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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69

   루시 알른이라는 인물의 약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녀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같은 말을 할 것이다.

   

   

   주변의 사람이라고.

   

   

   오래 전부터 온갖 곤경을 겪어 온 그녀는 자기 자신의 아픔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아픔을 못 느끼는 건 아니지만 어지간한 수준은 무시하고 넘겨버릴 수 있다.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는 건 견디질 못한다.

   

   

   그게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더더욱.

   

   

   교황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루시가 루엘의 메이스를 든 순간부터 그녀에 대한 많은 것들을 보고 받았으니까.

   

   

   그녀의 성향부터 시작해서 인간관계까지 모든 걸.

   

   

   그렇기에 어디부터 건드리면 좋을지에 대한 것도 알았다.

   

   

   처음부터 큰 걸 무너트려선 안 된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커다란 충격이 가해지면 모든 아픔을 생생히 느낄 수가 없다.

   

   

   우선은 작은 파문을 일으켜야 한다.

   

   

   상대의 의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도록.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도록. 그를 막기 위해 발악하도록.

   

   

   그제서야 상대는 커다란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무너져내릴 수 있다.

   

   

   “저 곳입니까.”

   

   

   교황을 따르는 성기사는 언덕 위에 자리한 자그마한 저택을 보며 고갤 갸웃했다.

   

   

   그리 특별한 것이 없는 곳이었다.

   

   

   시골 구석에 존재하는 이름뿐인 약소 귀족.

   

   

   기사 하나가 떨어지면 그대로 휩쓸려버릴 장소.

   

   

   저런 곳에 강대한 사령이 존재한다고?

   

   

   “가보면 알게 될 걸세.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도록.”

   “알겠습니다. 성하.”

   

   

   성기사는 죽음을 넘어선 이들과 함께 저택으로 향했다.

   

   

   열 댓쯤 되는 인원이 저마다 무기를 치켜든 채 나아가는 모습은 목가적인 저택의 풍경을 당연하다는 듯 짓뭉갰다.

   

   

   *

   

   

   얼마 전 수도의 성에서 아드리를 따라 움직였던 비시는 집을 나가면 개고생이란 격언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 때의 풍경은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끔찍했다.

   

   

   그 후 루시가 납치당하면서 침울해진 분위기 속에서 눈치를 보느라 위장이 갈려나갔고, 이전 대의 솔라딘의 국왕들과 3왕자인 아서를 중재하는 것도 고역스러웠지.

   

   

   가장 짜증나는 사실은 이 모든 고생을 한 원흉인 루시 알른과 그 뒤로 만나질 못했단 점이었다.

   

   

   아드리에게 몸을 줄 방법이 있다면서! 거래를 했잖아!

   

   

   일이 끝났으니까 바로 알려줘야지!

   

   

   왜 날 만나러 오지도 않고 다른 곳에서 깽판을 치고 있는 건데!

   

   

   – 여기에 신경 쓸 틈이 없긴 해 보여요.

   

   

   침대 위에서 둥실둥실 떠다니는 아드리의 말에 비시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걸 누가 몰라? 그냥 투정 좀 부려본 거잖아.”

   – 그리 급한 일도 아닌걸요.

   “나도 알아. 알지만.”

   

   

   아드리는 비시가 왜 이리 급한 건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드리와 함께 돌아다니는 것도 돌아다니는 것이지만 죽은 자가 되살아나는 광경을 직접 보고 싶은 거다.

   

   

   결국 비시의 염원은 자기 동생을 되살리는 거니까.

   

   

   – 알른 영애께서 승리하시길 기원해야겠네요. 그 분이 패배하신다면 저희에게 무언갈 알려줄 상대도 없어지니까.

   “이제와서 우리가 응원하는 게 의미가 있겠어?”

   

   

   요 며칠 새 루시는 대륙 전체의 영웅이 됐다.

   

   

   음유시인들은 하나같이 그녀에 대한 이야기만을 떠드는 중이고 예전에 풀린 루시가 그려진 장신구의 값어치는 끝을 모르고 치솟는 중이며 이런 촌구석의 어린아이들조차 그녀의 이름을 알 지경이다.

   

   

   덕분에 솔라딘의 귀족 영애들 사이에는 비상이 걸렸다.

   

   

   그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루시를 괴롭혀왔으니까.

   

   

   그녀에게 걸린 저주에 대해 몰랐다고, 그걸 알았으면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 거라고, 자신들을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런다 한들 상황이 바뀔 것 같진 않았다.

   

   

   루시를 향한 괴롭힘은 사교계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져 왔잖나.

   

   

   지금쯤이면 그들의 부모들도 전전긍긍하는 중이겠지.

   

   

   왕궁에서 일어났던 여러 사고를 제압하는 데 가장 큰 공로를 세운 것이 루시 알른인 상황에 그녀가 명분까지도 얻었으니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

   는 상대는 말 그대로 지워져버릴 터.

   

   

   그들은 아마 루시가 공멸하길 바라지 않을까.

   

   

   세상의 구원보다도 루시의 패배를 간절히 기원할지도 모른다.

   

   

   음. 이렇게 생각을 하니까 나라도 기도를 올려야겠는 걸.

   

   

   신을 저버린 사령술사 따위의 기도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

    비시!

   “응. 왜? 나 지금 어떤 기도 올릴지 생각…”

   – 그런 말 할 때가 아니에요! 적이 오고 있다고요!

   “…적?”

   – 악신의 기운을 지닌 자들입니다!

   “그. 그런 놈들이 왜 여기에 오는뎨!”

   

   

   지난 번에 왕국에서 있었던 일 때문인가!? 그 때 찍힌 건가?!

   

   

   – 그런 걸 생각할 틈 없어요! 당장 나가야 해요!

   “이. 일단 부모님들을 안전한 곳으로.”

   – 이 저택보다 안전한 곳은 없어요! 당신도 알잖아요!

   

   

   그랬지. 지난 번에 아드리와 함께 저택에 이런저런 걸 부여해뒀었어.

   

   

   아드리의 다그침에 정신을 차린 비시는 자신의 지팡이를 들고서 바깥으로 내달렸다.

   

   

   안에서 음식을 하던 어머니가 무슨 일인지 물어봤지만 비시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깥으로 나온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건물 안에서 문을 열 수 없도록 하는 일이었다.

   

   

   싸울 줄 모르는 부모님께서 바깥으로 나온다면 어찌 될지 뻔했으니까.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지팡이를 꾹 쥔 그녀는 저 멀리에서 다가오는 적들의 모습을 확인했다.

   

   

   선두에 선 것은 흰 갑옷의 기사였다.

   

   

   사령술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기운으로 가득한 기사는 분명 주신 교회의 사람이었다.

   

   

   헌데 그 주변에 선 이들은 정반대였다.

   

   

   그들은 한없이 사령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이미 죽음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부정하고서 세상을 거니는 존재.

   

   

   이 세상에 허락받지 못한 괴물들.

   

   

   비시의 이상향이라 부를 만한 존재들이었지만 그녀는 그 괴물들을 보고서 자그마한 감동도 느끼지 못했다.

   

   

   머릿 속에 끊임없이 경종이 울린다.

   

   

   저건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존재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규율을 어그러트리는 것들이다. 결코 지상에 받아들여질 수 없는 악몽이다.

   

   

   …난 동생을 저런 존재로 만들려 했던 거야?

   

   

   – 비시!

   “아. 아아아.”

   – 정신차려요! 그러고 있을 때가.

   “난. 난.”

   – 비시이! 정신차리라고오오오!!

   

   

   두개골 안에서 울리는 외침에 놀라 정신을 차린 비시는 아드리가 자신의 머릿속에 파고 들었었단 사실을 눈치챘다.

   

   

   “아. 아드리?”

   – 아악! 진짜 답답해서 못 견디겠네! 지금이 그런 고민 할 때야!? 너 혼자 뒈지는 게 문제가 아냐! 네가 죽으면 저 안에 있는 네 부모님들은 어쩔 건데!

   

   

   그녀의 말이 옳았다.

   

   

   좌절하고 절망하고 자기혐오에 빠져 천장에 줄을 매다는 건 나중에도 얼마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 비시가 해야 하는 일은 저들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다.

   

   

   – 알른 영애께 신호는 보내뒀어요. 구원이 올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요.

   “…이제와서 다시 가면을 써도 의미 없지 않아?”

   – 그냥 모르는 척 해주시죠.

   “하하. 그러긴 힘들지. 내 뇌에 대고 소리쳤잖아.”

   

   

   하아. 뭐 어쨌건 덕분에 긴장은 풀렸어. 가볍게 웃은 비시가 지팡이를 휘두름과 동시에 아드리가 뒤 편에서 사령의 노래를 부른다.

   

   

   땅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던 원혼들이 지상으로 나오며 비명을 내지른다.

   

   

   방금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거칠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고, 대지의 생명은 냉기 속에서 점차 죽어간다.

   

   

   “성하의 말씀이 옳으셨군요.”

   

   

   어느새 비시의 앞에 도달한 성기사는 보란 듯 자신의 신성으로 주변을 밝히면서 검을 치켜들었다.

   

   “죽어라. 사악한 것아.”

   “당신이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 따지자면 우리들 동류잖아?

   

   

   기사는 자그마한 동요도 없이 아드레에게 달려들었다.

   

   

   오러와 신성 양 쪽을 모두 활용하는 기사의 속도는 압도적이었다.

   

   

   최소한 비시 따위가 따라잡을 수 있는 건 아니었지.

   

   

   – 재미난 검이군.

   

   

   허나 사령술사에게 있어서 그런 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불과했다.

   

   

   죽은 령을 다룰 수 있는 이들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타인에게 맡길 수 있었으니까.

   

   

   – 예나 지금이나 종교쟁이들은 하나 같이 뒤가 구려.

   – 거슬리는 족속들이지.

   – 어허! 주신의 은혜를 가벼히 여기는가!

   – 시끄럽다. 추악한 종교쟁이놈. 사령이 됐으면 자존심 좀 버리지 그러나.

   

   

   지금 지상에 드리운 영들은 단순한 유령이 아니었다.

   

   

   과거 솔라딘의 국왕으로 일했으며 죽은 후에도 나라를 위해 자신의 혼을 바친 이들.

   

   

   후손놈들이 하는 꼬라지가 불안하다며 성불하는 대신 새로이 머물 곳으로 비시를 택한 사자들은 기사를 앞에 두고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과거의 망령들이군.”

   – 어. 저 놈 사막 부족의 우두머리잖아! 오래 전에 뒈졌을 텐데?

   “그러는 너도 결국 늙어 죽었나보군?”

   – 저 놈도 안다! 나와 전장에서 맞붙었던 쓰레기다!

   “학살자.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 허허허. 잔챙이 놈들이구나.

   “이번엔 반드시 죽여주마.”

   

   

   과거의 맹자들과 과거의 왕들이 부딪히고 그 틈 사이로 날아든 기사를 아드리가 가로 막는다.

   

   

   허공에 떠오른 수십 개의 칼날은 부족한 검술실력을 보충해줬다.

   

   

   “여기에 오길 잘했습니다! 이로써 위대한 주신을 위해 하나의 일을 더 할 수 있겠군요!”

   

   

   아드리는 상처를 도외시해가며 달려드는 기사를 보며 혀를 찼다.

   

   

   지금 당장은 대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게 언제까지고 이어지진 않을 거야.

   

   

   사령 개개인의 전력이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그걸 다루는 비시의 실력이 모자라.

   

   

   머잖아 비시의 힘이 다해가기 시작하면 하나 둘 씩 균열이 생길 테지.

   

   

   그 때까지 건방진 꼬맹이가 와야 하는데!

   

   

   아드리의 예상은 옳았다.

   

   

   적과 아군의 팽팽해보였던 대치에 균열이 생긴다.

   

   

   상대는 상처를 모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끝이란 단어를 지운 채다.

   

   

   헌데 아군은 그렇지 않다.

   

   

   죽음 속에 머물며 타인에게 존재를 위탁한 이들은 그 타인의 힘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령들이 밀려난다. 하나 둘 혼의 일부를 베인다. 아드리라 해서 마땅한 수가 있진 않다.

   

   

   그녀의 실력이 제 아무리 뛰어나다한들 사령술사인 이상 실력 있는 성기사의 앞에선 한계가 생긴다.

   

   

   그렇기에 결국 도미노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맨 앞부터 시작해서 와르르 무너져내려 그 끝에 서 있던 이의 목에 칼날을 드리운다.

   

   

   그를 본 비시는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두 눈을 꾹 감았다.

   

   

   죽음이 다가온다.

   

   

   끝이 제 송곳니를 내민다.

   

   

   삶의 종말이 그녀에게로.

   

   

   채애앵!

   

   

   청량한 울림.

   

   

   비시의 콧가에 스치는 달콤한 향취.

   

   

   피부로 전해지는 따스한 기운.

   

   

   “하아아.”

   

   

   기사의 검을 튕겨낸 루시 알른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의 적을 노려봤다.

   

   

   “정말 이 세상에 쓰레기들이 너무 많다니까.”

   

   

   비시는 긴장감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에 안도하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무능한 페도 변태가 주신이라 그런가.”

   

   

   그녀를 구원해 줄 영웅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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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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