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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9

        

       벌레는 들었다.

         

       이세린의 속마음은 듣지 못하였지만, 그레모리가 이세린에게 속삭이는 그 소리는 분명히 들었다.

         

       필요 이상으로 자세한.

       이세린이 아니라 제 3자에게 자세하게 설명하는 듯한 그레모리의 그 말을 말이다.

         

       ‘인외(人外)의 사고방식을 어찌 인간이 알 수 있으랴? 그들과 사고방식이 유사한 것은 분명 같은 초월자뿐일 것이다.’

         

       그토록 자세한 설명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제 3자의 귀가 그곳에 있음을 알면서도, 주술의 흔적이 남아있는 벌레의 주인이 박진성임을 짐작하였을 것이 분명하면서도 어찌 설명한 것일까?

         

       모른다.

       자세히는 알 수가 없다.

         

       어찌 초월자의 생각을 일개 인간이 짐작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어찌 추측해보자면…. 그것은 보은, 그리고 이세린의 가족에게 행하는 일종의 선물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초월자와 계약자는 둘 그 자체로 완결된다.

       초월자는 계약자를, 계약자는 초월자를.

       그렇게 둘은 서로의 인연만을 중시하게 되며, 결국에는 그들 자체로 완결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괴리될 수는 없는 법.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인연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과 얽히고, 사람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대기도 하고 적응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사람은 성장하고 그 속에 속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세린 역시 예외가 아닌 것이라.

       그녀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혈연이라는 이름의 끈끈한 인연을 가지게 되었다.

       부모는 물론이고, 한 배에서 같은 시기에 나온 쌍둥이까지 말이다.

         

       거기에 더해 양자처럼 길러진 박진성이라는 인연 역시 추가되었으니.

         

       이 인연은 이세린이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며, 부서지거나 망가진다면 슬퍼할 것이라서.

       그래서 그레모리는 이세린의 가족들에게, 박진성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일 것이다.

       자신의 계약자인 이세린과 연결이 된 사람이기에, 인간을 좋아하는 것은 별개로 ‘더 특별한 인간’으로 분류하여 그렇게 호의를 베푸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것은 좋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나쁘다고 볼 수도 없는 것. 어찌 인연과 사랑에, 삶의 방식에 높고 낮음이 있을 수 있으랴? 삶의 평가란 그 스스로가 마지막의 순간에 돌아보았을 때 행복과 만족하였는지 되묻고 살펴보는 끝에 이루어지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사람이 다채로운 이유라 할 수 있으리라….’

         

       나쁜 일은 아니다.

       적어도 이세린의 곁에는 부모이자 형제이며 영원한 동반자가 그녀를 지켜줄 것이고.

       그 강력한 존재가 이세린과 인연이 있는 자들에게도 호의적이라는 것은 그리 손해를 볼 일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계약자를 보유한 초월자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계약자라는 것을.

       다른 인간들 역시 그들로서는 귀엽고 기특한 존재이지만, 그런데도 수많은 인간과 계약자가 저울에 달린다면 계약자를 선택하리라는 것을.

         

       그렇기에 초월자의 도움을 의심 없이 기쁘게 받아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호의를 받은 이가 아닌 계약자.

       결국에는 그 호의는 계약자를 위한 것이고, 계약자의 이득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것이 직관적이냐 마냐는 큰 문제가 아니다.

       인과란 심오하기 짝이 없는 것이나 초월자는 일개 인간보다는 훨씬 넓은 시야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을 터.

         

       그러니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회귀 전과 지금…그리고 새롭게 얻은 정보들. 그 모든 것.’

         

       어두운 방.

       진성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정신이 깊게 침잠한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잡념이 사라지고 요동치는 끈과 같은 것이 마음을 관통한다.

       그것은 오르락내리락 움직이며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 선의 움직임과 같이 진성의 생각 역시 요동친다.

       수많은 요소를 떠올렸다가 지우고, 합치고.

         

       그리하여 그는 하나의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회귀 전 이아린과 예설화는 이 비밀공간을 발견하였다.’

         

       얼마 전 이아린은 진성에게 찾아와 엘리베이터와 얽힌 괴담을 이야기해주었다.

         

       진성은 그것을 듣고 개미 떼를 학교에 풀어 비밀공간을 태웠고, 이세린은 그렇게 쑥대밭이 된 곳의 또 다른 비밀공간을 발견하여 여우 구슬을 가져갔지만….

         

       회귀 전에는 그렇지 않았으리라.

       그때 진성은 용병이 되어있었으니 이아린은 그와 접촉하지 못했을 것이고, 엘리베이터 괴담 역시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엘라를 잃어버리는 비극까지 겹치게 되었으니 마음이 꽤 울적한 상황이었을 터. 아마 못 이기는 척 예설화의 권유를 받아서 그대로 괴담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탐험을 시작했겠지.

         

       그리고 이 비밀공간을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다.

       진성처럼 계단 쪽을 살펴보다가 발견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엘리베이터 쪽에 이 시설과 연결이 된 통로가 있거나…. 혹은 어떠한 단서라도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그 둘은 서버가 가득한 곳에 입장하였고, 놀랍게도 에너지를 정제하는 시설이 있는 비밀공간까지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여우 구슬이 있는 통로까지 발견했을 수도 있고.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불행이었을 것이다.

       지금과는 다르게, 그때의 학교에는 사람이 남아있었을 테니까.

         

       지금 비밀공간에 사람이 없는 것은 진성이 개미 떼를 풀어서 그들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회귀 전에는 그러한 개미 떼는 없었을 것이고, 연구원들과 경비들이 비밀공간에 있었겠지.

         

       그리고 그 둘은 발각되었겠지.

         

       그 자리에서 잡혔거나, 혹은 도망을 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신원이 파악되어서 뒤늦게 잡혔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군. 중국과 비밀경찰…. 국정원에 신고라. 이거 참.’

         

       그들은 비밀공간에 함부로 들인 대가를 치르게 되었을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설화’만 대가를 치르게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중국의 미덕은 복수.

       그렇기에 공안이 한국에 비밀리에 설치한 비밀 경찰서를 신고한 이세린을 곱게 보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이세린의 집안이 어디 보통 집안이던가?

       재벌이라는 것 자체부터가 건드리기 꺼려지는 마당에, 홍익애국단에 속해있기까지 했다.

       복수랍시고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끔찍한 후폭풍을 맞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세린 그녀 자체도 ‘계약자’라는 특별한 능력자이며, 심지어 비밀과 관련된 권능을 사용할 수 있기까지 했다.

         

       그러니 중국으로서는 복수를 접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 얽히면 손해밖에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함부로 건드리면 후폭풍이 뒤따르고.

       죽인다고 하더라도 이세린과 계약을 한 초월자에게 원한을 사게 된다.

         

       계약자를 잘 써먹고 있는 중국이니만큼, 그들과 척을 지게 되면 어떠한 위험이 뒤따를지 어렴풋이나마 인지하고 있었을 터이니…. 그래서 그들은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복수를 접었을 것이다.

         

       뭐…. 이씨 가문이 몰락했다거나 이세린을 건드려도 괜찮을 것이라는 확신이 선다면 건드릴 수도 있었을 테니, 복수를 보류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겠지.

         

       그런데 그런 와중에 이아린이 예설화와 함께 비밀공간에 침입하게 되었다면?

         

       ‘그레모리가 말하기를 중국 정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하였으니, 그렇군. 그 둘의 침입 때문에 한국 정부, 혹은 중국 정부에 이 시설의 존재가 들켰을 수도 있겠어. 어쩌면 둘 모두에게 들켰을 수도 있고.’

         

       아마 한국 정부는 둘을 특별히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건드릴 이유가 없었겠지.

         

       국가중요시설이나 다름이 없는 이능 특성화 고등학교 내부에 비밀시설을 멋대로 운영하면서 미성년자의 에너지를 수집해서 중국 단체와 이상한 실험을 하고 있던 관계자들이 문제지, 그냥 철없이 담력 시험을 하다가 그 시설을 발견한 학생이 잘못은 아니었을 테니까 말이다.

       오히려 표창장을 받았으면 받았지, 그것을 질책하지는 않았으리라.

         

       물론 얽힌 기업들이나 단체들은 좀 싫어할 수 있었겠지만…. 뭐, 그것을 직접적으로 표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아린의 배경이 막강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중국 측에서는 어떨까?

       갑자기 이상한 시설이 발견됐는데, 그것이 얼마 전 자신에게 엿을 먹인 이세린의 혈육과 관련이 되어있다는 것을 안 중국 정부는 어떠한 짓을 했을까?

       그리고 잘 실험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다 뒤엎어버린 철없는 학생 둘에게, 중국 단체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 이아린을 건드리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배경도 있고, 건드릴 빌미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예설화라는 아이는….’

         

       이 실험에 화산파가 얽혀있다고 했던가?

         

       이아린이 진성에게 말한 것으로 보아 이 예설화라는 아이는 화산의 무공을 익히고 있는 무인.

       아마 중국 측에서는 그것을 빌미로 어떠한 수작을 부렸을 확률이 높다.

         

       ‘예설화라는 아이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혹 중국 국적을 가진 혈연관계의 인물이 있거나, 집안이 중국과 관련된 사업을 한다거나 하였다면…. 그 빌미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되었겠지.’

         

       해외에 비밀 경찰서까지 몰래 만들어 자국민을 감시하는 나라다.

       그런 나라가 자신의 국적을 가진, 혹은 자신의 나라와 관련이 있는 사람을 쉽사리 놓칠까?

       심지어 그들의 미덕인 ‘복수’와도 관련이 있는데?

         

       그럴 가능성은 작을 것이다.

         

       그렇게 예설화는 중국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곤 이세린과 이아린의 몫까지 합쳐서 보복당하게 되었을 것이다.

         

       ‘운이 좋았다면 중국에 대한 헌신을 대가로 풀려났을 것이고, 그 재능이 뛰어나고 쓸모가 있다고 판단되었으면 누군가의 호위가 되거나 군인이 되었을 것이고, 운이 나빴다면.’

         

       진성은 사람을 소모품처럼 사용하던 세계 3차 대전의 중국을 떠올렸다.

         

       ‘세계 3차 대전 초창기, 능력자들을 재료로 사용해 만든 생체병기가 있었지. 아마 그 꼴이 되었을 확률이 높겠군.’

         

       그리고 이아린의 멘탈은 박살이 났겠지.

       친구를 연달아 잃어버리는 비극이라니.

       채 성숙하지 못했던 소녀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었을 것이다….

         

       ‘뭐, 이것은 추론이니…. 확신을 얻기 위해서는 정보를 더 모으는 것이 좋을 터.’

         

       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자신과 몇 번 만났던 요원, ‘김철수’에게 연락해서 비밀공간에 대한 정보를 보냈고, 조사한 내용을 공유해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여권을 챙기고, 비행기 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말이다.

         

         

         

        * * *

         

         

         

         

       [ 입경(入境)이 거절되었습니다. ]

         

       [ 박진성, 귀하는 중국에 입국할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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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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