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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

       “그러니까, 내 메이드가 되고 싶다는 말은 진심이란 말이지?”

        

       “그래. 그리고 월급 받겠다는 것도.”

        

       신소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면서 가방에서 뭔가 두껍고 돌돌 말린 것을 꺼내고 있었다.

        

       침낭이었다.

        

       “작년에 가족여행으로 캠핑을 간 적이 있거든. 그때 사두고 쓴 건 딱 한 번뿐이었는데 이렇게 다시 쓸 일이 생기네.”

        

       “……땅바닥에서 자려고?”

        

       아무리 봐도 신소희는 내 방에서 나와 같이 지낼 생각인 모양이었다. 지난번에는 그냥 침대에서 다 같이 잤었지만…… 하긴, 계속 여기서 지낼 생각이라면 매일매일 나와 같은 침대에서 잔다는 것은 무리수이긴 했다. 아무리 동성 친구라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

        

       그 선이 정확하게 뭔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사용인이 사용하는 방도 있는데…….”

        

       솔직히 어디 달려있는지는 모른다. 이 저택은 그만큼 넓었으니까. 그래도 양혜인이 사용하던 방이 있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만약 신소희가 메이드로 지내겠다고 생각하면, 이 방 맨바닥에서 자는 것 보다는 차라리 그 방에서 따로 지내는 편이 편하리라.

        

       “싫어.”

        

       하지만 신소희는 단칼에 거절했다.

        

       “왜?”

        

       내가 미간을 모으고 물어보자, 신소희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답했다.

        

       “……난방비 많이 나가니까?”

        

       이 저택의 난방 방식이 엄청 비효율적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비효율적인 것도 아니다. 애초에 이 저택 전체에 난방이 공급되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양혜인도 다른 방에서 지냈었다. 그리고 그건 굳이 이 저택에 살고 있던 사람이 아니라도 누구나 추측해볼 수 있는 이야기다. 당연히 신소희도 원래 쓰던 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뭔가, 내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꿍꿍이속이 있다는 말이다.

        

       나는 한숨을 푹 쉬면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손바닥으로 이마를 슥슥 비볐다. 그 사이에도 신소희는 가방에서 자신의 짐을 하나하나 풀어놓고 있었다. 방에 하나 있는 탁자 위에 그녀의 짐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칫솔, 치약, 각종 화장품, 샤워 도구, 얇은 일상복과 교복…….

        

       아, 맞다. 교복.

        

       “여기서 메이드 일을 하면, 학교는 어떻게 하려고?”

        

       나는 그렇게 물었다. 그래, 만약 유하늘이나 이수아가 같은 주장을 했다면 몰라도, 신소희는 다른 학교 학생이었다. 그것도 사실상 가는 방향이 완전히 반대 방향이다.

        

       내 전속 메이드는 매일 아침 나와 함께 학교 앞까지 가서, 내가 학교로 들어가는 것을 배웅한다. 그리고 내가 정문으로 하교하건 말건, 학교 앞으로 미리 차를 타고 와서 나를 기다려야 한다. 당연히 학교에 다니면서 그 모든 것을 하기에는 시간상으로 여유가 없다. 매일같이 지각과 조퇴를 반복해야 할 것이다.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 그래, 맞아. 학교.”

        

       짐을 풀어놓던 신소희는 마치 지금에서야 생각났다는 양 고개를 들면서 손뼉을 짝 쳤다.

        

       “그래, 내가 말한 그 ‘돈 든다는 계획’말야. 그게 학교 관련된 일이었어.”

        

       “……학교 관련되다니?”

        

       아.

        

       되묻고 나서야 나는 신소희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았다.

        

       “내가 화영 고등학교에 입학해버리면 전부 해결되는 일이잖아?”

        

       신소희는 나에게 환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기왕이면 연봉은 그 학교에 갈 수 있을 만큼 맞춰줬으면 좋겠는데.”

        

       “…….”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

        

       억지스러운 부탁이라는 것은 신소희도 알고 있었다.

        

       화영 고등학교의 등록금이 얼마인지는 자신도 모른다. 그나마 알고 있는 것은 ‘일반적인 가정의 학생’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금액이라는 것은 알았다. 못해도 수천에서, 최악의 경우 억대일지도 모른다.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에 있던 양혜인만큼 메이드로서의 일을 잘 해낼 거라는 자신도 없다. 그런 주제에 그렇게 많은 금액을 달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엄청나게 뻔뻔한 부탁이라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혹시 거절당하더라도, 말이라도 한번 해 보자. 신소희는 여기까지 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카페에서 유서를 읽고, 일행과 몇 마디 말을 나누었다. 각자 그 유서에 관한 생각이 생긴 모양이긴 했지만, 속내를 다 털어놓지는 못했다. 그래, 털어놓지 못한 것이다. 안 한 것이 아니라.

        

       깔끔하게 정리해서 대답을 내놓기에는 생각이 너무 복잡했던 탓이다. 신소희가 다른 아이들의 생각까지 읽어낼 정도로 사람의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고뇌에 잠긴 유하늘과 이수아의 표정을 보면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각자 뭔가 확실하게 하자고 마음먹었다는 것을.

        

       그래서, 신소희 자신은 어떤 마음을 먹었나.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서도, 침대에 누워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있었다. 내가 뭘 할 수 있지? 아니, 이제 어떻게 해야 좋지? 어떻게 사라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신소희는 사라를 좋아했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사라를 생각하고 있으면 심장이 점점 세게 뛰었고, 오랫동안 보지 못하면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중학생 때 더 열심히 공부해서 화영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하곤 했다. 가끔은 사라와 함께 웨딩드레스를 입고 함께 버진 로드를 걷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솔직히, 터무니없는 상상이라는 것은 알았다.

        

       자신은 평범한 가정집의 딸이다. 결코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부자라는 생각도 해본 적은 없다. 그냥 남들 사는 만큼 사는구나, 하는 것이 신소희가 가지고 있는 자기 가족에 대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대인 사라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부자다. 단순히 어마어마한 재산을 물려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본 사라는,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십 대였다. 그리고 몇몇 국가의 왕족을 제외하면,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는 가장 돈이 많은 사람 중 한 명으로 집계되고 있기도 했다.

        

       그 나이에도 이미 그렇다는 말이다.

        

       사라는 신소희를 거리낌 없이 친구로 대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집으로 초대하기도 하고, 딱히 어려운 말을 하거나 말을 가려서 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그 옆에 있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나도 어쩌면……’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돈은 좀 많고, 세상 물정에 조금 어둡고, 여러모로 어벙한 구석이 있는 ‘아가씨’이기는 했지만, 본질은 자신과 똑같다고, 어쩌면 그녀도 그저 상황이 다를 뿐, 그녀와 자신은 결국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하지만…… 아니었다.

        

       그녀가 사는 세상은 신소희가 사는 세상과는 다르다.

        

       처음 ‘회장’이 ‘양어머니’를 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조금 마음을 놓았다. 사라가 ‘그런 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망상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꽤 비슷하게 들어맞았다.

        

       그 여자, 그러니까, 사라의 ‘양어머니’인 최나경은, 사라에게…… 분명히 성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정신이 나가서, 어떤 사연이 있어서 그런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신소희가 느끼기에 그녀는 분명히 ‘위험한’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래, 어쩌면 본질적으로는 신소희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여자를 좋아하고, 심지어 그 좋아하는 대상이 같으니까.

        

       그리고, 그 여자는 그 삐뚤어진 감정으로, 사라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뻔했다.

        

       아니, 이미 몰아넣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저 사라 입장에서는 운 나쁘게 실패했을 뿐.

        

       “……그냥 공짜로 달라고 하지는 않을게. 솔직히, 내가 여기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 비용에 걸맞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니까.”

        

       얼굴을 쓸어내리는 사라에게, 신소희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일하고 남는 부분은…… 갚을게.”

        

       물론, 그 돈은 하루아침에 갚을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얼마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너의 옆에서 하나씩 갚아나갈 테니까.”

        

       사라가 여자를 좋아할 가능성이 있을까? 잘 모르겠다. 사라 자신은 최나경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겼었지만, 그게 가족으로써 사랑한다는 말일 가능성이 더 컸으니까.

        

       ……만약, 여자로서 그녀를 사랑했다면, 사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생각했을까?

        

       처음에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버릴 목숨이라면, 차라리 나한테 맡겨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예전에 읽었던 어느 로맨스 소설에선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그렇게 말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신소희는 그렇게 보여도 겁이 많아 보이는 성격이다. 잔뜩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처럼 자신의 마음을 깊은 곳에 숨겨두고 아무한테나 보여주지는 않는다. 유하늘과 이수아 앞에서 굳이 그런 마음을 드러내 보이는 이유는 그저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얘 좋아한다’고 대놓고 말하며 가시를 세우는 것이다. 두 사람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지만, 동시에 이기적이기도 했다. 그녀는 사라가 자신을 선택할 때,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선택해주었으면 했다. 그저 인생을 버리듯이 적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제대로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거절당할 것이 무서운 주제에, 그녀는 동시에 그렇게 배짱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러니까.

        

       사라가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일주일에 그저 만족하고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여기 머물면서 일상을 영위하고 싶어 했으면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소희는 어떻게 해야 사라가 그렇게 생각해줄지 알기가 어려웠다.

        

       지금까지 천천히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사라가 진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 삶에서 겪은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다.

        

       몰랐기에— 결국 이런 선택을 한 것이다.

        

       그녀가 생각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단순한 아이디어뿐이었다. 그 생각을 떠올린 그녀는 다짜고짜 집을 나왔다.

        

       창고에서 본 적 있는 사다리를 들고, 가방을 생활용품으로 꽉꽉 채워서, 충동적으로 이 저택의 담을 넘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사라가 잘못된 마음을 먹는다면. 혹은 사라를 괴롭히거나 상처입히려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신소희 자신이 직접 나서서 막으면 될 일이었다.

        

       사라 옆에 24시간 꼭 붙어 다니면서. 사라가 삶을 이어갈 행복을 찾을 때까지, 시간을 번다.

        

       그게 그녀가 떠올릴 수 있었던 유일한 ‘아이디어’였다.

        

       ……사실 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사라 뒤에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는 알 바 아니다. 만약 사라가 학교에 갈 돈을 내주지 않겠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학교 같은 것은 가지 않아도 되니까. 나중에 검정고시라도 치지, 뭐.

        

       그저 지금은, 사라를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뿐이었다. 지켜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렇기에, 신소희는 이 길을 택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러분, 양혜인 아직 퇴장 아닙니다. 걱정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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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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