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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3

   내가 이번 영상 컨셉에 대해 말할 때 강조한 건 신비로움이다.

   

   

   이성적인 설득 따윈 내다 버려!

   

   

   그냥 딱 보고서 뭐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면 저 쪽에서 제멋대로 오해를 해 줄 거야!

   

   

   특히나 이런 영상에 내성이 없는 판타지 주민이라면 더더욱!

   

   

   성지의 고급스러운 예배당.

   

   

   나와 페이비가 지닌 주신의 신성.

   

   

   거기에 더해 여신의 축복까지 받아가며 영상을 찍은 나는 수정구 속에서 흘러나오는 내 모습에 만족하고 고갤 끄덕였다.

   

   

   이 정도면 괜찮네. 현대의 동영상 사이트에 올려도 외모만으로 화제가 될 것 같아.

   

   

   확실히 입만 다물면 괜찮다니까. 입을 다물 수가 없어서 그렇.

   

   

   “이게 아냐!”

   

   

   와장창하며 깨진 유리구슬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머리를 움켜쥔 채 미친사람처럼 중얼거리는 변태사도를 노려봤다.

   

   

   평소 같았으면 내 눈빛에 무어라고 반응했을 녀석이지만 오늘은 머리를 움켜쥔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정도로는 안 됩니다. 영애께서 지닌 아름다움을 조금도 담지 못하고 있잖습니까. 빌어먹을. 저란 인간이 기록기술의 한계에 대해 생각하지도 않은 채 자화자찬을 하고 있었다니 목을 매달고 싶군요.”

   

   

   어. 나는 저 정도면 마음에 드는데?

   

   

   최소한 구슬을 깨부시면서까지 난리칠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나만 그래?

   

   

   “프레테님. 아무리 그래도 영애님께서 기록된 영상을 부수는 건 과했다고 생각합니다.”

   

   

   정색을 한 페이비가 진지하게 따져 묻자 그제서야 변태사도가 혼잣말을 멈췄다.

   

   

   다만 그가 납득을 하고서 멈춰선 것은 아니었다.

   

   

   그의 눈가에서 묻어나오는 광기는 여전히 짙었다.

   

   

   “안이합니다. 안이합니다! 성녀님!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결코 최고의 작품을 만들 수 없습니다!”

   “허나.”

   “성녀님! 이 영상은 단순히 주신교회의 신자들에게 보여줄 것이 아닙니다! 대륙의 수많은 이들에게 알른 영애의 진가를 보여줄 기회란 말입니다! 당신께서는 진정 안이한 마음가짐으로 영애를 욕보이려 하시는 겁니까!”

   

   

   아니 내가 괜찮다니까?

   

   

   이 정도면 만족한다고.

   

   

   애초에 이 영상을 보고 누가 안 좋은 말을 하는데. 너 말고는 영상을 보고 발악할 사람이 없어요. 이 새끼야.

   

   

   “안이… 했을지도 모르겠군요.”

   

   

   페이비? 넌 또 왜 이 미친놈의 말에 설득이 되고 그러는 거니?

   

   

   저 놈의 광증 어디에 그럴듯한 요소가 있는 걸까?

   

   

   도저히 난 이해가 안 되거든!?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기록마법을 수정하는 게 가능하다면 그게 가장 이상적일 겁니다.”

   “에르기누스님께 여쭤볼까요?”

   

   

   요정여왕 너까지 이 대화에 참여하면 어쩌자는 거야!

   

   

   넌 말려야지!

   

   

   미친 놈들을 다독여서 미친짓을 그만두게 하는 것이야말로 연장자의 역할이잖아!

   

   

   “가능하겠습니까?”

   “이런 연구하는 걸 좋아하시거든요. 아!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후후. 지금은 비밀로 할게요. 그치만 한 가지는 장담할 수 있어요. 최고의 결과가 나올 거랍니다.”

   

   

   이 새끼들아!

   

   

   내 의견은!

   

   

   당사자 의견은 어디다 팔아먹은 건데!

   

   

   열받네!?

   

   

   한 번 엎어?!

   

   

   주제 파악 한 번 시켜줘?!

   

   

   <내버려둬라. 다 널 위한 것이잖으냐.>

   ‘그 당사자가 지금 무시당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말이다. 여왕님이 말한 재미난 이야기가 어느 정도 추측이 가거든.>

   

   

   할아버지의 설명을 들은 나는 이번만큼은 무례를 봐주겠다고 마음먹었다.

   

   

   화를 내면서 판을 엎기에는 너무 재밌을 것 같은 이야기였다.

   

   

   *

   

   

   다음 날 아침. 조이와 네베라가 성지에 도착했다.

   

   

   “제가 아는 마법사들 중에선 두 분과 두 분의 스승님이 가장 뛰어나셔서요. 부디 기록 마법의 개조에 협조해 주시겠습니까?”

   

   

   기록 마법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굳이 저 둘을 부른 의도는 너무도 뻔했다.

   

   

   의도적으로 싸움을 붙여서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려는 거겠지.

   

   

   나조차도 눈치를 챌만큼 노골적인 행동이었던지라 조이와 네베라는 껄끄러운 기색을 내비쳤지만 둘의 스승은 아니었다.

   

   

   “마법의 신 쪽은 그냥 돌려보내도 된다. 내 하루 안에 최고의 결과물을 가져다주지.”

   

   

   조이의 그림자에서 솟아난 에르기누스는 저딴 꼰대와 동등하다 여겨지는 게 짜증이 난다며 투덜거렸다.

   

   

   그러자 네베라의 옆에 새 하나가 생겨나더니 자신의 날개로 에르기누스를 가리켰다.

   

   

   “헛소리를 하는 군! 수백년 동안 지하에 처박힌 구시대의 인간이 기록마법이란 문명을 어찌 쫓겠다는 거냐! 제가 해결해드리겠습니다! 요정여왕이시여. 저 놈과 데이트라도 하고 오시죠. 머리가 굳은 멍청이의 쓸모는 그것뿐이니까요!”

   “호. 내 머리가 굳었다고?”

   “물론. 거기에 오만하기까지 하지. 수백년 동안 이어진 역사를 몇 달 새에 다 파악할 수 있다 생각할만큼.”

   “하하하! 그건 오만이 아니라 네 놈의 무능이 불러일으킨 자신감이다.”

   

   

   두 신격이 초등학생마냥 자존심싸움을 하는 동안 조이와 네베라는 눈빛으로 자기 스승의 추함을 사과했다.

   

   

   째 스승과 제자의 역할이 바뀐 듯한 광경이 한심해서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하루를 기한으로 정한 에르기누스와 마법의 신은 서로의 제자를 데리고서 떠나갔다.

   

   

   기한을 늘려달라 말하는 순간 상대에게 비웃음 당할 게 훤하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럴 듯한 걸 만들어오겠지.

   

   

   “닭장여왕. 너한테 헤벌레하는 찐따를 저렇게 가지고 놀아도 돼?”

   “그럼요. 어차피 에르기누스님께서 이길텐데요.”

   “지면?”

   “으음. 그럴 리 없다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진다면 우울해져서 훌쩍이는 에르기누스님을 위로할 수 있으니 그것대로 기쁘겠네요.”

   

   

   그런 안타까운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라 요정여왕은 말했지만 정작 그녀의 얼굴에선 기대감이 묻어나왔다.

   

   

   순수의 상징인 요정여왕이 어쩌다 이런 꼴이 되어버린 걸까.

   

   

   내가 요정여왕을 한심하게 보는 동안 변태사도는 교단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최고의 작품을 만들겠다 외치는 그에게선 예술가의 광기가 느껴졌다.

   

   

   저러다 귀 하나를 잘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을 정도야.

   

   

   페이비라 해서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자신의 마음가짐이 부족했음을 뼈져리게 느꼈단 그녀는 내일 완벽한 영상을 찍기 위해 여러 사제들과 함께 축성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무슨 악을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영상 찍겠다고 아랫 사람을 부리는 건 갑질이 아닌가 싶었지만 지원자가 너무도 많아 걸러 받아야 했던 것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할아버지. 그냥 이 세상은 망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럴 땐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

   

   

   여러 종교의 사도들이 모여 회의를 나누고서 며칠 뒤. 권의 사도인 자락스는 탁자 위의 두 수정구를 바라보며 팔짱을 꼈다.

   

   

   “이걸로 신도들을 설득하라 하셨다고?”

   “수정구를 사용해보면 알 거다. 그걸 보면 누구라도 경외심을 품게 될 테지.”

   

   

   탄광의 사도이며 탄광도시의 수호자인 카일은 팔짱을 낀 채 발을 구르는 자락스를 보곤 헛웃음을 흘렸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가.”

   “그 분의 고결함을 믿게 만드는 데 이딴 수작질을 부려야 한다는 것이 거슬린다.”

   

   

   루시는 모르고 있지만 자락스는 예전에 그녀를 본 적이 있었다.

   

   

   파괴의 사도가 나온다기에 흥미를 지니고 찾아간 투기장에서 자락스는 피를 토하면서도 일어서는 루시를 봤다.

   

   

   이긴다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일 터인데도 꿋꿋이 일어나 무기를 치켜드는 그녀를 눈에 새겼다.

   

   

   그랬기에 루시가 주신의 사도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자락스는 의심하지 않았다.

   

   

   절망을 모르는 근성의 소유자야말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일 테니까.

   

   

   “그러는 너도 다른 사도들이 그 분을 믿게 하기 위해 헛짓거리를 했잖냐.”

   “…잊어버리라고 했을 텐데.”

   

   

   당시 사도들 사이의 분위기는 결코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저마다 한 번쯤은 충돌을 경험해봤던 이들이고 긴 역사 동안 수도 없이 싸워왔던 이들도 여럿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상의 위기를 운운해봐야 사도들간의 화합이 이루어지긴 힘들었다.

   

   

   그게 여러 안 좋은 소문을 달고 다니는 루시 알른이라면 더더욱.

   

   

   설득하려 해봐야 답이 없을거라 생각한 자락스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일어나 일부러 시비를 걸었다.

   

   

   자신을 제압하는 것으로 그녀의 권위가 세워지길 바랐으니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헛짓거리였다. 주신의 사도는 그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성녀님께서 네가 고자가 되는 걸 막아주셨는데 어떻게 잊나.”

   “이빨 몇 개 뽑아줄까?”

   “하하하. 미안하네. 그래도 일단 보기나 하게. 절로 감탄이 나올 테니.”

   

   

   카일의 장난스런 웃음에 자락스가 못 이긴 척 수정구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 그리고 나중에 두 수정구 중 어느 쪽이 더 좋았는지 말해달라더군.”

   “꼭 필요하냐?”

   “요정들의 여왕께서 간곡히 부탁하시던 걸 보면 뭔가 의미가 있지 않겠나.”

   “으음. 일단 알겠다.”

   

   

   느릿하게 고갤 끄덕인 자락스가 수정구에 힘을 불어넣은 순간 그 안의 마법이 발현된다.

   

   

   칙칙한 오두막의 정경이 신성한 교회의 풍경으로 물들어간다.

   

   

   너무도 갑작스런 변화에 놀란 자락스가 퍼뜩 일어선 순간 교회의 한 가운데에서 여자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릎을 꿇은 채 신상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아이의 등은 자그마했다.

   

   

   저 작은 어깨에 세상의 명운이 짊어져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 주신이시여.

   

   

   수정구에서 음성이 흘러나온 순간 신상을 기점으로 빛이 떨어져 내렸다.

   

   

   꽃잎의 모양을 한 신성들이 교회에 흩날리는 가운데 여자아이가 몸을 일으켰다.

   

   

   약한 바람을 따라 흩날리는 붉은 색 머리카락. 흰색 속이기에 더 돋보이는 눈동자.

   

   

   하얗지만 생기를 품은 피부와 꾹 다물린 입술. 신상 앞에 선 여자아이는 너무도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루시 알른에게 한 번 호되게 당한 자락스조차도 혼이 빠지게 만들 만큼.

   

   

   “장난이 아니네. 어지간한 이들이라면 홀려버릴 거야.”

   

   

   영상에 압도된 자락스가 실소를 흘리자 카일이 고갤 저었다.

   

   

   “아직이야.”

   “뭐?”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이게?”

   

   

   그 후로 한참 동안 영상을 구경한 카릭스는 다시금 돌아온 오두막의 정경을 보곤 헛웃음을 흘렸다.

   

   

   “주신의 사도께선 대륙의 모두가 자신을 찬양하길 바라시나?”

   “그럴지도 모른다.”

   

   

   카일은 부정하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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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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