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7

       스르륵.

         

        뱀 여왕이 몇 걸음 떨어졌다.

         

        “으음….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라 몹시 당황스럽구나.”

         

        당황스러운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생각지도 못한 것도 마찬가지였고.

         

        아니, 결론이 어떻게 이렇게 되는 거야?

         

        내가 왜 뱀 여왕을….

         

        물론 잠깐 저 내공 주머니에 혹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궤가 다른 거다.

         

        뭐라고 해야 할까, 생물 본연의 본능이라고 해야 할까.

         

        커다란 것이 있으면 보고 마는 본능적인 행동일 뿐이었다.

         

        “영웅호색이라는 말이 있으니 그리 이상한 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말끝을 흐리며 날 빤히 바라보는 뱀 여왕.

         

        이걸 어떻게 설명한담.

         

        해명하지 않아도 일이 잘 진행될 거 같은, 오히려 내게 더 이득이 되는 상황이 올 거 같다는 직감이 들긴 한다.

         

        하지만 동시에 무엇인가 뒤틀려 버릴 거 같은 직감이 들었다.

         

        어쩐지 거미들을 만나면 거미줄로 칭칭 감싸질 거 같기도 하고.

         

        비늘이 몽땅 빠져버려서 박치기 공룡으로 진화할 거 같기도 하고.

         

        “게게겍….”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 딸이랑 이어주려고 했는데 설마 내가 생각하고 있는 대로 하겠어?

         

        저건 그냥 하는 소리일 거다.

         

        자기가 하는 말이 오해임을 깨달을 거다.

         

        “적자가 생기기라도 하면 많이 곤란해지는데.”

         

        그게 무슨 소리니, 뱀 여왕아.

         

        적자라니.

         

        왜 아이를 낳을 거처럼 말하는 거야.

         

        뱀 여왕이 은근슬쩍 내게 다가왔다.

         

        분명 느린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회피할 수가 없었다.

         

        몸이 덜덜 떨린다.

         

        뱀 앞에 있는 생쥐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마치 네필라 쥐라시카가 내 꼬리를 잡았을 때 느낀 기분이었다.

         

        그렇게 다가오던 뱀 여왕이 중간에 우뚝 멈춰 섰다.

         

        “…잠깐.”

         

        그래.

         

        이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너도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챘지?

         

        그래도 반은 인간인데, 너무 야생적인 삶은 살지 말자고.

         

        “생후 3개월도 지나지 않았다고?”

         

        아니, 그건 또 어떻게 안 거야.

         

        “내 딸아이보다 어리다는 소리더냐?”

         

        도마뱀 나이로 치면 그렇게 될 거다.

         

        전생 나이를 합친다면 저 뱀보단 나이가 많겠지만, 일단 이 몸은 태어난 지 3개월도 지나지 않은 어린 도마뱀이다. 물론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이건 너무 어리구나. 씁, 이러면 영락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겠어.”

         

        이런 부분에서 묘하게 상식적이시네.

         

        …아니, 왜 기다리는 거예요.

         

        그냥 포기한다거나, 놓아준다는 선택지도 있잖아요.

         

        “혼약은 나중으로 미루도록 하지.”

        “게겍!”

         

        사실 말만 미룬다는 거고, 무기한 연기 같은 느낌 아닐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지.

         

        쉭쉭이가 뱀 여왕이 될 때쯤 생각해 봐야지.

         

        “자, 이제 할 이야기는 다 끝났고.”

         

        스르륵.

         

        뱀 여왕의 꼬리가 다시 한번 내 몸을 휘감았다.

         

        이야기 다 끝났다면서.

         

        이건 무슨 의미일까.

         

        “단둘이서 할 게 있으니 따라오너라.”

         

        단둘이?

         

        저 의미심장한 대사는 무엇일까.

         

        …그리고 따라가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강제로 끌고 가고 있잖아.

         

        뱀 여왕은 처음 봤던 넓은 공터로 날 데려갔다.

         

        현재 쉭쉭이는 거울이 있는 방에 있는 상태.

         

        나와 뱀 여왕 단둘이 있다는 거다.

         

        꿀꺽.

         

        대체 무얼 하려고 여기까지 데려온 거지?

         

        “준비는 되었느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리다면서!

         

        기다려주겠다면서!

         

        설마 쉭쉭이가 다 자라기 전에 먼저…?

         

        야만인.

         

        아니, 야만사.

         

        이 뱀은 야만적이다.

         

        스사사사삭….

         

        수상한 소리에 눈을 가늘게 떠봤다.

         

        내 눈에 들어온 건 엄청나게 거대한 내공 주머니였다.

         

        [뱀 여왕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그러니까, 바실리스크의 석화 주머니.

         

        어느샌가 본모습으로 돌아간 뱀 여왕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꾸구구구국.

         

        [뱀 여왕이 당신을 시험합니다.]

       

       장모님의 속성 강의가 시작되었다.

         

         

        *

         

       

        오늘이 벌써 며칠째일까.

         

        또 힘든 하루가 지나갔다.

         

        “케에에엑….”

         

        고모도 한 마리는 대자로 뻗어 있는 상태였다.

         

        장모님의 파괴광선은 정말 미친 위력이었다.

         

        나름 조절해서 쓰시는 거 같은데, 한 번 맞을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지곤 했다.

         

        그렇게 누워서 혀를 내밀고 있으니,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삐야악!”

         

        볼파이톤이 열심히 기어 왔다.

         

        그녀의 꼬리 끝에는 양동이가 하나가 달려 있었다.

         

        뱀 여왕의 말에 따르면, 철의 그릇이라는 신기란다.

         

        그런데 어딜 봐서 저게 신기냐고. 아무리 봐도 양철 양동이인데.

         

        그래도 오래된 물건 치곤 녹이 하나도 안 슬었으니, 신기라도 불러도 되는 걸까?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지금 볼파이톤이 내게 온다는 건, 오늘치 훈련이 끝났다는 소리니까.

         

        “삐약!”

         

        병아리 같은 소리를 내며 내게 양동이를 건네는 쉭쉭이.

         

        양동이 안에는 차가운 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

         

        쉭쉭이는 양동이를 내려놓고 내가 뭐하나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가 떠온 물을 얼른 마셔줬으면 하는 바람인 거 같다.

         

        참 귀엽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치유된다.

         

        마치 투스와 푸스를 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장모님의 드잡이질에 시달린 나에게 있어 쉭쉭이는 참 소중한 존재였다.

         

        “삐야악!”

         

        알았어, 알았어.

         

        양동이. 아니, 철의 그릇에 고개를 처박고 물을 마셨다.

         

        벌컥벌컥.

         

        혓바닥으로 하나씩 떠서 마셔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도마뱀의 경우다. 그냥 고개를 처박고 물을 들이켜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공주여. 어미를 위한 물은 없느냐?”

         

        어느샌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뱀 여왕이 섭섭한 어투로 말했다.

         

        “삐야아아악!”

         

        [【볼파이톤 LV18】이 도둑에게 줄 물은 없다고 합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리더냐. 어찌 어미 된 자가 그런 파렴치한 생각을 하겠느냐.”

         

        딸에게는 쩔쩔매는 뱀 여왕님.

         

        파이톤아, 네가 없을 때 내가 무슨 수모를 당했는지 아니.

         

        막 여기저기 만져지고 그랬어.

         

        “사아아아아악!”

         

        잘한다, 우리 쉭쉭이.

         

        볼파이톤은 뱀 여왕의 손가락을 문 채 대롱대롱 매달렸다.

         

        “…너도 언젠가는 이 어미의 뜻을 알게 될 것이다.”

         

        뱀 여왕은 눈을 내리깔면서 중얼거렸다.

         

        저 뜻을 계속 몰랐으면 좋겠다.

         

        순수한 우리 쉭쉭이를 오염시키지 말아줘.

         

        나도 귀여운 것들 좀 보고 살자.

         

        뱀 여왕이 준비한 고기를 먹으면서 손실된 체력을 보충했다.

         

        “다리 달린 뱀이여. 이제 충분한 준비가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준비라.

         

        당연한 소리였다.

         

        【고모도 LV15】

        HP: 1203/1270

        MP: 370/470

        【상태】

        「뱀 여왕의 낙인」

         

        레벨을 무려 15까지 올렸다.

         

        사실 이 레벨의 대부분은 포식의 효과로 얻은 것이었다.

         

        뱀 여왕님이 제공해 주시는 식단을 먹기만 했을 뿐인데 레벨이 쭉쭉 올랐다.

       

       뱀 여왕의 낙인이라는 게 사라지지 않아 살짝 거슬리긴 하는데, 저게 꼭 나쁜 상태는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다르게 생각하면 뱀 여왕의 가호 같은 거 아닐까.

         

        마음만 같아선 뱀 여왕 옆에 붙어서 평생 살고 싶지만, 그러다간 언젠가 내 레벨을 다른 방식으로 환원해 버릴 거 같다.

         

        뱀 여왕에게 대 코카트리스 훈련도 받았고 기초적인 신체 능력을 향상하는 데 집중하기도 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난 셈이었다.

         

        충분히 얻어먹었으니 밥값을 할 때였다.

         

        “게겍!”

         

        자신감에 찬 게겍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우후훗.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하긴, 이 뱀 여왕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

         

        코카트리스가 아무리 강해 봤자 뱀 여왕에겐 안 될 거다.

         

        난 그런 존재에게 파괴광선을 몇 번이나 맞았고.

         

        코카트리스가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이제 내 제자라고 칭하고 다녀도 되겠구나.”

        “게엑….”

         

        살짝 눈치를 봤다.

         

        물론 나도 그러고 싶다.

         

        뱀 여왕의 제자.

         

        얼마나 멋진 말이던가.

         

        “…무어냐, 그 표정은.”

         

        하지만 난 이미 스승이 있는걸.

         

        “설마 스승도 이미 존재한다는 게냐.”

         

        백연영이라고, 여왕님이랑 닮으신 분 하나 있어요.

         

        “…참으로 욕심쟁이인 도마뱀이구나. 스승의 자리도 빼앗기고 말았다니.”

         

        뱀 여왕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 좀 미안하네.

         

        “다른 첫 번째는 꼭….”

         

        하나도 안 미안해진다.

         

        이 사람이.

         

        아니, 이 뱀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먼.

         

        “삐야아악!”

         

        볼파이톤이 여왕의 손가락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렇게 조금 어수선한 식사 시간이 끝나고,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이제는 정말로 갈 시간이었다.

         

        볼파이톤은 데려갈 수 없었다.

         

        뱀 여왕이 통치하고 있는 지역이면 몰라도, 다른 지역에 들어가는 순간 새들의 먹이가 되고 말 테니까.

         

        “히에엑….”

         

        파이톤은 뱀 여왕의 손가락에서 내려온 후, 내게 몸을 마구 비볐다.

         

        사실 먹을 것만 얻어먹고 도망칠까라는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닌데, 이 녀석을 두고 그럴 순 없을 거 같다. 뱀 여왕에게 받은 은혜가 있기도 하고.

         

        “목적은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다.”

         

        임무 자체도 어려운 게 아니니, 빨리 해결하고 돌아오자.

         

        “명심하거라. 절대 놈과 대적하지 말거라.”

        “게겍!”

        “네가 이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위험하다. 내 딸을 미망인으로 만들고 싶진 않구나.”

         

        …나 걱정해 주는 거지?

         

        “도망에만 집중한다면 고가두리수도 널 쫓지 않을 거다. 놈의 흔적이나 위치를 알아낸 후, 빠르게 사원으로 복귀하거라.”

         

        귀에 딱지가 새기도록 들은 말이었다.

         

        코카트리스의 위치 파악.

         

        이게 뱀 여왕이 내게 부탁한 일이었다.

         

        “게겍!”

         

        믿음직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설마 별일 있겠어?

         

        “그래. 참으로 믿음직하구나.”

         

        내게 몸을 비비는 쉭쉭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분명 뱀일 텐데, 왜 강아지를 쓰다듬는 느낌이 나는 걸까.

         

        이제 작별 인사는 끝이다.

         

        말이 길어져선 안 된다.

         

        훌륭한 도마뱀은 행동으로 증명하는 법이니까.

         

        “다리 달린 뱀아.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다면, 큰 포상이 있을 거다.”

         

        포상?

         

        신기를 보여주는 거 말고 더 준다고?

         

        그렇게 퍼주면 남는 게 있는 거야?

         

        영약 같은 걸 더 주려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냈다.

         

        “우후훗.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영약 같은 걸 주는 거 맞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오한이 들었다.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