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65

    <665 – 무책임한 쾌락(13)>

     

    집사장은 갑자기 재단에게 선제공격을 날린 환락의 도시 시장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재단과 도시의 전력을 생각하면 당연했다.

     

    세계의 이면에서 이면세계, 정령계들의 침공으로부터 중간계를 지키고 역으로 공세에 나서는 조직.

    고작 중간계의 패권경쟁에서 자그마한 도시 하나를 지키고 제 이름을 알리기에 급급한 도시.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전력 차였다.

    그런데 군단을 격파하고 회의장에 복귀하라 명한 간부들이 반절이나 연락두절이 되었다.

     

    “안톤. <관측>해라.”

    “제 마력시 4단계는 사용횟수에 제한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용을 원하십니까?”

    “그 정도의 사태다.”

     

    마안 4단계.

    마나를 감지하는 견문안, 서치아이.

    마나 뒤의 실체를 감지하는 관조안, 피어스아이.

    마력반응을 감추고 상시발동하는 염탐안, 스파이아이.

    초정밀감지로 가까운 미래나 먼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안, 프로그노시스 아이.

     

    아카데미 졸업생인 집사 안톤은 마안 4단계를 부족하나마 일부 깨우쳤다.

    본래 존재하지 않았던 마안의 사용횟수 제약을 거는 대신,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먼 미래를 내다보는 힘을 얻은 것이다.

     

    “대상을 지정해주십시오.”

    “환락의 도시 시장.”

     

    <마안 4단계 프로그노시스 아이Prognosis Eye>

    <예지안銳智眼>

    <지정대상 : 환락의 도시 시장>

     

    안톤의 시야가 순식간에 어둠에 물들었다.

    영혼이 짓뭉개질 것만 같은 짙은 어둠.

    뼈가 시리도록 혹독한 추위 속에서 깡마른 빈민들이 엎드려 자비를 청했다.

    뒷골목을 벗어나자 옷이 벗겨지고 목줄이 채워진 제국귀족과 기사들이 레어메탈을 가득 두른 환락귀족의 탐욕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경매장에 올라갔다.

    멀리, 도시 저편의 상공 어디선가 빛이 번쩍였다.

    굉음과 함께 깎여나가는 도시방호대마법진.

    제도의 방어력을 상회하는 방어력 앞에서 공중포격이 끝나는 순간, 영주성의 꼭대기에서 영혼이 종속당한 환락쇠사들이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몰골을 하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반인반마의 이형의 괴물들은 구름 저편에 가려진 제국의 비공정을 파괴했고, 이 모든 광경을 성주는 고고히 지켜보며 잔을 굴렸다.

    술안주는 세계전도의 지워진 제국령.

    환락의 도시의 경계에 집어삼켜져 종속된 노예도시들의 진군과 전쟁, 정복을 알리는 표식들.

     

    따앙━.

     

    맑은 유리잔 소리에 시선이 빨려들어갔다.

    형체 없는 유령처럼 허공을 부유하며 미래를 관조하던 안톤의 시선이 시장의 시선과 허공에서 정확히 마주쳤다.

    시장이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번쩍였고, 집사 안톤은 본능적으로 그것이 자신의 마안 4단계를 상회하는 기술임을 깨달았다.

     

    기프트 아카데미에서도 사용자가 극히 드물다고 알려진, 학생의 수준을 명백히 넘어선 마안 5단계 필독안必讀眼, 리드아이Read Eye.

    모든 제약을 뛰어넘어 대상의 실체를 명료하게 읽어내어 그 운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꿰뚫어보니 지엽적인 예지안과는 유지시간도, 꿰뚫어보는 깊이도 격이 달랐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먼 미래의 가능성에 불과한 새로운 삼대거악이, 색욕공色慾公 아스모데우스가 안톤을 역으로 들여다볼 정도로.

    그제야 안톤은 역대 무수한 마안사용자들이 어째서 <교장>과 <마왕>, <선황>, 그리고 <삼대거악>의 미래를 엿보려들지 말라 하였는지 이해하였다.

     

    ━━━

    당신이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다.

    ━━━

     

    고대 철학자의 옛 조언처럼 심연급 강자들은 마안사용자를 역으로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그리도 내가 궁금하다면 알게 해주마. 세계로부터 버림받은 도시의 성주가, 세계를 집어삼킬 도시의 성주가 되었던 색욕공의 힘을.

    “나, 나는… 돌아가겠어. 당신에게 어떠한 관심도 없어. 그저 돌아가기만을 원할 뿐이야…!”

    -늦었다.

     

    색욕공의 눈이 번뜩이는 순간, 안톤은 어마어마한 쾌락의 범람을 느꼈다.

    동시에 이 거대한 쾌락의 파도 뒤에서 일어나는 사악한 암흑마나를 감지했다.

     

    <복종하라>

     

    암흑마나는 힘의 고하에 따라 보다 약한 존재에게 제약을 선사하고, 그 차이가 현격하다면 복종까지 시킬 수 있는 힘이었다.

    그럼에도 색욕공은 복종을 명령하지 않았다.

    이는 보다 완벽한 복종, 효율적인 정복을 위한 찰나의 유예이자 더 큰 파멸을 위한 기다림이었다.

     

    ━━━

    환락영역이 선사하는 환락을 받아들이는 자, 그 대가로 영혼을 징수 당하리라.

    ━━━

     

    이는 세계에 새겨진 법칙과도 같았다.

    색욕공 아스모데우스의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예외란 없다.

    머나먼 미래의 가능성을 관측하기만 했던 와이히엠하이 재단 집사1부의 집사 안톤조차도.

     

    -돌아가거든 전하여라. 너의 주인에게, 네가 진정으로 따를 힘이 무엇인지. 그들이 무엇과 맞서려 하고 있는지를.

     

    황야 저편으로 추락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비공정, 울부짖으며 끌려가는 나신의 제국귀족과 기사들, 서부삼국을 향해 뒤틀린 골격과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르는 환락쇠사들.

    강제로 주어지는 환락과 지불하는 영혼의 자유, 모두가 환락의 노예로 전락한 도시의 꼭대기에서 안톤의 영혼이 빛을 잃었다.

     

     

    * * *

     

     

    “심하군.”

     

    잠깐 사이에 급속도로 기운이 불어나며 신체가 마구잡이로 변형된 안톤.

    이제는 안톤이었던 것이라고 불러 마땅할 집사의 숨을 끊으며 내뱉은 집사장의 한마디였다.

     

    “중대한 정보입니다. 지금껏 외계의 유혹에 굴복하여 정령계약자가 된 새로운 강자나 위협은 많았으나, 심연급 강자의 출현은 최초사례입니다.”

     

    집사장의 전속보조로 항시 곁을 지키는 집사1부 소속 집사 제프가 수건을 내밀었다.

    집사장은 안톤이었던 것의 심장을 터뜨리며 장갑에 흠뻑 묻은 피와 유분을 닦아내었다.

     

    “영역 4단계 보유자의 영혼을 뒤틀어 신체변형, 사고침식을 유발한다. 이것이 가능한 시점에서 환락의 도시의 성주는 최우선 제거대상이 되었다.”

     

    간부들을 이용해 군단을 하나씩 멸하며 도시의 전력을 시험하는 전초전은 여기까지다.

    집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를 따르는 집사들이 그림자처럼 뒤를 따랐다.

     

    “와이히엠하이 재단 이사장 직속3장의 권한으로 명한다. 환락의 도시에 내일의 태양을 누릴 기회를 허락하지 마라.”

     

    단 하룻밤 사이에 시작과 끝이 결정될 총력전이 시작되었다.

     

     

    * * *

     

     

    간부노디가 의자에 앉아 발을 까닥거렸다.

     

    “아하. 그런 일이 있었구나?”

    “간부님에게도 이미 충분한 휴식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집사장님을 도와 지원군으로 환락의 도시를 습격해주시길 바랍니다.”

    “글쎄~ 꼭 그래야하나?”

     

    피아노의 박자를 측정하는 메트로놈처럼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다리는 조금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집사장님 실력이 궁금하기는 한데, 아스모데우스는 딱히 탐나는 사천왕도 아니거든!”

    “…”

     

    집사의 고개가 바닥으로 향했다.

    간부노디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아저씨. 저 눈치챘죠?”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치만 태도가 이상하잖아요.”

     

    간부노디가 존댓말을 시작하자 집사는 더욱 눈을 마주쳐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고개를 더욱 숙였다.

     

    “집사장의 명령을 간부가 따르지 않다니, 보복이 따를 것이다. 이 정도로는 강하게 나왔어야지. 지금 날 간부로 대하지 않고 있잖아요.”

    “…”

    “어떻게 알았어요?”

    “죽은 안톤이 간부님의 지부에서 집사1부로 발탁된 옛 동료였기 때문입니다.”

    “헉. 그걸 몰랐네!”

     

    한쪽 주먹으로 머리를 딱콩 때리며 반대쪽으로 혀를 내밀며 윙크하는 작위적인 놀람에도 간부회의장을 지키는 집사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에이, 시시해. 무슨 말을 해도 반응도 심심하고.”

     

    간부노디의 다리가 움직임을 멈췄다.

    집사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흐르는 땀 한 방울에도 천 년의 세월이 깃든 것처럼, 호흡 한 번도 생의 마지막 숨결이 될 것처럼 절박한 그를 툭 건드리듯, 간부노디가 말했다.

     

    “춤 춰볼래요?”

    “…예?”

    “조나처럼 딱딱한 차림새의 집사가 탭댄스 추고 그러면 재밌겠다고 예전부터 생각했거든요.”

    “……”

    “싫음 말고.”

     

    따분함을 달래듯이 빙빙 휘두르는 손가락에 마력의 실이 소용돌이 치듯이 모여드는 현상이 집사의 기감에 느껴졌다.

    저 마력의 실들이 일제히 자신을 덮친다면 감히 1초라도 버틸 수 있을까?

    집사는 상상만으로도 두려워졌다.

     

    탁. 타닥.

     

    엉성한 자세로 탭댄스를 추는 집사의 모습에 간부노디가 아하핫 하고 낭랑한 웃음을 터뜨렸다.

     

    “추란다고 진짜 추네!”

    “…….”

     

    이게 무슨 수난이야.

    집사1부의 막내랍시고 나름 후방보직을 받았건만, 정작 여기가 제일 위험한 자리였다니.

    집사는 모멸감에 치를 떨면서도 그걸 내색했다가 괜한 꼬투리가 잡혀서 목이 달아날까 두려워 이도저도 하지 못하고 바짝 얼어붙었다.

     

    “뭐, 됐어요. 이만하면 잘 놀았네.”

    “집사장님을 도와주시는 겁니까?”

    “전부터 궁금하기도 했으니까요!”

     

    운빨아카.

    운빨로 아카데미에서 살아남기.

    그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와이히엠하이 재단과 재단의 직속삼장의 필두, 집사장.

    그는 어떤 인물일까.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목표로 활동하며, 어떤 영역과 기능각인을 이루고 해피엔딩과 노말엔딩, 배드엔딩의 갈림길은 무엇으로 이루어질까.

    그중 어느 것이 가장 흥미를 유발할까.

    막내집사의 이야기는 호기심의 일부만을 해소해주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간부노디가 변장놀이를 그만두고 집사장을 따라나서기에는 충분했다.

     

    “싱이 오면 잘 지켜주세요. 저쪽은 급이 다른 전장이니까!”

     

    간부노디가 창문을 박차고 떠나고도 한참 뒤, 집사는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마나의 폭풍이 몰아치듯이 잠깐 사이에 느낀 압박감으로 발치의 카펫이 다 젖을 정도로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진 뒤였다.

     

    <염탐안>

     

    상시발동을 유지하는 막내집사의 염탐안은 그가 원치 않아도 간부노디, 오크노디가 어떤 존재인지를 관측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집사는 들여다보고야 말았다.

    오크노디가 떠올린 생각의 일부를.

     

    -집사장의 파멸엔딩은 뭘까?

     

    “…!”

     

    세계의 이면을 넘나드는 선봉장이나 다름없는 집사장을 상대로 감히 파멸을 떠올릴 수 있는 존재.

    순수한 호기심만으로 그런 강자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순수악의 결정체.

    그런 존재에게 조력을 바란 것이 과연 맞는 행동이었는지 역으로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내보내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는 읽었으니까.

    따분함과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다리를 까닥거리던 오크노디가 떠올렸던 생각을.

     

    -힝. 몰살루트에선 다 죽이고 다녀서 심심할 일이 없어서 좋았는데. ‘저걸로’ 찍먹만 해볼까…?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돌아온 자에게 타인을 향한 걱정은 사치에 불과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공포의 몰살노디
    절대 오크노디를 심심하게 해서는 안 돼!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