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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4

    <664 – 무책임한 쾌락(12)>

     

    싱이 파시블 예프와 극적인 타협을 이룬 사이, 오크노디는 간부회의에 참석하고자 상경하던 간부 하나의 뒤를 졸졸 쫓았다.

     

    ‘간부회의장에 몰래 입장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하나 슥삭 담그고 신원을 대체하는 편한 방법도 있지!’

     

    처음 보는 이벤트에 신원사칭이라는 대담한 짓을 한다는 사실이 고인물로서 흥분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오크노디의 안일함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처음 대하는 이벤트이니만큼 신중에 신중을 더했다.

    둥실둥실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사이에 섞여서 <안개형성><응집><강철화>의 강철구름주문을 걸고 하늘 위에서부터 미행하는 사람의 준비성이 부족했다면 세상에 어떤 방법으로도 미행에 성공할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불행의 룬>

    <모든판정 성공확률 –50%>

     

    다만, 억까가 있을 뿐이었다.

     

    <스틸 레인>

     

    환락의 도시의 군단을 해치울 방법으로 쇠가시의 비바람을 선택한 간부가 부채를 휘두르니, 섭선을 따라 몰아치는 쇠가시의 폭우에 군단이 죽어나갔다.

     

    “으앙, 내 구름!”

    “?”

     

    별안간 지상에 추락한 오크노디나 마법을 쓴 간부나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잘만 타던 구름이 쇠가시가 되어 추락하니, 떨어진 사람은 떨어져서 억울하고 공격기술을 썼더니 하늘에서 여자아이가 떨어진 간부도 황당했다.

     

    “이게 뭐지? 정령인가…?”

    “남의 발판을 뺏고 그게 할 말인가요!”

    “뭔진 모르겠지만 미안… 너 뭐하는 애니? 어디 정령계에서 왔어?”

    “전 중간계 사람이에요!”

    “중간계 사람은 구름 위에서 살지 않아.”

     

    정령 맞구나.

    간부는 조금 흥분했다.

    차원 저편의 존재는 본디 사악하다.

    자신의 행성에서 비롯되지 않은 모든 외계의 존재를 노예종족, 하등종족으로 인지하고 잔혹하게 수탈하고 유린하기 마련이기에.

    그런데 이 아이는 집? 발판? 아무튼 무언가를 빼앗기고도 선공을 날리지 않을 정도로 순했다.

    간부는 경험을 토대로 이런 현상을 해명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너 내가 마음에 들었구나? 계약자에게 좋게 보이고 싶어서 괜히 근처를 알짱거리다가 모습을 드러내고 계약하자고 꼬시는 거지?”

    “아니 피해보상을 하고 사죄의 그랜절을 박아도 모자랄 마당에 그게 무슨 말인가요!”

     

    씩씩거리며 홧김에 붕붕 휘두르는 팔을 따라 어마어마한 바람이 일어나며 지면이 갈려나갔다.

     

    “바람의 정령! 상성도 좋구나. 알았다. 네 힘은 앞으로 요긴하게 쓸 수 있겠어. 계약의 대가로 어떤 바람을 바치길 원해? 건물을 부수는 바람? 피바람?”

    “흥. 그냥 죽으세요!”

     

    화가 난 오크노디는 다짜고짜 간부를 공격했다.

    조금 돌아가는 길이 되긴 했지만 어차피 간부를 죽여서 신원을 빼앗고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니, 걸리는 일은 없었다.

     

    깡!

     

    오크노디의 영역을 실은 공격을 받아내자마자 간부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의 정체나 출신차원은 불명일지라도 위험성 하나만은 확실해졌다.

    영역의 밀도나 발현속도, 다루는 재주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보다 위였다.

     

    <영역전개>

    <공포의 영역>

     

    같은 마법과 현상도 근원이 되는 요소에 따라 사용법이 크게 달라진다.

    일전의 스틸레인, 강철가시를 비처럼 쏟아내는 마법은 금속마법 전문가나 대기마법 전문가가 사용하면 가시를 형성해서 쏟아내는 마법이 된다.

    그러나 공포마법 전문가가 사용하면 비생명체에게 인공자아를 부여하고 존재의 형상을 무너뜨려서라도 현재 위치에서 달아난다는 강박증을 심는 마법이 된다.

     

    ‘그 구름에서 떨어졌다면 공포를 느끼기는 했겠지. 정령이건 뭐건 교육은 시켜줘야겠어. 중간계는 힘만으로 앞설 수 있는 야만의 땅이 아니라고.’

     

    상대를 공포상태에 빠뜨려 이상행동을 유발하는 공포영역전개.

    격의 차이가 큰 생명체라면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즉사, 나름 대등한 생명체라도 두려움에 얼어붙어 제대로 된 반격도 불가능하다.

    자신보다 뛰어난 생명체라도 순간의 두려움에 섣불리 공격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만드는 영역.

     

    “시시해.”

    “?!”

    “어쩜 이렇게 쓸모없는 능력도 다 있담? 차라리 저한테 죽는 게 낫겠네요!”

     

    겁에 질려 제 행동도 통제하지 못하는 것처럼 주춤주춤 다가오던 오크노디가 별안간 고개를 들고 한심하게 여기는 눈으로 말했다.

    활짝 펼친 자그마한 손을 따라 비눗방울처럼 떠오르는 구체로부터 간부는 <공포>를 느꼈다.

    저 안에 담긴 것은 자신의 공포영역과 같은 성질을 지닌 무언가.

    공포의 총량 자체는 작다.

    그러나 밀도가 자신과 격을 달리 했다.

     

    <회차 세이브가 분기점 이후에 덮어씌워진 공포>

    <호감도 관리에 실패해서 나이스보트를 탄 공포>

    <외계에서 수련하고 왔더니 시간비율이 처참해서 행성계가 망해있는 공포>

     

    그것은 플레이어만이 느낄 수 있는, 적게는 수어 시간에서 많게는 수십 수백 시간을 들인 회차가 망했을 때 엄습하는 공포였다.

    그 편린을 구체의 외부에서 관측하는 것만으로도 간부는 자신이 밀렸음을 깨달았다.

     

    <지정유도>

    <상시가속>

    <방어관통>

    <역장관통>

    <강제침식>

     

    흉악한 술식이 대거 첨가되어 회피도 방어도 허락하지 않는, 접촉만으로도 엄청난 공포에 빠뜨릴 미지의 공포마법.

    공포영역의 대가이기에 실감할 수 있는 자신이 모르는 미지의 공포에 간부는 엄청난 공포심을 느꼈다.

     

    “일 년에 한 번뿐인 <지정공포 : 비극의 감각>의 힘을 사용한다!”

     

    재단간부의 권능이 영역 3단계 특화영역을 넘어선 영역 4단계 각인영역이 되어, 일순간 주변일대 공간에 새로운 법칙을 새겼다.

    자신의 주 권능의 발현강도를 1년간 50%로 낮추는 대신, 회피불능의 치명적인 권능을 적중시킨다.

    피할 수 없는 악몽이 일순간 오크노디를 덮쳤다.

     

     

    * * *

     

     

    문득 불길한 상상이 들었다.

     

    “감독관 파시블 예프가 군단토벌명령을 완수하고 회의장에 입성을 요청합니다.”

    “입성을 허락하지.”

     

    회의장에 발을 들이는 감독관과 호위.

    가볍게 그 실력을 눈에 담아두려던 집사장이 흠칫 놀랐다.

    다른 간부들과 집사들 또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시발 저게 뭐지?”

    “이 무슨 해괴한 꼬락서니인가.”

    “가능충 파시블 예프가 드디어 미쳐버린 건가?”

     

    체형에 맞지 않는 여성복이 찢어질 정도로 남성미를 자랑하는 건장한 육체.

    그것을 수치심도 느끼지 못하는지 뻔뻔한 얼굴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선을 받아내는 자.

    여장호소인이라고 부르기도 힘들 끔찍한 몰골의 싱을 보고 모두가 말문이 막힌 사이, 새롭게 복귀하던 간부 한 명이 싱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싱끼야아아악! 이게 머야, 변장술은 어디다 때려치웠어!! 싱이 암흑진화를 해버렸자나!!!”

     

    간부로 변장하고 감쪽같이 회의장에 입성했던 간부노디, 바로 내가 비명의 주인이었다.

     

     

    * * *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돼!!”

     

    싱은 통제를 쉽게 따르지 않는 독립적인 성향이 강한 플레이어블 캐릭터다.

    내용물도 정말로 NPC가 맞나 의심될 정도로 지 맘대로 천방지축 방방곳곳을 쏘아다니거나 훈련에 미친 플레이어처럼 폐관수련을 조지기도 한다.

    갑자기 변장술 수련 다 해놓고는 이번엔 여장남장여자라는 심오한 컨셉을 잡고 남성복을 입고 나타나거나 반나체 꼬라지로 분탕을 치고 간부회의를 개판낸 다음에 도망칠지도 모른다.

    이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돼.

    얼른 싱이 올바른 길을 걸어가도록 변장술을 마스터할 때까지 제대로 인도해줘야만 해!

     

    “그러니까 얼른 죽어주세요!”

     

    저 혼자 괴상한 상상을 하며 공격을 퍼붓는 오크노디 앞에서 재단간부는 급속도로 수세에 몰렸다.

     

    “이런 시발. 어떻게 <비극의 감각>에 적중당하고도 떠올리는 상상의 꼬라지가 그따위란 말이냐!”

     

    재단간부가 분통을 터뜨릴 만도 했다.

    본디 공포란 대적할 수 없는 폭력을 의미한다.

    강자일수록 힘을 숭상하니, 마주할 공포도 으레 그러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오크노디는 조금 달랐다.

    힘은 두렵지 않았다.

    뭐든지 한 방에 해치우는 한방빌드를 적립했으니까.

    그녀의 두려움은 따로 있었다.

    힘들게 키운 NPC가 잠시 한눈 판 사이에 삐딱선을 타고 테크트리를 멸망시킬 때!

    이 사실을 모르고 오크노디가 본 공포가 무엇인지 막연하게 인지만 할 뿐인 재단간부는 자신이 오크노디의 술수에 당했다고 생각했다.

     

    “이 자식… 비극의 감각을 전혀 엉뚱한 상상으로 덧씌워서 자신의 감정마저도 속였구나!”

     

    간부의 머리로는 이 경우가 아니고서야 납득이 가지 않았다.

    불안과 공포에 얼마나 익숙해야 이런 태연한 대처가 가능한가.

    기술이 적중한 시점에서 상대가 정령 따위가 아니라 정체를 숨긴 다크프린세스라는 사실도 알았다.

    다크프린세스가 이사장의 손에 갓난아기 때부터 모진 고문과 학대를 당하며 이 세상 모든 고통과 악의를 수집했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나.

    깨달음과 후회가 반반 섞인 눈으로 뒷걸음질치던 간부는 공포로 상대의 대항의지를 꺾고 자멸시켜야 할 자신이 도리어 겁에 질렸음을 깨달았다.

     

    “이, 이건 무리야.”

     

    뒤돌아 달아나기 무섭게 재단간부의 앞에서 비눗방울이 터졌다.

    그 순간, 재단간부는 목도했다.

     

    세계를 구할 가능성이 있었으나, 자신의 실수로 인해 두 번 다시 그 가능성에 도달하지 못하고 영원히 파멸을 반복하는 절망의 굴레를.

     

    자신을 사랑하는 한 학생이 연심을 독차지하기 위해 <경쟁자>들의 고향을 초토화시키고 세상을 멸망시켜 두 사람만의 죽음의 요람을 꽃피우는 모습을.

     

    극한의 고행 끝에 세계를 구할 힘을 얻고 돌아오자, 이미 먼 옛적에 멸망한 세계에서 무수한 생명을 집어삼키고 강해진 종말이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을.

     

    “아.”

     

    화끈함이 느껴졌다.

    고개를 내리자 뻥 뚫린 가슴이 보였다.

    차라리 감사했다.

    이런 공포, 이런 절망을 깨닫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으니까.

    죽음조차도 그에게는 구원이었다.

     

    풀썩.

     

    쓰러진 간부의 시체를 콩콩 밟으며 화풀이를 한 오크노디가 시체를 반듯하게 눕혔다.

    뚫린 가슴과 옷감을 대충 재현하고는 시체 위에 손을 얹었다.

     

    <변장술>

    <극의 – 컨닝>

     

    싱의 훈련을 도우면서 <핑크베리 교수>로의 변장이 성공하며 쑥쑥 오른 변장술 경험치 덕분에 연마한 극의로 재단간부의 모습을 따라했다.

    쑥쑥 자라나는 키, 높아진 시야, 쓸데없이 거추장스럽게 커진 가슴.

     

    “왠지 더 괘씸해!”

     

    시체를 몇 번 더 밟아준 뒤에야 오크노디, 아니 간부노디는 간부회의장으로 향했다.

     

    “집사장 어디갔어?”

    “환락의 도시 시장 목을 따러 가셨습니다.”

     

    드디어 불행의 룬을 떠넘길 간부회의가 열린다며 신나기도 잠시, 분탕질이 너무 잘 먹혀서 회의 개최시간이 미뤄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간부노디는 힘이 빠져서 회의테이블에 축 늘어지고는 접대용 음료 7종을 하나씩 다 마셨다.

     

    “쿠키도 드시겠습니까? 정령 놈들의 원혼을 빚어다가 만든 원혼쿠키입니다.”

    “완전 좋아!”

     

    알아서 일 끝나면 오겠지.

    간부노디의 머릿속에 집사장과 싱의 존재가 우선순위의 저 뒤편으로 밀려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진화를 잘못한 상상 속의 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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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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