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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6

    <666 – 무책임한 쾌락(14)>

     

    삼대거악 토벌 후에 등장하는 차세대 삼대거악의 자리를 노리는 <삼대거악 후보등장 이벤트>.

    이 이벤트는 본래 원판 삼대거악만도 못한 열화판들의 등장에 그친다.

     

    -으아악!! 힘들게 하나 치웠더니 더 심한 놈이 나오면 어떡해!!

     

    유저들의 빗발치는 항의 때문에 이루어진 밸런스패치의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전장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보아서는 이거 아무래도 밸패가 이루어진 최신버전의 허접약골잡졸후보가 아닌가 보다.

     

    “왜 여기서 이런 꼴로 있어?”

    “그 목소리… 실론 간부님이시군요…”

     

    가슴 큰 간부의 이름을 부르며 다리 한 짝을 잃고 바위에 비스듬히 누워서 쉬던 집사복 차림의 허접집사가 힘겹게 수인을 그렸다.

    다짜고짜 마법선빵인가 싶어서 손을 쿡 찔러서 가슴에 퍽 구멍을 뚫어주니 집사가 굉장히 억울한 사람처럼 원망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어, 어째서…”

    “선빵 날리려고 했잖아.”

    “재단… 경례…”

     

    경례는 본래 내 손에는 무기가 없다, 적의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행위다.

    겸사겸사 손바닥이 더러워서 손날로 각을 잡아 보여준다는 속설도 있다.

    그래서 내가 알던 손날경례와 다른 저 요사한 동작은 당연히 마법시전을 하려는 원시마법의 동작인 줄 알았더니, 경례였나보다.

    억울할 만도 하네!

    미안해서 이번에는 손바닥을 내밀고 <조직결합><신체재구성>마법으로 숨 쉬듯이 혈관재배치를 하던 감각으로 구멍 뚫린 혈관을 다시 메워주었다.

     

    “미안. 다리 없이 전장에서 고생하느니 빨리 죽는 게 낫겠다 싶어서 해본 소리야. 별로 안 고마워하는 거 보니 그냥 살려줄게.”

    “…못 보던 사이에 예전 모습이 다 사라지셨군요. 당신 정도 되는 인격자도 결국은 재단의 어둠을 이겨내지 못하셨나 봅니다. 큭큭…”

     

    근데 이 사람은 왤케 동작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가 다 매를 벌지?

    안좋은 방향의 호기심을 자꾸 재촉해서 손이 움찔움찔거린다.

     

    “남 일이라고 편하게 말하네. 네 수준에서 재단의 진정한 어둠을 안다고 생각해?”

     

    그게 뭔데 이 허접아.

    빨리 니가 아는 걸 나에게도 알려줘!

     

    “크큭… 저 따위가 아는 어둠이야 당신이 직접 겪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부족함을 느껴 재단의 <지원>을 바란 간부인 당신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곱게 말할 생각이 없나보다.

    손가락을 다시 길게 빼자 살살 말 돌려가면서 열받게 하던 집사가 입 꾹 닫고 데굴데굴 눈을 굴리더니 눈치를 보며 술술 정보를 불었다.

     

    “재단은 하나의 대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세부작전을 간부에게 맡기고 요청하는 지원을 전부 들어주나, 지원이 클수록 요청하는 추가지령의 난이도가 높아지고 지령으로 다 갚지 못한 간부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징발하지 않습니까.”

    “그랬나? 기억에 없어서 몰랐네.”

    “실론 간부님… 설마 대가로 재단에 당신의 기억을 바치신 겁니까…? 주류 24신의 성녀후보라고도 불렸던 당신이 그 찬란했던 과거마저 잊으신 건 아니지요?”

    “찬란했던 과거? 그게 뭔데? 지금 고작 성녀후보 따위가 찬란했던 과거라고 하는 거 아니지?”

    “크흑…! 이사장 이 나쁜 새끼. 사람의 자긍심을 짓밟고 4년 사이에 과거의 기억도 잊고 손부터 나가는 전투병기로 만들다니…!”

     

    왠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재단파파를 욕하길래 한 번 봐줬다.

    친구들을 괴롭힌 못된 파파는 욕 좀 먹어도 싸!

     

    “너, 조금 마음에 드네. 잘은 모르겠지만 나를 걱정해준 거지? 그럼 살려줄 테니까 내 밑에서 일해.”

    “실론 간부님의 직속부하… 제가…? 가, 감히 제가 그런 영광을 누려도 되는 겁니까?”

    “너 되게 쑥맥처럼 구네.”

    “그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재단 3대 미녀라 불리는 실론 간부님의 직속부하가 될 기회인데!”

    “미녀? 고작 이런 몸으로? 아아. 재단에서는 이 정도를 미녀라고 인정해주는구나?”

    “크흑, 재단은 살론님의 미추관념마저 뒤틀어서 자존감마저 없앤 건가…! 이사장 이 나쁜 새끼!”

     

    뭔가 아카데미에서 평소에 보는 반응이랑 비슷해서 재밌는 느낌이 든다.

    몸이 달라져도 같은 취급을 받으니 변장을 하고 있는데도 평상시처럼 다니는 기분이라고 할까?

     

    흘끗흘끗.

     

    “…”

     

    차이가 있다면 가끔씩 쓸데없이 커다란 가슴에 닿는 시선이 뜨겁다는 정도겠지.

     

    “이런 쓸데없이 커다란 짐덩어리가 뭐 그리 좋다고 자꾸 쳐다보는 거야? 너무 완벽한 것도 불편해서 축소할까 고민중인데.”

    “아니!! 이사장은 대체 사람을 어디까지 장난감처럼 뜯어고친 겁니까!!”

    “됐고, 일어나봐. 기능성 회복은 다 끝났으니까.”

     

    허접집사가 벌떡 일어나서 마나운용까지 해보고 뻥 뚫렸던 구멍이 완벽히 수복되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놀라는 건 나중에 하고, 고작 환락군단 따위에 당하다니 너 너무 약한 거 아니야? 어떻게 싸웠길래 그 꼴이 되었어?”

    “하하. 저도 일개 군단이 상대였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군단장 사이에 <마인>이 있었습니다. 녀석은 스스로를 마왕군 사천왕의 직속마인이라고 자처했지요.”

    “역시 난이도가 올랐네.”

     

    밸런스패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원시태초순정바닐라버전의 초고난이도 환락의 군단 vs 모든 히든피스의 이면에 숨겨져있던 기존 회차에서는 경험해본 적 없는 흑막조직 와이히엠하이 재단.

    가슴이 웅장해지는 매치업이다. 웅장해지지 않아도 이미 다른 의미로 웅장하지만!

     

    “탐지영역은 익혔니?”

    “물론입니다. 집사1부만큼은 아니어도 저희 집사2부 소속 집사들 또한 중간계의 적들과 맞서온 몸. 탐지술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앞장서!”

     

    환락의 도시 출신 고수들은 하나의 기믹이 있다.

    죽은 고수들의 영혼이 영혼계약을 맺은 채권자에게 자동으로 회수되는 기믹!

    확보한 고수와 죽은 고수가 많을수록 채권자의 강함은 점점 더 커진다.

    혁명가처럼 명계의 문을 열지 않아도 계약의 힘 하나만으로 보다 양질의 영혼만을 취할 수 있는, 심지어 핵폭탄마냥 같이 죽자고 터뜨리는 혁명가와 다르게 자신의 무기로 조종이 가능하기까지 한 보다 발전된 형태의 영혼포식술!

     

    ‘하여간 NPC들도 후반캐는 <수집>을 너무 잘해서 탈이야.’

     

    환락을 수집하고 계약자를 수집하며 그들의 힘을 수집하고 마지막에는 영혼마저도 수집한다.

    제국의 특화도시에 꼽사리껴서 알뜰살뜰 다 뺏어먹는 꼴이 지방대학 학생회에 침투해서 나라지원금 뽑아먹는 건달의 최종진화판이 아닐까 싶다.

     

    “오, 이런. 맙소사…”

     

    환락의 도시에 점령당한 소국의 영토.

    도시 하나의 주민들이 모조리 말라 비틀어진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주범으로 추정되는 군단장 표식이 달린 NPC의 주검이 성벽에 꽂혀있는데, 벽 하나는 가볍게 부수고 날아가겠다 싶은 <거대화><중량강화><인간전차> 테크트리가 무색하게도 벽면에 흐르는 무지막지한 마나의 잔흔이 성벽 전체를 레어메탈로 변질시켰다.

     

    “금속화?”

    “이 기운은… 집사장님입니다. 그분이 지나간 흔적이 틀림없습니다.”

    “조금 더 가보자!”

     

    초토화된 도시와 전멸한 주민들, 쓸려나간 군단병에 집사들과 환락쇠사들의 교전지역을 따라가니, 갈수록 저 멀리서 심상찮은 마나파동이 느껴졌다.

     

    “오잉? 이건 처음 보는 영역인데?”

    “환락도시의 시장이 엄청난 힘을 숨겨왔던 모양입니다. 시체로 발견된 휘하 군단장들도 마왕군 군단장에 못지않은 엄청난 강자들입니다.”

    “진짜 불쌍한 애들이네!”

     

    암흑마나 열심히 모아다가 세계정복이 하고 싶었을 뿐인 순수한 1회차 뉴비들이 인류진영 한복판에서 깜짝기습선빵까지 날렸는데 하필 바로 옆에 와이히엠하이 재단 간부회의가 열렸다.

    누가 둘이 싸움을 붙였는진 몰라도 야심찬 1회차 뉴비 마왕군의 계획을 저지하다니, 정말 못됐다!

     

    “아니, 뭐 하시는 겁니까!”

     

    간부진과 도시 최고전력의 싸움이 이어지는지 저기 멀리서부터 마구 요동치는 영역 사이에 손가락을 슥 집어넣는 내 모습을 보고 허접집사가 기겁하며 나를 붙잡아 영역 밖으로 잡아당겼다.

     

    “궁금하잖아! 새로운 영역은 한 번은 찍먹해주는 게 기본 예의 아니겠어?”

    “굳이 적의 영역에 몸을 집어넣는 바보가 세상에 어딨습니까! 이사장은 대체 사람을 어디까지 바보로 만든 거야!”

    “허접 주제에 누구보고 바보래? 나 바보 아니야!”

     

    <격투술>에 <중력조작>, <가속>, <마나부스트>를 실어서 균형을 망가뜨려 메다꽂으니 땅에 박힌 집사가 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허접이긴 해도 일단은 집사라서 그런지 용케도 이걸 맞고 기절을 안 했네!

    친구들처럼 손대중 안 하고 힘 안 빼고 패도 돼서 그런지 앞으로도 곁에 두고 심심할 때마다 한 대씩 때리고 싶은 타격감이 느껴진다.

     

    [격투술의 달인을 마나격투술로 제압했습니다.]

    [격투술 경험치+30]

    [중력마법 경험치+10]

    [마나부스트 경험치+10]

     

    우왕. 경험치 두둑한 것 좀 봐.

    얘는 진짜 아카데미까지 주워 갈지 말지 고민되네!

     

    “아… 안돼… 그 영역에 들어간 집사들도 저항에 실패하면… 멋대로 조종당한단 말입니다…!”

     

    오.

    손가락을 넣어보니 알겠다.

     

    <환락영역>

     

    이 영역에 노출된 사람은 끊임없는 침식과 정신판정을 통해서 환락영역이 선사하는 쾌락을 받아들였는지 확인하는 판정을 받는다.

    한 번 판정이 뚫리면 엄청난 속도로 쾌락스택이 쌓이고, 쌓인 스택만큼 영역의 주인이 요구하는 대로 복종을 해야 한다.

    고인물 플레이어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능력이다.

    사실 고인물이 아니라도 플레이어라면 다 익숙하지.

    기프트 아카데미 1학년 2학기 챕터3보스.

    마스터 오브 마스터.

    펫 서약서로 계약사용자들에게 은혜를 배풀고 그 대가로 명령권을 얻는 카멜라사단의 주인.

    군중지배형 챕터보스.

    <펫들의 여왕님, 카멜라>의 능력의 상위호환이니까.

     

    “이게 의외로 밸런스가 맞았네?”

     

    2학년 벨로카시오 선배의 계약사기로 계약에 대항하는 방법을 배우고, 1학년 2학기에 카멜라와 제대로 겨루며 계약으로 군단을 부리는 적을 꺾는 방법을 배운다.

    그 뒤, 고학년이 되어 실전에서 상대하는 계약군중지배형 보스의 끝판왕으로 <환락의 도시 성주>가 나타나는 구조였다.

    원래는 환락쇠사들의 능력만 흡수하고 스펙 업이 살벌하게 될 뿐이었던 보스였는데, 강함의 비결에 이런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역시 기믹은 파고들어야 재밌어!”

    “괘, 괜찮으신 겁니까…?”

    “이거? 재밌다고 했지, 위험하다고 한 적은 없는데.”

     

    눈으로 봤다.

    몸으로 겪었다.

    대충 재밌긴 한데, 신규이벤트 하나가 주는 기쁨 따위야 현대인의 온갖 오락과 도파민에 찌든 뇌를 기쁘게 만들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하지.

     

    “대충 이렇게 하는 거 아니야?”

     

    <환락영역>

     

    그래서 따라해봤다.

    에잇, 하고 영역을 손가락에 담아 허접집사한테 쐈더니 집사가 실금하고 기절했다.

     

    “으엑. 더러워…”

     

    에휴, 1회차 뉴비들 기술이 다 그렇지 머.

    더러워서 자주는 못 쓰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고인물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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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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