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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4

        

       환상처럼 갑자기 나타나는 하얀 꽃잎.

       분노보다는 집착에 가까운 불꽃을 품은 눈송이가 하늘거리며 허공을 날아다닌다.

       눈송이를 얇게 썰어 만든 것 같은 저것의 가운데에 찍혀있는 붉은색은 불꽃인가 핏물인가.

       어쩌면 그것은 노려보는 충혈된 눈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꽃잎은 하늘하늘 움직인다.

       그러고는 고작 35도밖에 되지 않는 발화점을 가지고, 그렇게 달아오른 온도에 이기지 못하는 척 제 몸을 맡겨 그렇게 화르륵 불이 타오른다. 허공을 노니는 불나방이라도 되는 듯 불꽃으로 날갯짓하고, 날개에서 반짝이는 가루를 떨어뜨리기라도 하려는 듯 불씨를 바닥으로 툭툭 떨구며 그렇게 허공을 비행하고 덧없이 사라진다.

         

       눈송이야.

       타오르는 눈송이야.

       떨어졌다 사라지는 진짜 눈보다도 덧없이 사라지는 꽃잎의 눈송이야.

       꽃잎에 새겨진 집착을 품고 불꽃과 함께 덧없이 산화하는 눈송이야.

         

       눈송이가 불탄다.

       불꽃이 하늘거리며 움직인다.

       사라지고 뭉쳐지기를 반복하며 세상을 불태운다.

         

       화르륵.

         

       닫힌 세계야 타오르라.

       이기심 가득한 불씨가 들러붙고.

       꽃잎을 날개 삼아 벌레 흉내를 내 이곳저곳에 날아가 나른 꽃가루를 묻히고.

         

       아, 꽃가루와 같은 불똥이여.

       날개와 같은 불꽃이여.

         

       그리고 그렇게 묻힌 빛나는 씨앗을 순식간에 타오르게 할 휘발성의 물질이여!

         

       화르륵 활활 잘도 탄다.

       에너지를 삼켜 타오르고.

       강이자 바다의 역할을 하게 만들어주었던 관을 녹이고 태우고 변형시킨다.

       새까맣게 변해가는 저 관의 형상이여.

       지나가는 자리에 잿더미밖에 남기지 아니하는 이 이기심이여.

         

       공간이 달아오르고, 떨어져야 할 액체는 증발해 흔적조차 남기지 아니한다.

       기근의 기사가 지나가기라도 한 듯 그 어떠한 생명의 흔적조차 남기지 아니한 채 그렇게 이 닫힌 세계를 불태운다.

         

       텅스텐의 기둥이 멀쩡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의미가 있을까.

         

       폐허에 남은 기둥이 과연 그것이 의미가 있을까.

         

       그렇게 닫힌 공간은 의미를 상실한다.

         

       앙상한 뼈대만 남긴 채.

       앙상한 가지를 뻗은 죽은 나무 몇 그루만 존재하는 황무지처럼 만들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닫힌 세계는 불타버렸다.

         

       불타버렸다….

         

       “후우-”

         

       그렇게 불타버린 세상에서 남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시스투스(Cistus) 뿐이라.

       꽃밭을 태우고 숲을 태우는 그 지독한 이기심 속에서도 제 씨앗은 불꽃에 피해를 보지 않게 만들고, 잿더미 속 비옥함을 양분 삼아 자라나게 하는 그 이기심의 결정체인지라.

         

       그리하여 시스투스는 살아남았다.

         

       시스투스를 흉내를 내었던.

       그리하여 사나운 꽃의 여신에게 선택받았던.

       그 자랑스러운 시스투스는 그렇게 살아남았더란다.

         

       앞서 다른 시스투스가 결정하였듯, 그 불꽃이 차마 그 자랑거리는 범하지 아니하였더란다….

         

       다만 불꽃의 열기에 그 뿌리는 사라져버리고 말아서.

       그래서 그 뿌리를 뻗을 땅을 찾기 위해 저벅저벅 소리를 내면서 걸어 다닐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아, 식물의 흉내를 내던 사람은 사라져버렸다.

       인간이 된 시스투스였던, 시스투스를 흉내 내는 인간이었던 것은 그렇게 오롯이 인간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더란다.

         

       그리고 잿더미가 되어버린 이 풍경 속에서 이것저것을 뒤적거리고 살펴보면서.

       제 씨앗을 이 비옥한 땅에 뿌릴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이 공간을 탐구하고 살펴보는 일을 하였더란다….

         

       그렇게 박진성은 이곳저곳을 자세히 살펴보았고.

         

       “흠? 이 텅스텐…. 녹았군?”

         

       그 관찰의 끝에 무언가를 발견하였다.

         

       피라미드를 이루고 있던 텅스텐 기둥 중 하나에 변형이 일어난 것을 말이다.

         

       텅스텐의 녹는점은 3,422도.

       당연히 이 정도의 불꽃에 녹을 리가 없다.

         

       텅스텐 합금의 경우 그것보다 훨씬 낮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고작 이 정도 불꽃에 녹을 정도는 아닐 터.

         

       ‘설마?’

         

       진성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텅스텐 기둥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거 참.”

         

       그리고, 이 텅스텐이 녹은 이유를 찾아내었다.

         

       『 風狸鋼鐵 』

         

       “중국산이었군.”

         

         

         

        * * *

         

         

         

         

       용병들은 말한다.

         

       「 신형 합금으로 만들었다고 광고하는 신형 총기를 사는 놈은 머리가 이상한 놈이다. 」

         

       용병들은 말한다.

         

       「 일본 무기를 들고 의뢰하러 가는 놈은 머리에 든 것이 없는 놈이다. 」

         

       용병들은 말한다.

         

       「 중국산 금속으로 만든 무기를 믿는 놈은 머리가 없는 놈이다. 여러 가지 의미로. 」

         

       “흐음.”

         

       용병들은 그 누구보다 무기와 장비에 관심이 많은 족속이다.

       그것은 단순히 장사 수단을 넘어서, 몸뚱이라는 소중한 밑천을 지키기 위한 보험이며,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구해줄 수 있는 구명줄이기도 했으니까.

         

       그렇기에 용병들은 틈만 나면 무기나 장비들을 둘러보기도 하고, 활발하게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커뮤니티에서 수시로 나오는 말들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저 위의 말들이다.

         

       「 신형 합금으로 만들었다고 광고하는 신형 총기를 사는 놈은 머리가 이상한 놈이다. 」

         

       무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성.

       그런데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신형 합금에, 신형 무기라?

       당연하겠지만 저런 것을 사는 놈들은 자신의 목숨으로 신제품을 실험해볼 용기가 있는 진정한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이거나, 장비의 신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르는 초짜이거나, 아니면 겉멋만 든 멍청한 새끼였다.

         

       「 일본 무기를 들고 의뢰하러 가는 놈은 머리에 든 것이 없는 놈이다. 」

         

       일본 무기는 여러 가지 의미로 악명이 넘쳤다.

       내수화 때문인지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비쌌고, 실전에서 사용되지 않은 까닭인지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넘쳐나기까지 했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다.

       현대화기의 경우에는 대량 생산을 하지 않아 부품을 구하기도 힘들었고, 잔고장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도저히 실전에서 사용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쓸만한 녀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 경우에는 싸고 신뢰도 높고 튼튼하고 고장도 잘 안 나는 대체할만한 것들이 넘쳐났으니 굳이 쓸 이유가 없었다.

       냉병기의 경우 그나마 쓸만하기는 한데…. 이 역시 굳이 쓸 이유가 없었다.

       돈 많은 사람은 장인이 만든 것이나 아티팩트를 쓰면 그만이고, 돈이 없으면 합금을 재료로 공장에서 찍어낸 것을 쓰면 압도적으로 효율적인데 다른 나라 장비에 비해서 훨씬 비싼 일본제를 굳이 찾아서 쓸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 중국산 금속으로 만든 무기를 믿는 놈은 머리가 없는 놈이다. 여러 가지 의미로. 」

         

       중국산 금속은.

       말할 필요도 없이 악명이 높았다.

         

       토법고로(土法高爐)에서 만들기라도 한 것일까.

       중국산 금속은 이상하게도 불순물이 넘쳐났고, 심각한 하자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소총 정도는 너끈히 막아줘야 할 철판이 고작 권총에 뻥뻥 뚫린다거나.

       몇 번 쏘지도 않았는데 기관총 총열이 순식간에 녹아서 제 역할을 못 하게 된다거나.

       중국산 철근과 콘크리트를 사용해 벙커를 만들었는데, 놀랍게도 같아야 할 열팽창계수가 달라서 얼마 지나지 않아 금이 쩍쩍 가고 제 역할을 못 하게 되었다거나.

       중국산 금속으로 만든 해머로 돌을 쳤는데, 놀랍게도 돌은 멀쩡하고 해머가 찌그러졌다거나….

         

       중국산 금속과 관련한 떠도는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정말로 기가 막힌 것들이 많았다.

         

       이러한 경험담은 하나하나 모여 용병들에게 ‘중국산 금속은 믿으면 안 된다.’라는 생각하게 했고, 싼 맛에 썼다가는 어처구니없이 죽을 수 있다는 교훈을 그들에게 안겨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중국의 기술력이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갔음에도 그대로 남아, 용병들이 중국산 금속에 학을 떼게 되었다.

         

       그리고 용병 생활을 했던 진성 역시 이러한 인식을 그대로 공유하고 있었다.

         

       중국산 금속은 신뢰하기 힘들다고 말이다.

         

       ‘쯧. 싸구려를 쓰면 이렇게 되는 것을.’

         

       뭐.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눈앞에 변형된 텅스텐 기둥이 그 증거이지 않은가.

         

       어디 용광로에 넣은 것도 아니고.

       고작 시스투스를 재료로 발화시킨 불꽃에 변형되는 텅스텐 기둥이라니….

         

       열에 강하고 단단해서 궤도상 질량 폭격무기(Hypervelocity Rod Bundles)의 재료로도 쓰이는 금속이 고작 이 정도의 열에 녹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특히나 이런 특수 목적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딱 보니 일반적으로 쓰이는 규격이 아니니 주문 제작으로 만든 것일 터.

       그렇다면 더더욱 신경을 써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

         

       ‘흠. 잠깐, 주문 제작이라?’

         

       주문 제작.

       주문 제작…?

         

       ‘중국 철강 회사에서 주문 제작을 해?’

         

       한국 회사도 아닌 중국 회사에서 주문 제작을 해서.

       한국에 있는 서울 이능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법 안의 비밀공간에 설치했다고?

         

       ‘이상하구나.’

         

       이건 확실히 이상하다.

         

       정부나 군대가 연관되어 있다면 당연히 한국 철강 회사에서 주문했을 것이다.

       딱 봐도 아주 비밀스러운 시설이었으니까.

         

       그런데….

       중국산이라?

         

       ‘구체. 구체는?’

         

       진성은 허공을 쥐어 바닥에 굴러다니는 구체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곤 구체를 꼼꼼히 살펴보았고.

         

       『 頭滾莊 』

         

       …그곳에서도 한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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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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