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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8

       

        

        

        

        

        

        

        

        

        

       “아으, 춥다…아, 헬로. 안녕하세요오….”

        

       “<고생했다. 아주 땀이 줄줄 흐르는군. 물은 충분히 마셨나?>”

        

       “워터…아, 리틀! 리틀 드링크!”

        

       “<마침 잘 됐군. 잠시 이곳에 머물다 가도록.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다들 수고 많았다. 가서 세면하고 자라.>”

        

       “<우리 뱀 꼬맹이 건들면 안 됩니다.>”

        

        

        

        오전 1시 30분, 브루클린 버로우 파크, 메이모니즈 메디컬 센터의 지휘통제실.

        

        머리와 어깨에 눈을 소복하게 얹은 이들이 하나둘씩 조심스럽게 입구로 복귀하고, 굳게 닫혀있던 철문이 열리며 바깥에서 작업 혹은 경계임무를 끝내고 돌아온 이들을 맞이한다.

        

        근래 들어 가장 귀중한 자원 중 하나가 되어버린 디젤 연료를 태워 생성된 전기가 메디컬 센터 파빌리온의 1층부터 4층까지를 따뜻하게 덥히는 난방이 되고, 몸에 쌓인 눈이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머리에 털실 모자를 쓴 유진만이 지휘통제실에 남을 기회를 얻는다. 의자에 앉은 그녀가 장갑을 벗고 빨개진 손가락을 호호 불어 녹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파쿼슨 대위가 슬그머니 입을 열어 물었다.

        

        

        

       “<춥지는 않았나?>”

        

       “<에, 추워요. 조금. 많이 말고.>”

        

       “<그런가. 따뜻한 것좀 마시겠나?>”

        

       “<아, 감사합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요 며칠 사이 약간이나마 영어에 대한 부담감이 사라졌는지 유진은 짧은 영단어로나마 명확하게 의사 표현을 해오고 있었다.

        

        어느샌가 입가가 느슨해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그가 느긋하게 손짓했고, 그러한 표정의 변화를 진즉 짐작하고 있던 작전보좌관은 스리슬쩍 탕비실로 이동했다.

        

        달콤한 냄새가 방 내부에 퍼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그 냄새의 정체는 그녀조차도 맡자마자 알 정도로 특징적이었다.

        

        볼이 발개진 유진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와, 우와, 핫초코다….”

        

       “<마음에 들면 좋겠군. 여기에도 몇 개 안 남은 기호식품이다. 설탕을 잔뜩 탔으니 입맛에 안 맞을 일은 없겠지…천천히 마셔라. 뜨거울 테니까.>”

        

       “<에, 여러분들은…?>”

        

       “<우리는 신경쓰지 말고.>”

        

        

        

        과연 잘 알아들었을까.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몇 번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이자 그녀 역시도 얼추 눈치를 챘는지 컵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머그컵. 따뜻한 김이 허공으로 올라갔다.

        

        머잖아 들려오는 작은 호롭- 소리. 그 순간 유진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고, 그녀는 누가 보아도 기분좋다는 미소를 만면에 머금은 채 음료를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했다.

        

        그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작전보좌관의 목소리.

        

        

        

       “<얼굴 다 풀어지셨습니다, 대위님.>”

        

       “<시끄러워, 이 자식아.>”

        

       “<귀엽지 않습니까? 어디서 뭐하다 온 앤지는 몰라도, 제법 착하고 싹싹합니다. 요즘 저 아이 때문에 단순노동에 참여하는 사람도 제법 늘어난 거 아십니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군.>”

        

        

        

        일단 그리 말은 해놨지만, 그로서도 작전보좌관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일말의 과장 없이 말한다고 하더라도, 눈 앞에서 핫 초콜릿을 홀짝홀짝 마시고 있는 그녀를 외형적으로든 심성적으로든 호감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기에.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동안 어떤 험난한 일을 이겨내야만 했을지 궁금해질 정도로 말이다.

        

        끔찍한 이야기였지만, 사회가 무너지고 공권력의 작용 범위가 무정부사회에 준할 정도로 축소되며, 본래라면 입에 담기도 힘들 정도의 강력범죄는 너무나도 흔한 것이 되어버렸다.

        

        살인, 약탈, 방화, 강간, 혹은 그러한 범죄들의 추가적 결합.

        

        이 아이가 그런 것을 겪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들은 그런 걸 남의 눈 앞에서 입에 담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 정도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대신, 그는 어느샌가 절반 이상 줄어든 핫 초콜릿을 아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던 유진의 앞에 올려놓아져 있던 옥스포드 영한사전을 슬그머니 펼쳤다.

        

        짧은 사이 꽤 많이 보았는지 상당히 너덜너덜해진 책. 무어라 써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필기도 되어있었다.

        

        단어를 이리저리 훑어보던 그는 머릿속으로 몇 가지 문장을 만들었고, 해석이 어렵거나 그녀가 잘 모를 것 같은 단어를 종이에 적어내린 후 입을 열었다.

        

        

        

       “<미첼 하사에게 들었을수도 있겠지만, 대략 30시간 후 우리는 브루클린을 완전히 뜰 예정이다.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가 최종 목적지고…너 역시도 마찬가지겠지.>”

        

       “…센트럴 파크?”

        

       “<그래. 이틀 후 새벽에 출발한다.>”

        

        

        

        알아들었다고 단정하고 대화를 종료하기엔 살짝 애매한 시점. 그리하여 그는 종이에 몇 가지를 더 썼다 – 오늘이 1월의 몇주차인지, 정확한 출발 시간은 언제인지.

        

        유진은 종이에 적힌 30H라는 글자와 출발한다는 말을 듣고 얼추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파쿼슨 대위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꿈틀거리다 작게 숨을 내뱉었다.

        

        그는 지난 번 미첼 하사에게 유진이 어쩌다 이곳에 왔는지를, 그리고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를 들었고…그것을 자신이 도와줄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이 꼬맹이는 한국에서 여행을 왔다고 했었지만….’

        

        

        

        적잖아 앞으로 한참 동안은…아니. 어쩌면 그에게 주어진 수명이 다해 자연사하게 될 때까지도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몰랐다.

        

        설령 미국 대통령이라도 – 지금쯤 위치 미상의 벙커에 있을지도 모르는 – 그것은 보장할 수 없을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가능할수도 있겠지만, 이 꼬맹이만을 위해 비행기를 띄울 수는 없겠지.

        

        그리고 어쩌면 한국 역시도…아니, 마찬가지로 이 말도 할 필요가 없었다. 이 아이는 바보가 아니다. 단지 더 이상 슬퍼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모르는 척을 하고 있는 것에 가까우리라. 그는 그리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저 단호히 덧붙였다.

        

        

        

       “<그 전까지 어디 다치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해라. 너를 포함한 민간인들을 안전하게 센트럴 파크까지 데리고 가는 건 우리의 역할이다.>”

        

       “<저 친구, 알아들었을까요?>”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해주면 되는 일이지.>”

        

        

        

        그는 숨을 골랐고,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이틀 후, 너와 민간인들을, 안전하게, 센트럴 파크로 데려간다. 네가 그 부분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알겠지?>”

        

       “<…이해했어요.>”

        

       “<좋아. 핫 초콜릿은 맛있었나?>”

        

       “<…네.>”

        

        

        

        어느새 바닥을 드러낸 컵. 작전보좌관이 그것을 회수하는 사이, 파쿼슨 대위는 퀭한 눈두덩을 한 번 비비고는 의자에서 슬그머니 일어나, 유진의 모자와 어깨에 묻은 물방울을 툭툭 털었다.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은 채 작게 덧붙였다.

        

        

        

       “<잘 자라, 꼬맹이.>”

        

       “<…감사합니다. 핫초코 맛있었어요.>”

        

       “<그럼, 맛있어야지. 설탕을 얼마나 부었는데.>”

        

        

        

        스윽.

        

        유진은 그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났고, 몸을 돌려 천천히 지휘통제실 밖으로 통하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 양 아쉬운 모습으로 고개를 돌려 방을 지키는 군인들을 바라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철컥 소리와 함께, 유진은 흥 하고 코를 먹으며 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나갔다. 빨개진 코와 눈가, 눈물이 그렁거리는 눈망울만이 파쿼슨 대위와 작전보좌관이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일순간 정적이 흐르고, 그는 맨해튼에서 새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저 친구가 생체실험에 잡힐 일이 없다는 점을 다행으로 여겨야만 하는지, 아니면 앞으로 우리 같은 극한직업에 투입된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해야 하는지.>”

        

       “<…글쎄 말입니다. 그래도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군요.>”

        

       “<근래 들은 가장 허황된 말이로군.>”

        

        

        

        맨해튼에서 알림.

        

        프로토타입 이카루스 기어 운용 인원 모집 – 변이자 대상.

        

        이카루스가 뭔지, 기어는 뭔지조차 몰랐기에, 두 명은 그저 한숨을 내쉬며 유진의 앞날이 밝기만을 빌어줄 뿐이었다. 뭐가 됐든 생체실험은 아니어서 다행이란 것만이 유일한 의견의 일치였다.

        

        뉴욕의 밤은 어두웠고,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일어나라, 꼬맹이. 나갈 시간이다.>”

        

       “…에, 아으…네에, 나가요오….”

        

        

        

        …문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에 힘겹게 눈을 뜨자 모르는 천장이 보인다.

        

        흡사 내가 입원한 것이 아닐까 싶은 주변의 모습. 그러나 딱히 다를 것은 없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작은 병실 안이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내가 어딘가에 깁스를 하고 있거나 링거를 맞고 있진 않았다.

        

        이곳은 메이모니즈 메디컬 센터의 입원실 천장. 여타 병원의 입원실이 그런 것처럼 방은 상당히 좁았고, 방 안에는 각도 조절이 되는 병원 침대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내가 쓰는 곳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불 켜진 복도가, 그리고 어두컴컴한 방과 복도의 경계에서 역광을 한껏 받아 얼굴이 잘 안 보이는 미첼 하사님이 보였다. 슬그머니 고개를 올려다보자 보이는 LED 시계. 현재 시각은 오전 5시였다.

        

        바깥에서부터 느껴지는 인기척이 상당했다. 아마 이곳에 주둔하는 군인 분들과 민간인들은 진즉 일어난 게 아닐까 싶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기도 했고.

        

        아무튼 오늘은 내가 이곳에 온 후로 며칠이 지난 시점이었고, 다시 말해…이제 이곳을 떠나 그 말 많은 센트럴 파크를 향해 갈 시간이라는 소리였다.

        

        

        어젯밤부터 많은 주의사항을 들었던 관계로, 내 준비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가지고 가야만 하는 물건도 예전에 비하면 단촐하기 그지없었다. 며칠 분량의 식사 및 물과 영한사전, 애착이불 정도.

        

        진즉 더플백에 짐을 싸놨기도 하거니와, 다행히도 지난 번에 군인들이 말해줬던 것과 달리, 아까 잠에 들기 전 진즉 유탄발사기와 탄환 등을 트럭에 옮겨놓고 잤기에, 나는 짐만 가지고 가면 되었다.

        

        …다시 말해, 내가 얼마 전에 가지고 왔던 총은 아쉽게도 압수당했단 뜻이기도 했다.

        

        권총은 아니었지만.

        

        

        미첼 하사님이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아침식사는 이미 준비되어있으니 빠르게 출발하자. 할 일이 많다. 다음 식사가 언제일지 모르니 많이 먹어두도록.>”

        

       “네에….”

        

        

        

        그래도 며칠 정도 지났다고 드문드문 영어가 들리긴 한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옷을 주섬주섬 껴입었다. 난방은 진즉 꺼져있었고, 복도는 서늘했다. 옷을 두텁게 껴입고는 더플백을 멘 채 아래층의 식당으로 이동. 수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끝낸 시점이었다.

        

        빈 자리에 대충 앉아 주변을 살펴보았다. 민간인들보단 군인들이 많았다. 식사는 평소에는 잘 안 나오는 최신형 전투식량인 CCAR라는 물건이었다. 듣자 하니 수송기가 신나게 뿌려댔다고 한다.

        

        나름대로 원래의 맛을 보존하고 있는 반건조 바나나 바를 오물오물 씹는 동안, 미첼 하사님이 오늘 무슨 일이 있을 예정인지를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는 랭온 병원 근처다. 여기서 대략 2km 가량 서쪽에 있지. 그 근방의 야구장에서 수송기를 통한 철수가 이뤄질거다.>”

        

       “<수송기? 철수…?>”

        

       “<이걸 봐라.>”

        

       “<아하.>”

        

        

        

        다행스럽게도, 하사님은 그 사이 삐뚤빼뚤한 한국어 글씨로 내가 헷갈려하는 단어 몇 개를 설명해주었다. 이 분도 한국어 실력이 조금 늘어난 듯했다.

        

        아무튼 나 역시 큰 문제 없이 오늘 있을 작전에 대한 전달사항을 이해할 수 있었다. 거기에 추가적으로 현재 그 랭온 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철수까지도 말이다.

        

        

        

       “<랭온 병원은 민간인 수는 적지만, 대량의 고화력 화기와 제104헌병대대의 수뇌부가…아니, 이렇게 말하면 이해하기 어렵겠군. 대충 가치있는 것들이 더 많단 뜻이다.>”

        

       “<아하.>”

        

       “<바로 그 때문에, 랭온 병원은 새벽 3시부터 철수 단계에 돌입했다.>”

        

        

        

        …무언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 몇 개도 섞여있었지만, 기본적인 골자는 알 수 있었다. 랭온인가 하는 그곳에는 뭔가 귀중한 게 좀 더 많고, 그 때문에 우리보다 먼저 퇴각 중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후에도 설명은 약간 더 이어졌다. 그녀는 손짓발짓을 섞어가며 최대한 간단하게 덧붙였고, 나는 우리 부대가 아침 6시 반까지 주변 경계 임무를 이어받고, 민간인들 먼저 철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나 먼저 가게 되는 건가. 그건 조금 아쉽다고 해야만 할지 – 라고 생각한 순간 이어지는 말.

        

        

        

       “<하지만 네겐 굉장히 미안하게도…너는 우리랑 같이 간다. 민간인들이 아니라.>”

        

       “<…에? 어째서요…?>”

        

       “<네 몸무게가 성인 남자 3명 가량과 맞먹기 때문이지.>”

        

       “…아.”

        

        

        

        나는 그에 창피함을 느끼고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그 말대로였다. 나는 지금…대략 200kg 정도 나갔다. 당장 내가 쓰고 있는 병원 침대도 임시로 철골을 보강한 것이었으니까. 힘이 센 건 좋지만 몸무게가 이렇게 많이 나갈 거라는 건 예상 못 했어.

        

        아무튼,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나는…생각보다는 괜찮았다. 그동안 민간인들보단 군인 분들과 정이 많이 들었으니, 그들과 함께 동행하는 게 더 마음이 놓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가 이어 말했다.

        

        

        

       “<민간인 70명 가량과 각종 물자를 실으면 적재중량을 상당히 초과하게 되겠지. 다시 말해…무게 상한을 넘길 수 있다. 너도 추락하긴 싫겠지?>”

        

       “<…네네, 이해했어요.>”

        

       “<좋아, 착한 아이로구만.>”

        

        

        

        그와 동시에 미첼 하사님은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는다. 오늘 안 씻었는데….

        

        아무튼, 출발할 시간이었다. 우리는 아래로 내려갔고, 거기는 어둠 속에서 열상장비를 머리에 착용한 채 민간인들을 질서정연하게 트럭에 태우고 있는 군인들이 보이고 있었다.

        

        경광등과 형광조끼, 미약한 조명, 호루라기까지. 이런 어둠 속에서는 너무나도 크고 밝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거라도 없으면 컨트롤이 불가능할 테니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피난민 리스트를 체크한 파쿼슨 대위님은 민간인 열다섯 명이 탄 트럭 한 대와 내가 실어나른 유탄발사기 등으로 중무장한 호위트럭 한 대를 동시에 출발시켰다.

        

        듣자 하니 차량 수가 그렇게 많은 게 아니기에, 호위트럭은 다시 돌아와야 한다나 뭐라나.

        

        참 눈물겨운 물자 부족이었다.

        

        

        그 와중 지난 번의 일로 친해진 엘리슨 중위님이 내 가까이로 와서 덧붙였다.

        

        

        

       “<유진, 너는 우리와 함께 간다. 알겠지?>”

        

       “<그거 이미 제가 다 말해줬습니다, 중위님.>”

        

       “<이야기가 빠르겠군. 여기서 대기하고 있도록.>”

        

        

        

        다들 나를 너무 아끼는 것 같기도 하고….

        

        차량이 한 대씩 출발한다. 차량 전조등은 싸그리 없었기에 어떻게 운전하나 싶지만, 운전수들의 눈 앞에 야간투시경 같은 게 달려있는 걸 보면 어떻게든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10분이 흐르고, 20분이 흐른다. 열다섯 명씩 탄 트럭이 도합 다섯 번 오가는 사이, 이제는 군인들이 탑승해서 움직일 차례였다. 피난민들과 숫자가 엇비슷했기에 내가 탑승할 차례가 오기까진 시간이 조금 걸렸다.

        

        하지만, 이제…나도 이곳을 떠날 차례였다.

        

        

        

       “<탑승해라, 유진.>”

        

       “끙차…!”

        

        

        

        엘리슨 중위님이 내 등을 툭툭 치자, 나는 트럭 계단을 밟고는 힘겹게 위로 올라갔다.

        

        공교롭게도 내가 탄 차량은 몇 시간 전 내가 옮긴 유탄발사기가 장착된 트럭이었다.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작은 방석이 깔려있는 건 조금 앙증맞긴 했다.

        

        마지막 한 명까지 탑승함과 동시에 트럭이 부르릉 소리를 내며 엔진을 공회전시키고,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주차장 입구를 빠져나가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얼마나 지났을까, 엘리슨 중위님은 무슨 버튼을 하나 꾹 눌렀다. 그러자 병원 안쪽에서부터 옅은 진동이 느껴졌다.

        

        그것이 휴대 가능한 양을 넘어서는 예비 탄약이 다른 누군가의 손에 못 들어가게끔 폭파시키는 절차라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불과 며칠 지냈다고 벌써 두 번째 안식처가 사라지는 것을 뒤로 한 채, 나는 영어로 힘겹게 중얼거렸다.

        

        

        

       “<…언젠가, 저기에 다시 환자가 올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 꼬맹이.>”

        

        

        

        그 말은 너무나도 덧없었기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내게 안도감과 평온을 준 메이모니즈 메디컬 센터가 어둠 속으로 파묻히는 것을 보며, 나는 형용하기 어려운 공허함에 사로잡혔다.

        

        앞으로도 이런 부평초같은 삶을 살게 될까. 센트럴 파크란 곳은 어떨까. 그곳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을까…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난 번에도 느꼈지만, 직접 가보지 않으면 아무런 것도 모른단 점이었다.

        

        부디 앞으로는 조금 쉴 수 있길 바라며, 나는 더플백에 얼굴을 파묻었다.

        

        너무나도 어두운 세상이었다.

        

        

        

        

        

        

        

        

        

        

        

        

        

        

        

        

       -여기는 리퍼. 현재 브루클린 탈출 지점의 상공에서 체공 중이다. 바람이 다시 조금씩 불고 있다. 연료 소모량이 예상보다 15% 늘어날 것으로 추정.

        

       -확인. 특이사항은 없나?

        

       -어…확실하지는 않지만, MTA 스테이션…36번가 그린우드 지하철역 인근 버스 창고에서 다수의 인영이 감지된다. IFF 확인 후 재차 보고하겠음.

        

       -최대한 빠르게 보고할 수 있도록.

        

        

        

        한편, 그로부터 대략 1.6km 가량 떨어진 어딘가.

        

        소란을 들은 누군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센트럴 파크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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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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