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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4

   솔라딘의 수도에서 세실을 도와 왕위계승을 위한 작업을 하던 아서는 카리아가 자신을 부른다기에 다급히 발을 움직였다.

   

   

   조각의 비아냥, 옛 조상님들의 잔소리, 쌓이기만 하는 일거리에서 잠시나마 탈출할 기회다! 이걸 놓칠 순 없다!

   

   

   복구작업을 거드는 여러 기사들을 지나쳐 뒷골목에 도착한 그는 조각상을 가운데 두고서 기도를 올리는 남자들을 보곤 멈칫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카리아님의 부하들일텐데 왜 저러고 있는 거지?

   

   

   저 조각상이 뭐기에.

   

   

   음? 저건 루시 알른의 조각상이잖나.

   

   

   무척이나 정교하군.

   

   

   예술교단에서 만든 거겠지.

   

   

   저게 괜찮은 예술품이란 건 알겠다만 험악한 남자들이 훌쩍이면서 기도를 올리는 이유는 알 수가 없다.

   

   

   루시 알른에 대해 잘 모르는 이라면 이해를 하겠다만 저 자들은 그녀의 패악질에 한 번씩은 당해보았던 사람들아닌가.

   

   

   “3왕자님. 빠르게 오셨네요.”

   “카리아님. 장난이 과하십니다.”

   “아. 저거요? 제가 시킨 거 아니에요.”

   “그럼 저들이 절 골리려 한 겁니까?”

   “아뇨. 진심으로 저러는 거에요. 저런 간절함이 연기로 나오겠어요?”

   

   

   아예 대성통곡을 하는 남자의 모습에 아서는 눈두덩이를 눌렀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과로에 시달리다 기절해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군.

   

   

   “꿈 아니에요.”

   “…차라리 꿈인 편이 나았을 듯 합니다만.”

   “따라오세요. 이유를 알려드릴게요.”

   

   

   카리아의 뒤를 따라가는 와중에도 여기저기에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 정도면 정신과 관계된 무언가가 수도를 공격했다봐야겠군.

   

   

   하. 빌어먹을. 아직 왕궁의 재건도 끝나지 않았는데 어느 잡것이 헛짓거리를 한 게지?

   

   

   “흐힣. 흐헿. 흐헤헤헿.”

   

   

   수정구를 끌어안은 채 침을 질질 흘리는 리나와 만난 아서는 상황이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단 걸 깨달았다.

   

   

   루시 알른이 옆에 있을 때 워낙 쓰레기 같아 보여서 그렇지. 평소의 리나는 상당한 수준의 강자다. 숲의 주인이란 지위가 어디 괜히 주어지는 것이겠나.

   

   

   정신과 관계된 부분이라면 전문에 가까운 그녀가 당할 정도라니.

   

   

   “3왕자님. 무슨 걱정하시는 지 알겠는데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그럼 리나님이 왜 저 꼴이 된 겁니까! 짐승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평소에도 자주 그러잖아요?”

   “그건 루시 알른이 연관되었을 때… 설마.”

   “그거 알려드리려고 부른 거에요.”

   

   

   세상 사람들에게 주신의 사도가 존재함을 알리기 위해 제작했다는 수정구는 겉으로 보기엔 별 다를 것이 없었다.

   

   

   허나 여태 보았던 광경을 생각해보면 가벼히 여겨선 안 됐다.

   

   

   “세뇌마법 같은 거 없어요.”

   “미리 해제해두셨단 거군요.”

   “아뇨. 진짜 세뇌 같은 거 안했다고요. 그냥 프레테 그 변태새끼가 자기 혼을 바쳐가며 만든 영상일 뿐이에요.”

   “단순한 영상이 사람들을 저 꼴로 만든다고요?”

   

   

   그게 세뇌보다 더 무서운 거 아닌가?

   

   

   여신의 사도가 무얼 만든 걸까 생각하던 아서는 호기심과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호기심을 택했다.

   

   

   “봐도 괜찮겠습니까?”

   “지금 들고 계신 건 상관없어요.”

   “다른 게 있습니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대요.”

   

   

   눈을 끔뻑이던 그는 헛웃음과 함께 수정구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 순간 갑작스레 시야가 검게 물든다.

   

   

   수정구의 마법이군. 뭘 하려는 거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서의 시력이 돌아왔다. 허나 그의 눈에 새겨진 건 뒷골목의 정경이 아니었다.

   

   

   언젠가 보았던 주신 교회의 예배당, 그 한 가운데에 아서가 서 있었다.

   

   

   예고도 없이 뒤바뀐 풍경에 놀란 아서가 주변을 둘러보던 중 그의 앞에서 따스한 신성이 느껴졌다.

   

   

   신상을 바라보며 기도를 올리는 여자아이는 아서가 너무도 잘 아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차마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입을 다문 채 기도하는 루시 알른은 도저히 아서가 아는 건방진 꼬맹이와 동일인물처럼 보이지 않았으니까.

   

   

   – 주신이시여.

   

   

   예배당 안에 흩날리는 신성을 보며 감탄하던 아서는 고갤 돌린 루시를 마주하고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고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믿기지 않는다만 그래도 인정할 건 해야겠지.

   

   

   제기랄. 더럽게도 아름답구나. 루시 알른!

   

   

   그 후로도 아서는 영상에 담긴 수많은 광경을 눈에 담았다.

   

   

   루시 알른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생겨나는 사제들을.

   

   

   그녀의 옆을 보좌하는 기사들을.

   

   

   찬양의 노래를 부르는 성가대를.

   

   

   정중히 목례하는 추기경들을.

   

   

   예배당 문 바깥에 펼쳐진 안개와 그 앞에서 환한 웃음과 함께 자리를 비켜서는 성녀를.

   

   

   그리고 루시 알른이 발을 디딘 순간 안개가 걷히고 푸르른 하늘에서 빛나는 태양을.

   

   

   주신의 사도가 여태까지 겪어왔던 수많은 싸움을.

   

   

   모두 다 보고서 현실로 돌아온 아서는 바깥의 사람들이 왜 그러고 있었는지를 이해했다.

   

   

   이 영상을 본다면 누구라도 주신의 사도를 찬양할 수밖에 없었다.

   

   

   루시 알른이란 인간에 대해 잘 알고 그녀와 함께 여러 시련을 겪었던 나조차도 경외를 느꼈다.

   

   

   멀찍이서 루시 알른을 보기만 했던 사람이라면 어떨 것이고 또 그녀라는 사람을 풍문으로만 들었던 이들은 어떨 것인가.

   

   

   이 영상은 단순히 주신의 사도를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루시 알른이란 인간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제작된 물건이다.

   

   

   “굉장하죠?”

   “그걸 부정하진 않겠습니다만, 용케도 루시 알른이 이런 걸 찍었군요. 타인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하는 녀석일텐데요.”

   “익숙하지 않으셨던 거죠. 칭찬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이젠 그만 미움받을 때도 되지 않았냐는 카리아의 말에 아서는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길고도 긴 세월 동안 미움을 받아왔던 그녀다.

   

   

   그러면서도 타인을 위해 목숨을 내걸었던 루시다.

   

   

   지금에 이르러서 보답을 받고자 하는 그녀를 누가 질책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말이죠. 사실 고용주님께선 필사적으로 말리려고 했어요. 무시당했을 뿐.”

   “…그 녀석의 의견이 무시당하는 게 가능합니까?”

   “성녀님이나 파트란 영애, 전속 시녀 이외에도 고용주님을 아끼는 많은 분들이 간곡히 부탁하시면 가능하죠.”

   “그 녀석. 가까운 사람들한테는 은근히 약하죠.”

   “이러니저러니 해도 귀여우신 분이라니까요.”

   “카리아님을 놀릴 때도요?”

   “그땐 예외로 할게요. 진짜 때려주고 싶거든요.”

   

   

   이 날 이후로 루시의 영상은 영상을 만든 당사자인 에르기누스나 프레테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퍼져나갔다.

   

   

   영상 자체가 가져다주는 감동이 큰 것도 큰 것이지만 한 번 영상을 본 이들이 타인에게 강력하게 권하는 게 큰 영향을 끼쳤다.

   

   

   자신만이 사도의 노력을 알아선 안 된다. 모두가 이 영상을 보고 감사를 느껴야 한다!

   

   

   이러한 일념 아래에 사람들이 활동한 결과. 루시가 본래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이틀이란 시간이면 충분했다.

   

   

   물론 루시의 목표가 이루어졌다 해서 사람들이 멈추진 않았고 말이다.

   

   

   *

   

   

   잠에서 깨어나 슬그머니 커튼을 걷으면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해가 제대로 뜨지 않은 새벽부터 나와 기도하는 이들에게선 경건함이 느껴졌다.

   

   

   놀라운 것은 하루가 지날 때마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성지에 머무는 인원만이 여기에 방문했는데 영상을 공개한 다음부터는 인근의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러선 저 먼 곳의 사람들까지도 여기에 방문하고 있단다.

   

   

   무엇인가 잘못됐다.

   

   

   최초의 내 목적은 그저 다른 사도들의 아래에 있는 신자들을 설득하려는 의도였다. 그들까지 협력해야 일시에 모든 장소를 공격할 수 있으니까.

   

   

   근데 이게 뭐야! 어디 사이비 종교의 교주마냥 살아 숨 쉬는 신처럼 여겨지고 있잖아!

   

   

   왜 나를 향해 기도를 올리는 건데! 허접주신을 향해 기도하라고! 난 그 녀석의 대리인일 뿐이란 말야!

   

   

   아악! 진짜 판타지 세계의 주민들 너무 순진하잖아!

   

   

   그렇게 온갖 연출을 때려 박은 영상을 왜 믿는 건데!

   

   

   당연히 조작과 선동이 들어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게 정상 아냐!?

   

   

   그걸 왜 곧이곧대로 믿냐고! 이 등신들아!

   

   

   <저들보단 네 주변사람들을 질책하는 게 어떻겠느냐. 나조차도 감탄사가 절로 새어나올 정도의 영상이었다. 어찌 믿지 않겠느냐.>

   ‘그건 할아버지가 낡은 사람이라 그런거고요!’

   <낡… 크흠. 내 동료들이 영상을 봤더라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아 진짜. 여기서 가불기를 걸면 어쩌잔거에요.

   

   

   용사와 가라드가 머물던 섬 일부가 붕괴되었으며 악신의 조각이 탈취되었단 것을 얼마전에 들은 난 혀를 차고는 작게 투덜투덜거렸다.

   

   

   하아아. 무슨 영상만 보면 조작아니냔 의심부터 들이밀던 현대사회가 그리워질 줄은 몰랐어!

   

   

   그 동네였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일도 없었을 텐데에에에!

   

   

   <그러고 보면 말이다. 어느 지방에선 너와 주신이 동일시되고 있다더구나.>

   ‘…진짜요?’

   <에르기누스가 알려준 내용이니 맞겠지.>

   

   

   보통 사도가 이렇게까지 인기를 끌면 신이 질투를 해서 벌을 내리던데 우리 허접 주신은 어떠려나.

   

   

   으음. 이 부분에 대해선 안심해도 괜찮을 것 같아. 허접주신이라면 주접을 떨면서 만족스러워할 게 분명해.

   

   

   <여하튼 네가 바라던 대로 되지 않았더냐.>

   ‘목표가 과잉충족돼서 위장이 찢어질 것 같은데요.’

   

   

   저들의 기대가 부담스러운 것만이 문제가 아냐.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퍼지는 신앙도 문제야.

   

   

   내가 주신의 사도인 이상 나를 향하는 믿음은 곧 주신을 향한 믿음이나 다름이 없다.

   

   

   덕분에 교황이 아그라의 권능을 제멋대로 사용하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주신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어.

   

   

   심지어 이런 광기가 줄어들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더 증폭될 게 분명하단 걸 고려하면 교황의 계획이 이루어질 날도 머지않았어.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이 쪽도 그걸 생각하고서 준비를 하고 있단 거지.

   

   

   ‘할아버지. 그냥 물어보는 건데요. 모든 일이 끝나고 제 공적이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요?’

   <현인신으로 추앙받지 않겠느냐?>

   

   

   …

   

   

   그냥 세상 구하지 말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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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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