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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7

    <667 – 무책임한 쾌락(15)>

     

    하늘이 반으로 쪼개지듯이 주홍빛깔 색채와 시커먼 어둠으로 나뉜 꼴을 보며 디스트로이어가 심각한 얼굴로 고민에 빠졌다.

     

    ‘검은 쪽이 오크노디인가?’

     

    암흑마나의 양만 보면 그렇기는 한데, 이 수상쩍은 제자 녀석의 경지는 볼 때마다 현묘한 깨달음이 담겼는가 하면 어딘가 중간이 빈 것처럼 어설플 때도 있어서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천재적인 재능으로 날먹을 하나 싶다가도 범재가 아주 오랜 시간 어설프게 쌓아온 우직한 기본기가 명문검가의 천년역사를 방불토록 하기도 했지.

    재단의 전신이 되는 조직이 있다고 알고는 있었으나, 그들의 전통이 이리 대단하다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더욱 마뜩찮은 감정이 앞섰다.

     

    “크하하핫. 동방제국의 천자가 보았다면 제가 찾던 패력천강이 엄한 나라에 있다고 당장에 기함을 내지르겠구나.”

    “관측만으로도 해가 될 수 있는 유해한 영역입니다. 어르신은 그만 집으로 돌아…”

     

    어디 50년 만에 슈퍼문이 찾아왔다거나 외계신의 눈이 하늘에 떠오른 것마냥 진귀한 천체현상을 구경하듯이 대하는 노인의 말에 대꾸하려다가 디스트로이어는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의 인지영역을 뚫고 바로 지척, 검이 아니라 손만 뻗어도 닿을 옆을 허락했다.

    동방제국의 천자를 노인정 친구 부르듯이 편히 대하는 것부터 보통 노인이 아니었다.

     

    “영역각인의 구사자가 이곳에는 어떤 용무로 찾아오셨습니까.”

    “곧 죽을 나이라고 산송장처럼 지하에만 박혀있으니 좀이 쑤시지 뭔가. 눈요기도 되겠다, 오랜만에 탐 나는 영역도 보아서 구경을 나왔지.”

     

    이 시점까지도 긴가민가했던 디스트로이어는 옷태 한 번 기깔난 노인의 뒤에 서서는 선풍도골의 신선처럼 허허 웃는 또 다른 노인을 발견하고 나서야 알았다.

    ‘저것’은 용사 니알라토텝조차 흔치 않게 경계심을 내보였던 존재, <시종장 오카시이네>라는 사실을.

     

    “허허. 그리 여상히 보지 마시지요. 영역전개, 영역확장, 영역특화, 영역각인. 그 끝에 각인이 세계를 아우르거든 새로운 신이 탄생하니, 아이가 부모를 따르듯이 영역을 탐구하는 마음은 어리고 늙음에 관계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겠습니까.”

    “…세계제일의 교육기관 기프트 아카데미에서도 논한 적 없는 이야기를 꺼내다니, 지식의 깊이가 수상하군. 듣던 대로 참 꺼림직해. 시종장 오카시이네.”

     

    그렇다면 그가 모시고 따르는 유일한 주인인 건장한 노인의 정체도 이해가 갔다.

     

    “선황. 황위를 스스로 내려놓고 떠난 자가 테마파크에는 무엇을 목적으로 나타난 겁니까.”

    “두려운가? 자네가 모르는 목적이 있어도 그것을 막을 수 없음을 실감한 까닭에.”

     

    일순간 숨막히는 긴장감이 조성되었으나, 갑작스러운 압박감은 변덕스러운 바람처럼 또한 갑작스럽게 흩어지며 자유를 허락하였다.

     

    “단순하게 생각하게. 욕망이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지. 늘그막에 생긴 손녀 같은 양녀가 학예회를 넘어 외부행사를 하겠다는데 구경은 나와야지.”

    “…오크노디의 수집도시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상관은 없습니다.”

     

    디스트로이어는 삼대거악마냥 선황만 보면 죽인다!를 외치며 달려드는 광인이 아니었다.

    제국 또한 하비의 원수이기는 마찬가지였으나, 환골탈태에 반로환동까지 이룬 몸으로 선황을 앞에 두니 더욱 실감이 들었다.

    이런 자신조차도 아직 선황을 ‘올려다보는’ 위치에 속해있음을.

    그 걸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막연한, 혹은 까마득한 격차는 아니다.

    그러나 어느 한 걸음도 쉽고 가볍게 내딛을 수 있는 걸음이 아니었다.

     

    “자네는 어찌 생각하는가. 짐의 시종장처럼 궁극의 영역, 신역선포에 오크노디가 도전한다고 보는가?”

     

    용살의 길을 꾀하는 선황보다도 훨씬 커다란, 신을 향한 여정.

    논하기도 두려울 경지지만 디스트로이어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경지의 고하와는 별개로 오크노디를 더욱 잘 아는 사람은 자신임을 지금의 물음으로 확신했기에.

    음습한 욕망이었다.

    네가 아무리 잘났어도 오크노디는 내가 더 잘 안다는 우월감이 디스트로이어를 우쭐하게 만들었다.

     

    “오크노디의 관심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호오. 그 색다른 시야가 궁금하군.”

    “일정 경지를 넘어선 고수들은 모두 영역을 전개하고 확장하여 특화를 이루지만, 오크노디에 한해서는 많은 이들이 헷갈려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줄곧 헷갈렸던 부분이기도 했다.

    도대체 오크노디의 특화영역은 몇 개인가.

    어느 특화영역이 주가 되었기에 이리도 많은 영역이 무수히 갈라져나왔는가.

    유력한 후보는 어둠영역이었다.

    자신의 어둠으로 집어삼킨 영역을 다룬다.

    그 정도의 특화효과를 영역에 담아내지 않고서야 시작과 끝을 모를 수많은 특화영역들이 해명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지금, 하늘을 뒤덮은 저 어둠의 영역에서는 그런 끝 모를 탐욕이 느껴지지 않았다.

     

    배척.

    대적.

    파괴.

     

    오직 끝없는 증오와 원한, 의지만을 담금질해온 저것은 오크노디의 영역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 아이의 즐거움은 저리 단단하게 굳을 것이 아니었기에.

     

    “오크노디는 많은 영역을 다루나, 결코 영역을 삼키고 소화하지 않습니다.”

    “그럼 무슨 수로 그 많은 영역을 다룬다고 생각하느냐.”

    “보고 베끼는 겁니다.”

    “…호오?”

    “원리와 구성, 효과. 탐나는 능력이 있으면 눈으로 해석하고 제 것처럼 펼치죠. 삼키기도 전에 이미 이해가 끝났으니, 소화조차 필요없는 것입니다.”

     

    그 말에 오크노디를 보며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선황조차도 심각한 기색으로 숙고하였다.

     

    “재단의 이사장이 짐의 짐작보다 더한 <그릇>을 확보했었던 모양이군.”

     

    제국의 선황과 전대용사의 동료.

    살아온 세월의 길이도, 지나온 인생의 궤적도 서로 다른 두 사람이지만 지금만큼은 같은 생각, 같은 고민을 했다.

     

    오크노디는 늘 이상했다.

    신체는 분명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부족하다고 논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부족함이 가득했다.

    그런데 깨달음만큼은 아득히 위에 있었다.

    몸이 머리를 따라가지 못해 아등바등 드링크를 마시고 음식을 먹어가며 수집효과를 모았으나, 머리가 몸을 따라가지 못해 앓는 적은 없었다.

    마치 그녀의 눈에는 모든 깨달음이 이미 적립되어 있고, 한 번 깨달은 길을 최단속도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선황은 신체에 주목했다.

    그는 오크노디의 신체가 옛 신의 유해를 호문쿨루스의 신체로 삼아 급속배양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신에게서 비롯된 신체이니 인간의 지혜 따위를 새로이 구할 필요가 없겠지.

    본능적으로 신역에 도달했던 지혜를 발휘한다면 무슨 깨달음이 새로이 필요하겠는가.

    충분히 자라 성장을 끝마치기만 해도 바탕이 된 옛 신과 같은 몸으로 자라날 것이다.

    그 끝이 오크노디의 격의 완성인지, 옛 신의 재림이자 부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편, 디스트로이어는 순수한 암흑마나에 주목했다.

    끝을 모르는 순수한 암흑마나의 성질은 어린 시절부터 재단의 엘리트 고문교육을 받은 성과나 결실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가혹했다.

    그런 고문을 당하고도 저 나이까지 생명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지조차 의문일 정도로.

    그래서 생각했다.

    세계의 위협을 수집하는 재단에서 암흑마나의 본신이 되는 외차원 정령들의 원초적인 악의를 어떻게 아이의 몸에 담아내어 적성을 올렸는지.

    생각해보면 간단한 문제였다.

    정령 그 자체가 몸에 깃들어 있으면 정령이 지닌 내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을 테니까.

     

    같은 고민에 다른 해법을 따랐으나 결론은 같았다.

    오크노디의 몸에는 무언가 비밀이 있다.

    재단의 이사장이 안배한 거대한 비밀이.

    그래서 더욱 궁금해졌다.

    이사장의 직속삼장 집사장.

    선황은 이사장의 성급한 칼이라 부르는 존재.

    디스트로이어는 오크노디의 스승이라 추정하는 존재.

    과연 집사장은 오크노디의 비밀을 알고 있을지.

    집사장과 오크노디가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 * *

     

     

    “오잉?”

     

    환락의 도시 시장과 간부회의의 개최자 집사장이 충돌하는 기세는 갈수록 거세졌다.

    환락영역을 손가락으로 찍먹했던 것처럼 집사장의 영역도 손가락으로 찍먹해보고 알아차렸다.

     

    “이거 되게 익숙한 영역인데??”

     

    게임 후반부를 운이 아닌 실력으로 드나드는 고인물이라면 더욱이 모를 리가 없다.

    이건 ‘삼대거악’의 영역이었으니까.

    아카데미 내부의 분란을 잠재우는 1학년 상급반 파트, 선배나 교수들의 함정을 극복하는 2학년 상급반 파트, 나아가 세계에 도사리는 위협에 맞서는 3학년 상급반 파트.

    세계의 위협 중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어느 캐릭터로 플레이해도 반드시 마주치는 필연적인 적이 바로 삼대거악이었으니까.

     

    <신비영역>

     

    여타의 영역들과는 급이 다른 강함을 지닌 영역.

    이 영역을 지닌 삼대거악은 한 명뿐이었다.

     

    “결사의 총수!”

     

    와이히엠하이 재단 대신, 본래 게임의 정사에서 삼대거악에 속했던 진짜 거악이자 이번 회차에서는 어디론가 홀라당 사라졌던 삼대거악의 능력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삼대거악을 수하로 둔 삼대거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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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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