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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3

        

         

       진성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이 시설물이 주술적 의미를 품고 있다는 것을.

         

       피라미드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것은 바로 ‘안식처’다.

       죽은 자가 안식을 취하게 하려는 다른 무덤들과는 다르게 피라미드는 언젠가 부활하는 이를 지키기 위한 공간이며, 그가 부활하는 그 순간까지 안락하게 그를 지켜주고 보살펴줄 안식처의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피라미드는 안식처의 의미가 있는 것과 함께, 요새로서의 의미 역시 가진다.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안의 내용물…부활을 하려는 이를 보호하는 요새 말이다.

         

       ‘안식처의 주변에 도는 두 개의 구체. 저것은 태양과 달을 의미하는 것일 터이고.’

         

       그리고 그 요새 주변에 태양과 달을 뜻하는 듯한 구체 두 개가 공전하고 있다는 것은 꽤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부활이 예비된 자의 안식처.

       그 주변을 맴도는 해와 달이라.

         

       해와 달이 공전을 한다는 것은 그 위치에 따라 낮이 오고 밤이 오기를 반복하는 것이니 시간이 지나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게다가 보라.

       피라미드 안쪽에 떨어지는 저 에너지를 품은 액체를.

       응집된 에너지가 한데 모여 떨어지고, 태양과 달이 공전한다.

       그리고 떨어지기 무섭게 관을 타고 흐른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에 따라 바다의 흐름이 바뀌듯, 저 액체 역시 그러하니.’

         

       아까 진성은 이곳이 테라리움 같다고 생각하였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이 피라미드 역시 집요하리만큼 테라리움의 원리를 품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피라미드 역시 닫힌 상태로 완전한 세계, 테라리움을 표방하고 있는 듯 보였으니까 말이다.

         

       다만 서버로 이루어진 테라리움과 다른 점이 있다면, 외부와 미미하게 연결이 되어있다는 것이겠지.

         

       그래.

       저 에너지.

       저 에너지를 공급받고, 에너지를 어디론가 보내는 행위.

         

       저것이 바로 이 닫힌 세계에서 밖으로 연결된 부분이다.

         

       ‘닫힌 생태계,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자면 외부와 연결이 되어있는- 하지만 그 연결이 끊긴다고 하여 생태계에 문제가 가지 않는 기묘한 상호작용의 관계라.’

         

       이것은 주술의 원리와는 조금 다른 것.

       과학과 관련된 것으로 보였다.

         

       양자역학 같은 것 말이다.

         

       ‘진법에, 주술적 상징, 과학까지. 허허.’

         

       참으로 기묘한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잡탕같이 여러 개를 섞어서 만들어진 공간이라니.

       학생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수집해서 가공하는 공간이라니.

         

       ‘이 시설이 존재하는 이유는 알겠다. 학교 내부에서 낭비되는 에너지를 끌어모아서 가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겠지.’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대단한 주술이 사용된 것도 아닌 것 같고, 흥미가 딱히 일지도 않으니까.

         

       왜 만들었는지 역시 궁금하지 않았다.

         

       극미량의 에너지를 수집하여 액체에 주입하고, 포화 상태가 되었을 때 떨어뜨려 가공하는 모습을 본다면 이 장치가 왜 있는지는 알 수 있었으니까.

       부지 내의 학생들이 발산하는 에너지, 혹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끌어모아 낭비 없이 사용하겠다는 알뜰살뜰함 때문에 만든 시설일 테니까.

         

       진성이 보기에 이 장치는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적어도 그의 지식으로는 말이다.

         

       ‘허허.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여도 결과가 그리 나오면 그것은 그 결과를 불러오는 것인지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활용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지혜 아니겠는가?’

         

       하지만 어찌 확답을 내릴 수 있겠는가?

       이 시설을 설계하고 만든 이가 아닌 이상에야 이것에 대하여 어찌 통달할 수 있겠는가?

       지식이란 쌓고 또 쌓아도 모자란 것이요, 전문가조차도 자신의 부족함을 통감하며 평생 연구하고 배움에도 모르는 것이 나오는 것이 다반사다.

         

       그런데 어찌 이 시설에 문제가 없으리라 단언을 할 수 있으랴?

         

       그렇기에 진성은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지혜대로 행하기 위하여.

         

       ‘어찌 되었건 이 시설은 회귀 전에 이아린에게 피해를 주었지. 그렇다면 지금 이곳에서 부수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이니라.’

         

       이해는 중요하지 않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결과다.

         

       어떠한 물건이 폭발하여 피해를 줬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그 물건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어떻게 그런 결과가 만들어졌는지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그 물건과 관련된 업을 가지고 있거나 호기심이 있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보통은 그것을 알려 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 물건에 다시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하여 피하거나 멀리하는 것이 보통일 것이고, 조금 특이한 경우엔 사악한 활용법을 떠올려 폭탄처럼 활용하는 정도의 행동을 하지 않겠는가.

         

       그래.

         

       지금이 바로 그와 같다.

         

       어떤 원리를 가졌는지.

       어떤 인과를 가졌는지.

         

       알 수 없다.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 시설이 이아린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가.

         

       그러면.

       당연히 터뜨려야겠지.

         

         

         

        * * *

         

         

         

       짜악!

       짜악!

       짜악!

       

       손바닥끼리 부딪친다.

       두 손이 허공을 가르며 부딪치고, 그렇게 마주할 때마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진다.

         

       그리고 그와 함께 손바닥이 붉게 물들고, 얼얼한 감각과 함께 열기가 몸 전체에 퍼져나간다.

       쉬이 사라지지 않는 통증은 불에 덴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손바닥끼리 부딪칠 때마다 그 감각을 증폭시켜 박수를 멈춘다고 할지라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 통증을 남긴다.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손뼉을 치는 것을 반복하기를 한참.

         

       진성은 그 자리에 우뚝 선다.

       그리고는 버섯을 끌어들이고 포자를 끌어들여 제 발 쪽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그리고 신발에 그것을 덕지덕지 묻히고, 앞서 그러했던 것처럼 버섯이 자라나게 만든다.

         

       그렇게 신발은 버섯에 뒤덮이고, 이내 버섯의 둥지라도 되는 것처럼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둥지를 지은 버섯은 이 자리가 자신들이 뿌리를 내릴 자리라는 듯 균류를 움직여 뿌리를 뻗어나가기 시작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하여 서로 협동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진성은 그 자리에 뿌리를 내렸다.

         

       “닮은 것은 닮은 것을 닮는 법이라. 그리하여 뿌리를 내리었으니 나는 식물과 참으로 닮았구나.”

         

       뿌리란 무엇이냐?

       제 몸에서 뻗어 나온 가느다란 줄기를 땅속에 뻗치고, 그리하여 그 자리에 굳건하게 있을 수 있게 만드는 그것이다. 그것은 몸을 지탱하는 기둥이며, 땅속에 숨겨진 진짜 모습이며, 몸을 키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하여 사방으로 뻗는 손과 입이며,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묻는다.

       이 뿌리를 가진 것들은 무엇이냐?

       네 발로 걸어 다니는 것들은 뿌리가 없다.

       갑각에 휩싸인 것들은 뿌리가 없다.

       기어 다니는 것들은 뿌리가 없다.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것도 뿌리가 없다.

       지느러미를 가진 것들도 뿌리가 없다.

         

       뿌리를 가진 것은 식물이라.

         

       그리하여 진성은 지금 식물이 되었다.

       식물을 모방하였고, 식물을 닮게 되었고, 그리하여 식물이 되었다.

         

       그리하여 뿌리에서 시작하여 식물의 형상을 그리니.

         

       몸통은 줄기가 되었다.

       몸을 감싼 옷은 이파리가 되었다.

         

       그리고 오른팔과 왼팔을 뻗어 머리를 감싸고, 관절의 한계까지 꺾고 구긴다.

       실핏줄이 터지는 눈은 새빨갛게.

       코 밑이 긁혀서 피가 고여있는 콧구멍 역시 새빨갛게.

       그리고 입은 혓바닥을 깨물어 생긴 피로 새빨갛게.

         

       그리하여 팔과 머리는 꽃이 된다.

         

       『 의식물화(Phytomorphism). 』

         

       인간의 관점으로 행하는 식물의 모방.

       모방이란 닮는 것이요, 흉내를 내어 진짜에 가깝게 하기 위한 발버둥이라.

         

       그런 점에서 본다면 지금 진성의 모방은 참으로 흡족한 것이다.

         

       식물처럼 뿌리를 내리고.

       새하얗게 변한 팔로 하얀 꽃잎을 표현하고.

       새빨갛게 변해버린 눈코입으로 꽃잎의 무늬를 모방하고 있지 아니하던가.

         

       아!

       이러한 모방은 참으로 흡족한 것인지라.

         

       어찌 이 흉내를 갸륵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

         

       “사나운 꽃의 여신이시여! 경이로운 당신을 숭배하나니 부디 이곳에 당신의 손길을 내리사 사나움을 가라앉히소서! 이 재롱을 가엾이 여겨 불길이 번지지 않게 해주소서!”

         

       그 기특함에 여신께서 손길을 내리시어 꽃잎을 쓰다듬으셨나니.

       꽃들이 그 손길을 보고 부러움에 그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느니라.

         

       또한 꽃밭에 널려있는 그와 같은 꽃들은 제 동족이 여신의 쓰다듬을 받은 사실에 기뻐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었나니.

         

       그리하여 그 꽃들은 축복받은 동족의 땅은 피하기로 하였더란다.

         

       그렇게 결정하고 씨앗을 뿌리고 새싹을 틔울 준비를 하였더란다.

         

       “시스투스(Cistus)여! 그 불꽃이 이곳을 범하지 않도록 하라!”

         

       그리하여 이기심 가득한 행위와 함께 세상에 불이 번지게 되었도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꽃들이 불꽃을 피워내고.

       휘발성 물질로 제 몸을 던져 불꽃을 키우며.

       그렇게 세상을 불로 뒤덮는구나.

         

       불길로.

       이기적인 불꽃으로.

       모든 잿더미를 양분 삼아 새싹을 틔우기 위하여.

         

       그렇게 이 닫힌 세계를 태운다.

         

       꽃이 여신이 가진 사나움이 그러하듯.

       맹렬하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 두 편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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