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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

       그 뿐만이 아니었다.

       

       여러 학생들의 시선도 나를 향해 있었다.

       

       거기에 담긴 감정은 호기심과 비난인가.

       

       “다시 말씀 드릴게요. 172페이지 첫 문단. 읽어 주시겠어요?”

       

       이런. 생각에 매몰되어서 말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있었나.

       

       172페이지가 어디지?

       

       급히 책을 넘기려는데 옆에서 엔리가 슬며시 자신의 책을 밀어주었다.

       

       읽어야 할 곳을 손가락으로 가르켜 주는 데서 그녀의 섬세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오늘 날에 이르러…”

       

       공부를 한 지가 꽤 되었기에 이제 웬만한 글자를 읽는 데엔 망설임이 없었다.

       

       모든 문단을 읽고 입을 다물자 교사는 잘했지만 수업시간에는 집중을 해달라며 나를 질책했다.

       

       거 미안하게 되었구나. 생각할 것이 많아서 말이다.

       

       잡생각을 떨치고 다시 칠판 쪽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내 아래에서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엔리가 내 책 위에다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이번에는 무엇이더냐.

       

       그녀가 이런 식으로 잡담을 거는 건 항상 있는 일이었기에 나는 슬며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무슨 생각 하고 있었어요?’

       ‘비밀입니다.’

       

       미안하다만 그대에게 이야기해 줄 만한 것이 아니다.

       

       평범한 현대인인 그대에게 광신이니 뭐니 하는 말을 지껄여봐야 이해하지 못할 게 분명하니 말이다.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엔리는 내가 글을 적기 무섭게 그 아래에다 새로운 글귀를 적었다.

       

       ‘고민이 있는 거죠?’

       ‘비밀이라니까요.’

       ‘저 상담 잘 해줄 수 있는데.’

       

       이 녀석아. 말해줄 생각이 없다 하지 않았느냐.

       

       눈으로 질책을 했으나 엔리는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쓰잘데기 없는 곳에서 힘이 넘치는 구나.

       

       평소 힘 쓸 곳이 없어서 그렇더냐? 내 직접 그대가 체력을 소모할 만한 장소를 만들어주어야 만족을 하겠느냐.

       

       “거기 두 분?”

       

       교사는 우릴 예의주시하고 있었는지 딴 짓을 하는 걸 놓치지 않았다.

       

       나와 엔리는 그녀에게 한 소리를 듣고 나서 다시 칠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그래서 오늘 뭐 때문에 생각이 많으신 건데요.”

       

       수업이 끝나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그것이더냐? 녀석아. 참으로 집요하구나.

       

       “숨기는 걸 그렇게 물어봐야겠어요?”

       “고민은 원래 나누면 가벼워지는 법이라고요!!”

       

       허이구. 아주 종교인이 따로 없구나. 이러다 머리를 밀고 절에 귀의하기라도 하겠어.

       

       “이래 뵈도 저 신부가 되려고 했던 사람이라고요. 고해성사 정도는 받아줄 수 있답니다!”

       

       엔리가 성호를 그으며 짐짓 근엄한 체를 했으나 거기에선 조금의 신실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녀석. 농담도.

       

       “교회의 신부라면 남자만 될 수 있는 거 아니었나요?”

       “성공회는 여자 신부도 인정해요. 많지는 않지만.”

       

       …응? 정말이더냐?

       

       스마트 폰을 켜서 찾아보니 사실이었다.

       

       영국에 존재한다는 성공회라는 곳에선 여성에게도 신부의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니. 그래도 믿을 수 없다.

       

       엔리 그대처럼 가벼운 사람에게 신부 같은 직책이 어울릴 리 없지 않으냐!

       

       “믿을 수 없어요.”

       “진짜라니까요?!”

       “거짓말.”

       “제가 비록 신학교를 2학년까지 다니다 중퇴하긴 했어도 신부가 될 뻔 했던 건 사실이라고요!”

       

       엔리는 자신을 증명하겠다는 듯 성경의 구절이라던가, 찬송가라던가 하는 것을 이야기했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내가 그 중 하나라도 알 듯 싶더냐?

       

       본인이 교회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은 전생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심지어 그 때에도 나는 신실함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었다. 종교에 관한 걸 기억할 리 없지 않느냐.

       

       “좀 믿어줘요오오…”

       “엔리가 한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신부가 고해성사를 강요하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신부가 될 뻔했던거지. 신부가 된 건 아니니까 괜찮아요.”

       

       아주 얼굴에다 철판을 깔았구나.

       

       그러고도 자신에게 고민을 이야기해 달라 하는 것이냐. 뻔뻔함에도 정도가 있지.

       

       흐음. 신학교를 다녔다는 게 사실이라 치고, 그럼 신앙에 대한 공부를 했겠지.

       

       본인이 무림에 살적에 종교는 어디까지나 맹목적인 것이었다.

       

       종교를 믿는 자가 종교에 관해 공부한다는 것은 권장 받는 일이었으나 종교를 의심하고 연구한다는 것은 불경한 일이었다.

       

       그러니 신앙에 대해 밀도 있는 연구를 한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모두들 그저 믿고 따를 뿐이었다.

       

       당연 본인이 가진 고민을 해결해 줄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현대는 다르다. 수많은 선구자들에 의해 무너지고 바뀌며 정립된 것이 신앙이라는 것이니.

       

       그에 관해 공부한 엔리라면 내게 해답을 내려줄 지도 모른다.

       

       어디 한 번 물어나볼까. 말 몇 마디를 한다 해서 손해를 볼 것도 없으니.

       

       “엔리. 조금 불경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괜찮아요! 저 교회 안 나간 지 몇 년 됐거든요!”

       

       그거 아느냐.

       

       방금 그대가 한 말 때문에 앞으로 할 말의 신뢰도가 왕창 깎여나갔다는 것을.

       

       괜히 말을 꺼냈나 싶기는 했으나 이제와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대답이나 들어 보자꾸나. 정 헛소리 같으면 한 귀로 흘리면 그만이지.

       

       “신앙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물음을 들은 순간 에리가 눈을 몇 번 끔뻑였다.

       

       너무 추상적인 질문을 던진 것일까.

       

       허나 어찌할 수 없었다. 내 사정에 관해 자세히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사정을 모르는 이에게 내가 광신의 대상이 될 것 같다고 해봐야 정신이 이상한 거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올 뿐일 테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하나만 대답해주시겠어요?”

       “가능한 거라면요.”

       “기독교나 불교 같은 메이저 종교에 관한 건 아니죠?”

       “네.”

       “그거면 됐어요.”

       

       엔리는 그녀답지 않게 심각한 표정을 하고서 한참 동안 고민을 이어나갔다.

       

       하긴 나도 오래 고민을 해보았다면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한 물음이니.

       

       그리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다 말을 했으나 엔리가 고개를 저었다.

       

       결국 그녀가 입을 연 건 교실에 있던 학생들 대부분이 빠져나간 뒤였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니까 제멋대로 이야기를 할게요.”

       “네. 괜찮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신앙은 무지에서 시작돼요.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가 신앙으로 이어지는 거죠.”

       

       과거에 사람들은 번개를 신앙했다.

       

       그것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압도적인 폭력이었기 때문에.

       

       허나 번개가 단순한 자연 현상 중 하나라는 게 밝혀진 지금은 그 누구도 번개를 신앙하지 않는다.

       

       과거 사람들은 태양을 신앙했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을 태양의 축복이라 여겼다

       

       허나 태양이 단순한 항성임이 밝혀진 지금은 그 누구도 태양을 신앙하지 않는다.

       

       “여전히 태양이나 번개는 인간이 보기엔 압도적인 무언가에요. 그렇지만 그걸 숭배하진 않아요.”

       “그렇죠.”

       “그것에 관해 잘 알기 때문이에요. 생각해봐요.

       자기 옆집에 사는 백수 아저씨가.

       맨날 슬리퍼나 질질 끌고 다니고, 누런 런닝을 입고, 배를 벅벅 긁으며 담배를 피우던 그런 사람이 전지전능한 힘을 가졌다 해서 숭배할 수 있어요?”

       

       못하겠군. 그딴 걸 신이라 인정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

       

       “이런 극단적인 예시가 아니라도 자기 옆에 있던 친구가 힘이 생겼다 해서, 알고 지내던 동생이 엄청난 존재였다 해서 그걸 숭배하진 못해요.

       너무 친근한 존재니까. 그들에 대해 너무 잘 아니까.

       신앙에는 신비함이 필요해요. 신비함이 사라진 순간 신앙은 힘을 잃죠.”

       

       대충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알겠다. 상대가 전지하고 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친근한 존재라면 그를 신앙할 순 없단 것 아니냐.

       

       바꾸어서 말을 하자면 본인에게로 향하는 신앙을 없애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본인이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 알려야 한단 소리겠구나.

       

       사람들이 천마 백화령이 아니라 치졸하고 추잡한 인간 백아라에 대해 알게 된다면 본인을 신앙하지 않을 테니까.

       

       그녀의 말이 반드시 옳다는 보장은 없지만 시도를 해 볼 가치는 있겠구나.

       

       엔리가 옳았다.

       

       고민은 나누면 가벼워지는 것이었다.

       

       여전히 막막하기는 하다만 그래도 해답이 없을 때와 나아갈 길이 있을 때의 무게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 정도면 대답이 됐을까요?”

       “네. 엔리는 정말 신학교를 다닌 것 같네요.”

       “아직까지 안 믿고 있었어요?!”

       “그치만 엔리가 근엄하게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운 걸요.”

       

       자기도 진지할 때는 진지해지는 사람이라며 엔리가 소리쳤지만 항상 가벼운 모습만을 봐왔던 나는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혼자서 난리를 치다 제풀에 지친 한숨과 함께 그녀는 가방을 어깨에 메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보다 천하제일 무술대회 이야기나 해주세요.”

       “엔리도 봤어요?”

       “다시보기로요. 아라 씨 너무 학살을 하시던 데요.”

       “거기 나온 사람들이 약해서 그래요.”

       “저보다 한참 잘하시는 분들인데.”

       “엔리는 훨씬 더 약하고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부정을 하지 못하는 엔리를 보니 웃음이 새 나왔다.

       

       *

       

       나라는 사람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게 무엇일지 생각을 해보았다.

       

       책을 쓰는 것은 무리다.

       

       본인은 글을 적는 재주도 없고, 설령 쓴다 해도 누군가가 읽어줄 리가 없었으니.

       

       연예인이 되는 것도 불가하다. 본인에겐 대중을 사로잡을 만한 끼가 없었다.

       

       그 외에도 여러 방법을 생각해보았으니 가장 낫다 싶은 방법은 엔리처럼 방송을 하는 것이었다.

       

       인터넷 방송은 나라는 사람을 알리기 좋은 수단이었다.

       

       실시간으로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방송으로 송출되니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본인이란 인간에 대해 알게 될 수밖에 없었다.

       

       뭣보다 내가 방송 자체에 흥미를 느낀다는 점이 내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

       

       이전에 엔리나 데케이의 방송에 출현하며 느낀 것이지만 방송은 즐거운 일이었다.

       

       본인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손한 말을 던지는 이들의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 아느냐.

       

       물론 무림에서도 본인에게 도발의 말을 던지는 이들이 있었다.

       

       허나 그들은 모두 나에 대한 두려움을 품은 채 그걸 감추려 날을 세울 뿐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겁에 질려 털을 부풀리는 고양이 같은 이들이었지.

       

       그건 불손함이 아니라 발악일 뿐이었다.

       

       허나 시청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인터넷의 익명에 기대어 아무런 부담도 없이 본인에게 무례를 행했다.

       

       난 그게 마음에 들었다.

       

       두려움도 경배도 없이 툭툭 던지는 단어들이 좋았다.

       

       그렇게 방송을 하기로 결정을 한 후 엔리에게 조언을 구하려 말을 꺼내자.

       

       “언젠가 그 말 할 줄 알았어요.”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내가 방송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게 티가 났던 모양이다.

       

       “아라씨가 방송을 하면 성공을 하겠죠.

       아라 씨는 화제의 중심이고, 아라 씨가 나오는 방송을 따라다니는 사람만 해도 엄청나니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을거에요.”

       “그렇죠?”

       “보통은 자신만의 컨텐츠가 있냐고 물어보겠지만 아라 씨는 자기 자신이 컨텐츠가 되는 사람이니 그런 질문을 할 필요도 없죠.”

       

       한참 말을 하던 엔리는 그렇지만. 이라는 서두와 함께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방송으로 벌어먹고 사는 저니까 되도록 말리고 싶어요.

       방송인으로 산다는 게 그리 편한 일은 아니에요. 매일매일 정신을 갉아먹어 가며 사는 거거든요.

       마음의 병을 안은 사람들도 많고, 방송을 켜면 죽을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이 켜야 하는 상황도 생기죠. 예전에 제가 그랬듯 미친놈들이 따라 붙을 수도 있고요.”

       “괜찮아요.”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본인은 호의보다 적의에 익숙한 사람이다.

       

       타인에 의해 무너질 것이었다면 본인은 이미 무림의 어느 한적한 산에 묻혔을 것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본인은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기엔 너무 많은 풍파를 겪었으니 말이다.

       

       “저는 엔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에요.”

       

       본인이 여태까지 살아남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느니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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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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