를 보다 강하게 만들어주는 <호의>를 베푸는 것이 무어가 문제가 됩니까?

    “넌 멋대로 내 의지를 뒤틀었어.”

    -같은 시간을 들여서 다른 간부들의 의심도 거두고 저는 강력한 새 호위를 둘 수 있으며 다크프린세스 또한 친구가 성장해서 돌아옵니다. 당신 개인에게도 강해져서 손해가 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손해라.

    변형영역이 있기에 원점영역만으로는 상대하기 벅찬 환락쇠사의 3좌, 어선 이카리우스를 넘어섰다.

    힘의 증강을 논한다면 강함으로 기울기는 했다.

    하지만 그 대가가 무엇인가.

    자신이 검을 들어왔던 이유.

    여동생에 대한 기억과 원수들을 향한 복수심.

    그 모든 감정이 뒷전으로 밀려났다.

    린의 존재마저도 잊고 주입된 신호와 쾌락에 취해 여자가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원점>

     

    불필요한 기억 따위, 경제적이지 못하다고 파시블 예프가 멋대로 판단했으니까.

    싱이라는 인간의 가치를 멋대로 재단하고 자신이 재단한 형태에 맞추어 형태를 변형시켰으니까.

     

    서걱.

     

    싱의 검 끝이 환락쇠사들을 등지고 파시블 예프에게로 향하였다.

    검이 지나가는 경로에 있던 시간의 정령은 어느 틈에 베였는지 알아차릴 새도 없이 갈라져 비명을 지르며 시공의 틈새로 달아났다.

    연달아 변형을 일으키던 싱의 육신은 여성복이라는 수치를 잊고 이미 남성의 형태를 되찾았다.

     

    “오오! 저 언덕 위의 남자를 처단하면 저희에게도 시간의 권능을 베풀어주시는 겁니까?”

     

    환락쇠사들이 당장이라도 사냥감을 향해 달려들 사냥개처럼 살의를 듬뿍 발산했다.

     

    “그래.”

     

    그한마디가 환락쇠사들을 돌진시켰고, 그들의 죽음을 확정지었다.

    환락쇠사들은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고, 영역을 전개하였다.

    피아구분조차 되지 않는 살육의 끝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이는 뻥 뚫린 복부를 움켜쥐며 웃었다.

     

    “내가 해냈어.”

     

    덧없는 유언을 마지막으로 눈에서 힘이 사라진 환락쇠사, 그의 눈에 생기가 다시금 도는 일은 없었다.

    살아있을 때는 인지를 속여 동족상잔을 시키고, 쓰러진 시체는 언데드로 알뜰살뜰 모조리 일으켜 세운 차가운 경제학자 파시블 예프의 절약정신 때문이었다.

     

    -하하하. 일이 번거로워져서 유감이지만 당신은 언데드퀸 사다코와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와의 관계를 고려해서라도 죽일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성장의 기쁨을 누리도록 해드리죠.

     

    군단 하나를 갈아버린 금기술사가 싱을 향해 손을 뻗다가 멈칫했다.

    그는 분명 힘을 사용했다.

    그런데 힘을 투입한 결과가 일어나지 않았다.

    몇 차례의 확인 결과.

    파시블 예프는 깨닫고야 말았다.

     

    -당신, 설마 방금 깨우친 겁니까? 영역 4단계를?

    “…그래. 다들 참 재미난 짓들을 해왔더군.”

     

    마나저항력이 높은 사람은 체내에 마법이 적중당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떤 마법은 타인의 체내에 침투하여 발현된다.

     

    영역저항력이 높은 사람도 영역 내에 타인의 영역이 침투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어떤 영역은 타인의 영역에 침투하여 발현된다.

     

    비결은 간단했다.

    상대의 저항력을 넘어설 것.

    혹은 저항력이 발현될 틈조차 허락하지 않을 것.

     

    전자는 영역에 특화속성을 실어 깨부수는 3단계의 길이다.

    후자는 4단계의 길, <자신>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영역의 ‘자신’을 외부공간, 상대의 영역 내부와 이어서 발현 즉시 저항조차 할 수 없는 타격을 입히기.

    원리는 간단했다.

     

    나 자신의 의지가 곧 자연의 법칙처럼 새겨질 것.

    영역을 전개해도 사람은 숨을 쉰다.

    몸에 산소가 필요하니까.

    그게 부동의 상위법칙이니까.

    그런 상위법칙에 자신의 의지를 새긴다.

    영역을 전개해도 흘려보낼 수 없도록.

    이는 가장 근원적인 형태의 영창마법과 비슷했다.

    의지를 언어로 투영하느냐.

    있는 그대로 투영하느냐.

    매개체의 차이가 있을 뿐, 역할은 같다.

    인간의 상식. 나라의 법. 용의 언령.

    그리고 영역구사자의 의지.

    의지야 누구나 가지고 있다.

    영역구사자의 의지만이 특별한 이유는 하나.

    마법을 외부에 발현하지 않고 내부로, 의지의 깊이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기능 2000점.

    이중극의.

    혹은 부족한 극의로도 이중극의에 순간이나마 도달할 수 있는 보조기능들의 동시발현.

    이것이 영역 4단계의 발현조건.

    싱은 <고독한 동방검객>으로서의 자신을 잃지 않을 때, 복합적인 동시기능의 발현으로 이를 성공했다.

     

    파캉!

     

    그에게 향하던 파시블 예프의 상위법칙이 깨졌다.

     

    -호오. 우연이 아니었군요. 당신, 정말로 영역 4단계를 쓰고 있었어요. 그것도 꽤나 능숙하게.

     

    파시블 예프는 곤란함을 느꼈다.

    이건 경제적이지 못한데.

    효율을 따지다가 오히려 비효율적인 싸움이 열렸다.

    싱은 저항하겠지.

    상당히 거칠 거다.

    그래서는 적당히 ‘손대중’을 할 수가 없다.

    덜컥 죽여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싱의 죽음은 다크프린세스의 분노를, 다크프린세스의 분노는 언데드 퀸의 분노를 부르겠지.

    그 뒤는?

    파시블 예프 본인의 죽음 내지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을 영겁의 고통의 시작이다.

    인간성은 참 귀찮아.

    왜 경제적인 효율을 고려할 줄 모르지?

    저 개빡친 싱은 어떻게 또 달랜담.

    한참 고뇌하던 그에게 싱이 물었다.

     

    “가혹하군. 오크노디의 시련은 언제나. 내 손으로 구한 인질조차 나를 시험할 또 다른 시험관이라니.”

    -음?

    “여자가 되는 편리함에 취해 무너진다면 복수에는 동참하나 동료로서는 끝. 서로의 복수를 자신의 것처럼 갚아주자는 맹세는 그녀만의 것이 되었겠지.”

    -으으음…??

    “내 의지를 시험한 결과는 만족했나?”

     

    싱이 착각에 빠질 만도 했다.

    파시블 예프의 수작은 싱에게도 득이 됐으니까.

    속았더라도 해는 입지 않는다.

    단지 거기까지에 그칠 뿐.

    작은 힘에 취해 더 큰 힘을 얻을 수 없다.

    싱에게는 익숙한 경험이었다.

    오크노디의 곁에 머무르고자 하는 이들이 성취를 이루지 못하는 최후와 다르지 않았으니까.

     

    그리하여 얼마간 이어지는 부자연스러운 정적.

    침묵 끝에 파시블 예프가 하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정답입니다! 용케도 제가 내리는 시련을 간파하고 넘어섰군요. 축하합니다, 싱 군. 당신은 이로서 영혼의 심층까지 <원점>의 뿌리를 내렸으니, 당신의 영혼은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두 번 다시 내 영혼을 뒤흔들려 들지 마라. 다음은 없다.”

     

    경과야 어찌 되었건 싱은 여장타락의 길을 자신의 이지로 벗어났다.

    그 굳건한 정신력과 여동생을 소중히 여기는 의지는 놀라웠으나, 파시블 예프는 부득이하게 만약에 대비해 소지하고 있던 여성복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제 옷 좀 갈아입으시겠습니까?

    “이 지경이 되고도 그딴 소리를…!”

    -이 지경이니까 하는 말입니다. 지금 당신의 꼬락서니를 보십시오.

     

    싱의 시야가 그제야 제 몸으로 향했다.

    여성으로 변형을 이루지 않고 활짝 편 어깨와 늘어난 근육을 따라 찢어진 옷.

    거의 넝마주이를 걸친 반나체의 꼬락서니로 회의장에 들이닥쳤다가 일어날 미래가 벌써부터 싱의 귓가에 환청처럼 들려왔다.

     

    -으아악!! 반나체변태다!!

    -몸에 걸친 옷쪼가리는 뭐야 대체!!

    -여자옷이다!! 시발 여장변태를 넘어서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걸친 여장호소인반나체동성애변태야!! 세계의 평화를 위해 당장 죽어!!

     

    “…”

     

    싱은 분명 자기 힘으로 여장타락세뇌에서 벗어났는데도 스스로 다시 몸을 줄이고 여성복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환락쇠사들은 옷가지 하나 남기지 않고 후불제 등가교환의 대가로 머나먼 차원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으니까.

    그렇다고 이딴 차림새나 나체로 회의장에 나타났다간 정말 칼 맞아도 할 말이 없었으니까.

     

    “비키니메이드랑 스쿨미즈, 언더붑햄스터인형옷 중에 뭐가 좋으십니까? 참고로 노출면적은 앞일수록 적습니다.”

    “…언더붑햄스터인형옷으로 부탁하지.”

     

    타인의 의지도 아니고 자신의 의지로 다시금 여장을 선택하니, 보통이 아닌 수치심이 느껴졌다.

    싱은 치를 떨며 언더붑햄스터인형옷을 받았다.

    그는 애써 합리화를 위해 생각했다.

    오크노디도 이런 상황에서는 속수무책일 거라고.

    재단의 간부급 인사를 상대로 별 수가 있겠냐고.

    같은 시각, 오크노디가 정말로 간부 한 명과 투닥거리고 있음을 알지 못했기에 떠올린 생각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크노디는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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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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