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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7

        

       이세린은 권능을 일으킨 채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혹여 계단에 설치되어 있을 센서나 함정 같은 것들을 피하려고 말이다.

         

       그렇게 이세린은 계단의 끝에 도달했고, 거대한 철문 하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딱 보기에도 폭탄이 터져도 멀쩡할 것 같은 육중한 철문에는 패드가 달려 있었다.

         

       ‘문이….’

         

       [ 걱정하지 말거라. 권능을 일으켜보면 비밀번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응….’

         

       이세린은 그레모리의 조언에 따라 권능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녀의 눈의 패드에 남아있는 인간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마치 리듬 게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 흔적들이 차례로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세린은 권능이 보여주는 대로 번호를 눌렀고.

         

       띠딕.

       쿠구궁,

         

       문을 여는 것에 성공했다.

         

       철문은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고, 그와 함께 새까맣게 변해버린 위의 풍경과는 다른…. 마치 동굴과도 같은 통로를 드러내었다.

         

       짧은 종유석이 달린 천장.

       축축한 공기.

       어디선가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 또옥-또옥 하고 울리는 소리.

       눈이 퇴화한 이름 모를 벌레가 바닥을 기어 다니고, 통로 한쪽에 고여있는 물에서는 투명한 새우가 헤엄을 친다.

       동굴의 벽면 곳곳에는 이끼가 자라고 있었고, 조명으로 보이는 곳 아래에는 이름 모를 잡초가 파릇파릇 싹을 틔우고 있다. 그리고 그 잡초의 이파리에는 애벌레가 매달려 얼마 없는 먹이를 아껴 먹고 있었고,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사람 머리통만 한 크기의 나방이 조명 주변에 날아다니다가 근처에 앉아 쉬기를 반복하고 있다.

         

       [ 귀여운 계약자야. 이곳에는 함정은 없다. 하지만 CCTV는 존재하니, 권능을 사용하는 것을 멈추지는 말아야 한다. ]

         

       ‘응.’

         

       이세린은 으스스한 동굴을 걸어갔다.

       권능을 일으켜 CCTV에 찍히지 않게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천연 동굴을 그대로 뜯어온 것 같은 통로는 끝이 나고, 현대적인 연구소의 모습이 드러났다.

       천장, 벽면, 바닥까지.

       새하얗고 매끈하게 만들어진 인공적인 통로가 그녀를 맞이해준 것이다.

         

       게다가 동굴과 엄격히 구별되기라도 한 것일까?

       동굴에는 그리 흔했던 벌레나 이끼들은 현대적인 연구소 통로를 기점으로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벌레나 이끼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결계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세린은 이렇게 된 이유가 궁금해졌는지 그레모리를 바라보았다.

       답을 알려달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하지만 그레모리는 그녀의 물음에 명확하게 답해주지 않았다.

         

       [ 돌아가서 ‘자기장 유도를 사용한 해충 방역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보면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대신에 어서 일을 빨리 마치고 돌아갈 수 있도록, 그녀의 머릿속에 또 다른 과제 하나를 주었을 뿐.

         

       ‘…치사해.’

         

       [ 비밀이란 것은 남에게 듣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찾아내는 것도 좋은 법. 그런 노력이 비밀의 가치를 더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법이란다. ]

         

       그레모리는 말했다.

       지금 내가 여기서 답을 바로 말해줬다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고 넘어갈 뿐이지만, 돌아가서 논문을 뒤적거리면서 이유에 관해서 탐구한다면 그것을 습득하고 관련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된다면 훗날 그것과 관련된 지식이나 비밀을 더더욱 쉽고 깊게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러한 그레모리의 모습은…마치 학생을 가르치는 가정교사, 혹은 교육에 신경을 쓰는 부모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알았어.’

         

       그리고 그 잔소리에 진절머리 치는 이세린 역시, 딱 그 나이대의 아이 같은 모습이기도 했고.

         

       그렇게 이세린과 그레모리는 사이좋게 통로를 걸어갔다.

       마치 그곳이 자기 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오랜만에 방문한 시골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걷고 또 걸어서.

         

       [ 이곳이다. ]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회귀 전의 예설화가 원했을 ‘무언가’가 있는 그곳에.

       위의 시설에서 정제한 에너지로 만든 어떠한 것에 있는 그곳에 말이다.

         

       ‘우와. 영화에서 나오는 비밀기지처럼 생겼어….’

         

       이세린은 눈앞의 풍경에 눈을 크게 떴다.

       얼마 전 이아린에게 끌려가서 강제로 보아야만 했던 히어로 영화에서 나왔던, 악당들의 비밀 연구소 같은 풍경이 눈앞에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홀로 이루어진 공간.

       거대한 유리관을 중심으로 파이프가 사방으로 퍼져나가 있다.

       그리고 그 파이프의 끝에는 알 수 없는 기계와 실험대가 놓여 있었고, 벽면에는 실험에 사용하는 물질들이 담겨있는 서랍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홀 곳곳에는 서랍에서 물건을 꺼낼 때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1인용 사다리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바퀴가 달린 자그마한 책상들에는 연구원들이 마셨을 것으로 추정되는 커피나 에너지 드링크가 놓여 있었다.

         

       ‘커피랑 에너지 드링크…. 가져다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았네. 학교가 쉬면서 같이 쉰 건가…?’

         

       [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아마 학교에 창궐한 개미 떼 때문에 그렇겠지. 논문이고 실험 재료고 닥치는 대로 다 갉아 먹던 그 개미들이 이곳까지 들어오면 곤란해졌을 테니, 그 원인을 찾고 방역할 때까지 쉬기로 한 것일 것이란다. ]

         

       ‘그 개미들…. 무섭긴 했지.’

         

       이세린은 그레모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연구자들 처지에서 논문과 재료들이 사라져버리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그래서 강제로 휴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음.

       아마 강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휴가라는 달콤한 휴식을 준다고 하니,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인 것일 수도….

         

       이세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홀 중앙에 있는 유리관을 바라보았다.

         

       유리관 안에는 구슬 하나가 둥둥 떠 있었다.

         

       배양액일까?

       아니면 보존을 위한 방부제?

         

       ‘액체에서 에너지가 느껴져.’

         

       가까이 다가가자 유리관에서 에너지가 느껴진다.

       아니, 유리관이 아니라 유리관 안의 액체에서 에너지가 느껴진다.

       마력 전지나 액체 형태의 영약을 보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풍긴다.

         

       ‘마력이나 기는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기이하게도 액체에서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에너지가 담긴 액체’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아니었다. 마력도 기도 아닌, 죄다 섞어놓은 것 같은…. 혹은 에너지가 어떠한 특정 형태를 띠기 전의 느낌이기도 한 듯한.

         

       그런 묘한 느낌.

         

       ‘에테르?’

         

       연금술사들이 사용하는 에너지 ‘에테르’와 흡사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면서도 변하지 않으며 그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니, 이를 에테르와 같다고 표현하기는 힘들겠지.

         

       ‘기?’

         

       자연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에너지 또한 아니다.

       기가 신체로 들어가 가공된 내공 또한 아니다.

         

       ‘마력?’

         

       마법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마력과도 같지 않으니.

         

       이것을 뭐라고 해야 할까?

       이것의 명칭은 과연 무엇일까?

         

       이세린은 궁금하다는 듯 유리관 안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그 호기심을 도저히 이기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빛내며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고, 권능을 사용해 이 에너지와 관련된 자료를 찾기 위해 곳곳을 뒤져 에너지의 명칭을 찾아내었다.

         

       『 혼돈원질(混沌原質). 』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름.

         

       신화 속의 혼돈(混沌)의 원질(原質)이라는 뜻일 수도, 혹은 말 그대로 무질서의 바탕이라는 뜻일 수도 있는 단어.

         

       이세린은 이러한 단어를 보고 눈을 빛냈다.

         

       ‘뭔가 대단해 보여…. 아샤가 좋아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야….’

         

       [ 그 토끼나 담비 같은 아이 말고도 좋아할 사람이 더 있지 않으냐. ]

         

       ‘응. 내 여동생…. 멍청이 아린도 좋아할 것 같아…!’

         

       [ 분명 그럴 것이다. 히어로나 로봇 같은, 남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에도 관심을 가지는 아이이니까 말이다. ]

         

       ‘응.’

         

       이세린은 그레모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리관으로 시선을 돌렸다.

         

       ‘혼돈원질…. 그리고 그 혼돈원질 안에 있는 구슬.’

         

       [ 그래. 너는 저것을 취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

         

       그레모리는 이세린을 보며 말했다.

         

       [ 저것의 이름은 ‘여우 구슬’이다. ]

         

         

         

        * * *

         

         

         

       옛적 한 소년이 살았다.

       그 소년은 서당을 다니고 있었는데, 그의 집은 외진 곳에 있어 서당을 가기 위해서는 울창한 숲을 지나가야만 했다. 천만다행히도 그곳에는 산군은 존재하지 않았으나 그 숲의 분위기가 해가 지면 으스스하게 변하였고, 도깨비가 나온다는 이야기 또한 들은 바가 있어 소년은 그곳을 지날 때마다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밤중에 숲을 통과하다가 길을 잃고 말았는데, 놀랍게도 기와집 한 채를 발견하였다. 그곳에서는 한 소녀가 문 앞에 있어 소년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하였는데, 그 미소가 어찌나 어여쁜지 소년은 그 소녀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그 소녀는 또래가 없어 심심했다며 소년에게 놀기를 부탁하였고, 소년은 그 소녀의 부탁을 거절치 않았다. 그리하여 소녀는 소년을 기와집 안으로 데려가 놀이를 시작하였는데, 영롱한 구슬 하나를 입으로 물어 상대에게 넘기기를 반복하며 서로의 입으로 주고받는 놀이였다.

       이 놀이의 달콤함에 소년은 매일매일 그 기와집에 방문하였고, 평소와는 다르게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하곤 하였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이러한 놀이를 반복할 때마다 소년의 몸은 쇠약해지기 시작하였고, 머지않아 다른 이의 눈으로 보기에도 그 쇠약함을 눈치챌 수 있을 수준이 되었다.

       그리하여 소년이 다니던 서당의 훈장이 수상함을 느껴 이유를 묻자 소년은 소녀의 이야기를 꺼내었는데, 그때 훈장이 탄식하며 말했다.

         

       “그것은 여우이고, 너는 지금 홀려있는 것이다.”

         

       소년은 훈장의 말에 덜컥 겁이 나 어찌하면 되겠냐고 물었고, 훈장은 꾀를 내어 이리 말하였다.

         

       “다시 그 여우를 만나거든 구슬을 입으로 받을 때 꿀꺽 삼킨 뒤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사람을 보아라.”

         

       라 하였다.

         

       그리고 소년은 이후 기와집에 방문하여 구슬을 입으로 주고받는 놀이를 또 하였는데, 이번에는 소녀에게 구슬을 건네주는 대신에 훈장의 말대로 구슬을 꿀꺽 삼켰다. 그러자 소녀가 격노하여 재주를 넘어 꼬리가 여럿 달린 여우로 변하여 소년을 쫓아가기 시작하였는데, 소년은 그 모습에 너무 놀라 그대로 도망을 갔다.

         

       그때 소년을 따라온 훈장이 여우를 쫓아내 주었고, 소년에게 자신이 말한 대로 하였느냐 물었다. 하지만 소년은 여우가 쫓아와 너무 놀라 그러지 못하였고, 스승의 모습만을 보았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훈장이 탄식하기를.

         

       “아. 하늘을 보았다면 천문에 통달할 것이요, 땅을 보았다면 땅의 이치를 깨달았을 것을! 다만 사람을 보았으니 그 의술이 하늘의 경지에 닿을 수는 있겠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훗날 이 소년은 의원이 되어 이름을 날리게 되었으며, 신의(神醫)라 불리게 되었다.

         

         

         

        * * *

         

         

         

       [ 이 ‘여우 구슬’은 이 전설에서 이름을 붙인 인공 영약이란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럴수가…!
    666화라는 기념비적인 숫자를 눈치채지 못하였다니…!
    이 무슨 불찰…!!!!

    늦게나마 666이라는 불길한 숫자를 정화해야만 하겠다는 사명감이 무럭무럭 솟구치고 있습니다…!
    666…이 불길한 짐승의 표라니…!
    어서 신성한 숫자 3으로 이것을 정화해야만 할 것입니다…!!!

    3은 신성의 숫자이며, 영적 존재의 삼위일체이며, 균형의 숫자!
    동방박사가 예수에게 바치는 선물의 숫자, 예수와 관련된 수많은 3…!
    신앙과 희망과 은총…!

    곧 3연참으로 찾아와 666을 정화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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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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