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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6

   권의 사도. 자락스는 눈이 소복히 쌓인 언덕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봤다.

   

   

   대형던전이 출현하는 전조인 검은 색의 구덩이는 그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을 만큼 짙었다.

   

   

   주신의 사도께선 던전이 완성되기 전에 적을 쓰러트리려고 저 안으로 뛰어들었다 하셨던가.

   

   

   참으로 담이 크시군. 저 광경을 본다면 누구라도 공포에 떨게 뻔하거늘.

   

   

   “상황은 어때?”

   

   

   그의 친우인 카일이 자박자박 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당장은 수정구를 통해 보고 받았던 것과 다를 게 없어.”

   “아무런 변수가 없으면 좋을 텐데.”

   “주신의 사도께서 말씀하신 것이잖나. 믿고 기다리면 될 거다.”

   

   

   주신의 사도가 입안한 계획들은 여태 혁혁한 성과를 냈다.

   

   

   신화의 시대 당시 대지를 유린했던 여러 괴물들이 그 어떤 유의미한 족적도 남기지 못한 채 스러진 것이다.

   

   

   에르기누스님께서 ‘네가 우리들의 리더였어야 했다.’라는 말을 달고 사시는 걸 보면 그 분의 지혜가 드높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예 희생이 없지는 않았다. 신화시대의 잔재를 상대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까.

   

   

   허나 모두들 이게 최선이라는 데에 이견을 지니진 않았다.

   

   

   그 누구도, 어떤 사람도, 주신의 사도보다도 더 완벽한 계획을 세우는 건 불가능했다.

   

   

   어찌 그러겠는가.

   

   

   수없이 많은 미래를 보고서 돌아와 최선의 선택지를 고르는 듯한 그 분의 지혜에 어떻게 비견될까.

   

   

   “사도님께서 자신의 친우를 여기에 파견한 걸 보면 뭔가 불길하단 말이지.”

   “…그건 그렇지.”

   

   

   지금 전투조가 모여 있는 곳엔 루시의 친구인 프레이 켄트가 대기중이다.

   

   

   유력한 차기 검성 후보이며 무예의 신이 관심을 보인다는 여자아이는 그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은 채 구석에 앉아 검 손잡이를 매만지고 있었다.

   

   

   “근데 우리가 뭘 어쩌겠어. 사도께서 생각하신 바가 있다면 우린 우리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야지.”

   “으음. 그대답지 않게 너무 성실하군.”

   “시끄러워. 그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데.”

   “꽤 괜찮다. 진입조는 여러 축복을 받은 덕에 기운이 넘치고, 지상에 남아 마물을 상대할 사람들도 눈에 힘이 들어가 있어.”

   

   

   그들은 단순히 마물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한 대업에 참여하는 것이다.

   

   

   남자라면 누구나 꿈꿀 영웅이 될 기회가 주어진 건데 어떻게 겁쟁이 같은 모습을 보일까.

   

   

   더욱이 사람들의 등을 밀어주는 건 잊혀져야 할 그들의 이름이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것이다.

   

   

   주신의 사도께서는 겉으로 보이는 태도와는 달리 섬세하고 선하신 분이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미미하다 여기는 피해조차도 웃어넘기지 않고 죽은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며 하늘에 기도를 올려주신다.

   

   

   오죽하면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놈 대신 내가 죽을 걸 그랬다는 소리를 농담 삼아 하겠는가.

   

   

   그 분의 행보를 가만 보고 있자면 어떻게 저런 사람이 세상의 공적으로 살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될성 부른 잎이라 한들 그래도 사람이다.

   

   

   타인의 외면과 비난은 분명 고통스러웠을 터인데 그 분께선 모든 걸 견디고 이 자리에 섰다.

   

   

   당장 자락스 본인만 하더라도 투기장에서 루시의 의지를 보지 못했다면, 사도간의 대화 전에 그 분의 저주에 대해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분명 선입견을 품었겠지.

   

   

   “이제라도 그 분이 보답을 받아서 다행이야.”

   “주신의 사도님? 하하하. 그 분은 자기를 떠받들어 주는 걸 질색하신다던데.”

   “그러는 편이 낫지. 무덤덤하게 비난을 감수하는 것보다야.”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그대 진짜 그 쪽 취향인가?”

   “죽여주랴?”

   

   

   자락스가 눈으로 욕을 했더니 카일이 두 손을 펼쳤다.

   

   

   “농담일세.”

   “또 헛소리하면 그땐 하나 깨버린다.”

   “허어. 무서운 협박을 하는군.”

   

   

   두 사람이 실없는 농담을 나누며 긴장을 풀던 그 때 뒤 편에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존재의 기척. 악신과 관계된 자들이다.

   

   

   “사람들이 있는 곳이지!?”

   “제기랄. 너무 마음을 놓고 있었나!”

   

   

   다급하게 내달리던 두 사람은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한층 더 속도를 높였다.

   

   

   벅차오르는 숨을 억누르며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 도착한 그들이 보게 된 광경은 동료의 죽음이 아니었다.

   

   

   수세에 몰려 간신히 버티고 있는 이들도 아니었다.

   

   

   비등하게 싸우며 적을 몰아붙이는 전사들도 아니었다.

   

   

   한 사람. 단 한 사람. 아직 채 성인이 되지도 않은 여자아이 하나 앞에 모든 적이 베어나가는 풍경이었다.

   

   

   “겨우 이거야?”

   

   

   프레이 켄트는 한 손으로 든 검을 휘적거리며 바닥에 널부러진 이들에게 물었다.

   

   

   최소한 사지 하나가 베여나갔으며 개 중에는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를 입은 이가 여럿이었거늘 습격자들은 당연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죽음을 모르는 자들. 끝을 잃은 존재들.

   

   

   악신 아그라의 권능.

   

   

   “그러는 넌 혼자네. 꼬맹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짓이나 하고 있어야 하다니.”

   “끄억. 끅. 끄어억.”

   “하. 이 병신은…”

   “대답이나 해. 진짜 겨우 이거야?”

   

   

   프레이의 도발에 맨 앞에 선 남자가 달려들었다.

   

   

   지금은 잊혀졌으나 남자는 한 때 영웅이라 불렸던 남자다.

   

   

   지금도 전해지는 동화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한 나라를 위해 싸우다 모든 걸 잃어버렸던 기사는 자신의 끝을 지우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시시해.”

   

   

   허나 잊혀진 영웅의 검은 천재의 앞에 너무도 간단히 부서지고 말았다.

   

   

   검이 반으로 베이고 영웅의 목이 허공을 난다.

   

   

   그걸로 끝이었다.

   

   

   죽음이란 개념을 잊었을 영웅이 죽음을 맞이했다.

   

   

   “너희들은 보여줄 거 없어?”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 너네들도 죽자.”

   “씨발. 공격해! 당장!”

   

   

   악신의 관계자들이 달려드는 걸 본 자락스와 카일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프레이를 원조하기 위해 움직였다.

   

   

   싸움은 지극히 일방적이었다.

   

   

   프레이라는 이레귤러의 존재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부터 죽음을 극복했기에 더욱 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과 이미 죽을 각오를 한 자들이 겨루는 이상 결과는 명백했다.

   

   

   그렇게 하나의 피해도 없이 싸움이 끝난 후 자락스를 비롯한 사람들은 프레이에게 감사인사를 하려 했지만 그녀는 자그마한 대답도 없이 다시금 구석으로 향했다.

   

   

   “부끄러움을 타시는 건가?”

   

   

   주신의 사도가 그랬던 것처럼 칭찬에 서투른가 싶어 슬그머니 다가갔던 카일은 검을 살짝 뽑아 든 프레이를 보고서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귀찮게 굴지 마. 쓰레기주제에.”

   

   

   좀 더 말을 걸었다간 베일 것 같은 날카로움에 다른 이들도 프레이에게 다가가는 걸 포기했다.

   

   

   그렇게 프레이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대형던전의 공략을 준비하던 중 사람들의 위에 마력의 잔향이 느껴졌다.

   

   

   그를 감지한 자락스와 카일은 만약을 대비해 날을 세우다가 그들의 바로 위에 등장한 이들을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꺄아아아!?”

   “얼빵이는 불치병이네.”

   재빠르게 착지한 루시는 허공에서 팔을 내젓는 조이를 가뿐히 받아냈다.

   

   

   “묵직하네. 너도 살쪘어?”

   “안 쪘거든요! 마법의 연구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는데 살이 어떻게 쪄요!”

   “이상하다. 그럼 왜 무거워진 거야? 다른 데 다 그대로인데.”

   “안 무거워졌다고요!”

   

   

   바둥대면서 루시의 품에서 벗어난 조이는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느끼고는 다급히 부채를 꺼내 들었다.

   

   

   촤악하고 기세 좋게 펼쳐진 부채 위로 열이 잔뜩 오른 귀가 보인다.

   

   

   “루시이이이!”

   

   

   프레이가 전력을 다해 루시에게로 달려든다. 이미 그건 친구를 반기는 움직임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포탄이었다.

   

   

   그걸 본 루시는 당황해서 눈을 끔뻑이다가 다급히 신성을 끌어올렸다.

   

   

   “다 쓰러트렸어! 잘했지?”

   

   

   둔탁한 충격과 함께 프레이를 받아낸 루시는 무어라고 하려다 강아지마냥 칭찬을 바라는 프레이의 모습을 보곤 한숨과 함께 뺨을 잡아당겼다.

   

   

   “으에. 으에에에.”

   

   

   고무줄 마냥 뺨이 쭉쭉 늘어나는 와중에도 프레이의 입가에는 미소가 새겨져 있었다.

   

   

   프레이의 잔혹한 모습과 냉철한 태도를 보았던 사람들은 나이대에 맞는 천진한 모습에 당혹을 느꼈다.

   

   

   저게 사람을 사람처럼 보질 않던 검사와 똑같은 인물이라고?

   

   

   *

   

   

   주변에 늘어선 적들의 시체를 확인한 나는 자연스레 치솟아 오르는 역겹단 느낌을 억누르며 마음을 다잡았다.

   

   

   슬슬 교황이 조급해질 때가 됐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만약을 대비해 프레이를 보내 놓길 잘했어.

   

   

   타인에게 부여된 권능마저 베어내는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상당한 희생이 생겨났을 테니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프레이가 진짜 이상한 애긴 하다니까.

   

   

   지난 번 교황에게 휘둘린 게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저런 경지에 도달하다니 진짜 천재는 천재야.

   

   

   이제 아서랑은 비교도 안 되겠지.

   

   

   불쌍한 아서. 이젠 자기가 관심 있는 여자애의 장난감 노릇도 못 해주게 됐구나.

   

   

   양 쪽에서 허접 소리를 들어야 할 너를 생각하니 동정심이… 생기진 않네.

   

   

   오히려 울분을 토할 그 녀석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와.

   

   

   이번 일이 끝나면 수도에 들릴까.

   

   

   “주신의 사도시여.”

   

   

   엑. 얘 지난 번에 나한테 급소를 걷어차인 반고자잖아.

   

   

   날 그렇게 무시하던 녀석이 왜 이제 와서 공손한 척을 하는 거야?

   

   

   설마 그 때 얻어맞고 숨겨진 취향이라도 깨달은 거냐?!

   

   

   “이 곳에는 어쩐 일이신지요?”

   

   

   존중이 넘치는 태도에 소름이 돋는 걸 느낀 내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던 순간 옆에 있던 조이가 내 앞에 나섰다.

   

   

   “이제부터 저 던전은 주신의 사도께서 공략할 예정입니다. 여러분께선 던전 바깥에서 쏟아져 나올 마물을 감당해 주십시오.”

   

   

   조이. 그렇게 공손하게 이야기를 하면 불만이 튀어나오잖아.

   

   

   너네 허접들이 하는 꼴을 답답해서 못 보겠으니까 얌전히 꺼지라는 말 정도는 해줘야.

   

   

   “알겠습니다. 맡은 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안 해?

   

   

   왜 안 해?

   

   

   너네 무시당한 거라고!

   

   

   짜증 정도는 내야지!

   

   

   날 존중한다 치더라도 함께 가겠다는 고집정도는 피울 수 있는 거잖아!

   

   

   왜 그렇게 쉽게 포기를 하는데!

   

   

   이 페도 새끼들아!

   

   

   아아아. 진짜 열 받아.

   

   

   이번 일이 끝나면 어떻게 해서라도 저 새끼들 입에서 욕지거리를 이끌어 내고 만다.

   

   

   반드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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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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